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 『진리의 절대성』
교회
Hannah , 2009-03-14 , 조회수 (3206) , 추천 (0) , 스크랩 (0)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 『진리의 절대성』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항상 진리의 절대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자신에서 구원받는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만이 진리에 절대적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형제 자매들은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지 못하며, 사람이나 일의 영향을 받고 또한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지 못하면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진리를 희생시키는 것을 면하기 어려우며, 사역자가 사람이나 환경이나 혹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진리를 희생시키는 것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의 기본적인 요구는, 진리는 절대적인 것으로서 결코 희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은 희생할 수 있으나 진리는 결코 희생시킬 수 없으며, 우리의 감정은 희생시킬 수 있지만 진리는 희생시킬 수 없다.

 

사역하는 많은 형제들의 어려움은 그들의 친구들 가운데에서 발생하며 그들이 잘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난다. 또한 많은 책임 형제들의 곤란이 그들의 가정에서 발생한다. 그들은 가정이나 친구 혹은 친속들로 인하여 진리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다.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의 형제이든 나의 친척이든 나와 친밀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든 그 누구를 막론하고 결코 진리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어느 사역자의 아들이 침례받을 의사를 표했다고 하자. 만일 이 사역자가 이 일을 진리에 관계된 일로 보고 참으로 진리를 고수(固守)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의 아들이 침례받는 일을 책임 형제의 손에 맡겨 자신의 아들이 침례받기에 합당한가의 여부를 그가 결정하도록 일임시켜야 한다. 많은 때에 어려움은, 사역하는 형제가 그의 아들이 그렇게 나쁘지 않으며 항상 침례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진리에 대해 절대적이지 않음을 입증한다. 그는 부자(父子) 관계를 이 진리 안으로 가져옴으로 진리에 절대적이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가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라면, 그는 많은 일에 있어서 교회가 하는 진리의 안배를 따를 것이며 그 개인의 관계를 따라 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가령, 어느 곳에서 교리상의 분쟁이 일어났는데 한 무리의 성도들은 그들과 친숙하게 왕래하던 몇몇의 형제를 좇아 나갔고, 다른 한 무리의 성도들은 그들과 친분이 두터운 형제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좇아 나갔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것은 그들 어느 쪽도 진리에 전적으로 절대적이지 못한 것이며, 그들이 나간 것은 진리에 근거한 것이기보다는 그들의 사적인 감정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입을 다물고 진리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진리를 돌아보기는 했지만 그러나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지는 못했다.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면 영적인 일에 있어서 사적인 감정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자신의 친형제나 친자매 역시 진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영적인 일에서 인간 관계가 개입되면, 진리에 절대적이지 못하게 된다. 인간 관계가 영적인 일에 개입되면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나 명령이 감소되고 그렇게 되면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규정하시고 명령하신 많은 것들을 널리 전파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러한 말씀들이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할 수 없음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종이 그가 할 수 없고 지킬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다. 왜 그런가?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을 우리의 표준과 조화(調和)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낮출 수는 없다.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없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고칠 수는 없다. 이것이 진리의 절대성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초월하고 당신 개인의 감정을 초월하고 당신의 인간 관계를 초월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당신은 당신의 아내나 남편 혹은 자녀에게 하나님의 표준을 적용시킬 때에는 상당히 완화시켜 적용하려 하고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만 그 표준을 지키라고 해서는 안 된다.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진리의 절대성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절대적인 것이므로 그가 누구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진리의 절대성을 지켜서 적용해야 한다. 그가 나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해서 진리의 표준을 낮추어서 적용해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이 어떤 특별한 관계를 고려하여 그에게 진리를 적용시킨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진리를 낮추는 것이 된다. 이것은 당신이 말한 것이 모두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당신이 진리에 대해 절대적이지 못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진리의 절대성을 유지하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도 어떤 사람이 우리의 친척이라고 해서 진리에 대한 그의 절대성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우리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따르는 것이고, 진리의 절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많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어느 지방 교회에는 이러한 분열이 있었다. 어떤 한 형제가, 『나는 본래 당신들과 나뉠 뜻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제 저녁의 일을 당신들이 내게 알리지 않았으므로 오늘 나는 당신들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다. 만일 나누어져야 할 것이라면 어제 저녁에 연락이 오지 않아도 나누어질 것이고, 만일 나누어질 것이 아니라면 어제 저녁에 연락이 오지 않아도 나누어지지 않는다. 만일 그가 진리에 대해 절대적이라면 그는 어제 저녁에 연락이 왔는가의 여부를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나누어지는 여부를 통보가 왔는가에 근거를 둔다면, 이것은 사람을 진리 위에 두는 것이다.

