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집회들과 이주와 전시간 사역자들
가정집회들
나는 참으로 모든 교회들이 작은 가정집회들을 실행하기 바란다. 이것은 온 교회가 전체적으로 모이는 주일 오전 대집회를 폐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우리에게 여전히 그런 집회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우리는 한두 명의 은사 있는 지체가 말씀을 전하고 다른 성도들은 조금 교통만 하는 옛 길 안에서 실행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다른 길, 곧 상호적으로 말하는 길을 실행하라.
장로들은 그들 지방의 각양의 상황에 따라 책임을 짊어져야 하지만, 원칙은 한두 명의 연사가 있고 나머지는 청중이 되는 전통적인 길을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상당 기간 실행해 왔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그분이 발명하고 정하신 그분 자신의 길을 역사해 나가실 자유를 얻으시도록 그분께 기회를 드려야 한다고 느낀다. 하나님의 길은 그분의 자녀들이 주님의 이름 안으로 모여 상호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성도들로 하여금 집회들 안에서 주님을 위해 말하는 법을 배울 충분한 기회를 얻게 하라. 이것을 위해 장로들 편에서 많이 수고할 필요가 있다. 장로들은 그러한 대집회에서 무엇을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 숙고하는 한편 말함에 있어서 상호성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모든 성도들이 새 길을 인식하며 신성한 말함에 상호적으로 참여하도록 돕기 위해 많이 수고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은 이 길을 실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취하기를 기다리지 말라. 만일 여러분이 처음에 그것을 잘할 수 없다면, 두 번, 세 번, 네 번까지 시도해 보라. 우리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빌립보서 4장 13절을 인용할 수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나는 1932년 이래로 교회 생활을 실행해 왔다. 내가 관찰하고 체험한 모든 것에 따르면, 집회하는 최상의 길은 모일 때 상호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발명하시고, 창조하시고, 정하신 길이다. 우리에게는 이 길을 취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소그룹 집회들에 관한 진리는 주로 집집마다 집회를 가진 사도행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2:46, 5:42, 20:20). 「집집마다」는 각각의 모든 집을 가리킨다. 나는 대북 교회에게 이 길을 실행하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수식어구 「집집마다」에 따라 이 길을 절대적으로 실행하지 않았다. 그들이 행한 것은 몇몇 가족을 한 집에 모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규정은 열 명을 넘지 않고, 열 두 명이 될 때 두 개의 가정집회로 나누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주님에 신실하여 계속하여 그분이 발명하시고 정하신 길을 갈 때, 결국 우리 모두가 무언가를 배우게 되리라고 믿는다. 심지어 새로운 회심자들도 거듭난 후 즉시 그들의 가정에서 집회를 갖기 시작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바로 그들의 가정에서 그들의 배우자와 자녀들과 함께 한 주에 한 번 집회를 갖기 시작한다면 이것은 큰 전진이 될 것이다.
장로들은 가정집회들을 규제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성도들에게 가정집회에 모여서 복음을 전파하거나 보다 깊은 진리를 추구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유로이 집회할 수 있다. 이번 주에 그들은 복음을 말하도록 하는 주님의 인도를 느낄지 모르며, 그렇게 하여 두세 명이 구원받을 수도 있다. 다음 주에 그들은 온 집회를 기도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 장로들이 가정집회들을 간섭하거나 규제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고 유익하지 않다. 장로들이 이번 주는 복음 주간이므로 모든 가정집회들이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고 결정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장로들은 어디에서 가정집회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결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들의 가정에서 가정집회를 갖게 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가정집회를 「등록시키기」 위해 장로들에게 갈 필요가 없다.
어떤 장로들은 성도들이 장로들의 허락 없이는 그들의 가정에 집회를 세울 권리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한 통제는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그들이 분열을 야기하는 모임을 갖기 시작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살아 계신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그분은 살아 계시며 교회를 돌보실 것이다. 때때로 우리의 통제가 어려움을 유발한다. 우리의 느낌에 교회 안에서 어려움을 일으키는 어떤 사람들은 사실상 어려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성도들이나 가정집회들을 통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우리 지방에서 가정집회들을 시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신약에 따르면, 우리 믿는이들은 한 번에 영구히 정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생계를 꾸려 나갈 필요가 있으며 또한 집도 필요하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안락한 집 갖는 것을 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때든지 주님이 우리를 다른 어떤 곳으로 이주시키실 필요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들이다(벧전 2:11上). 주님은 우리가 어느 곳에 일 년 혹은 십 년 동안 머물기를 원하실 수도 있다. 오직 주님만이 아신다. 다른 한편으로 주님은 우리를 또 다른 나라나 도시 혹은 주(州)로 가도록 인도하실지 모른다.
