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 아내 처녀
복음과목양
포이멘 , 2011-05-19 , 조회수 (5441) , 추천 (1) , 스크랩 (1)
과부 아내 처녀

성경:눅18:3, 계18:7, 17:1, 롬7:2-4, 고후11:2-3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은 교회, 또는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세 가지 모습을 말해주고 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여자로 비유한다. 여기에 있는 성경 구절들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자인 과부와 아내와 처녀로 비유된다. 당신은 주님을 믿고 거듭난 성도의 위치가 과부이자 아내이며 또한 처녀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과부인 동시에 아내이자 처녀이다. 이 세상에서는 과부와 아내와 처녀 사이에 큰 차이가 있지만,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 가지 위치를 모두 가지고 있다. 누가복음 18장은 그리스도인이 과부의 위치에 있다고 말하고, 로마서 7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아내의 위치에 처해 있다고 말하며, 고린도후서 11장에서는 처녀의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은 과부의 태도를 취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는 데 있어서는 아내의 위치에 있어야 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제한 받고 정절을 지키는 면에 있어서는 처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1. 과부(눅18:3, 계18:7, 17:1)
오늘날 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은 후 즉시 들림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거나 우리가 주님께 갈 때까지 이 세상에서 여전히 살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살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내 마음을 감동시키는 한 가지는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과부의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과부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 과부는 어떤 사람인가? 과부는 남편을 잃은 사람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 사랑스러운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니고, 성경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도 아니다. 또는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정욕이 다 지나가기 때문도 아니다. 세상은 사랑스러운 것이다. 세상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의 눈길을 끌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 있는 물건이나 사람들은 다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이 헛되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주님이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 의해 못 박히셨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바로 나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러므로 세상에 대한 나의 마음은 과부의 마음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은 당신에게 사랑스러운 것으로 변할 것이다.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야말로 당신에게 가장 즐거운 곳이다. 그분이 이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은 과부의 마음이고 이 세상은 내게 있어서 텅 빈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게 붙들리지 않는 것은 세상이 사랑스럽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잘 입고 잘 먹는 것은 편하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사랑하는 어떤 사람에게 붙들렸을 때에는 모든 것이 가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분이 이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나에게 괴로운 곳이 되어 버렸다. 이 세상에 어떤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는데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입을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어떻게 보겠는가? 만일 그 여자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입고 잘 먹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사랑하는 주님이 여기 계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모든 것을 개의치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입는 것이나 먹는 것들 자체에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이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속에 더이상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내가 고독을 느끼는 것은 그분이 여기 계시지 않기 때문이고, 많은 무리를 떠나 혼자 있을 때 내 마음이 불타오르는 것은 그분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해변가를 걸으며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고독하고 외롭지 않는 것은 그분이 나를 위안하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당신을 붙잡을지 모르지만, 만일 당신이 주님으로 충만된다면 그 모든 것이 가치 없게 느껴질 것이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셨고 그분이 남겨둔 것은 십자가와 빈 무덤 뿐이다. 나의 주님이 이미 죽으셨기 때문에 나는 과부이다. 이 세상이 나쁘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그분이 여기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형제 자매여, 이 세상에서 우리의 위치는 참으로 과부의 위치이다. 우리의 주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내게 사랑스럽지 않게 된 것이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주님은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하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과부이다.
 
계시록 18장은 타락된 교회를 바벨론으로 비유했다. 그녀는 마음 속에서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 오직 타락한 자만이 자신을 과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타락할 때에는 과부의 특징을 잃게 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려면 과부의 위치에 서 있어야 하며, 이 세상에 대해 날마다 과부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한번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항상 금식을 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마9:14)라고 물었다.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마9:15)고 하셨다. 우리의 신랑이신 주님은 이미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지금은 우리가 마땅히 금식할 때이다. 당신은 세상에 대해 금식하고 있는가? 이 땅에 그분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이 땅은 나의 집이 아니요, 이 땅에는 나의 즐거움이 없다.
 
만찬의 상 위에 놓여 있는 떡과 잔은 그분이 이 땅에 계시지 않음을 알려 준다. 떡은 주님의 몸을 가리키고, 포도주는 주님의 피를 가리킨다. 살과 피가 나뉘어졌다는 것을 그분이 죽으셨음을 나타낸다. 그분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도 이곳에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의 그 무엇이 우리 마음 속에서 그분을 대치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세상을 버리는 것은 세상이 사랑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분이 여기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 보물이 있는 곳에는 내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내 보물이 이곳에 있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도 이 세상에 있지 않다.