 

어떤 지방의 한 형제는 따로 떡을 떼고 주님의 상을 세웠는데, 그 이유는 그가 집회 가운데 어떤 형제에게 질문을 하였는데 그가 답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일 당신이 떠나는 것이 옳다면, 당신은 좀더 일찍 나가서 따로 떡을 떼야 한다. 만약 떠나는 것이 옳지 않다면, 한 형제가 당신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떠날 수는 없다. 이것이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인 것이다. 만일 따로 떡을 떼는 것이 진리라면, 당신으로 머물게 하고 나 또한 따로 떡을 떼야 한다. 만일 따로 떡을 떼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당신이 나에게 잘못을 범했을지라도 나는 따로 떡을 떼서는 안 된다.

 

형제 자매여, 당신은 보았는가? 이러한 자아의 뿌리가 뽑혀야만이 비로소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 당신이 교만하고 이기적이어서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서 어떠한 대우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다고 여긴다면, 당신 자신은 하나님의 진리보다도 더욱 크고 중요하다는 말이 된다. 이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길에 있어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우리 자신을 버려야 한다. 우리 자신이 기쁘거나 기쁘지 않거나, 우리 자신이 상처를 받거나 받지 않거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할지라도 우리는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어야 하며, 가장 큰 고통을 느낄지라도 진리에 견고히 서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나쁘게 대하고 경시하여도, 우리를 한푼어치의 값어치도 없는 사람으로 볼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진리에 견고해야 한다. 당신은 하나님의 진리가 당신의 감정을 좇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실제로 너무도 담대해져서 항상 하나님의 진리가 당신 자신을 좇아가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영광을 보아야 하며, 이 안에 자신의 감정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을 하나님의 진리와 비교할 때, 「나」라는 존재는 진리보다 작은 것이 아니라 아예 「나」라는 존재가 없는 것이다. 당신이 자신을 진리 속에 조금만 개입시켜도 즉시 문제가 생기게 된다.

 

다시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한 형제가 밖에서 많은 말을 듣고 교회 안으로 들어온 뒤 매우 좋다고 표했지만, 그는 그러한 말들이 별로 일리가 없다고 느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어떤 진리도 만져 보지 못했으며 교회 가운데 몇몇 형제를 접촉했을 뿐이었다. 그는 행실에 있어서도 상당히 산만하였다.

 

교회 안의 한 형제가 그의 영적 상태를 알고서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형제여, 당신의 요즈음의 행실은 너무나 산만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형제는 많은 예를 들면서 진실로 사랑 안에서 참된 말을 하였다. 그는 이 말을 듣고서 밖으로 나가 많은 사람들이 이 모임을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며 이 모임은 마땅히 반대당해야 한다고 비방했다. 그는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지 않았다. 만일 그가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었다면, 어떤 사람이 그를 책망한다 하여도 그는 여전히 그러한 훈계를 받아들이며 교회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지 못하였기 때문에 책망을 받자마자 태도가 바뀌었던 것이다.

 

무엇을 가리켜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감정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며, 인간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것이다. 진리에 절대적이라면, 개인의 감정이나 인간의 관계나 개인의 체험 혹은 개인의 환경은 진리 속에 있지 않다. 진리는 절대적이어서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린 것이다. 예전에 많은 사람을 이끌어 본 경험이 있는 한 형제가 교회의 간증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이 길이 옳은 것은 이 형제가 가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다. 만일 이 길이 옳지 않은 길이라면 이 형제가 간다고 해도 길이 올바르게 되지는 않는다.

