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 기도
교회
Hannah , 2009-03-13 , 조회수 (3455) , 추천 (0) , 스크랩 (0)

 

권위의 기도

 

 

성경 : 마태복음 18:18-19, 마가복음 11:23-24, 에베소서 1:20-22, 2:6, 6:12-13, 18-19

 

성경 안에 가장 높고 영적인 기도가 있지만 이런 기도를 하고 있거나 주의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이 기도는 무엇인가? 이 기도는 곧 「권위의 기도」이다. 우리는 찬미의 기도, 감사의 기도, 간구의 기도, 부르짖는 기도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권위의 기도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는 별로 알지 못한다. 권위의 기도는 곧 분부의 기도이다. 이런 종류의 기도가 성경에서 가장 긴요하고 가장 영적인 기도이다. 이런 종류의 기도는 권위의 대표이자 권위의 명령이다.

형제 자매여, 만일 당신이 기도의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권위의 기도를 배워야 한다. 이런 기도는 곧 마태복음 18장 18절에서 주님이 말씀 하신 바이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여기에 매는 기도가 있고 푸는 기도가 있다. 하늘의 행동은 땅의 행동에 달려 있고 하늘은 땅의 말을 듣고 땅의 분부를 듣는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땅에서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매는 것이요 땅에서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푸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권위의 기도이다.

 

이사야 45장 11절에 이러한 말씀이 있다. 『(너희가)내게 분부하라』(원문 참조). 우리가 어찌 감히 하나님께 분부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정말 너무 담력이 큰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하신 말씀이다. 여기서 물론 육신의 들어옴을 허락할 수 없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분부의 기도, 명령의 기도를 보여 준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분부할 수 있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런 기도는 전적으로 기도를 배우는 사람이 다 배워야 할 것이다.

 

출애굽기 14장에서 말한 이야기를 보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도록 인도하여 홍해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에 문제가 생겼다. 앞은 홍해이고 뒤에서는 애굽의 병사들이 쫓고 있었다. 이 때 그들은 참으로 진퇴양난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사람이 좇아오는 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했고 한면으로는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또 한면으로는 모세를 원망했다. 모세는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모세가 그때 부르짖었음을 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에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지팡이는 곧 권위였다. 하나님의 뜻은, 『너는 부르짖을 것 없이 권위로 기도할 수 있다. 네가 분부의 기도를 하면 내가 역사하겠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모세가 배우고 얻은 것은 바로 권위의 기도요 분부의 기도이다.

 

2

그리스도인의 이 분부의 기도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가?

 

이런 기도는 주님의 승천에서 시작된 것이다. 승천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 관계는 무엇인가? 이는 곧 당신으로 하여금 이기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담 안에 있는 우리의 옛 창조를 해결했고, 그분의 부활은 우리를 새 창조 안으로 인도했고, 그분의 승천은 우리로 사탄 앞에서 새로운 위치를 얻게 하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위치는 하나님 앞에서의 새로운 위치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새로운 위치는 주의 부활로 말미암아 얻었다. 사탄 앞에서의 새로운 위치는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얻었다. 에베소서 1장 20절부터 22절까지는, 그리스도가 승천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그분을 오른편에 앉히셨는데 이는 곧 그리스도로 하여금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은,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에 공중에서 하늘까지 통하는 길을 열으시어 그분의 교회로 하여금 이 길로 땅에서 하늘에까지 이르게 하셨다. 우리가 알듯이 영적인 그 대적은 공중에 살고 있다. 오늘 그리스도가 이미 하늘로 오르셨기 때문에 땅에서 하늘에까지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본래 이 길은 사탄에 의해 포위되었다. 이제 그리스도는 하늘에 이르는 길을 여심으로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시다.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위치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은 사탄과 그 하속들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고 만물까지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신 것이다.

 

승천의 의미는 죽음과 부활과 다르다. 죽음과 부활은 다 구속을 위한 것이지만, 승천은 씨름을 위한 것으로서 죽음과 부활이 이미 성취한 것을 집행한다. 승천은 새로운 위치로 나타나게 한다. 에베소서 2장 6절에서 우리에게,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형제 자매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것을 보았는가? 1장은 그리스도가 승천하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의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되셨음을 말한다. 2장에서는 우리가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아 있음을 말한다. 이는 교회도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남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것이 사실임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오늘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이 모든 것을 초월하셨듯이 교회도 똑같이 이 모든 것을 초월했다. 주님이 모든 영적인 대적을 초월하셨듯이 교회도 모든 영적인 대적을 초월했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에 모든 영적인 대적을 초월하셨듯이 교회도 주와 함께 승천함으로 이 모든 것을 초월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영적인 대적은 다 교회의 발 아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에베소서 1장, 2장과 6장이다. 1장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위치를 보여 주고, 2장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회의 위치를 말하고, 6장은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위치를 가진 후에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1장은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신 것을 말하고, 2장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는 것을 말하며, 6장은 영적인 씨름을 말한다.