나는 특히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카운티 지역에 사는 몇몇 형제들이 주님의 필요가 있는 곳으로 이사할 부담을 붙잡아야 한다고 느낀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많은 해 동안 이 사역과 교회 생활의 실행 아래 있어 왔다. 여러분은 자신들이 아는 것이 많지 않고 가진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믿기로, 여러분이 또 다른 곳으로 가야 할 부담을 주님으로부터 받을 때, 비교적으로 말해서 여러분은 사실상 자신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어떤 곳들은 교회 생활 안에서 많은 해 동안 어떤 체험을 해 온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오렌지 카운티에서 팔 년 남짓 우리와 함께 사역 아래 있어 온 성도들은 무의식중에 그리고 부지중에 그들 안에 무언가를 축적해 왔다. 만일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 성도 중 몇몇이 그들의 체험을 필요로 하는 환경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들은 매우 유용할 것이다.
장로들은 자주 이주에 관하여 성도들과 교통해야 한다. 우리는 결코 성도들에게 어느 곳으로 가라고 명해서는 안 되지만 그들로 하여금 필요를 알게 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다. 이러한 교통을 통하여 주님이 몇몇 사람을 부담을 갖도록 인도하실 때, 그들은 갈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곳으로 갈 때 자신들이 주님께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어떤 형제가 나에게 그의 건강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내 생각으로는 그의 신체적인 문제를 위해 가장 좋은 환경은 아리조나(Arizona)의 플래그스태프(Flagstaff)라고 그에게 말해 주었다. 이 형제는 그곳으로 이사한 다음에 주님께 매우 유용하게 되었다. 오렌지 카운티에 사는 성도들 가운데 많은 수가 오 년 내지 팔 년 동안 우리와 함께 있어 왔다. 그들은 정규 교회 집회들과 사역 집회들에 신실하게 참석하고 있으며, 이런 집회들로부터 그들은 생명과 진리에 속한 견고한 무언가를 붙잡아 왔다. 무언가가 그들 안으로 분배되어 왔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곳에 머문다면, 그들은 주님께 많이 쓰임받지 못할 수도 있다. 만일 그들이 새로운 곳으로 간다면, 그들은 매우 유용해질 것이다.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 캠퍼스에는 함께 모이는 중국인 그리스도인 그룹이 있다. 이런 중국인 그룹들의 인도자들 대부분이 대만에서 우리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 가운데서 「비교적 약한 사람들」로 여겨졌지만, 그들이 밖으로 나갔을 때 이런 그룹들의 인도자가 되었다. 이것은 교회 집회들에 참석하는 것이 참으로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 모두는 많은 성도들이 주의 회복의 확장을 위한 부담을 갖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다.
주의 회복은 보다 많은 전시간 사역자들을 필요로 한다. 미국에서 수년 동안 우리는 이것을 장려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형제들이 주님에 의해 전시간의 길을 가도록 일으켜졌다. 그러나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전시간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나의 관찰에 따르면, 장로들인 여러분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전시간으로 나와야 한다. 주님은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알고 계신다. 다만 전시간으로 나오라는 주님의 말씀하심과 인도하심에 신실하라.
내가 1984년 10월에 대만에 갔을 때에는 전시간자들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대북에만도 최소한 백 명의 전시간 사역자들이 있다. 최근에 그들은 날마다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복음을 말하기 위해 도시에 간다. 또한 소그룹 모임의 몇몇 개인들이 대부분 저녁에 그들과 합류한다. 삼 주 내에 방학중인 대학생들의 도움으로 이 전시간 사역 자들은 천 백 네 명의 사람들을 인도하였으며, 이 사람들 모두가 침례받았다.
시간이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우리 몸은 전적으로 시간 안에 있다. 로마서 12장 1절은 우리에게 우리 몸을 드리라고 말한다. 사실상 이것은 우리의 시간을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당신이 시간을 드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당신의 몸이 드려질 수 있겠는가? 당신은 당신의 몸을 드리겠다고 말하면서 당신의 시간을 보류할 수가 있다. 그러나 당신의 몸은 당신의 시간과 함께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는 바에 따르면, 예비된 아주 많은 성도들이 전시간으로 나올 필요가 있다.
