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고 최종 완성적인 예수의 증거
교회
Eugene , 2012-05-23 , 조회수 (2167) , 추천 (0) , 스크랩 (0)

계시록은 첫째로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둘째로 예수의 증거를 계시한다. 달리 말해서, 이 책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것이다. 계시록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독특하고도 특별한 방식으로 계시된다. 지난 메시지에서 지적했듯이 다른 책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그리스도의 많은 방면들이 계시록에서 밝히 드러내어진다. 교회의 경우에도 동일하다. 계시록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를 펼친다. 이 메시지에서 우리는 계시록에서 발견되는 교회의 방면들에 대한 요약을 제시할 것이며, 다음 메시지들에서는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Ⅰ. 등대들

 

첫째로 계시록에서는 교회들이 등대들로 밝히 드러내어 진다(1:11-20). 신약의 다른 어느 책에서도 교회와 관련하여 이 용어가 쓰이지 않는다. 다른 책들에서는 교회가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의 모임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계시록을 제외하고는 교회가 등대라는 말을 듣지 못한다.

 

등대들인 교회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낸다. 등대라는 단어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와 그 기능에 대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교회는 등(lamp)이 아니라 등대(燈臺), 즉 등을 떠받쳐 주고 있는 받침대이다. 등이 없으면 등대는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그러나 등대는 빛을 내는 등을 떠받쳐 준다. 우리가 앞의 메시지에서 본 바와같이 하나님은 빛이시고 어린양은 등이시다(21:23). 이와같이 그리스도는 등이요 교회는 그 등을 받치고 있는 등대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등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밖으로 비추어내기 위해 받침대에 의해 유지된다.


A. 본성이 금으로 됨(신성함)

 

지방 교회들인 등대들은 본성이 금으로 되어 있다. 예표상으로 금은 신성 곧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을 상징한다. 모든 지방 교회들은 본성이 거룩하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으로 짜여졌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절대로 성경적이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지방 교회들이 금등대들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1:20). 이 받침대들은 흙이나 나무나 기타 열등한 재질로 건축되지 않았다. 그들은 순금(純金)으로 구조되었다. 이것은 모든 지방의 교회들은 반드시 신성해야 함을 의미한다.

 

신성함이 없이는 교회가 있을 수 없다. 비록 교회가 신성을 가진 인성으로 구성된다 하더라도 인성이 지방 교회들의 기본 본성이어서는 안 된다. 지방 교회들의 기본 본성은 반드시 신성 곧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이어야 한다. 이 간단한 두 단어 -금으로 된 등대들-에 의해서 우리는 교회에 관해 상당히 많이 깨닫는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로 빛을 내는 것이며 신성한 본성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B. 어둠 속에서 빛을 냄

 

등대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낸다. 만일 어둠이 없다면, 등의 빛이 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등의 빛을 냄은 자못 특별하다. 등이 빛을 내려면 반드시 속에서 불 타오르는 기름이 있어야 한다. 만일 기름이 등 속에서 불탄다면 빛이 모든 어둠에 비췰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기능이다. 교회의 기능은 단순히 설교하거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어두운 밤에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바로 그 영광을 비춰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증거(간증)이다.


C. 서로 동일함

 

모든 등대들은 서로 동일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달라지고자 갈망한다. 내가 14 년 전에 이 나라에 왔을 때, 나는 지방 교회들이 모두 같기 때문에 곤란을 겪은 어떤 사랑스런 성도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다르게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내게 말했다. 이것은 올바르지 않다. 누구나 머리와 두 어깨와 두 팔과 두 손과 열 손가락을 갖고 있으며, 모든이의 머리는 일곱 구멍-두 귀, 두 눈, 두 콧구멍, 입-을 갖고 있다. 『저는 남들과 같은 모양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다르게 되기 위해서 저는 머리에 다섯 구멍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런 것이다.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

 

