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에 숨겨진 사랑의 비밀
나눔방
, 2007-08-15 , 조회수 (2864) , 추천 (0) , 스크랩 (0)

                                     성막에 숨겨진 사랑의 비밀

  저는 성남교회에서 진행된 2007년 여름 훈련 “요한서신 결정 - 연구” 비디오 집회에 참석하면서 많은 누림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오전반에서는 시작 전과 후에 신언의 나눔을 가졌는데, 이를 통해 형제 자매들로부터 귀한 공급이 있었습니다. 10번 메시지가 끝난 후에 한 자매님께서 신언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기 위해 우리와 똑 같은 인성을 입고 오시어서 우리의 모든 것을 체휼하시고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사랑을 하셨던 것처럼, 자매님도 기회가 된다면 많은 형제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간증을 하셨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간증을 계기로, 오직 우주 안에 “참 사랑”의 유일한 原泉이시며,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과 또한 그분의 사랑이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사랑과 임재(그 분 안으로 들어감)의 상관관계는 무엇인지? 에 대해 알아보려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특별히 메시지 10번 “신성한 사랑을 실행함” 중 E. M 형제님의 성막에 관한 메시지(→ 여기서는 사랑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막을 통해서 사랑이신 그 분 안으로 우리를 이끄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음)와 그리고 다른 성막에 관한 자료와 연구를 통해 성막과 사랑에 대한 보다 확장된 조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인도되는 부분은 '미니스트리' 책자(메시지 10번)에 매우 탁월하게 제시되어 있으므로, 저는 새롭게 조명 받은 사랑의 流出과 回歸와 관련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이 누림을 통해 얻은 결론을 한 마디로 하면, 『세상과 형제를 향한 우리의 구체적인 사랑의 실행이 따를 때에, 교회의 몸의 건축은 물론이고 자신의 하나님과의 깊은 교통의 진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성막에 관한 탁월한 그림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여러분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텐데 컴퓨터를 다루는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인 사랑의 실행과 관련하여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비록 좋은 말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그에게 다가가서 오히려 그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고, 그와 함께 울어주고 또 그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새삼 생각됩니다.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라고 했습니다. 또 요한1서 3장 17에서 요한은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로서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실행이 없다면, 그 사랑이 참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범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기 위해 하늘의 지성소에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내려오셨으며, 또 그 몸을 십자가의 제단 위에 올리시고 그 살과 피를 우리에게 음식과 음료로 곧 생명으로 주셨습니다. 또 성막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휘장이 찢어진 것도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실제로 자신의 몸이 못에 박히고 창에 찔리시며 피를 쏟으신 후 숨을 거두실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우리의 사랑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를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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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우선 성막에 관한 대체적인 그림과 성막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과의 만남(사랑 안으로 이끄심)과 사랑의 흐름(The Stream Of Love)에 관한 것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성막 ; 성막은 모세가 하늘에 있는 것을 보고 지었음/ 히8:5 참고>

 

           

           < 성막은 >

 - 하나님의 편에서는 ;  성막 자체가 전체적으로 그리스도 자신의 표현이며, 동시에 그 분의 사역(왕, 제사장, 선지자의 三重職)의 표현이시다. 그러나 동시에

 - 인간의 편에서는 ;  성막은 인간의 구성 요소인 몸(바깥 뜰)과 혼(성소)과 영(지성소)을 표현하고 있다.                  

                                                (북쪽)

            지성소                              성  소                 바깥 뜰 

              (왕)                                (제사장)               (선지자)

                                                                                                             세 상(에덴

(서쪽) 증거궤, 속죄덮개 ←(휘장) ← 분향단, 진설병상  ←   물두멍, 제단   입구  (동쪽)     의 동편)

                                                                                   

       그룹(cherubib)                          등대                           

              (영)                                  (혼)                      (몸)

                 

                                                   (남쪽)

              

           성막과 사람의 흐름 ; 사랑 안으로 이끄심(임재)과 사랑의 유출 및 회귀

               ②   ←      ←     ←    ←     ←     ←     ←        

                    ⇒   ⇒   ⇒   ⇒   ⇒   ⇒   ⇒    형제, 세상

    

 

                         

  ※ 사랑 안으로 이끄심(만남)과 사랑의 흘러나옴과 사랑의 순환과 확대(질적, 양적)의 원칙 ; 법리적으로는 구분되나, 체험적으로는 동시적인 것임


 ① 유일한 참 사랑이신 하나님과 그리고 그 분의 표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사랑의 줄에 의한 그 분 안으로의 이끄심이 먼저 있음.

