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사랑 안에서 친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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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지기 , 2011-05-06 , 조회수 (4581) , 추천 (0) , 스크랩 (1)
 이기는 사랑 안에서 친절함 

PARENTHOOD
a divine stewardship


패어런트후드, 2권 12호
December 1997


 
이기는 사랑 안에서 친절함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을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지난 호에서 우리는 성경에 따라 하나님의 구원이 온 가족을 위한 것임을 보았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우리는 믿음 안에 견교히 서서 주님께서 그분의 구원으로 우리의 온 가족을 축복하실 것을 기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가족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기 위해서는 EH 다른 방면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친절함’을 배우는 것이다. 친절한 것은 각 사람의 필요를 관심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여러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조화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관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자녀들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족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믿어야 할 뿐 아니라 친절하게 가족들의 마음을 돌보아야 한다. 우리는 ‘풀’과 같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어느 누구에도 잘 적응하여 그들을 주님께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친절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승리하는 사랑이다. 사랑이 사람들을 주님을 알도록 인도하는 근본 요인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손상시키는 불타는 권위의 영이 아니라 불타는 사랑의 영을 가져야 한다. 가족을 돌보는 데 있어서 우리의 타고난 열심은 주님과 그분의 놀라운 구원을 받아들이는 우리 가족의 역량을 크게 손상시킬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 사랑 안에서 친절해지기를 바란다.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고넬료는 그의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았고, 그들은 함께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본이다. 여러분의 집에서 가장 집회가 있을 때, 가장 먼저 초대해야 할 사람은 여러분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이다. 그들로 여러분의 집을 가득 채워야 한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서 바울은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양을 데려오라는 것에 관한 어떤 말씀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주님을 믿자마자 즉시 자신의 부모님, 배우자, 자녀들, 형제자매들, 가까운 친척들을 생각할 것이다. 이들이 모두 우리의 ‘집’이다. 이 집의 범위는 매우 넓다. 엄격하기 말해서 이 온 집이 우리의 ‘자녀들’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그들을 데려와야 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는 ‘집’이라는 단어의 범위를 원하는 만큼 넓힐 수 있다. 우리는 결혼을 통해 많은 가정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그 가정들은 결혼을 통해 더 많은 가정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들 모두가 우리의 가까운 친척이다. 우리는 그들이 멸망하는 것을 볼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구원받도록 인도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구원받도록 인도하기 위해 친절해야 함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저는 주님을 믿은 지 5년이 되었지만, 제 아내는 아직도 완강하게 믿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말을 많이 들었다. 이것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집에 돌아가서 아내에게 예수님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마십시오. 아내가 있을 때는 기도도 하지 마십시오, 그녀는 예수님에 대해 듣는 것에 지쳤습니다. 당신은 아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반드시 찾아내야 합니다. 그녀가 당신이 집에 늦게 오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면, 비결을 배우십시오. 당신은 집에 일찍 들어가기 위해 집회를 조금 희생해야 합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면 제가 집회가 끝나기도 전에 집에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맞다. 여러분은 집회를 희생하든지 아내를 희생하든지 하나를 택해야 한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아내를 구원하려면 집회를 희생해야 한다. 여러분이 이렇게 한다면 두 달 후에 여러분의 아내가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이 점차 사라질 것이다.

주님을 참으로 살아하는 몇몇 자매들이 잇다. 그러나 그들의 기질은 너무 강하다. 그들은 결혼한 이후로 남편들을 그들의 통제 아래 두었다. 그들이 구원받았을 때 그들의 남편은 그들의 기질이 변하기를 기대했다. 결국 그들의 성질은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나 그들의 기질은 여전히 매우 강하다. 그들은 남편들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한다. 남편들은 이 예수님이 너무 형편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의 아내가 구원받기 전에는 그렇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에게 집회에 가라고 강요하기까지 한다. 아내들이 그렇게 하면 할수록, 남편들은 집회에 가기를 더욱 거절할 것이다. 자매들이여, 충고하건데 남편들을 내버려 두라. 남편들에게 주님을 믿으라고 더 이상 강요하지 말라. 여러분은 비결을 배워야 한다. 그들에게 친절하기를 배우라. 여러분이 완전히 변할 때 그들은 쉽게 믿게 될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주님을 믿도록 인도하는 것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몇몇 부모들은 강한 성격을 가졌다. 그들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순종을 배웠다. 그러나 그들이 마음속으로 반드시 부모들의 성격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과거에 주님을 믿으라고 강요받았지만 이제 믿기를 거절할지 모른다. 우리가 잘 아는 워치만 니 형제의 구원은 그의 어머니의 변화와 큰 연관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대단히 강한 성격의 주부였다. 그녀는 한 번도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구원받았다. 구원받은 그녀가 집에 와서 처음 한 일은 워치만 니에게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시인한 것이었다. 강했던 어머니의 성격의 변화가 아들을 감동시켰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들으러 갔고,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되었다.

