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되기를 사모함
나눔방
, 2005-10-25 , 조회수 (2601) , 추천 (0) , 스크랩 (0)

 

                                              

아가서 3장6절에는 '거친들에서 오는자'가 나오지요.

그런데 동일한 말씀이 아8:5절에도 나옵니다.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아가서를 누릴때마다 영적인 단계의 마지막(최고의 절정)까지는

체험하지 못하지만 과정에 있어서는 참으로 저의 체험과 똑같습니다...

 

 

추구하는 사람인 우리는 처음에는 나의 만족을 위하여

이것저것 주님에 대한 생명의 책들을 많이 읽게됩니다.  초기의 추구이지요.

그 다음 그들은 주님의 내실로 인도됩니다.

추구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주님을 영안에서 접촉하는 것을

배우고 체험하게 되는 기쁨을 알게 됩니다.

아, 너무나 놀랍다!! 내 영안에 주님이 계시다니!!

그들은 그러한즈음 전후에 교회생활을 만나게 됩니다.

그곳에서 단체적인 새사람으로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되지요.

한면으로는 누림으로, 한면으로는 다루심으로, 또 통제와 제한들로..

그러면서 십자가 아래서 자아의 파쇄를 배웁니다.

 

 

자아, 천연적인 사람은 앞의 과정이 없이는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죄는 알기 쉽지만, 내 안에 조성된 사탄적인 인격은

영과 혼이 분리되어야 보입니다. 그러므로 내안에 '거듭난 영'을 모르면

자아와 천연적인 사람의 파쇄인 혼의 변화는 끝난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종교적인 사람들이지요. 계속 위에다가

덧칠하기만 합니다. 십자가의 '대신 죽음'만 알고

'함께 죽음'의 방면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분의 달콤한 죽음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

주님의 죽음안에서 하나될때 거기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누리는 사람은 또한 십자가가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음없이는 부활이 없고

부활은 죽음을 통과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부활안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대적과 싸워

승리하는 체험을 갖게됩니다. 그 영의 충만이 그의 인격의

표현이 되어 대적을 압도하는 것이지요.

승리는 주님자신이 얼만큼 있느냐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주님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더 깊은 십자가를 통하여

휘장안에 지성소에 살도록 더 강하게 부르시는데

그것은 자아보다도 더 악한 육체인 휘장을 가르는 십자가로

말미암습니다. (휘장을 가르는 아픔과 그 체험을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Nee 형제님의 도움을 받으면, "그녀는 십자가에서

죄악을 처리했을 뿐 아니라, 모든 혈기도 처리했으며, 내주하는

죄가 역사하지 않고, 자아도 움직이지 않으며, 겉사람 전체는 고요하다

그러나 속사람은 주님과 완전한 연합안에서 매우 민감하며, 깨어있고

느낌이 가득한데, 주님의 작은 음성과 움직임까지도 모두 느낀다

언제든지 주님의 음성이 있으면 그는 즉시 듣고

이것이 그녀의 사랑하는 자의 음성임을 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휘장(육체)를 처리한 지성소안에는 언제든지, 어느때나 기복이 없습니다....

 

 

아가서 3장 6절의 거친들에서 홀로 올라오는 이 여인을

말하면서 말이 길어진것 같습니다.

위의 체험들은 아가서 3장 6절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3장 6절에 더하여 아가서 8장 5절과 14절에서입니다.

 

 

8장5절에서 여인은 '사랑하는 주님을 의지하고 광야에서

올라오는 것'이 나옵니다. 영적인 것이 무언가 통과되어 내적인

자아와 육체도 조금은 처리된 것 같지만 사실은 온전하지가 않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광야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Nee 형제님은 휴거의 마지막단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는이가 소유한 모든 것은 세상에 남겨놓고 몸만 남아 있을 뿐이며

마음은 이미 다른 세계에 가 있다."

어떤 메시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주님의 임하심을 기다리면서 그분을 만나기 위해 그분과

함께 밖으로 나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스런 분을 의지

함으로써 그분을 '밖으로 나가는'힘으로서 계속 누려, 세상을

뒤에 두고 가야한다" 아멘!!

 

 

'휴거되기를 소망함'에서 가장 누림이 있었던 항목은,

그녀는 점점 하나님과 함께 일함에 있어서 아무것도 신뢰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체험도 오래가지 못하며,

자신의 생각은 갈수록 신뢰할 수 없고, 좌절시키는 벽들을

헤쳐나갈 힘이 없습니다....

그녀의 오직 유일한 소망은 주님자신 뿐입니다.

끊임없이 '의지하며 사는 삶!!'

이러한 거친들에서 한발자욱씩 휴거안으로 이기는 삶을 사는 것은

오직 믿음안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의지하고'라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요.

 

 

강하고 특별한 사람들이 이기는자가되는 것이 아니라

마하나임의 군대에 부녀들과 어린아이들이 함께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의 표현의 춤을 추는 것처럼,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며 거친들에서 올라가는

(자아와 육신과 세상의 광야에서 들림받는 것 안으로..)

자들이 궁극적으로 주님의 보좌앞에 있게 될것입니다.

 

 

아, 어떠한 누림과 안식과 평강인지요.

바울이 고린도후서12장9절에서 말하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말씀이 저절로 생각납니다.

매일 열린 마음에 말씀이 주입됨에 의해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을 신뢰하는 길을 갈 수 있게하는군요.....

아가서의 맨 마지막 구절은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아8:14) 입니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