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사역을 위한 첫번째 하나님-사람의 생활
그리스도
Hannah , 2009-03-14 , 조회수 (3543) , 추천 (0) , 스크랩 (0)

 

 

그분의 사역을 위한 첫번째 하나님-사람의 생활

 

이 메시지에서 우리는 그분의 사역을 위한 첫번째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역을 위해 우리의 생활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많은 사람들이 목적 없이 살고 있다. 나는 사역을 위한 삶을 위해 미국에 왔다. 사역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나라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사역을 위해 살고 있다.

 

1. 물 침례의 의미에 근거함

 

a. 육체 안의 사람은 아무 것에도 좋지 않고 죽고
장사지내기에나 좋다는 것을 인식함

 

그분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 그 무엇을 행하시기 전에, 그분은 요한에게 와서 침례 받으셨다. 물 침례는 육신 안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눈에 볼 때, 아무 것에도 쓸데 없고 죽고 장사지내는 데에만 합당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한 삶은 물 침례의 의미에 근거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똑같은 근거를 가져야 한다.

 

b. 그분의 자아와 그분의 천연적인 사람을 부인하심

 

이러한 의미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는 자아와 그의 천연적인 사람을 부인하셨다. 우리는 물 침례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장사지낸 바 되었음을 뜻한다. 우리는 과거에 행했던 방식으로 우리의 배우자를 대해서는 안 된다. 장사됨에 근거하여 우리는 우리의 자아와 천연적인 사람을 마땅히 부인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천연적인 생명에 의해 어떤 것도 행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우리가 장사지낸 바 되었기 때문이다.

 

c. 그분의 자아를 십자가에 두심

 

주님은 그분의 자아를 십자가에 두시고 항상 십자가의 그늘 아래 사셨다. 그분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우리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마땅히 우리 자아에 대해 항상 십자가를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십자가의 그늘 아래 살아야 한다. 전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통해, 나는 나의 자아를 십자가에 두며 십자가의 그늘 아래서 사는 공과를 배우고 있다. 주님을 따르는 초기부터, 나는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것을 배웠다.

 

우리의 천연적인 사람이 좋은가 나쁜가는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그것이 좋다하더라도 우리는 천연적인 사람을 거절하고 부인해야 한다. 우리의 천연적인 생명이 온유하고 친절하며 사람들에게 좋기 때문에 그러한 천연적인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온유하고 친절한 생명은 우리가 침례받았을 때, 장사지낸 바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생명은 그 영이요, 신성한 생명이신 그리스도이다.

 

d. 겸손한 삶을 사심

 

그리스도는 또한 그분 자신을 낮추심으로 겸손한 삶을 사셨다(빌 2:8). 이것은 우리가 어떤 것도 자랑해서는 안 됨을 보여 준다. 우리에게 자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가 본 계시로 인하여 그가 자고할까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시를 허락하사 교만하지 않고, 그로 하여금 겸손하게 했다.

 

e. 하나님의 멍에 아래 사심

 

그분의 땅에 속한 사역에 있어서 주님은 또한 하나님의 멍에 아래 사시며,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셨다(마 11:28-29). 우리의 사역을 위하여 우리는 그러한 멍에 아래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멍에 아래 있는 짐승은 반드시 주인의 인도 아래 땅을 갈게 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멍에 아래 있을 때, 우리에게는 자유가 없고, 선택이 없으며, 선호가 없다.

 

f. 그분을 알리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분부하심

 

마태복음 12장 16절은 주께서 자신을 알리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분부하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분이 유명해지기를 원치 않았다는 뜻이다. 모든 동역자들은 그러한 유혹에 직면한다. 어떤 이들은 유명해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주 예수는 이와 반대였다. 유명해지는 것은 하나의 유혹이다. 우리가 유명해질 때, 우리는 끝난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은 그들이 유명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심한 어떤 말도 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음 번에 초청받지 못할 두려움 때문에 어떤 것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1964년에 나는 달라스에 있는 한 믿는이들의 그룹에 말하도록 초대되었다. 내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사역했으므로 그들은 나를 환영했다. 결국 그들과 함께한 마지막 시간에,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관하여 말했다. 나는 이것 때문에 거절 당했다. 우리는 반드시 신성한 계시의 진리를 말함에 있어 신실해야 한다. 전에 우리의 동역자 중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언짢게 한다는 이유 때문에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가 생명 주는 영이 되심을 감히 말하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첫번째 하나님-사람의 생활과 반대된다. 그분은 그분 자신을 위한 이름을 내기 위해 모든 사람에 의하여 받아들여지는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g. 다투지도 않고 외치지도 않아 아무도 길에서
그분의 소리를 듣지 못함