 

하나님이 교회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은 교회로 하여금 계속 거기에 앉아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로 또한 서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2장에서 「앉히시니」를 말하고, 6장에서는 「서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씨름은 하늘의 위치에 서서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모든 것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2-13). 우리의 씨름은 마귀와의 씨름이므로 영적인 씨름이다.

 

에베소서 6장 18절부터 19절까지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이것은 영적인 씨름의 기도이다. 이런 종류의 기도는 일반적인 기도와 크게 다르다.

 

일반적인 기도는 땅에서 하늘로 기도하는 것이지만, 여기서의 기도는 땅에서 위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위치에 서서 하늘에서 땅 아래로 기도하는 것이다. 권위의 기도는 하늘을 기점으로 삼고 땅을 종점으로 삼는다. 바꾸어 말해서 권위의 기도는 하늘로부터 땅에 이르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은 다 위로 기도하는 것과 아래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래로 기도하는 기도를 배우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권위의 기도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영적 씨름에서 아래로 기도하는 기도는 매우 중요하다.

 

아래로 기도하는 기도란 무엇인가? 이는 곧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우리에게 주신 위치에 서서 권위를 사용하여 사탄을 명하고 사탄의 모든 역사를 거절하는 것이며 권위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 다 이루어질 것을 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일을 위해 구한다 하자.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참으로 보고 하나님의 정하심이 무엇인지를 참으로 알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이루소서.』라고 기도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어찌하든지 당신은 이것을 하셔야 합니다. 이 일은 필히 이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어찌하든지 이 일은 이렇게 성취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명하는 기도-권위의 기도이다.

 

「아멘」의 의미는 「마음의 원대로」나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가 아니라 「확실히 이러하다」, 「필히 이러하다」라는 것이다. 당신이 기도할 때에 내가 아멘하는 것은 일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고 필히 그렇게 되리라는 뜻이다. 당신이 기도한 것이 필히 이행되리라는 것이 명령의 기도, 즉 믿음에서 비롯된 명령의 기도이다.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하늘의 위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승천의 위치는 그리스도가 승천하실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하셨을 때 우리도 죽고 부활한 것처럼,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실 때 우리도 하늘에 있게 되었다.

 

형제 자매여, 우리는 마땅히 교회가 하늘 위에 서 있는 위치를 보아야 한다. 사탄의 역사는 우리로 하늘의 위치를 잃게 하는 데서 시작한다. 하늘에 있는 위치는 곧 이기는 위치이다. 그 위치에 서 있기만 하면 우리는 이길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사탄에 의해 하늘에서 밑으로 끌어당겨진다면 우리는 실패한다. 모든 이김은 곧 하늘에서 이기는 위치에 계속 서 있는 데서 비롯된다. 사탄이 당신에게, 『너는 땅에 있다.』고 말할 때에 당신도, 『나는 땅에 있다.』고 호응한다면 당신은 실패한 것이다. 사탄은 당신의 실패를 이용하여 당신을 괴롭히려고 계획하고 있고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이 참으로 땅에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시고 나도 하늘에 있다.』고 굳게 서서 말하고 당신의 하늘의 위치를 계속 붙잡는다면 이기게 된다. 그러므로 위치에 서 있는 것이 큰 문제이다.

 

권세의 기도는 하늘 위의 위치에 근거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기 때문에 권위의 기도를 가질 수 있다.

3

권위의 기도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바로 마가복음 11장의 기도이다. 진리를 더 분명하게 보기 위하여 23절과 24절을 자세히 보기로 하자.

 

24절의 시작은, 「그러므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는 위 문장과 아래 문장을 연결하는 용어이므로 24절이 23절과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24절이 기도에 관한 것을 말했으므로 23절도 기도에 관한 것을 말한 것이다. 기묘한 것은 여기의 기도는 일반적인 기도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에게, 『하나님이여, 이 산을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게 하소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무어라고 말했는가?

