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연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빨래 말리는 것이 예사 일이 아닙니다.
실내 공기는 축축하고 냉한 공기에 춥기만 합니다.
날씨 때문인지 몸이 축 처지면서 찌뿌둥하는 것이 두통까지 있어 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진통제 먹고 기운내서 제습기 돌리고 가스난로 피워 집 안을 따뜻하게 하여
아이들 미팅을 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주님을 먹고 마시고, 사랑스런 어린 지체들을 감상하며
아이스크림이랑 양파링, 벌집피자로 아이들 먹이고,
피아노와 기타 반주에 맞추어 한껏 찬양을 누리고 다시 얻은 원기로
오늘은 transformation(변형,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이 곳 뉴질랜드는 적은 인구에 산업발전이 저조한 탓인지
TV 광고가 얼마나 긴지 어떤 때는 광고 한 편이 연속극 한 대목인줄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영국, 호주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와 방영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진작 뉴질랜드 제작 프로그램은 뭔가 뒤지고 촌스러운 구석이 많다고
아이들은 말하지만 저는 그런(촌스러운) 뉴질랜드가 좋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관심 있게 본 프로그램 두 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미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두 중년여인이 성형수술로 외모를 다듬는 프로였습니다.
주름을 없애고, 처진 눈매를 올리고, 코뼈를 깎아 균형을 맞추고,
뱃살은 잘라내고 치아까지 뽑아 고른 모양의 의치를 해 넣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완전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인들은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족들은 놀라 입을 닫지 못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뭔가 좀 흉측스럽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아름답기보다
문명과 의학의 발전에 한 인간을 도안대로 주물럭거린 것 같아 섬뜩했습니다.
또 다른 프로그램은 영국에서 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 프로는 주로 살집이 많아 옷맵시가 나지 않는 여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뚱뚱하고 모양새 없는 외모로 인하여 매사 자신감마저 상실한 여인들이
의상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변화를 주고 멋을 내는 과정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비록 뚱뚱하지만
색다른 모양으로 변화를 주며 자신을 가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대대적인 성형수술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누구나 시도해봄직한 방법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선정된 여인들에게 조언을 하는
진행자가 자주 사용하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나도 멋있을 수 있고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자신을 허락하고 인정해라.”
그리고는 마지막엔 출현한 두 여인을 보면서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변화냐며 감복하며
그 변화에 ‘transformation’이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젊고 아름다운 것에 절실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 입니다.
그리고 보다 나은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여인의 마음은
백발이 되어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세월 앞에 퇴락하는 육체는 엄연한 자연의 순리이며
어느 누구도 모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는 우리에게 늘 위로가 되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주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그 분의 생명..
그 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뿌려졌음을 인정하고,
그 생명은 그 분을 접촉하는 만큼 자라난다는 것을 믿고,
우리 자신을 그 분께 내어드릴 때,
그 분이 우리 자신을 점유토록 허락드릴 때,
남녀노소 상관없이 진정한 변화( transformation) 참으로 아름다운 변화,
이것은 주의 형상으로까지 놀라운 변화입니다.(고후 3:18)..
아멘! 할레루야!
주님, 우리 자신을 더욱 내어드리게 하소서!
당신의 부활 생명으로 우리 온 존재를 채우게 하소서!
당신의 귀한 보석으로 반짝반짝 빛날 때까지 우리를 변화시키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