어떤 부모들은 부주의하고 구원받은 후에도 집회에 거의 참석하지 않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매우 영적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경향을 보여 준다. 즉, 주님을 매우 사랑하는 이들과 그들의 열심 때문에 자녀들과 쉽게 사이가 멀어진다는 것이다. 어떤 어머니들은 주님을 애무 사랑한다. 그들은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첫째 위치에 둔다. 그러나 그들은 자녀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우리는 사람들을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친절을 통해 주님께로 인도해야 한다. 다른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풀과 같이 유연하기를 배워야 한다. 풀의 주된 특성은 어디에나 붙는다는 것이다. 풀은 평평한 곳이든, 모서리든, 울퉁불퉁한 곳이든 어디에나 붙을 수 있다.
 
먼저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파함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풀’과 같이 어느 곳에도 붙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구라도 우리를 만지기만 하면 착 달라붙어야 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철로 만든 갑옷 같이 강하고 고집 센 성격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비록 주님을 사랑할지 라도 죽을 때까지 열매를 하나도 맺지 못할 것이다. 풀과 같은 형제자매들은 사람들을 낚을 수 있다. 성격이 철과 같은 사람들은 좀처럼 다른 이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지 못한다. 주님의 말씀은 분명하다. 주님을 믿으면 우리의 가족이 구원받는다. 구원받은 사람의 가족이 결국 구원받지 않은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많은 사람이 그들의 온 가족을 주님께 인도했지만 그렇다고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어떤 남편은 아내의 성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아내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강함이 구원받기 전의 강함과는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구원받기 전에도 완고했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또 다른 종류의 완고함이 있다. 구원받기 전에 아내는 분별없이 완고했다. 함부로 화를 내면서 완고했다. 구원받은 후에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완고하다. 그는 남편을 주님께로 인도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십중팔구는 남편이 거의 죽기 전까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남편이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아내는 “할렐루야!”라고 외칠 것이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말할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자녀들은 처음에 복음을 거절할지 모른다. 그들은 부모들을 완강하게 반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들 또한 믿게 되며,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더 빨리 주님께 돌이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오늘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인수가 증가하기를 원한다. 이것을 이루는 유일한 길은 모든 형제자매들이 새로운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친척들이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잇는가? 아직도 최선을 다해 인도해야 g라 많은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이 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한다. 구원받지 않은 우리의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이 우리의 ‘예루살렘’이다. 우리는 주님에게서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부터, 즉 우리의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수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은 사랑의 영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은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시고 내주하시는 사람의 영이다. 이 영은 사랑과 능력과 냉철한 생각의 영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능력 있고 냉철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영은 사랑의 영이 아니다. 우리는 능력과 냉철함이 충만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우리의 말은 그들을 위협한다.

바울은 우리의 은사가 불 일 듯 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된 은사는 그분의 영과 그분의 생명과 그분의 본성과 함께한 우리의 거듭난 사람의 영이다. 우리는 이 은사를 불 일 듯 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영을 분발시켜서 불타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로마서 12장 11절은 우리가 영안에서 불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손상시키는 권위로 불타는 영이 아니라 사랑으로 불타는 영을 가져야 한다. 디모데후서에서 언급된 것은 모두 우리가 교회의 하락에 맞서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교회의 하락을 이길 수 있는가? 우리는 사랑으로 불타는 사람의 영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교회의 하락 가운데 우리 모두는 불일 듯 일으켜진 사랑의 영을 갖고 영 안에서 불타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은 이런 방식으로 이긴다.
 
사랑은 가장 뛰어난 길임
 
고린도전서 12장 마지막 절은 사랑이 가장 뛰어난 길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어떻게 장로가 될 수 있는가? 사랑이 가장 뛰어난 길이다. 어떻게 동역자가 될 수 있는가? 사랑이 가장 뛰어난 길이다. 어떻게 사람들을 목양하는가? 사랑이 가장 뛰어난 길이다. 사랑은 우리가 신언하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가장 뛰어난 길이다. 사랑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 것과 어떤 일은 하는 것의 가장 뛰어난 길이다.

사랑은 이긴다. 우리는 모든 사람,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동역자들과 장로들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들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와 같이 온전하게 되어 아무 차별 없이 선인과 악인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의 아들들, 곧 그분과 같은 종(種)이기 때문에 우리의 아버지처럼 온전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주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병든 사람을 위해 의사로서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주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교회는 사람들을 체포하는 경찰서나 사람들을 심판하는 법정이 아니라 믿는 이들을 양육하는 집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나빠질수록 그들에게 더 많은 양육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만일 우리 자녀들이 천사들이라면 그들은 그들을 양육하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 없을 것이다. 교회는 어린아이들을 양육하는 사랑이 가득한 집이다. 교회는 또한 병을 고치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병원이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이해력이 부족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함양하는 학교이기 때문에, 동역자와 장로들은 주님과 하나 되어 사랑 안에서 다른 이들을 양육하고 치료하고 덮어주고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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