2. 아내(롬7:2-4)
성경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과부라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로마서 7장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아내와 같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과부와 아내의 차이를 아는가? 과부란 남편이 없고 의지가 없는 사람을 말하고, 아내란 남편이 있고 의지할 대상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가정에서 경제적인 책임을 누가 지고 있는가? 그 책임은 아내에게 있지 않고 남편에게 있다. 만약 남편이 아내가 번 돈으로 가정을 꾸려간다면 그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과부는 이 땅에서 의지할 대상을 잃은 자요,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모든 공급을 받을 수 있는 자이다. 형제 자매여, 여러분은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아내와 남편의 관계임을 아는가? 우리의 모든 필요를 그분에게서 공급받아야 한다. 당신은 어떻게 하면 이번 달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가를 마음 속에서 계산하고 염려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의 성질이 좋지 않고, 교만하고,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며, 봉사할 때 힘이 없고, 기도하기 싫고, 성경을 읽는 맛을 잃었다 하더라도 당신의 이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에게서 해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한 여자가 출가를 하면 즉시 그의 남편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백만장자인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누가 그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가? 아무리 친한 친구나 심지어 친형제간이라도 그의 이름을 사용할 수는 없다. 오직 그의 아내만이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주님은 ?내 이름으로 너희가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내 이름으로(in My name)?라는 말씀의 가치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내 이름으로?라는 이 한 구절 속에 얼마나 많은 축복이 들어있는지 모른다.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여 얻을 수 있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님의 이름으로 병든 자에게 기름을 바른다. 또한 주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고, 복음을 전파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당신이 은행에 가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돈을 찾을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단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자!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주님의 이름으로 행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에게 속했기 때문이다. 그분의 모든 것은 다 우리의 것이다. 그분은 그리스도이시고, 우리는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다. 주님을 믿은 그날부터 우리는 그분과 연합되었다. 그러므로 그분의 이름이 내 이름이 되었고, 나는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미 그분의 부활 안으로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얻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남편이 그의 아내를 아끼고 보살피고 공급하고 부축하는 것같이 그리스도가 우리를 돌보신다.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는 데 있어서는 우리의 위치가 과부가 아니라 아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3. 처녀(고후11:2-3)
성경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 과부이며,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는 데 있어서 아내의 위치에 서 있음을 말할 뿐 아니라,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데 있어서 우리가 처녀임을 말해 준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기 위하여 정결하게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2에서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낸다?고 말했다. 당신은 열심낸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여기서 열심 내는 것은 곧 질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로 인해서,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성도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을 질투했다. 당신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당신을 붙잡아 가거나 당신의 마음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의 친구 중에 하나가 어떤 사람과 정혼했다 하자. 당신의 친구가 여기 있지 않을 때 그의 약혼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 친구를 위해 그녀에 대해 분노가 생길 것이다. 나는 내 친구를 위하여 그 약혼녀의 마음을 빼앗아간 사람을 질투할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마음이었다.
 
바울은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고아무런 티나 주름도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하고 깨끗한 사랑에서 떠나지 않았는가를 점검해 보자. 만일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이라면 주님은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오늘 우리가 해야 할 한가지 일은 주님 앞에 나아가 ?주여,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저의 의복과 마음을 깨끗하게 지켜 주시고 나의 생각과 모든 것이 깨끗하도록 지켜주소서. 주여, 저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더럽혀지지 않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가서 4:12에 있는 말씀과 같다. 그 구절은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라고 말한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과 같아야 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나의 동산에는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고 이 동산은 오직 사랑하는 자에게만 열려 있다. 주님 외에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그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내게서 물을 얻을 수 없다. 또한 어느 누구도 그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하기 위해 나의 샘에서 물을 얻을 수 없다. 나의 우물과 나의 샘은 모두 주님 한 분만을 위하여 남겨 둔 것이다. 날마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나는 주님만을 위하는 사람이므로 그 누구도 나를 만질 수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살렘
2011-05-27 22:15:38   추천
교회 또는 그리스도인의 세가지 신분- 과부, 아내, 처녀 !!! 아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