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의 두 방면
신화
바울 , 2009-04-20 , 조회수 (4974) , 추천 (0) , 스크랩 (0)

 

한국교계 내에 적지 않은 분들이 칼빈의 개혁주의의 영향아래 있다고 보여집니다.

 

칼빈신학은 성경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진리의 빛들을 모아서 정교한 교리체계로 조직화 한 것을 큰 장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체계적으로 정리된 신조들을 가르침으로 진리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면에서는 유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한한 하나님이 계시된 말씀인 성경은 사람의 논리와 지성으로 완전하게 다 체계화 할수 없음에도 개혁신학은 어떤 면에서는 이점을 간과함으로 성경 진리의 또 다른 방면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또는 칭의)에 관한 진리는 예수의 보혈로 얻어지는 방면(객관적인 칭의) 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얻어지신 그리스도 자신(빌1:21, 3:9)이 또한 의이심을 간과하는 것이 그 한 예입니다. 개혁신학은 이런 방면을 의가 아니라 성화라고 구분 하나 성화와 의를 지나치게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가 성경본문이 말하는 의(칭의)에 대한 계시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최근의 추가적인 연구를 통하여 이신칭의를 강조했던 마틴 루터가 말했던 칭의는 지금까지 알려져 온 것처럼 객관적인 방면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을 의로 여겼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래 내용은 '사도행전 결정연구'(2008년 겨울 훈련집회) 389쪽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분 안에서 믿는이는 모두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39절은 "이분 안에서 믿는이는 모두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믿음을 통한 유기적인 연결을 가리키는데, 왜냐하면 믿는 모든 사람이 ‘이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의롭게 됨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피상적이고 완전하지 못하다. 전통적인 생각은 우리가 불의하고 그리스도는 의로우시기 때문에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고, 우리의 모든 빚을 담당하셨으며, 이제 그분의 의가 우리의 의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망은 정확한 의미에서 매우 법리적이다. 비록 개혁신학이 이러한 조망으로 의롭게 됨을 가르칠지라도, 그것은 부정확하다. 엄격히 말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소유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를 조금 취하셔서 그것을 우리의 계좌에 넣으셔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자신을 의로서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아버지-아들-영-하나님의 왕국-구원-용서-의롭게 함-사람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비추심으로 우리가 그분을 귀하게 여기고 믿도록 하는 상황을 안배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신다. 우리가 그분 안으로 믿어 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입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실 때 하나님은 “내 눈으로 볼 때 나는 너를 의롭다고 여긴다. 나는 나의 의의 기준에 따라 너를 인정한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와의 유기적인 연결 안에서, 즉 ‘이분 안에서’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의롭게 됨은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우리의 은행계좌에 넣어주시는 것 같이 다만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사실상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이분께서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하신다. 우리는 그분 안으로 믿어 들어가는데, 이것은 우리가 무언가로부터 믿어 나온다는 것을 함축한다. 우리는 이 인격안으로 믿어 들어가며, 그 결과 ‘이분 안에’ 있다. 우리가 그분 안으로 믿어 들어갈 때, 아버지는 가장 좋은 옷을 가지고 오시며(눅15:22), 이 옷은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라 우리의 의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개혁신학자들은 그들의 생각을 조정하여 그들의 신학에 더 이상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이 인격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절차, 법리적인 과정에 붙잡혀서 이것저것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의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전적으로 이 우주 안에서 가장 놀라우신 이 인격에 넋을 잃고 그분께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를 덮으시는 이러한 분을 얻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그분은 우리와 우리의 죄들과 실패들의 역사를 보지 않으시고 오직 그분의 아들만 바라보신다. 이것이 의롭게 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