 

길의 옳고 틀림은 이 형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 형제가 훗날 실족할지라도 그가 택한 이 길은 옳은 것이다. 왜 그런가?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눈은 오직 이 형제만을 바라볼 뿐이어서 이 형제가 옳다고 생각되면 그가 가는 길 또한 옳은 것이며, 이 형제가 옳지 않다면 그가 택한 길 또한 잘못된 것으로 여긴다. 이렇다면 그들은 진리를 보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보는 것인가?

 

이것은 사람이 결코 무책임할 수 없으며 반드시 하나님의 간증이 사실이라는 것을 지켜야 함을 말하고 있다. 한면에서 볼 때, 이 길이 옳은지 그른지의 판단 근거는 진리에 있는 것이지 결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몇몇의 다른 그리스도인이 범죄한다고 해서 우리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다른 하나님의 자녀가 실족한다고 해서 우리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많은 하나님의 자녀가 좋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분명하게 말하건대, 그렇지 않다.

 

형제 자매여,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실족할지라도 주님을 믿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믿어야 한다. 많은 하나님의 자녀가 범죄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지어도 되며 그리스도인이 실족하여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진리가 절대적인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주님을 믿어야 한다면, 다른 사람이 모두 믿지 않을 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믿어야 한다. 다른 그리스도인이 모두 실족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진리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교회 안에 분쟁과 사역상의 어려움과 사역의 많은 다툼들에 있어서 만일 인간적인 관계나 개인적인 감정 혹은 개인적인 문제가 다 제거된다면, 이러한 것들은 멈추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인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며 대충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이 문제를 느슨하게 풀어놓는다면, 무슨 일이나 다 느슨하게 할 것이다. 진리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마음이 없고 이러한 습관이 없다면 조만간 당신에게는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다.

 

어떤 형제는, 『나는 이곳 교회로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여기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이 결코 그가 진리에 대하여 절대적이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는 그 지방에 대해 애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닥치게 되면, 그는 아마도 이곳이 옳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진리는 절대적이어서 옳으면 옳고 틀리면 틀린 것이다. 나에게 잘 대해 주면 옳고 나에게 잘 대해 주지 않으면 틀리다고 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이 그를 어떻게 대우해 주는가에 따라서 이곳 교회가 옳은지 그른지를 단정한다면, 그는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사가 아니겠는가! 그에게는 진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만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진리에 대하여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많은 때에 어려움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일에 있어서나 자신을 한쪽에 제쳐놓고 자신을 상관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처리하기를 바라신다. 우리 개인의 감정과 선호, 우리가 상처를 받고 받지 않는 것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결코 개인의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것이 옳다고 말씀하시면 옳은 것이며 틀린 것이라고 말씀하시면 틀린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길이 옳다고 말씀하시면 다른 모든 사람이 걸어가지 않는다 해도 나는 걸어가야 한다. 이 길이 아주 벅적벅적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요, 어떤 형제가 이 길을 걸어가기 때문에 나도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이 길이 옳은 길이라면 어떤 형제가 가지 않는다 해도 나는 여전히 걸어가야 한다.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어서 어떤 사람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만일 당신이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면, 당신은 사람을 진리보다 더 크게 보는 것이다.

 

심판은 진리에 근거하는 것이지 우리 개인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에 심판의 근거가 우리 개인으로 바뀐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말씀을 온통 왜곡시켜 버리는 것이 된다. 심판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이다. 사람이 당신에게 잘 대해 준다고 해서 이렇게 하고 잘못 대해 준다고 해서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에 대하여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인지 아닌지를 보아야 하며, 우리 개인의 감정이 어떤지를 보아서는 안 된다. 개인적인 일이나 개인의 감정이 사역 안에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진리가 우리에게 교제를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우리에게 좋은 친구일지라도 교제를 끊어야 한다. 비록 날이면 날마다 동락하며 지내온 사이라 할지라도 진리가 절대적이어서 교제를 끊어야 한다고 하면, 여기에는 사람의 사사로운 정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진리가 우리에게 교제를 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 우리는 비록 매일 다투고 마찰하는 사이일지라도 교제를 단절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의 인간적인 관계로 인해 계속 교제한다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진리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며, 우리 앞에 놓인 사역의 길을 잘 갈 수 없다.