전시간자들에 관하여 우리가 주의해야 할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전시간으로 나올 때 생계를 어떻게 꾸려 나가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에 관하여 아주 이상한 것은, 바울의 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어떠한 해답도 주지 않는다. 바울은 지극히 큰 사도였다(고전 15:10, 고후 12:11). 그는 최고의 사역을 했으며, 그가 그의 사역으로부터 누린 그 결과와 축복은 모두 최고의 것이었다. 그는 모든 교회들에 의해 높이 인정되고 존중을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자신은 물론 그의 동역자들을 먹이기 위해 장막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행 18:3, 20:34-35).
틀림없이 바울은 우리 모든 사람보다 훨씬 더 지혜로웠을 것이다. 왜 그가 그의 현명한 생각을 사용하여 그의 사역 아래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그들의 수입의 일정량을 그에게 기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만일 그가 이렇게 했다면 그는 풍족했을 것이다. 그는 장막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 가운데서 전시간의 길을 취하는 사람들 또는 전시간의 길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여기서 무언가를 보아야 한다. 바울은 결코 그러한 방법을 쓰지 않았다. 당신은 당신이 전시간으로 나올 경우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의아해할지 모른다. 나의 대답은 「다만 살라」는 것이다. 당신의 필요에 대해 아무에게든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다만 살라. 만일 살 수 없거든 다시 직장을 잡으라.
모든 종파들은 그들의 사역자들을 돌보기 위한 자금을 모으는 방식에 관하여 그들의 규례들을 갖고 있다. 중국 내지 선교회는 그들의 사역자들에게 고정적으로 공급하는 제도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그들의 생계에 대해 주님을 신뢰한다. 그러나 그들의 신뢰는 개인적이 아니고 단체적이다. 모든 연보는 중국 내지 선교회 본부의 중앙 사무실로 모아진다. 이 기부금들은 모든 선교사들에게 비율에 따라 배분될 것이다. 선교사 각자가 두려워하며 떨어야 했다. 중국 내륙에 사는 어떤 선교사는 중앙 사무실로 돈이 얼마나 들어 가는지를 알지 못했다. 만일 연보가 거의 오지 않는다면, 이 선교사가 많이 염려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 내지회 선교사들은 모두 그들의 생계를 위해 주님을 신뢰하면서 주님께 기도했다. 다른 종파들의 모든 선교사들은 중국 내지 선교회와 달랐다. 그들의 선교사들은 그들의 생계의 필요를 돌보도록 일정한 급여가 약속되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실행은 중국 내지 선교회의 실행과 정확히 같지는 않다. 니 형제님은 우리 가운데서 전시간의 길을 취한 첫번째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사람, 어떤 교회로부터도 그를 후원하겠다는 어떤 약속이 없이 다만 살았다. 그는 믿음으로 살았으며, 심지어 그의 부모에게 그를 돌보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 가운데서 그를 뒤따라 전시간으로 나온 사람들은 그의 본을 따랐다. 나는 이 길을 취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간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결코 교회가 우리에게 일정한 월급을 주도록 안배하지 않았다. 나는 1933년에 전시간자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1946년에 상해에 갔을 때에야 비로소 상해 교회가 전시간 사역자들에게 매월 일정한 금액을 주었다. 1946년 이전에는 어떤 교회로부터도, 심지어 내가 직접 돌보고 있었던 치푸 교회로부터도 전혀 규칙적인 공급을 받은 적이 없다.
나는 내가 치푸에 머물렀던 오 년 동안 그 교회로부터 어떤 물질적인 공급을 받은 기억이 없다. 여러분은 내가 그 오 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나는 다만 살았다. 때로 나는 빈곤하게 살았다. 때때로 나의 가족이 생활에서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결코 교회에게 요구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내가 그곳에서 전시간으로 사역하고 있으므로 나에게 생계가 필요하다는 말을 교회에게 하지 않았다. 만일 전시간 사역자들인 우리에게 무언가가 부족하다면,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우리의 빈곤함을 말씀드릴 수 있다. 이럼으로써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생계를 돌보시는 것에 관해 얼마간의 기적들을 확실하게 보고 체험할 것이다.