 

여기서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우리 머리 속에 항상 생각하는 기도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항상 기도란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이 산을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게 하소서.』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다른 방면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하여 말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얼굴을 산을 향하여 산을 맞대고 말하라고 했다. 하나님에게 말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직접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고 말하라시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이것을 기도로 여기지 않을까 하여 24절에서 이것도 기도임을 설명하셨다.

 

여기에 하나님에게 말하지 않는 기도이지만 여전히 기도인 기도가 있다.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고 하는 것도 기도이다. 이것이 바로 권위의 기도이다. 권위의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하시도록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와서 어려움을 직접 다루거나 제해 버려야 할 일들을 다루는 것이다. 이런 기도는 모든 이기는 자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기도이다. 모든 이기는 자는 반드시 어떻게 산에게 말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우리에게는 성질, 더러운 생각, 몸의 질병이나 통증 등과 같은 많은 약함이 있다. 당신이 이런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말한다면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와서 산에게 말하듯 말한다면 그것들은 즉시 도망가 버린다. 여기의 「산」은 무슨 뜻인가?

 

산은 곧 당신 앞을 가로막고 있는 어려움이요 산은 곧 당신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당신을 저지하는 것들이다. 만일 당신이 산을 만났다면 당신은 이 산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생명과 일에 산이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이 산을 제해 달라고 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가 가서 산에게 말하라. 네가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고 말하면 된다.』

 

산이 들리우도록 하나님께 구하는 것과 산에게 명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하나님 앞에 나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그분께 구하는 것과 당신 자신이 직접 산더러 들리우라고 명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우리는 항상 이 명하는 기도를 소홀히 여긴다.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직접 어려움에게, 『내 주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게서 떠나가라』, 『네가 내 몸에 머무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권위의 기도는 당신이 당신을 저지하는 것들에 대하여 『내게서 떠나라.』고 말하는 것이고, 당신의 성질에 대하여 『내게서 떠나라.』고 말하는 것이며, 당신의 질병에 대하여 『내게서 떠나라. 주의 부활의 생명을 힘입어 나는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권위의 기도이다.

 

어떻게 하여 교회에 권위의 기도가 있을 수 있는가? 이는 교회가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속에서 의심하지 않으며 하는 일이 완전히 하나님의 뜻과 일치됨을 분명히 앎으로써이다. 언제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 우리에게는 믿음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의심한다면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하여도 의심하게 된다. 이 일에 대한 이행을 의심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많은 때 우리가 산더러 함부로 말하는 것이 효력을 발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직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조금도 의심치 않으며 담대히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고 말한다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를 명령을 내리는 사람으로 삼으셨고,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명하신 것을 명하고 하나님이 이미 분부하신 것을 분부한다. 이것이 바로 권위의 기도이다.

 

권위의 기도는 직접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하여 직접 어려움을 처리하는 것이다. 산은 우리 각 사람에게 다 있다. 단지 크기가 같지 않을 따름이다. 이런 것이나 저런 것이나 아뭏든 영적인 길에서 당신을 가로막는 그것들을 당신에게서 떠나도록 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권위의 기도이다.

 

권위의 기도는 이기는 자가 되는 것과 관계된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이것을 모른다면 이기는 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보좌에 앉으신 분은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이시고 보좌 밑에 복종한 자는 대적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직 기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가동되게 할 수 있다. 기도 외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동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도는 필수적인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참된 이기는 자가 될 수 없다. 권위의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이기는 자의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보좌 위의 권위를 가져오는 데 있다. 오늘 오직 한 보좌-하나님의 보좌-만이 다스리는 곳이요 모든 것을 초월한다. 그 권위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는 필수적인 것이다.

 

보좌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승천과, 만물이 그분의 발 아래 복종된 것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보좌의 권위로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 우리 모든 사람은 반드시 이 권위의 기도를 배워야 한다.