 

 ②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이 이끄심에 의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맨 먼저 바깥뜰에서 예수님이 사람 되심과 그 분께서 나를 위한 십자가의 죽으심을 받아들임(제단)으로부터 시작하여 물두멍, 진설병, 등대, 분향단의 과정을 거쳐서 믿는 자를 위해 찢어놓으신 휘장을 지나 증거궤와 그룹 그리고 속죄덮개 위에 뿌려진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곧 "장소와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실재로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지성소인 영 안에서(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 하나님과 인간의 거룩하고 신비한 만남이 이루어지며, 이 때 동시에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인 사랑이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오게 되어서 우리의 본성으로 또한 조성되는 것임.


 ③ 이런 과정으로 내 안에 조성된 사랑은 법리적으로는 영으로부터, 우리의 혼으로 그리고 몸까지 우리의 존재 전체에 확산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 안에서는 사랑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확산되는 이 모든 과정들이 동시적으로 경험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경험 안에서, 이 사랑이 개인의 성숙도와 영적인 인식의 정도에 따라 혼과 몸 안에서 곧 실행의 면에서 그리스도의 수준에 이르도록 온전하게 표현되지는 않으며, 각자가 정도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④ 내 안에 형성된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은 그 분의 표현의 본성인 빛과 함께 형제와 이웃들에게 흘러들어가게 되며 또한 그들로부터 외적 유입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이렇게 과정을 거친 사랑은 다시 ① , ②, ③ 번의 과정으로 재순환되고 지성소에서 사랑이신 하나님을 만남으로서 다시 보다 질적 양적으로 확장되고 높아져서 유출되고 이웃에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만남 곧 임재는 우리에게서 사랑으로 조성되며, 또 그 사랑의 구체적 실행은 보다 높고 깊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우리를 이끌게 되는 것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 성막에 있는 다른 조명들


     1) 제단에 관한 조명

- 먼저 성막에는 원칙으로 각 부분에 한 개씩 3개의 단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깥뜰에 제물을 잡는 제단이 있으며, 성소에는 분향단이 있으며, 지성소에는 증거궤 위에 피를 뿌리는 속죄덮개(속죄소, 시은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단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바깥 뜰의 제단(first altar)과 성소의 분향단(second altar)입니다. 그렇다면 왜 두 개의 단이 필요할까요?


 - 이 문제는 특별히 성소에 있는 분향단과 관련하여 매우 깊은 영적 인식이 필요한 부분이라 설명이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분향단이 성소에 속하면서도 동시에 지성소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휘장과도 관련되며 영과 관련된 우리의 깊은 체험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회복역 성경 1,131 쪽에 자세한 설명이 있음으로 그 내용을 참고하시면 이해가 되리라 믿습니다.(정말 高峰의 메시지입니다.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여기서 제가 설명코자 하는 것은 우리의 몸과 혼적 차원에서 필요한 두 개의 단의 필요성에 한정된 것입니다.


 - 이 문제를 연구하던 중 성막에 관한 자료들에서 귀한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오직 대제사장(그리스도)만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고, 평소에는 제사장들이 성막까지 들어가게 되는데 바깥 뜰 부터 성소까지의 바닥이 맨 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성소까지 서서 움직였으며, 그 발에 먼지가 묻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몸과 혼은 항상 세상과 육신으로 인해 먼지가 묻고 더럽혀질 수밖에 없으며, 이를 두 개의 단에서 곧 우리의 구체적 행실을 바깥 제단에 올리며, 또한 생각과 같은 혼 안에서의 모든 더러움은 분향단에서 회개와 간구로 깨끗함을 입을 필요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깨끗하게 씻음 받은 뒤에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그 영이 찢어진 휘장을 넘어와서 분향단에서 그 영으로 다시 몸(교회)을 위해 간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정말 말로 설명이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분향단이 성소에 속하면서 동시에 지성소에 속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휘장에 관한 조명

 

 - 성소와 지성소 사이 곧 혼과 영 사이에 휘장이 있습니다.

