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신언 시간에 한 자매님께서 “남편 앞에 제 자신이 다 드러났습니다.”
곧 이어 다른 자매님이 또 “제가 어떠한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식구는 잘 압니다.”
하하하… 다들 웃었습니다. 자매님들의 가정에서의 분냄에 관한 이야기였거든요.
그러나 그 교통들은 우리 생활의 너무나 실제적인 면들이었기에
많은 공감과 함께 서로 돌이킴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찰은 달고 쉽게 남에게 노함과 분을 내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애정의 도가 넘기 쉬운 자녀나 가족에겐 그러기가 쉽지 않나 봅니다.
저는 어떠하냐고요?
다혈질인 저는 안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화를 잘 내는 축에 속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4장 후반부 말씀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주님께 돌이키지 않고
울컥울컥 내는 ‘분’이 그리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분을 내면 죄를 짓고 마귀에게 틈을 주기 쉽다는 것 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이 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그리고 에베소서 4장 30절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그 다음 31절과 32절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러한 말씀들이 검이 되어 저를 쪼개는 듯 합니다. 찔림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곳 뉴질랜드는 학교마다 약간은 다르지만 대부분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이 되면
사복을 입고 등교를 합니다. 게다가 액세서리와 화장까지 허용이 되니
올해는 딸아이에게 유달리 아침부터 압을 높이는 일이 잦았습니다.
“옷 모양이 그게 뭐고?”, “그 목걸이 빼고 가거라.”,
“도대체 학교 가는 거냐? 파티 가는 거냐?”….
제 잔소리와 언성이 늘어갈수록 딸아이의 퉁퉁거림도 비례 곡선을 그으며
서로 힘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힘들어 하는 저에게 남편이 그랬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자식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라고요.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제 딸아이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것 입니다.
가까이 있는 지체로 인하여 속을 끓이게 되면 분을 내기 전에 먼저 기도하게 될 것 입니다.
그래서 늦게나마 아이와 제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며 주님의 긍휼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을 돌아보니 참 놀랍습니다.
저와 딸아이와의 비례 곡선이 점점 내려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주님, 참된 것을 말하게 하소서.
더러운 말을 하지 않게 하소서.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며 성령 안에서 몸의 구속의 날까지
날마다 인치심을 받게 하소서.
당신의 이러한 말씀들이 매일의 참 양식이 되게 하소서.
오~, 주~예수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