한번은 내가 사역 안의 인도자인 니 형제님에 의해 지명되어 치푸로부터 옛 수도인 북경에서 가까운 북중국의 큰 항구 도시로 나의 가족을 이주시키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생활비가 매우 많이 들었다. 내가 그곳으로 이사했을 때, 교회는 전혀 나를 지원하지 않았다. 나를 지명한 그 사역은 나의 공급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다. 그것이 우리의 실행이었다. 그 사역은 여러분에게 사역하도록 할당했을 뿐이다. 그들은 결코 여러분의 필요를 돌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길이었다.
내가 혼자서 먼저 그곳에 이사하여 그 큰 도시의 상황을 보았을 때, 먼 길을 다니고 다른이들을 방문하려면 자전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호주머니에는 아내와 세 자녀를 포함한 내 가족을 이사시키기 위해 간직해둔 사십 달러 정도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자전거가 몹시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기도했다. 나는 내 필요를 채우기 위해 주님께 무릎을 꿇고 구했던 곳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나는 주님이 속에서부터, 비록 나에게 아내와 세 자녀를 함께 살도록 데려오기에 족한 사십 달러 남짓의 금액밖에 없지만, 가서 자전거를 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 매우 분명했다. 나중에 어떤 형제가 나와 함께 또 다른 형제를 방문했다. 그 형제를 방문한 후에 우리 두 형제는 가게에 갔다. 우리는 그 가게에서 나오면서 새 자전거가 거기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함께 있는 그 형제에게 이것이 내가 사고 싶어하는 자전거 유형이라고 말했다. 곧바로 자전거 임자가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그에게 그러한 자전거를 어디서 살 수 있으며 값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그 장소와 가격을 말해 주었다. 우리 형제들이 그 가게에 갔을 때, 팔기 위한 그러한 자전거들이 늘어져 있었다. 판매원은 나에게 세금과 면허를 포함하여 값이 삼십 이 달러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삼십 이 달러를 지불하고 자전거를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 돌아온 후에 나는 그 큰 도시에서 내게 매우 유용한 자전거를 갖게 되어 기뻤다. 나는 위층의 내가 이전에 무릎 꿇고 기도하던 바로 그곳에 가서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동안 그분은 나에게 자전거를 사라고 말씀하신 이래로 내가 그 값을 치른 때까지 내가 받은 돈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 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자전거를 위해 기도한 것은 어떤 형제가 나를 만나러 왔던 토요일이었다. 우리는 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가 떠나면서 내게 줄 편지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그것은 편지가 아니고 십 달러가 들어있는 봉투였다. 그 다음 날인 주일에 나는 연보궤로부터 내게 공급하는 이 달러를 받았다. 바로 그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에 나는 다른 도시에서부터 온 어떤 등기 우편을 받았다. 이 우편물에는 이십 달러의 우편환이 들어있었다.
나는 한 형제와 함께 그 날 우체국에 가서 그 우편환을 현금으로 바꾸었다. 우리가 자전거를 보고 구입한 날도 월요일이었다. 나는 주님으로부터 선물들로 받은 돈은 계산하지 않았었다. 내가 십 달러와 이 달러와 이십 달러를 더해보았을 때, 주님이 정확하게 자전거 값인 삼십 이 달러를 나에게 공급하셨음을 깨닫고 주님 앞에서 울었다. 그분은 얼마나 신실하셨는지! 이것은 주님이 나의 실제적인 필요들을 돌보신 많은 길들 가운데 한 실례이다. 주님은 주권적으로 안배하셔서 나로 하여금 그 자전거를 보게 하시고, 그것에 대한 정확한 금액을 나에게 공급하셨다. 주님은 참으로 기이하신 분이다! 이것은 내가 생계를 위해 주님을 신뢰하는 것에 관한 내 체험들 중 하나이다.
나는 가족과 함께 1936년 말까지 일 년 동안 그 큰 도시에서 살았다. 그 해 말에 나는 니 형제님으로부터 동역자들 회의에 그와 합류해 주기를 청하는 전보를 받았다. 나는 이 회의에 갔었고, 그 후로 아주 많은 도시들을 방문했다. 나는 1월과 2월 내내 여행을 하느라 삼월 어느 때까지는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많은 돈을 갖고 있지 않은 내 가족을 두고 떠났다. 그 때 나에게는 네 자녀가 있었다. 내가 떠나고 없었던 어느 날, 내 아내는 그 다음 날 그들에게 먹고 살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아내는 사람들과 자주 접촉하는 성향의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함께 기도할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다만 그 때 가장 나이 든 일곱 살 가량의 아이와 다섯 살 된 그의 누이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그들은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주여, 우리는 이런 상황에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내일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는 것을 아십니다.』라고 기도했다. 그 때는 겨울이었다.
