생명의 체험과 성장
체험
Eugene , 2012-05-24 , 조회수 (2165) , 추천 (0) , 스크랩 (0)

신약은 우리가 옛사람을 갖고 있으며(롬 6:6, 엡 4:22), 우리가 새 사람이라는 것을 계시한다(고후 5:17, 골 3:10-11, 엡 4:24, 2:15).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새 사람은 없는 옛사람이었다. 구원받은 후 우리는 옛사람을 갖고 있는 새 사람이 되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의 혼은 우리의 인격이었고 우리의 영은 단지 하나님을 접촉하고 영접하는 기관이었다. 그러나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영 안으로 영접해 들여 구원받은 후에 우리의 영은 우리의 새로운 인격, 새 사람이 되었다. 이 새 사람은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그 생명으로 갖고 있는 우리의 거듭난 영이다. 우리의 영은 우리의 새로운 인격이 되었으며, 혼은 우리의 영을 봉사하는 기관이 되었다.

 

거듭남을 통해 우리의 영은 신성한 생명을 받아들여 그것을 새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새 사람은 영이며, 우리의 혼은 이 새 사람의 기관이 되었다. 우리의 혼은 생각하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결정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등의 기능을 갖고 우리의 영을 섬긴다. 이 모든 기능들은 영의 용도를 위한 것이며, 영의 목적을 섬기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혼은 인격으로서는 배격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혼은 여전히 새 사람, 거듭난 영을 위한 기관으로는 유용하다.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로 인해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혼을 부인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혼을 부인하는 진리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 반대를 받았다. 어떤이들은 우리의 혼을 부인한다면 우리는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혼을 부인하는 것은 인격으로서의 혼을 부인하는 것이지 기관으로서의 혼을 부인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관으로서 우리의 혼-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은 매우 유용하다.

 

영적인 체험에서 우리가 더 영적이 될수록 우리는 더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된다. 우리가 더 영적이 될수록 우리는 더 감정적이 된다. 실제로 우리가 울거나 눈물을 흘릴 줄 모른다면 우리는 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눈물 흘리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혼을 인격 삼아 눈물을 흘린다면 이것은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 아니다.

 

수년 동안 나는 나의 혼을 인격 삼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혼을 나의 기관으로 취해 영 안에, 새 사람 안에 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때에 나는 혼을 인격이 아닌 기관 삼아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는 인격은 나의 영이었다.

 

오늘날에도 원칙은 동일하다. 우리가 혼을 인격 삼아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랑일지 모르나 그것은 옛사람에게 속한 것이며, 여전히 육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의 혼을 인격 삼아 사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나 우리의 영을 인격 삼고 우리의 혼을 기관 삼아 사랑하는 것은 옳은 것이다. 우리의 혼이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기는 불가능하다. 엄밀히 말해 우리의 영은 사랑하는 기능이 없다.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사랑하는 기관을 가져야 한다. 사랑하는 기관은 우리의 혼의 일부인 우리의 감정이다.

 

우리의 영은 스스로 울거나 눈물 흘릴 수 없다. 복음서에서 주 예수님은 우셨다(요 11:35, 눅 19:41). 그분은 그분의 영을 인격 삼고 그분의 혼을 기관 삼아 우셨다. 그분은 그분의 혼을 인격 삼아 사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은 그분의 영을 인격 삼고 그분의 혼을 기관 삼아 사랑하셨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주 예수님과 동일하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우리의 혼은 우리의 인격으로는 부인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혼은 여전히 기관으로서는 유용하다. 우리의 혼이 우리의 인격이 되려고 일어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사랑하는 혼아, 과거에 너는 나의 인격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니다. 오늘날 너는 부활 안에서 나의 기관이다. 나의 인격은 그의 생명으로 주 예수를 갖고 있는 나의 거듭난 영이다. 이 영은 새 사람이며, 이 새 사람은 나의 인격이다. 사랑하는 혼아, 이제 너는 기관에 불과하다. 너의 위치를 지키고 나에게 아무 것도 제안하지 말라. 내가 사랑하거나 생각할 때 너는 나의 사랑하고 생각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주님과 홀로 있을 때 나의 고백은 혼을 나의 인격 삼아 살았다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매우 자주 나는 혼이 나의 인격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혼을 듣는다. 나의 혼이 사랑하라고 말하면 나는 사랑한다. 나는 나쁜 일을 하면서 옛사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면서 옛사람을 산다. 좋은 일만을 한다고 그리스도를 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나무에 속한 무엇이 아니다.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다 다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 속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영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살 때에만 생명나무를 사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날마다 그리스도를 사는가 아니면 단지 합당하게 처신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많은 때 나는 주님께 이렇게 고백했다. 『주여, 나를 용서하소서.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시간의 사분의 일밖에는 당신을 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좋은 일을 행함으로 옛사람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주여, 나를 용서하소서.』


위트니스 리
[생명의 체험과 성장, p. 27-29,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