각 지방 교회들은 독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관념을 계시록 2장, 3장에 있는 일곱 교회들의 차이점들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어떤이들은 『자, 보라. 일곱 교회들 모두가 서로 다르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초기에 어렸을 때 나는 이 관념에 영향을 받아 같은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빛이 점점 분명해질 때 나는 계시록 2장, 3장에 있는 모든 지방 교회들의 차이들은 소극적인 것이지 적극적인 것이 아님을 보았다. 에베소는 그 처음 사랑을 잃었다(소극적임). 버가모는 세상적이다(소극적임). 두아디라는 마귀적이다(소극적임). 라오디게아는 미지근하게 되었다(소극적임). 그러나 적극적인 측면에서 모든 지방 교회들은 동일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일곱 등대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일곱 등대 모두를 당신 앞에 있는 탁자 위에 놓고 그것들에 번호를 붙이거나 표시를 해놓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것들을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일곱 등대들 모두가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2년 이래 이 나라에서 어떤이들은 결코 로스앤젤리스 교회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크게 선포해 왔다. 오늘날 이런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사라져 버렸고, 그들이 주창한 모든 이상한 관념들은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모두가 로스앤젤리스 교회를 따라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로스앤젤리스가 일곱 「구멍들」을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다섯 「구멍들」을 가지기를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리라. 적극적인 측면에서 모든 지방 교회들은 반드시 동일해야 한다. 그러나 소극적인 측면에서 그들은 서로 다르다. 만일 로스앤젤리스 교회가 우상을 숭배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따르기를 거절해야만 한다. 이러한 일에서 우리는 반드시 달라야 한다. 그러나 적극적인 측면에서 지방 교회들이 같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자신들을 특이하거나 다르게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이것은 교만이다.

 

어느날 주님은 내게 새 예루살렘의 네 면이 정확하게 같음을 보여 주셨다. 벽의 각 면은 같은 재료-벽옥(碧玉)-로 건축되었다. 한 쪽 면은 벽옥으로 건축되고 다른 면들은 놋으로 건축된 것이 아니다. 아니다. 네 면 모두가 같다. 이와같이 우주적으로 모든 교회들은 반드시 같아야 한다. 그들은 조직에 있어서 같을 필요는 없으나 모양에 있어서는 반드시 같아야 한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에 있는 교회들은 일본에 있는 교회들과 같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교회이기 때문에 땅 위에 있는 모든 교회들은 우주적으로 동일해야 한다. 지방적으로 우리는 교회들이고, 우주적으로 우리는 교회이다. 이것이 예수의 증거(간증)이다.


Ⅱ. 큰 무리

 

7장 9절부터 17절 사이에서 우리는 큰 무리인 예수의 증거(간증)를 본다. 7장의 기록에 따르면, 이 큰 무리는 『각 나라와 모든 지파와 백성과 방언들에서』 구속받은, 하나님의 구속된 자들의 총체(總體)이다(7:9). 그들 모두는 환난을 통과했다. 이것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환난을 통과하지 않은 교회가 없음을 가리킨다. 세상은 항상 교회들을 핍박한다(요16:33). 교회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항상 어느 정도의 환난은 있게 마련이다.

 

구속된 자들 총체가 환난을 통과할 것이라는 것은 7장 14절에서 지적된다. 그 구절은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라고 말한다. 이 큰 무리는 승리하여 환난에서 나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환난에 대한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들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7:9). 결국은 영원 안에서 하나님이 그들 위에 그분의 장막을 드리우실 것이다. 7장 15절이 말하듯이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펴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속된 자들의 운명이다. 얼마나 기묘한가! 더우기 그들은 영원히 생명수 샘에서 어린양에 의해 목양(牧羊)될 것이다(7:17).

 

계시록 7장 9절부터 17절까지는 어떤 특정한 무리의 믿는이들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된 자들의 총체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과 영원 안에서의 그들의 상태를 제시한다. 영원 안에서 그들의 상태는 하나님의 가리우심과 그리스도의 목양(牧羊)하심을 누리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운명이다. 이 부분의 말씀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인류 위에 집행하시는 동안에 하나님의 구속된 자들을 돌보실 것임을 계시한다. 모든 하나님의 구속된 자들은 마침내 하나님 보좌로 휴거될 것이며 그곳에 서서 하나님의 가리우심과 그리스도의 목양하심을 누릴 것이다.