 

4

 

실행면에 있어서 권위의 기도는 대체 어떠한 것인가? 여기서 작은 일들을 말하겠다. 가령 어느 형제가 잘못된 일을 하므로 가서 그를 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자. 그러나 한가지 문제는 그가 당신의 말을 듣지 않을까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권하러 갈 때에 그가 받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어려움이 있다고 느끼고 이 일이 쉽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여기서 만일 당신에게 권위의 기도가 있다면 당신은 그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 당신은, 『주여, 나는 그 사람에게 갈 수 없읍니다. 그로 내게 오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다. 당신은 보좌에 가서 그를 오도록 조절할 수 있다. 얼마 되지 않아서 그가 당신에게 와서, 『형제님, 어떤 일에 대하여 제가 분명하지 않은데 제게 좀 알려 주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이러므로 당신은 매우 편리하게 그를 권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권위의 기도이다. 당신의 힘을 빌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보좌를 거쳐서 하는 것이다. 권위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강제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당신이 아는 것을 하나님께 통지할 때 하나님이 그것을 행하시는 것이다.

 

권위의 기도는 사람을 다스릴 뿐 아니라 시간을 다스릴 수 있다. 뮬러에게는 이런 기도의 체험이 있었다. 그는 퀴백(Quebec)시로 항해하는 도중에 큰 안개를 만났을 때 선장에게, 『선장님, 토요일 오후까지 저는 꼭 퀴백(Quebec)에 도착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선장은,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뮬러는 『만일 당신의 배가 나를 제 시간에 도착하게 할 수 없다면 하나님에게 다른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후에 그는 무릎을 꿇고 아주 간단한 기도를 했다. 그는 선장에게, 『선장님, 문을 열어 보십시오. 안개가 다 사라진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선장이 일어나보니 정말 안개가 다 사라져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 뮬러는 약속대로 퀴백(Quebec)에 도착하게 되었다 (「사막의 단샘」 8월 17일). 이것이 권위의 기도이다.

 

만약 하나님이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을 얻으신다면 반드시 기도의 싸움이 있게 된다. 우리 자신이 어떤 일에 부딪칠 때 사탄과 씨름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 주위에 무슨 일이 발생할 때에도 우리는 보좌로 말미암아 다스려야 한다. 사람은 한면으로 이기는 자가 되면서 기도의 전사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이기는 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권위의 기도를 배워야 한다.

 

교회는 권위의 기도로 음부를 다스릴 수 있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에 교회는 악의 영들과 사탄에 속한 모든 것들을 다스릴 수 있다. 만약 교회에게 악의 영들을 다스릴 권위가 없다면, 주님께서 이 권위를 교회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교회는 이 땅에 생존하기 어렵다. 교회가 이 땅에 생존할 수 있는 것은 교회에 사탄에 속한 모든 것을 다스릴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영적인 사람은 우리가 권위의 기도로 악의 영들을 처리할 수 있음을 안다.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또한 기도로 어두움 속에 있는 악의 영들의 활동을 통제할 수 있다. 사탄은 궤계가 많은 자이다. 그는 현저하게 악령을 사람 몸에 붙게 할 뿐 아니라 어둠 속에서 많은 활동을 한다. 때때로 그는 사람의 생각 속에 역사하여 그의 미혹과 놀림으로 의심과 두려움과 불신과 낙심을 주거나 없는 것을 있게 만들거나 흑백을 바꾸어 놓는 것 등 나쁜 이념을 사람의 생각 속에 주입시킨다. 때로 그는 누가 한 말을 훔쳐서 어떤 사상으로 만들고 나쁜 말을 하여 이간시키고 풍랑을 일으키는 궤계를 다른 사람의 머리 속에 집어넣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로 악령의 각 방면의 활동을 제어해야 한다. 우리는 집회하거나 기도하거나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먼저, 『주여, 모든 악령들을 쫓아내 주시고 그가 여기서 어떠한 활동도 하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다. 모든 악령들이 교회의 발 아래 복종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교회가 권위를 사용하여 기도한다면 악한 영들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된다.

 

이런 권위의 기도는 일반적인 기도와같이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권위로 분부하는 것이다. 권위의 기도는 명령의 기도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주여, 저는 원합니다.』, 『주여, 저는 원치 않습니다.』, 『주여, 거절합니다.』, 『주여, 오직 당신의 뜻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족합니다. 다른 것은 다 원치 않습니다.』 당신은 이 권위를 사용할 때 이 기도가 상대방에게까지 통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만약 교회 안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도를 배운다면 교회 안의 많은 일들이 쉽게 처리된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로 말미암아 다스리고 교회의 일을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이미 승천하신 것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천하신 것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움직이게 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만물의 머리이시고 만물은 그분 아래 복종되어 있으며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여 만물의 머리가 되신다. 그분이 만물의 머리가 되신 것은 바로 교회를 위해서이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만물의 머리가 되셨기 때문에 만물도 교회 아래 복종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특별히 주의할 일이다.

