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판단 & 은혜와 사랑
나눔방
, 2006-02-20 , 조회수 (2139) , 추천 (0) , 스크랩 (0)



누군가에게 속지 않으려면 어떤 일에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물건을 살 때도 속지 않으려면 그 물건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이래 인간을 속여온 마귀에게 속지 않으려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지식이 몸을 세우는 사랑의 다스림 안에 있지 않으면 
그것은 다만 사람을 교만하게 할 뿐입니다. 

성령께서 속생명안에서 이루어주시는 사랑이 없는 한 
그 지식은 자기신뢰를 강화시켜 주고 
이를 통하여 정죄와 판단으로 흐르게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할 때 
자칫 영적인 사람의 의미를 거듭났고 또한 말씀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도 거듭났으며 많은 지식과 지혜와 은사가 있었지만 
바울 사도에게 어린아이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고전3:1~2). 

영적인 사람은 다만 바깥의 정확한 지식뿐 아니라 마음과 그 삶이 
하나님의 성령께 점유되고 인도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서는 교만이나 무례함이나 자기 의가 나올 수 없습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적인 사람이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육신적인 사람의 상태로 머무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각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여정에서 이것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합니다. 
육신에서 나온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가까운지 지옥에 가까운지
그것을 분별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아주 보잘것없으며
자신이 천하에서 가장 악한 죄인으로 느껴지고
그러한 비천한 자신을 받아 주신 주님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면 그는 천국의 보좌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신이 체험한 것이 많고 깨달은 것이 많으며 
영적으로 깊고 성숙한 수준에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신앙이 우습게 보이고 
교회의 모든 것들이 다 잘못되어 보인다면 
그는 지옥에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은 항상 쉽게 상처를 받고 시험에 들며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감격하고 기뻐하며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 앞에서 거꾸러집니다.

사도 바울은 초기에 자신을 사도라고 표현하다가
사역의 말기에는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갑자기 죄가 많아진 것이 아니며 겸손함에 대하여
은혜에 대하여 통찰력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배설물은 상처 받지 않으며 낮은 곳에 처한 이는 
항상 가볍고 자유롭고 편안 합니다.

자신은 주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겸허함.비천함...

그것은 은혜의 결과이며 그러한 이들에게 주님은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베푸실 겁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혼은 살았으나 사후에나 
항상 주님의 보좌 가까운 곳에서 
주의  놀라우신 영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