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추구모임을 마치고 출산일이 가까운(이틀지난^^)
자매님과 걸어오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날이 지나서 걱정도 되고, 지체들 보기도 민망하고...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주권을 알게되니
마음이 평강과 기쁨이 있네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자매님 주님의 출생에 대한 주님의 주권이 너무 놀라워요.
출산일이 조금만 늦었어도 그분은 미가서 5;2절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지 않으시고 요셉과 마리아가 살던마을
멸시받는 땅 나사렛에서 태어났을거예요."
"맞아요. 말씀을 추구할때 하나님의 주권을 더욱 알게되고
주님께서 제 주변에 모든 일들을 상관하신다는 것이 더욱 느껴지네요."
마리아가 만삭이 되는 해에 가이사는 유대땅에 첫번째 인구조사령을 내립니다.
마리아는 만삭을 하고 요셉과 함께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가게되지요.
왜 하필 마리아가 만삭이었을때 인구조사령이 났으며,
그들이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도착하자 산기가 있게되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출산하게됩니다.
어쩌면 위의 자매님처럼 아이가 조금만 늦게 태어났다면
베들레헴에서 하루 이틀 여관에서 머물다가 다시 나사렛에
돌아와서 태어날 수도 있었을텐데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당신의 주권에 두셨음을 다시
보게 하는 성경구절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것이라'(미5:2)
가이사의 정치도 사람의 손안에 있는 것 같으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음을 보는 것은 너무도 놀랍습니다.
두번째 새로움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동방의 박사들이 별(이상, 즉각적인 산 말씀)을
따라 가다가 관념안에 왕이 사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하니'
이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모습이 얼마나 새롭던지요..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당황, 근심,trouble)한지라'
구약에 말라기 이후 마태복음까지는 430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나라없는 그들은 외적으로 늘 그들의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성경은 이미 메시가아 오시는 예언이 충분하게 나와있고,
어디에서 태어나며, 언제 죽으실것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서 9:25-26절의 한이레와 육십이 이레를 알고 있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그 백성들입니다.
성전 재건령이 시작된때 부터 마칠때가지가 한이레이며
성전이 재건된 때 부터 기름부음 받은자가 끊어진 때가 육십이 이레입니다.
시기적으로도 알만한 사람은 기름부음받은자가 언제 태어날 것도
다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왕 뿐 아니라 온 예루살렘이 듣고 당황하고
근심하는 것이 제마음의 외식을 다 드러내고 벗기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만
진실로 지금 주님이 오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봐 두렵습니다.
주님이 지금 오신다면 이들과 같이 당황하거나 근심하지 않을지..
생명의 성장, 세상에 붙잡은 것들....오 주님....
세번째 빛비췸 입니다.
동방박사들의 태도는 헤롯과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금' 그 유대인의 왕을 만나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서기관들처럼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성경을 예언하면서도
그곳에 가지 않는 사람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즉시 베들레헴으로 발길을 돌렸고
그 때 다시 별이 앞서 인도하는 것을 보고
'가장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라고 말합니다.
우리안에 이상이 있고, 살아있는 말씀(living word), 즉각적인
말씀이 있고, 계시가 있는 것! 이것이 동방 박사들의 태도였습니다.
제 자신이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생각속에만
있는 것일까 두렵습니다. 박사들은 지식도 있었지만
빛이 있기를 갈망했고, 성령의 계시(별)가 있기를 기다리고 추구했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저를 깨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집회때에 또는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의 말씀에 내적인 능력을
알기 원하고, 즉각적인 계시의 말씀이 되도록 얼마나 기도하며
주님을 앙망해야하는지요...
네번째 생명의 공급입니다.
주님의 출생을 위한 요셉의 믿음있는 태도가 참으로 공급이 풍성합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주의 사자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요셉은 그렇게 했습니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가라' 요셉은 또 그렇게 했습니다.
그로인하여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하는 호세아11:1절의 말씀을 이룹니다.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요셉은 또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임금됨을 듣고 갈리리의 나사렛에 정착을 하게됩니다.
요셉의 믿음과 순종이 없이는 예수님이 태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었을테니까요.
주님의 초림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볼때에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주예수님은 태어날때부터 어느 장소에서, 어느때가 될 것이라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것도 예언되어 있었고
그가 여자의 씨라는 것도 예언되어 있었고
그가 애굽으로 피해 가야하는 것,
그가 멸시받는 곳 나사렛에서 자라 나사렛 사람이라는 것도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무엇을 할 것이며, 그가 언제 죽을 것에 관해서도
성경에 예언되어 있지요.
이렇게 초림에 대한 예언을 주심으로 그의 말을 듣는 자들이 복됩니다.
이제 재림에 관해서도 우리는 귀에 못히 박히도록 말씀을 들어습니다.
신약성경 전체는 그것을 말하기 때문이지요.
바로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얻고
그를 매일 분배받아 주와 하나되어 그분을 사는 삶.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과 표현과 기능에서 그와 똑같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삶을 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