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저녁...
나눔방
, 2006-12-25 , 조회수 (2527) , 추천 (0) , 스크랩 (0)

얼마 전부터 딸아이의 불평이 늘어졌습니다.

크리스마스인데 우린 너무 재미없다. 썰렁하다......

크리스마스가 예수님 탄생일이 아니다는 것은 딸아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서양인들에게 우리의 명절과도 같은 날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준비하여 가족이 함께 모이고 선물도 주고받으면서

가족애를 돈독히 하는 날이라고나 할까요.



옆집 뒷집 할 것 없이 그런 분위기가 역력한 가운데

오록이 적적하게 지내는 것이 싫은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네 명절이 다가와도 그렇고 이 곳 명절이 다가와도 그렇고

북적대야하는 날이 다가오면 먼 곳에 사는 적적함이 더 절절해집니다.

그러니 이런 날엔 그저 조용히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 좋으련만

철없는 딸아이의 징징거림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압을 한 번 높이고 나서야 잠잠해졌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사촌, 넘치게 많은 친인척과 함께 지내던 일들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몰래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전에 없던 거금의 용돈

100달러(6만원 정도)가 든 봉투를 마련하였습니다.

하숙하고 있는 형제에게는 일 년 동안 우리 집에 사느라 고생했다며

녹색 리본을 붙인 과자 상자를 선물로 주었고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아이들이 얼마나 놀래며 좋아하는지!

아이들에게 제가 그토록 인색하게 어필되었나 싶어 좀 그랬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모습을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어떤 날에도 주님만이 우리의 기쁨이 되시고 만족이 되어 주시기를.

그리고 그 다음날 우연히 몇 명의 지체들과 오늘 저녁을 함께 하자는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찍부터 앞치마를 두르고 잡채를 만들고,

부추를 뜯어다 부침개 지지고,

고춧가루 고추장 듬뿍 넣어 돼지고기 무치고,

빨강 무 뽑아서 얕게 썰어 미역과 섞어 초무침을 하고,

상치, 깻잎, 쑥갓 따서 씻고 냉장고에 있는 과일 야채 다 꺼내어

가지가지 썰어내니 풍성한 저녁이 준비되었습니다.



훈련을 마친 한국 자매를 불렀더니 다른 훈련생 자매 둘을 더 데리고 왔고

말레지아 형제를 불렀더니 백인 형제를 더 데리고 왔고

못 온다던 젊은 앤디와 메리자매까지 함께 오니 더 풍성해졌는데

이웃에 사는 한국 자매가 드디어 남편을 데리고 왔습니다.

부부끼리 모이는 약속을 두고도 지체들과 인사를 나누겠다고

잠시 들린 걸 보면 남편을 위하여 그 동안 한 자매의 기도가 역사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 이리하여 오늘은 아이들 원대로 적적하지 않은

12월 25일 저녁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