 

마태복음 12장 19절에서 20절은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 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말한다. 고대에 유대인들은 갈대로 피리를 만들었다. 갈대가 상하면 그들은 그것을 부러뜨렸다. 또한 기름을 태울 수 있는 심지를 만들었는데, 기름이 다 떨어지면 심지가 연기를 냈고 사람들은 그것을 꺼버렸다. 주님의 사람들 가운데 어떤이들은 음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한 갈대와 같고, 다른이들은 빛을 바라지 못하는 연기나는 심지와 같았다. 그러나 주님은 상한 자들을 부러뜨리지 않으시고 연기나는 자들을 꺼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상한 갈대와 같고 연기나는 심지와 같은 자들 가운데 얼마는 그리스도에 의해 승리에 이르는 의를 가져오기 위해 쓰임 받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 외에는 아무도 쓸모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일을 수행할 수 없다. 우리가 동역자들을 선발할 때, 우리는 다만 외적으로 그들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고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신실하지 않을수도 있다. 주님은 얼마의 상한 갈대들과 연기나는 심지를 선택하셨다. 그리고나서 그분은 그들을 온전케 하여 그들로 승리에 이르는 의를 가져오기 위해 그분의 손에 유용케 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사용해야 한다. 만약 그분이 우리에게 좋은 사람들을 주셨다면, 우리는 좋은 사람들을 사용해야 한다. 만약 그분이 우리에게 좋지 못한 사람들을 주셨다면, 우리는 좋지 못한 사람들을 사용해야 한다.

 

h. 하나님의 양떼를 관심하심

 

주님께서 우리들을 보셨을 때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 그분은 기적들을 행하여 가난한 자들을 돌보셨다. 그분은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 11:5)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들의 목자로서 그들을 돌보시는 주님에 의해 긍휼이 표현된 것이다.

 

주님의 사역자로서, 우리는 어떻게 가난한 자들을 관심하는 지를 배워야 한다. 주님은 또한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의 말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눅 4:18-22). 때때로 우리는 은혜의 말 대신에 책망과 정죄의 말을 한다. 우리는 은혜의 말을 말하기 위해 그분과 하나되기를 배워야 한다. 또한, 주님은 우시기까지 하시며 고난받는 무지한 제자들을 동정하셨다(요 11:35).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들의 오라비 나사로를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무지했고, 그것은 주님으로 하여금 울게 만들었다.

 

여기서 「울다」라는 말은 「조용히 울다」라는 뜻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나사로가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들의 의견에 의해 방해 받으셨다. 마르다는 부활을 마지막 날까지 연기했다(24절).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는 우셨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고통당하며, 그러한 고통 아래에서 왜,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주님은 이러한 상황을 동정하셨다.

 

i. 그분은 머리 둘 곳이 없으심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그분은 머리 둘 곳이 없으셨다(눅 9:58).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가난을 견디는 것을 배워야 한다.

 

j. 올바른 영을 갖도록 그분의 제자들을 바로잡으심

 

주님은 배척하는 자들을 향해 올바른 영을 갖도록 그분의 제자들을 바로잡으셨다. 주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한 촌을 지나가셨는데, 그곳은 그들을 영접치 않는 곳이었다. 우뢰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주님은 『너희가 무슨 영으로 말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눅 9:53-56)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님이 언제나 올바른 영으로 사람들을 대하셨음을 보여 준다. 나는 가끔씩 합당치 않은 영으로 사람들을 대한 것을 후회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우리의 영을 교정하는 공과를 배워야 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를 받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합당치 않는 영으로 반응한다면, 우리는 사람들을 섬길 자격이 없다. 만약 우리가 합당치 않는 영을 갖고 있다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역할 수 없다.

 

신약에 따르면, 교회는 오직 하나의 지방 입장, 즉 한 지방에 한 교회를 갖고 있다. 이것을 실행함으로 우리는 모든 교파의 입장을 폐한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를 받아들이거나 환영하지 않는다. 우리가 누가복음 9장에서 야고보와 요한과 같이 합당치 않는 영으로 반응할 것인가? 우리는 반드시 올바른 영을 갖도록 훈련해야 한다. 주님이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사신 참된 본이시다.