Ⅲ. 사내아이를 밴 여자

 

A. 여자

 

12장 1절부터 17절까지에서 우리는 교회에 대한 또다른 상징-사내아이를 밴 여자-을 본다. 교회는 등대요 큰 무리일 뿐 아니라, 사내아이를 밴 여자의 커다란 부분이기도 하다. 어떤 인간의 생각도 교회를 이렇게 생각해 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장에 있는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총체를 대표하며, 사내아이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 보다 강한 부분을 대표한다.

 

여자 속에 사내아이가 들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에도 보다 강한 부분이 있다. 해와 달과 열 두 별을 지니고 빛나는(12:1), 그리고 사탄과 크고 붉은 용에 의해 핍박받는 이 여자는 모든 세대에 걸친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한다. 매세대마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 일부는 늘 사탄에 의해 핍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반의 대환난 동안 그녀는 하나님에 의해 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될 것이다.


B. 사내아이

 

이미 보았듯이 사내아이란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보다 강한 부분이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는, 심지어 오늘날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들 가운데에도 보다 강한 부분이 있다. 이 보다 강한 부분은 대환난 전에 하나님의 보좌로 휴거될 것이다. 달리 말해서 여자는 환난을 통과하기 위해서 땅 위에 남겨질 것이지만, 보다 강한 부분인 사내아이는 환난 전에 하나님의 보좌로 휴거될 것이다.

 

왜 사내아이는 환난에 앞서 휴거되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늘들 안에서 사탄과 싸우고 그를 밑으로 던져버리기 위해 사내아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하나님은 사탄에 대항하여 싸울 많은 천사들을 데리고 있으나, 원수에 대한 최종 승리는 천사들이 아닌 사내아이에 의해 쟁취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내아이를 필요로 하신다. 하나님은 사탄이 부패시켰던 바로 그 사람을 쓰심으로써 사탄을 부끄럽게 하시고 그를 패배시킬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른다. 「사탄아, 너는 내가 창조한 사람을 부패시켰다. 그러나 나는 너를 패배시키기 위해 이 부패된 사람에서부터 사내아이를 얻었다. 그리고 그는 너를 주로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패배시킬 것이다.」

 

사내아이는 사탄을 하늘에서 땅으로 내던지기 위해 보좌로 올라가 싸우면서 철두철미하게 싸울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증거(간중)의 일부이다. 비록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사탄을 패배시켰지만, 여전히 교회가 그분의 승리를 원수 위에 집행할 필요가 있다. 몸의 수많은 지체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 실패했기 때문에 오직 몸의 보다 강한 부분 곧 사내아이만이 사탄 위에 그리스도의 승리를 집행할 것이다. 사내아이는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하늘로 휴거될 것이다.

 

휴거는 단지 우리의 축복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내가 하늘로 휴거되다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가 휴거되어야 할 필요를 갖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 즉 우리는 원수를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하늘로 휴거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 말을 듣고서 『나는 그곳에 가서 전쟁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당신이 환난 전에 휴거될 자격이 없음을 뜻한다. 만일 당신이 하늘로 가서 사탄을 만나서 그를 밑으로 던지지 않는다면, 그자가 땅으로 내려와서 당신을 만나서 이길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사내아이가 되어야 한다. 나는 사내아이의 일부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나는 다만 여자의 일부가 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나는 보다 강한 부분 안에 속하길 원한다. 이것 역시 예수의 증거에 대한 한 측면이다.


Ⅳ. 처음 익은 열매와 수확물

 

이제 우리는 처음 익은 열매들과 수확물에 이르렀다(14:1-5, 14-16). 교회는 빛을 내는 등대요 싸우는 사내 아이일 뿐 아니라 반드시 익고 성숙해야 할 작물이 자라는 밭이기도 하다. 아직 푸른 작물은 수확하기에 너무 여리다. 그러나 일단 작물이 밭에서 익으면 즉시로 수확될 것이다.