 

5

 

권위의 기도는 두 방면으로 나뉜다. 한 방면은 매는 것이고, 다른 방면은 푸는 것이다. 땅에서 맨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푼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땅이 어떠하면 하늘도 그러하다. 이것은 마태복음 18장 18절에서 말한 것이다.

 

이어서 19절이 기도를 말했기 때문에 푸는 것도 기도로 말미암아 푸는 것이고 매는 것도 기도로 말미암아 매는 것이다. 푸는 기도와 매는 기도는 다 권위의 기도이다. 일반적인 간구의 기도는 하나님께 매고 풀기를 구하는 것이고, 권위의 기도는 우리가 권위를 사용하여 매고 푸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매고 푸시는 이유는 교회가 먼저 매고 풀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권위를 교회에게 주셨기 때문에 교회가 이 권위를 사용하여 말할 때에 하나님은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

 

매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먼저 말하겠다. 맬 필요가 있는 사람과 일들이 많다. 어느 형제가 말이 많다 하자. 이 사람은 매여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당신은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이여, 이 형제로 하여금 말을 많이 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그가 이렇게 하지 않도록 그를 매어 주소서.』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이렇게 그를 맴으로 하나님도 하늘에서 그를 매어 그로 말을 많이 하지 않게 하신다.

 

혹 어떤 사람은 당신의 기도나 성경 읽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그 사람이 때로는 당신의 아들이고, 때로는 당신의 남편이고, 때로는 당신의 자녀이며, 때로는 당신의 친구이다. 항상 당신을 방해하는 이런 사람에 대하여 당신은 권위를 사용하여 권위의 기도를 할 수 있다. 하나님께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여, 그들이 나를 방해하지 않도록 그들을 묶어 주소서.』 어떤 형제는 집회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합당치 않은 성경을 인용하거나 합당치 않은 찬송을 고른다. 이런 사람도 묶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라. 『주여, 누구 누구가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로 하여금 다시는 이렇게 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이 이렇게 맬 때에 하나님이 그를 매시는 것을 필히 보게 될 것이다. 때때로 집회에서 집회의 고요함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이나 우는 것이나 들어왔다 나갔다 함으로 집회를 방해한다. 이것은 집회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방해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 몇 명의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 이런 일을 마땅히 매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라. 『하나님, 우리는 집회 때마다 그가 방해하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가 방해하지 않도록 그를 묶으소서.』

 

당신은 땅에서 두세 사람이 무엇을 매면 하늘에서도 맬 것임을 보아야 한다. 많은 방해를 매어야 할 뿐 아니라 귀신의 많은 역사도 맬 필요가 있다. 복음을 전하고 간증할 때마다 마귀는 사람의 머리 속에 역사하여 듣는 사람에게 많은 말을 하고 있어서는 안 될 사상을 준다. 여기서 교회는 악의 영들이 말하지 않고 역사하지 못하도록 그것들을 묶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라. 『주여, 모든 악의 영들의 역사를 묶어 주소서.』 당신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맬 것이다. 많은 일들이 다 매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것이나 교회적인 것이나 생활에서나 일에서 매어야 할 일들이 많다.

 

다른 방면의 기도는 바로 푸는 기도이다. 무엇을 푸는가? 예를 들어, 위축된 많은 형제들이 집회에서 계속 입을 열지 않고 간증하기를 두려워하고 사람을 만나기를 두려워한다 하자. 이러한 형제에 대하여 우리는 그의 몸의 묶임이 풀어지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때로는 그에게 몇 마디 권해야 하겠지만, 많은 경우 우리가 가서 말할 것 없이 다만 보좌를 통과하여 그로 보좌의 지배를 받게 할 수 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를 위해 나와서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떤이는 직업에 매이고, 어떤이는 사무에 매이며, 어떤이는 가정에, 어떤이는 믿지 않는 아내에게 매이고, 어떤이는 밖의 환경에 매인다. 각종 매임이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가 나와서 주를 위하여 간증하도록 주님께 그를 풀어달라고 구할 수 있다. 형제 자매여, 당신은 권위의 기도의 필요성을 보았는가? 권위의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지 아는가?

 

돈 또한 우리의 기도로 풀어야 할 것이다. 사탄이 사람의 주머니를 꽉 쥐고 있기가 매우 쉽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돈의 제한을 받지 않도록 하나님께 돈을 푸시기를 구할 수 있다. 우리는 각종 일에서 풀어 달라고 그분께 구해야 한다. 진리도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주님께, 『주여, 당신의 진리를 해방하소서.』라고 말해야 한다.