 

k. 보복하지 않고 환난을 당하심

 

주님은 보복하지 않고 환난을 당하시어, 우리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오도록 본을 남기셨다(사 53:3, 7, 벧전 4:1, 2:21-23). 그분은 털깍는 자 앞의 양같이 고난가운데 잠잠하셨다. 그분이 비방당하실 때, 그분은 되받아 비방하지 않으셨다. 오늘날, 우리 동역자들은 이러한 본을 배워야 한다. 만약 사람들이 우리를 비방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되받아 비방함으로 복수하려는 어떠한 생각도 가져서는 안 된다.

 

헬라어로 「본(model)」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하나의 종이본으로서, 학생들이 그 위에 종이를 놓고 따라서 쓰면서 글씨를 배우는 원본 용지」라는 말이다. 주님은 그분의 고난 받으신 삶을 우리 앞에 두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감으로써 그분을 본받도록 하셨다. 이것은 단지 그분과 그분의 삶을 모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은혜로서 그분을 누림으로부터 온 그분의 재생산을 말하는 것으로, 그분이 내재하는 영으로서, 그분의 생명의 모든 풍성으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재생산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외적인 본으로 취함으로 산출된 다만 그분의 모방이 아닌, 원본의 재생산이 되었다.

 

l.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음

 

그분은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아버지께서 그들의 무지함의 죄를 용서하시도록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눅 23:34上).

 

m. 범죄자 중 하나에게 그분의 구원을 베푸셨음

 

심지어 고난받으시며 죽어갈 때에도 그분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범죄자 중 하나에게 그분의 구원을 베푸셨다(눅 23:42-43).

 

n. 유혹을 받으시나 죄는 없으심

 

비록 그리스도께서 유혹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다(히 2:18, 4:15, 벧전 2:22).

 

o. 그분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심

 

주님은 그분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다(요 5:19, 30上, 8:28). 이것은 그분이 자신을 장사지낸 바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p. 그분 스스로 어떤 말도 하지 않으심

 

주님은 자기 자신의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아버지의 말씀을 말했다(요 14:10上).

 

 

q. 그분 자신의 뜻을 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뜻을 구하심

 

 

그분은 자신의 뜻을 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셨다(요 5:30上, 6:38, 마 26:39, 42). 마태복음 26장 39절에서 그분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고, 42절에서 그분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r.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

 

 

빌립보서 2장 8절은 주님이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한다.

2. 그분 자신에 따라 살 자유가 없음

 

주님은 그분 자신에 따라 살 자유가 없었다. 그분은 그분의 형제들에게,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7:6). 8절에서 주님은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했다. 주님은 이 땅 위에서 한 사람으로서 심지어 시간의 문제에 있어 제한받으셨다. 이것은 어떤 것을 행하기 전에, 우리가 주님을 접촉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주여 나는 한 형제에게 가서 그를 만나보고자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지금이 합당한 때입니까?』라고 기도할지 모른다. 종종 내가 이런 식으로 기도했을 때, 주님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한 형제를 돕고자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주님은 그때 그것을 하도록 허락지 않으셨다. 우리는 합당한 때를 기다리는 공과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선호에 따라 행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찬송가 501장(한국복음서원 찬송 382장) 1절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영원 안에 무한하신 하나님이 / 시간 안에 유한한 사람이 되셨네(영원 무궁한 한계를 떠나서 / 시간에 제한되셨네)」라고 말한다. 그분은 영원 안에 무한한 하나님이셨지만, 그분은 이땅 위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신 한 사람이 되셨다. 그분은 약 삼십 년 동안 나사렛의 한 촌에서 그분의 생활에 있어 제한 받으셨다. 우리가 그러한 방식으로 제한받을 수 있는가? 우리는 많은 장소들을 방문하고자 하는 부담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제한받는 공과를 배워야 한다.

 

3. 아버지와 동역하심

 

주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은 그분의 경륜의 성취를 위해, 그분 안에 거하시고 일하시는 아버지와 동역하심 안에서 행하셨다. 요한복음 14장 10절 하반절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분 안에서 사시고 일하시는 아버지와 동역하신 것이다.

 

4. 그분의 인성의 미덕 안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을 나타내심

 

그분은 이 땅 위에서 전적으로 인성의 미덕 안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한 삶을 사셨다(딤전 3:16上). 사람들이 그분의 미덕들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보았고 그것은 하나님의 나타남이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접촉함에 있어서 이러한 모든 항목들을 우리의 매일의 생활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사람의 생활, 8장,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