A. 처음 익은 열매들

 

먼저 익은 작물의 그 부분을 처음 익은 열매들이라고 부른다. 처음 익은 열매들은 대환난 전에 하늘에 있는 시온(Zion)으로 휴거될 것이다. 14장 4절이 지적하듯이, 처음 익은 열매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다. 처음 익은 열매들인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선한 누림으로서 시온에 있는 하나님의 집으로 들림받는다.

 

구약의 예표에 따르면, 익은 수확물 중 첫 열매들은 곡간으로 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갔다(출23:19). 이것은 초기의 이기는 자들이 하나님의 누림을 위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집으로 들림받을 것임을 가리킨다. 휴거는 주로 우리의 누림을 위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누림을 위한 것이다. 휴거는 원수를 패배시키기 위함이요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비단 오늘날의 등대들이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원수를 대항하여 싸우는 오늘날의 사내아이와 하나님의 갈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오늘날의 처음 익은 열매들이 되어야 한다.


B. 수확물

 

14장에서 처음 익은 열매 다음에는 수확이 있다. 15절은 『또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말하기를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의 수확물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라고 말한다. 그 수확물은 대환난 끝 무렵에 거두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구름 위에 계실 곳인 공중으로 휴거될 것이다.

 

왜 수확물은 대환난을 통과하도록 남겨지게 되는가? 그것은 푸르고 덜익은 밭은 익기 위해서 강렬한 태양 빛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대환난은 환난 전에 준비되지 않은 모든 성도들을 여물게 할 강렬한 태양 빛이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만일 오늘날 당신이 세상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는 당신을 대환난을 통과하도록 땅에 남겨 두실 것이다. 그때에는 당신이 정녕코 세상을 포기할 것이며, 살기 위한 최선의 길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익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나는 당신에게 기다려 보라고 청하겠다. 아마 당신은 세상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포기할 수 없다고 느낄 것이다. 만일 그러하다면 주님은 「너는 세상을 매우 사랑하므로 나는 너를 세상에 남겨두고 너로 하여금 과연 세상이 정말로 사랑스러운지 알아 보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주님은 세상을 뒤흔들 것이며 마침내 당신은 『주여, 회개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회개는 다소 늦은 것이리라.

 

회개하기 위해 대환난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지금 회개하라! 조만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나는 모든 구원받은 이들이 결국 세상은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유독(有毒)한 것임을 깨닫게 되리라는 충분한 확신을 갖고 있다. 당신이 세상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욱더 당신은 그것에 의해서 중독될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지간이므로 우리는 필히 그것을 경멸해야 한다. 조만간 주님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분이 세상을 얼마나 미워하시는지를 깨닫게 하실 것이다. 그날은 우리 모두가 익게 될 때 닥칠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같이 말하지 말라. 「나는 익는 것에 관해 관심이 없다. 내가 구원받은 한 만사가 잘될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강하고 완고한 의지로 나를 대항하여 논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익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을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당신에게 충고하고 싶은 것은 수확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분의 은혜로 처음 익은 열매들 중 일부가 되도록 앞으로 전진하라.


Ⅴ. 짐승을 이기는 자들

 

15장 2절부터 4절까지에서 우리는 짐승을 이기는 자들을 본다. 하나님은 주권적이시다. 심지어 대환난 동안에도 약간의 이기는 자들이 있을 터인데, 우리는 그들을 후기(後期)의 이기는 자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이기는 자들은 대환난을 통과할 터인데, 그때는 적그리스도 곧 짐승이 사람들에게 자기를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또 성전 안에 있는 자기 형상을 경배하라고 강요할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성전이 재건축되는 것을 보기를 기대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주님의 재림이 매우 임박했다는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 안에 자기 형상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경배하도록 강요할 것이라고 예언한다(마24:15). 그러는 동안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짐승을 이길 것이며 죽임을 당할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초기의 이기는 자들이 될 것과 오늘날 주님을 사랑할 것을 충고한다. 대환난 동안에 죽임을 당함으로써 이기게 되기를 기다리지 말라.