매임을 받아 전파할 수 없는 진리들이 많다. 어떤 진리는 듣는 사람 조차도 없다. 그런 진리는 사람들이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가 통행되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받아들여지도록 하나님께 그분의 진리를 해방하시기를 구해야 한다. 많은 지방에 진리가 들어갈 수 없고 진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인 바 된 많은 교회들이 풀어지고 진리를 받지 못하는 지방들이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하나님께 진리를 해방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우리는 많은 지방에 어떻게 진리가 들어가게 할지 모르지만 주님에게는 길이 있으시다. 우리가 권위를 사용하여 기도할 때 주님은 진리를 풀어 나아가게 하신다. 우리는 권위로 기도함으로 풀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매는 기도와 푸는 기도를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반드시 매어야 할 것들과 풀어야 할 것들이 많다. 여기서 우리는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사용하여 매고 푸는 것이다. 우리 각 사람이 권위를 사용하여 기도하기를 배우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원한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배워야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풀고 매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는 모든 일들을 묶어야 한다.

 

권위의 기도는 곧 하늘이 땅에서 다스리는 것이요 땅에서 하늘의 권위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 모든이는 다 하늘의 사람이므로 우리에게 하늘의 권위가 있다. 단지 오늘 우리가 땅에 기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받은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다 주님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흑암의 권세로부터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사람들이므로 우리에게 하늘의 권위가 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늘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늘로 말미암아 땅의 일들을 다스릴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권세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타내는 이기는 자가 되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원하고 우리가 주를 위한 기도의 전사가 되기를 바란다.

 

6

 

마지막으로, 엄중한 경고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의 권위 아래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 아래 복종하지 않는다면 권위의 기도를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위치적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해야 할 뿐 아니라 생활과 실행적인 면에서도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권위의 기도를 가질 수 없다.

 

전에 어느 젊은 형제가 한 젊은 자매의 몸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다. 귀신은 그 여자로 옷을 벗게 했다. 그 젊은 형제는 권위를 사용하여 귀신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명하노니 옷을 벗지 말라.』고 분부했다. 그 귀신은, 『네가 옷 벗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 벗지 않겠다.』고 말했다. 만일 그 형제가 배후의 생활을 실패했다면 귀신 앞에서 실패했을 것이고 귀신은 그의 분부를 듣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죄를 드러냈을 것이다.

 

형제 자매여, 우리가 아는 바와같이 피조물은 본래 사람의 다스림 아래 있었다. 오늘날 왜 피조물이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가?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사자가 왜 하나님의 사람을 물었는가?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왕상 13:20-25). 다니엘은 왜 사자굴에서 사자에게 해를 입지 않았는가? 이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무죄했고 왕 앞에서도 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신 것이다(단 6:22). 독사가 하나님의 충실한 종 바울의 손을 물었어도 바울은 상하지 않았지만(행 28:3-6), 충이 교만한 헤롯을 먹어 죽일 수 있었다(행 12:23). 형제 자매여,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복종한다면 귀신들이 당신을 두려워할 것이고 당신의 권위 아래 복종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서는 또한 우리에게 기도와 금식과 권위의 관계를 보여 준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원함이고, 금식은 우리의 자아를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첫번째 권리는 음식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것은 바로 음식이다. 그러므로 금식은 첫번째로 합법적인 권리를 버리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금식만 하고 자아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금식은 금식이라고 말할 수 없다. 바리새인은 금식하면서 늑탈했다. 그들이 참으로 금식했다면 늑탈한 것을 사람에게 보상해야 할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원함이고, 금식은 자아를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원하고 자아를 버린다면, 하나님을 원하는 것과 자아를 버리는 것을 연합하고 섞는다면 즉시 믿음이 있게 된다. 믿음이 있을 때 귀신을 쫓아낼 권위를 갖게 된다. 형제 자매여,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원하지만 자아를 버리지 않는다면 믿음이 없게 되고 권위도 없게 된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원하고 또 자아를 버린다면 즉시 믿음과 권위가 있게 되고, 즉시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있으며 권위의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형제 자매여, 권위의 기도가 가장 중요한 기도요, 가장 영적인 기도이다.

 


워치만 니
[교회의 기도 사역, "권위의 기도",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