      ┌ 믿는 자 ; 찢어진 휘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휘장│

      └ 믿지 않는 자 ; 여전히 가로막힌, 단절의 휘장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 그러나 믿는 자인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법리적으로는 우리에게 찢어진 휘장이지만, 경험적으로는 비록 믿는 자라 할지라도 우리가 육신과 세상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닫혀진 휘장으로 체험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처럼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께, 수평적으로는 몸을 위해 우리를 항상 열어두어야 하며 또한 하나님과 형제를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함으로서 휘장을 넘어서 지성소에서의 우리의 누림이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르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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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참으로 사랑이심을 찬양합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은 하나님을 순종치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에덴의 동쪽에 살고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곳입니다. 우리의 이런 실존의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제임스 딘 주연의 “East of Eden"(1955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막혔던 그 동편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성막이 되시어서 바로 성막 동쪽에 우리들이 성막 안 곧 그 분 안으로 들어와서 그 막혔던 하나님과의 만남을 회복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육신을 입으시고 그 몸을 또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우리를 자신의 그 체휼하신 그 사랑의 끈으로 이끄시는 그 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는 잃어버린 만남을 회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분의 아들이 되고 그 분 자체로 조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분(He Who That)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이제 우리가 그 분처럼(he who as)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며, 또 그 사랑이신 하나님 그 분께서 친히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 하늘의 지성소에서 오시어서 지금 그 체휼하신 인성의 사랑의 끈(성육신, 이 땅에서의 삶, 죽으심, 부활, 승천을 포함함)으로 우리를 사랑이신 그 분 안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또한 이를 눈으로 보듯이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성막입니다.


  그러나 성막에는 이번 메시지에서 보여준 하나님 안으로 이끄는 부분을 넘어서는 더욱 높은 차원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10번 메시지는 그 분의 사랑의 끈으로 최종적으로 인도된 속죄덮개 위 곧 “그리스도 안과 그리스도 위 그리고 그리스도 사이”에서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의 위격의 본성인 그 영”을 만나게 됨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인 사랑”을 만나며 주입받고 조성됨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의 끈을 던지신 분은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이십니다. 그러므로 시작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 안에서 그 사랑은 맨 먼저 우리를 번제단의 십자가를 만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십자가 외에는 하나님 앞에 나갈 길이 없습니다.(그러므로 오늘날 산의 정상에 올라가는 길이 여러 군데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그리스도 외에도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주장들은 사단의 속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후 그 사랑의 끈은 우리를 물두멍과 성소를 거쳐서 그리고 찢어진 휘장을 넘어서 지성소 안으로 이끌게 되며, 그 사랑은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다시 교회와 형제와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유출된 후 다시 성막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지성소에까지 이르고 거기서 더욱 확장되고 높아진 그 영과의 만남과 그 사랑이 우리 안으로 다시 주입되며 회전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실행과 임재는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안에 폐쇄된 것이 아니며, 또한 정체된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회전하고 유출되고 재 확장되고 높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핵심이 구체적인 형제 사랑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영안에서 아무리 뜨거울지라도 곧 하나님을 아무리 개인적으로 사랑할지라도, 그것이 혼과 몸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곧 형제의 필요를 채우지 못한다면, 그 사랑은 필경 병들거나 개인적인 신비주의로 흐르고 말 것입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세상의 의로운 사람들처럼 사랑의 실천은 있으나 그 사랑이 사랑의 근원인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 즉 혼과 몸만의 사랑이 될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自己 義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사랑이 아무리 크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다 한계 안에 있는 상대적 사랑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 사랑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사랑의 근원에 연결된 그 사랑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보다 못하다면 우리의 그 사랑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말로만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울 때 교회는 더 건축될 것이며, 여러분의 혼과 영 사이에 있는 휘장은 여러분의 경험 안에서 더욱 찢어질 것이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깊은 곳 안으로 더욱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진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더욱 확장된 조명과 사랑으로 우리에게 흘러옵니다. 이것이 바로 성막 안에 있는 사랑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수직적 사랑의 흐름(Stream)과 또 형제 사랑을 통해 주신 그 수평적 사랑의 흐름(stream)이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