 

형제 자매여, 이것은 기본적인 문제이다. 당신 앞에 놓인 사역의 길은 당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처리하기를 배워야 한다.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을 아주 크고 아주 중요한 사람으로 여긴다면, 진리는 당신 때문에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진리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당신 자신을 비워야 하며 당신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저마다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결코 자신의 기질이나 감정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진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리를 희생시켜도 되는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도 없으며, 자신의 감정의 편안함을 위하여 진리를 왜곡시킬 수 있는 사역자는 하나도 없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진리를 그렇게 낮게 본다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길을 갈 수 없다.

 

세상 법정에서도 법관의 재판은 법률에 대하여 절대적이다. 죄가 있으면 있는 것이고 죄가 없으면 없는 것이다. 그가 내 형제이기 때문에, 그가 내 친구이기 때문에 죄가 있는 것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만일 사적인 감정을 법정 판결에 적용시킨다면, 그것은 정말 큰일이다. 법률은 절대적이어서 개인의 감정이 결코 그 안에 개입될 수 없다. 판사의 원수가 재판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법이 무죄라고 한다면 무죄 선고를 해야지 그의 사적인 감정에 따라 유죄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판사는 법률을 지켜야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긴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견지해야만 한다. 개인의 감정은 결코 진리 안에 개입될 수 없다. 우리는 이 일을 명심해야 하며 모든 사람의 감정은 진리 속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처리받아야 하며 주님께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여,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의 진리만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사역에 있어서의 어떤 분쟁이나 어려움도 없게 된다.

 

만일 함께 사역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에 절대성을 유지한다면, 한 가지 가장 큰 장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함께 사역자들 사이에 말하기가 쉬워지고 일을 하기도 쉬워진다는 것이다. 만일 어떤 일을 이렇게 처리해야 한다면, 그대로 실행한다 해도 당신은 다른 형제의 심중이 어떨 것인지를 고려할 필요가 없게 된다. 만일 우리 모두가 진리의 절대성을 본다면, 오직 주의할 한 가지 일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또 하나님께서 이렇게 규정하셨는가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꺼릴 필요가 없다.

 

만일 우리가 진리의 절대성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의 길은 그리 좋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만일 우리가 거기서, 「왕 형제는 어떻게 생각할까, 주 형제는 어떻게 생각할까, 또 유 형제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를 곰곰히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며 진리는 우리 때문에 큰 손실을 입게 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다른 사람의 비난을 두려워하여 감히 많은 말도 할 수 없고 많은 일을 규정할 수도 없다. 이렇게 한다면, 어려움이 우리 가운데 있게 된다.

 

만일 한 단체 안에 오직 하나님의 진리만이 있고 사람의 수단이 없다면, 그 단체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단체이다. 만일 한 단체가 수단과 수완을 쓰지 않고 사람의 방법으로 타협하여 조화를 이루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어떤 일을 행한다면, 그 단체는 실로 축복을 받은 단체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리의 절대성을 지키며 사역의 길을 걸어갈 때에는 마땅히 동역자들 사이에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거리낌이 있게 되고 수단을 쓰게 되며 배반이 있게 된다. 그러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이것은 아주 큰 문제이고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하나님 앞에서 잘 처리해야 한다. 개인적인 느낌이나 감정이 결코 사역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당신 개인의 감정은 다른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사역 안으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 오늘 당신이 손님을 초대하였는데 당신의 감정으로 인하여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다. 당신이 진리를 돕고자 한다면, 이 마음은 아주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사람의 손으로 붙들 필요가 없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왜냐하면 진리는 그 자체가 지위와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리가 거절당할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진리를 존중하기를 배워야 하며, 진리의 길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조금이라도 낮추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


워치만 니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진리의 절대성",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