 

15장에 따르면 후기의 이기는 자들은 휴거되어 유리 바다. 즉 「불이 섞인 유리 바다」 위에 서 있을 것이며(15:2),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15:3). 유리바다 위에 있는 자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긴』 자들이다(15:2). 이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과 적그리스도의 우상에 대한 경배를 이긴 자들이다. 계시록 20장 4절과 6절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자들 중 약간은 이 후기의 이기는 자들일 것임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건대 나는 후기의 이기는 자보다 초기의 이기는 자가 되기를 더 좋아한다. 만일 당신이 느슨하다면, 당신은 대환난을 통과하도록 남겨질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바라보고 말해야 한다. 「주여, 저는 초기의 이기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는 본 생명의 수업 계시록 15장에서 상세한 것을 다룰 것이다.


Ⅵ. 신부

 

19장 7절부터 9절까지에서 우리는 신부인 교회를 본다. 에베소서 5장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것을 계시하지만, 그렇게 친밀한 방법으로 계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계시록 19장에서 우리는 신부인 교회가 얼마나 친밀한가를 보게 된다. 이 부분의 말씀에서 우리는 신부가 빛나고 순수한 의(義)를 옷 입음으로써 빛나는 의상을 입을 것이며 또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될 것임을 본다(7절-9절). 이것은 매우 친밀한 일이다. 하나님의 원수에게 우리는 사내아이가 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서 우리는 첫 열매들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신부 되기를 열망할 때 그리스도는 그분의 만족을 얻으실 것이다. 그리스도만 만족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들도 기쁠 것이다.

 

계시록 19장 7절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세』라고 말한다. 원래 신부는 가장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로서 우리는 고난을 당하고 많은 다루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더이상 박해와 고난과 다루심이 없을 때가 오고 있다. 나는 혼인날에 다뤄지는 신부를 결코 본 적이 없다. 오, 우리는 반드시 신부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신부가 될 때 모든 어려운 다루심들은 지나갈 것이다.


Ⅶ. 군대

 

교회는 또한 군대이다(19:4-19, 17:14). 하늘에서 원수와 싸우는 사내아이가 될 부분의 교회는 또한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탄과 싸우는 군대가 될 것이다. 모든 휴거가 종결되고 난 후, 그리고 믿는이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심판을 받은 후에 모든 이기는 자들은 적 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를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그분의 군대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땅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리스도와 적 그리스도 양편 모두 군대를 가질 것이다. 비록 한쪽의 군대는 하늘에 속했고 다른 쪽의 군대는 땅에 속했다 해도, 양측은 땅 위에서 싸울 것이다. 달리 말해서 적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군대를 대항하여 싸울 것이며, 그리스도는 그분의 군대와 함께 되돌아와서 싸울 것이다.

 

이 거짓 그리스도는 참 그리스도와 싸울 정도로 대담하다. 그러나 참 그리스도는 거짓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전쟁을 하실 것이다. 17장 14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하늘에 속한 군대가 모든 이기는 자들, 즉 부르심 받고 선택된 자들로 구성될 것임을 본다. 결국 이 전쟁 끝에 그리스도는 적 그리스도를 패배시킬 것이다.


Ⅷ. 새 예루살렘

 

궁극적으로 예수의 증거(간증)는 새 예루살렘일 것이다(21:1-22:5). 등대들로 시작하여 큰 무리와 사내아이와 처음 익은 열매들과 후기(後期) 이기는 자들과 신부와 군대를 통과해서 모든 구원받은 이들은 마침내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모든 구속받은 자들로 된 살아 있는 구성체, 즉 그분의 백성들로 된 하나님의 건축의 궁극적인 최종 완성일 것이다. 영원 안에서 그리고 영원토록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 안에서 그 영의 흐름으로 하나님을 표현할 것이다. 21장과 22장에 올 때 우리는 이 궁극적인 최종 완성에 대한 선명한 그림을 볼 것이다.


위트니스 리
[요한계시록 라이프 스타디, "특별하고 최종 완성적인 예수의 증거",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