그 날 저녁에 눈이 몹시 내렸다. 밤 열시쯤에 한 나이 든 자매가 차를 타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 와서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들어와서 내 아내에게, 가서 내 아내를 만나라고 무언가가 그녀를 괴롭혔다고 말했다. 그리고서 그녀는, 『주님이 내게 이것을 가지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하면서 내 아내에게 그녀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많은 돈을 주었다. 이 나이 든 자매는 나와 전혀 접촉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녀는 교회 집회들에 나왔을 뿐이었다. 또한 그녀는 그 때까지 내 아내와 어떤 대화도 나눈 적이 없었고, 우리 집으로 우리를 방문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 늦은 밤에 눈이 몹시 내리는데 그녀가 급히 온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 아닌가? 그것이 우리가 주님을 위해 전시간으로 나와 통과한 길이었다.
결론적으로, 전시간의 길을 취하는 우리에게는 교회더러 무언가를 달라고 청할 권리가 없다. 교회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줄 것인가 주지 않을 것인가는 교회에게 달려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다른이들에게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라고 요청하거나 요구할 권리가 없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의 권리 즉 빈곤을 겪으면서 주님을 신뢰하는 권리밖에는 없다.
나는 일본 군대가 중국을 침략했던 기간에 이 년 반 동안 폐결핵을 앓았다. 중국은 그 해 1943년에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었다. 전쟁은 계속되어 이미 육 년을 넘어서고 있었고, 중국의 경제 사정은 참으로 가련했다. 나는 심하게 병들어 있었고, 많은 좋은 간호가 필요했다. 내 아내와 아이들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그 당시에 돼지 먹이로 알맞은 그러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북중국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가끔 이런 종류의 음식을 먹었다. 내 가족도 이따금 공급의 부족으로 인하여 그런 종류의 돼지 먹이를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북중국에서는 요리를 하기 위해 화로에 태울 석탄이 필요했다. 내 아내는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바닷가에 가서 파도에 의해 해변에 떠밀려오는 것들을 주워 모았다. 파도는 연료로 쓰기에 좋은 많은 것들을 날라다 주었다. 한 자매가 그 사실을 알고서 내 아내에게,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만 하는 일이니까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전시간을 들여서 주님을 섬기기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었다. 우리는 오직 주님께만 우리의 필요를 말할 권리가 있으며 또한 우리의 빈곤을 말할 권리가 있다.
내가 상해에서 대만으로 보내어졌을 때, 상해 교회는 내게 일 달러도 주지 않았다. 니 형제님이 개인적으로 내게 삼천 달러쯤 주었는데, 그것이 내가 대만으로 갈 때 가지고 있던 돈의 전부였다. 나는 대만으로 갈 때 아내와 여덟 자녀와 가정부 둘을 데리고 갔다. 그 중 나이 든 가정부는 삼대째 내 가족을 위해 일해 왔었다. 그녀가 과부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를 남겨 두고 가기가 어려웠다. 보다 젊은 자매인 두번째 가정부는 남경에서 몇 년 동안 내 가족을 위해 일했었다. 그녀는 이혼한 젊은 여성이었다. 우리가 상해를 떠나려 할 때, 그녀는 소리내어 울었다. 우리는 그녀를 주님께로 인도한 사람들이었다. 내 아내와 나는 우리가 대만에 갈 수 있는 한 그녀도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그 두 가정부를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함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곳에서 열 두 명이 살고 있었다. 내가 가진 삼천 달러는 우리가 석 달을 먹고 살기에 족할 뿐이었다.
이것이 내가 대만으로 가서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 가졌던 모든 것이었다. 나는 결코 어떤 동역자에게도 내게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결코 어느 교회에게도 내게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여러분 모두는 내가 성도들 가운데서 니 형제님 다음 가는 이인자로서 회복 안에서 높이 인정받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겠지만, 이것이 나의 재정 상태였다.
