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단 11:32)
복음과목양
코너스톤 , 2012-03-06 , 조회수 (5097) , 추천 (0)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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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11:32

주 앙망하면 새 힘을 얻네
독수리가 날개를 치듯
부활의 능력으로 날으니
피곤하지 아니 하겠네.
하늘을 향해 고향집 떠나
세상 얽매임 묶임 벗어나
보내심 받아 주님과 함께
왕국 복음을 전하리라
높이 날아 이르리라
주와함께 하늘의 시온에... 아멘!! 아멘!!! 할렐루야~~


?2절입니다.
주의 권익위해 자신버려
날 대신해 주님 사소서
독수리처럼 적 물리쳐
주님의 이기는 자 되리
온땅에 가서 복음 전하고
교회나무를 심고 이주해
일곱영 따라 주의 증거되.
등잔대 밝혀 왕국오리
높이날아 다스리리
주와함께 왕국의 왕으로...

온땅에 가서 복음 전하고
교회나무를 심고 이주해
일곱영 따라 주의 증거되

등잔대 밝혀 왕국오리
높이날아 다스리리
주와함께~~~ 왕국의 왕~~ 으로!! 할렐루야~~
주의 회복, show strengTH, TAKE ACTION

코너스톤
2012-03-07 17:42:03   (+1) (-0)
진리들을 포함하는 복음 전파에 대한 초기의 본

사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주한 제자들에 의해서임

이제 우리는 진리들을 포함하는 복음 전파에 대한 초기의 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행 8:1,4) 사도행전 8장에 따르면, 이 전파는 사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주한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예루살렘 교회에 수천 명의 믿는이들이 있었지만 박해로 인하여 그들은 모두 복음 전파를 실행하기 위해 흩어졌다. 믿는이들은 흩어졌지만, 그러나 사도들은 남아 있었다. 오늘날 기독교 안의 실행은 정반대이다. 목사는 가고 평신도는 남아 있다. 사도행전 8장의 초기의 예를 따를 복음 전파는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고 다른 제자들이 이주했음을 보여 준다.

거룩한 땅에서 복음의 완성을 기다리지 않음

제자들은 거룩한 땅에서 복음의 완성을 기다리지 않고 주권적으로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거룩한 땅의 일부분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했지만, 주님은 여전히 제자들이 다른 곳에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셨다. 또한 사도행전 8장은 신성한 진리의 전파를 위해 사마리아로 가서 결국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빌립에 관해 말하고 있다.

복음 전파를 위한 이주의 첫번째 언급은 신성한
진리들을 포함한 복음 전파를 위한 기본 원칙임

예루살렘으로부터 다른 지방들로 믿는이들이 흩어짐은 복음 전파를 위한 이주의 첫번째 언급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신성한 진리를 포함한 복음 전파를 위한 기본 원칙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신성한 진리들이 미국 전역에 이르렀는가의 여부에 상관없이 우리는 여전히 유럽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가 유럽으로 가는 것이 미국 내에서 적극적인 어떤 것을 분발시킬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주의 회복 안에서 그분의 이상을 봄과
그분의 위임에 대한 부르심에 응함

우리는 주의 회복 안에서 그분의 이상을 볼 필요가 있으며 그분의 위임에 대한 부르심에 응할 필요가 있다(사 6:1, 8 참조)

주님의 필요를 위해 우리의 헌신과
절대성이 다시 일으켜져야 함

주님의 필요를 위해 우리의 헌신과 절대성이 다시 일으켜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여,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더욱더 사랑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현재의 움직이심 안에서 그분을 따르기 위해 일어섬과
그분께 유용하게 되기 위해 그분의 표준에 우리 자신을 맞춤

우리는 주님의 현재의 움직이심 안에서 그분을 따르기 위해 일어서야 하며 그분께 유용케 될 수 있도록 그분의 표준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단 11:32, 딤후 2:21). 다니엘 11:32절은,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고 말한다. 행동을 위한다는 것은 업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 고귀하고 가치 있는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오늘날 주의 회복 안에서 우리는 강하여 용맹을 발하는 자들이 될 필요가 있다.
주님께 유용하게 되기 위해서 특히 우리는 이 특별한 시기에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방면과 많은 일 가운데서 성화되고 조절될 필요가 있다.

코너스톤
2012-03-07 17:42:03   추천
진리들을 포함하는 복음 전파에 대한 초기의 본

사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주한 제자들에 의해서임

이제 우리는 진리들을 포함하는 복음 전파에 대한 초기의 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행 8:1,4) 사도행전 8장에 따르면, 이 전파는 사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주한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예루살렘 교회에 수천 명의 믿는이들이 있었지만 박해로 인하여 그들은 모두 복음 전파를 실행하기 위해 흩어졌다. 믿는이들은 흩어졌지만, 그러나 사도들은 남아 있었다. 오늘날 기독교 안의 실행은 정반대이다. 목사는 가고 평신도는 남아 있다. 사도행전 8장의 초기의 예를 따를 복음 전파는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고 다른 제자들이 이주했음을 보여 준다.

거룩한 땅에서 복음의 완성을 기다리지 않음

제자들은 거룩한 땅에서 복음의 완성을 기다리지 않고 주권적으로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거룩한 땅의 일부분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했지만, 주님은 여전히 제자들이 다른 곳에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셨다. 또한 사도행전 8장은 신성한 진리의 전파를 위해 사마리아로 가서 결국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빌립에 관해 말하고 있다.

복음 전파를 위한 이주의 첫번째 언급은 신성한
진리들을 포함한 복음 전파를 위한 기본 원칙임

예루살렘으로부터 다른 지방들로 믿는이들이 흩어짐은 복음 전파를 위한 이주의 첫번째 언급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신성한 진리를 포함한 복음 전파를 위한 기본 원칙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신성한 진리들이 미국 전역에 이르렀는가의 여부에 상관없이 우리는 여전히 유럽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가 유럽으로 가는 것이 미국 내에서 적극적인 어떤 것을 분발시킬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주의 회복 안에서 그분의 이상을 봄과
그분의 위임에 대한 부르심에 응함

우리는 주의 회복 안에서 그분의 이상을 볼 필요가 있으며 그분의 위임에 대한 부르심에 응할 필요가 있다(사 6:1, 8 참조)

주님의 필요를 위해 우리의 헌신과
절대성이 다시 일으켜져야 함

주님의 필요를 위해 우리의 헌신과 절대성이 다시 일으켜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여,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더욱더 사랑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현재의 움직이심 안에서 그분을 따르기 위해 일어섬과
그분께 유용하게 되기 위해 그분의 표준에 우리 자신을 맞춤

우리는 주님의 현재의 움직이심 안에서 그분을 따르기 위해 일어서야 하며 그분께 유용케 될 수 있도록 그분의 표준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단 11:32, 딤후 2:21). 다니엘 11:32절은,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고 말한다. 행동을 위한다는 것은 업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 고귀하고 가치 있는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오늘날 주의 회복 안에서 우리는 강하여 용맹을 발하는 자들이 될 필요가 있다.
주님께 유용하게 되기 위해서 특히 우리는 이 특별한 시기에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방면과 많은 일 가운데서 성화되고 조절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