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생활의 균형과 구체적인 생활에 있어서(공급바람)
나눔방
, 2004-07-19 , 조회수 (1424) , 추천 (0) , 스크랩 (0)
  그리스도인중에서도  특히 청년들에게 있어서 세상이란부분은 정말 힘든 부분인것 같다. 대학생때는 공부와 교회생활의 균형이 그렇고 졸업하고 나면 직장생활 또 결혼하면 가정생활 등 교회생활과  부딪쳐야 할 산들이 너무나 많다. 물론 "영안의 주님의 느낌에 따라서 생활하면 되지않냐?" 하지만 그건 교리적인 답변같이 느껴진다.
  학생때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시험기간에 집회를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적이 많았다. 물론 그리스도와 공부중 어느것이 중요하냐고 하면 할말이 없어진다.
    그리고 훈련생중에 직장을 얻지 못해서 훈련을 받으로 온 형제들이 좀 된다고 한다. 그것은 합당하지 않을뿐 아니라 안타까운 일 아닌가? 그것은 헌신도 아니고 하나님이 별로 기뻐하실 일이 아니지 않은가? 진정한 헌신이란 자신이 좋은 직장이 있음에도 그것을 포기하고 훈련받는 것 아닌가?
  대학때 그렇게 불타던 형제들이 직장문제 결혼문제 등으로 
교회생활이 미지근해 지는 일이 회복에는 상당히 많다.
  마태복음에는 밭에 있던 처녀중 한명이 들림받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세상가운데 열심히 일하는 중에 휴거됨을 말해준다.
  회복에는 고봉의 메세지들이 많지만 청년들을 위한 구체적인 교통과 도움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런 교통을 제안했을때 대부분 기도해 보라고 한다. 청년들이 주님을 잘 누리고 이상을 보았다 할지라도 생명에 있어서 어리기 때문에 나이든 장성하신 형제님들의 교통과 도움이 필요하다.
  회복은 또한 안정된 직장(공무원, 교사)을 가져야만 합당한 교회생활이 가능한 것 같고 다른 직장생활하는 자들에게는 교회생활이 너무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회복은 너무나 성공한 사람(좋은 대학에 진학한 자, 안정된 직장을 가진자) 를 위한 교회같이 느껴진다.
  내가 아는 형제중에 공고를 가서 빨리 직장을 잡은 형제가 있다. 그 형제가 중학교때만해도 주님사랑하고 모범적인 형제였다. 그 이후 고등학교때는 그 형제가 어떻게 지냈으며 직장을 어떻게 잡았는지는 모른다. 지금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대부분 다른 형제들은 대학생인데 그 형제는 대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외당한다는 것이다.
  교회란 어렵고 소외당한자들을 관심하고 품고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런저런 문제로 교회생활을 떠나는 형제들을 많이 봤다. 거기에는 아직 이상을 덜 보았고 생명이 어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문제가 있는 형제들을 관심하지 않고 냉소적으로 대하는 지체들의 태도에 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가 다 구별없고 사랑안에서 서로 건축되는 몸된 교회생활을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