만일 여러분이 다른이들에게 여러분의 필요를 공급해 주기를 요구하거나 요청한다면, 이것은 완전히 수치일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수치이다. 만일 여러분이 전시간의 길을 갈 수 없다면, 직장으로 돌아가라. 한편으로 나는 여러분 가운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전시간의 길을 가기를 격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만일 여러분이 이 길을 간다면, 나는 여러분이 오직 주님께만 여러분의 필요와 여러분의 빈곤을 말할 권리를 갖게 된다는 것을 충고해 주고 싶다. 여러분이 이 길을 취할 수 없거든, 돌아가서 일상적인 직장일을 하라. 전시간의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은 아무에게도 우리를 공급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에 대해 분명해야 한다. 나는 이 나라에 와서 1964년에 로스앤젤리스 교회를 위해 매우 열심히 일했다. 그 해 내내 로스앤젤리스 교회가 내게 준 것은 아마 팔백 달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1965년에 내가 한 형제에게 내 소득세를 처리해 줄 것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1964년에 로스앤젤리스 교회가 내게 준 것이 팔백 달러가 못 된다고 말해 주었다.
한편으로는 이 길이 전시간자들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모든 교회들은 모든 성도들과 더불어 드림에 있어서 신실해야 한다. 이것들은 두 측면이다. 교회들은 필요를 돌보기 위해 주는 데 있어서 주의 깊어야 하고, 성실해야 하며, 신실해야 한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 권리가 있다고 말했는데(고전 9:14), 그것은 전통적인 길에 따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의 회복을 위해 여기에 있다. 비록 우리가 모든 것을 통용하는 실행을 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참으로 이 땅 위에서 그분의 유일한 목적을 위해 우리의 신실함을 실행한다.
나는 장로들이 이런 종류의 것들에 관하여 종종 성도들을 가르침으로써 그들이 주님의 움직이심에 대한 완전한 지식에 이르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대북 교회 성도들에게, 성도 이십 명 중 한 명의 전시간자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여러분의 교회에 백 명이 있다면 최소한 다섯 명의 전시간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식적이거나 율법적인 것이 아니다. 전시간자가 되는 사람은 나머지 열 아홉 명에게 그를 돌보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 일단 내가 이와 같은 어떤 일을 발견하면 나는 그 형제에게 직장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것이다.
당신에게 얼마가 필요한가를 후원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수치이다. 이것은 구걸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길을 취한다. 당신은 당신이 섬기는 분이 살아 계신 분임을 알기 때문에, 전시간자가 되는 이 길을 가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성도들은 드림에 있어서 신실해야 하며, 온 교회는 전시간자들의 필요를 돌보기 위해 힘써야 한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전시간자가 될 것을 격려한다. 그러나 일단 당신이 전시간자가 되면, 당신은 어떤 교회에게도 당신을 후원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 그것은 참으로 수치이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교회들은 모든 성도와 더불어 반드시 주님을 위해 보다 많은 돈을 버는 데 신실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살아 계시며 참되신 분임을 믿어야 한다. 어느 날 우리가 그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그분이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고후 5:10). 왕국 생활이라 일컫는 그러한 생활을 하자. 우리는 참으로 주님께 진지해야 한다.
만일 교회가 어떤 형제는 신실하지 않으므로 그를 돌보기를 원치 않는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그 형제도 전시간으로 나올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돌아가서 직장일을 해야 한다. 그는 다른이들로 하여금 그에 대해 소극적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길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너무 가련한 것이며, 사람 앞에서 수치이고, 심지어 천사들과 귀신들 앞에서도 수치이다.
우리는 영광스러워야 하며, 당당해야 한다. 나는 결코 구걸하지 않을 것이다. 구걸하는 것은 수치이다. 오십 삼 년이 넘도록 나는 결코 구걸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내 돈을 더할 나위 없이 썼다. 내가 줄 때는 만족할 만하게 주었다. 사람들은 내가 돈을 어디서 받았는지 의아해했지만 주님은 항상 나에게 공급하셨다. 내가 빈곤을 겪고 내 가족이 모두 극도로 빈곤을 겪은 것은 그분을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에 대해 기뻐한다. 이것이 우리의 길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성도들과 교회들은 그분의 최근 움직이심을 위해 그분께 드림에 있어서 극도로 신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장로훈련(Ⅴ) 주님의 최근의 움직이심에 관한 교통, "가정집회들과 이주와 전시간 사역자들",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