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김은 그리스도임
그리스도
Hannah , 2009-03-13 , 조회수 (3182) , 추천 (0) , 스크랩 (0)

 

 

이김은 그리스도임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눅 18:18-24).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10).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이김은 그리스도임

요 며칠 저녁 동안 우리는 이미 주 예수님이 어떻게 그분의 살을 사람에게 주어 먹게 하는가, 즉 어떻게 그분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어 우리의 생명으로 삼게 하는가를 보았다. 우리의 이김은 결코 그리스도가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힘을 더해 주고 능력을 더해 주어 우리로 이기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이김은 곧 그리스도의 이김이다. 이김은 곧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우리를 대신해 사시며 우리를 대신해 이기시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당신을 보는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보는가에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모두 좋은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자신의 성품이 좋으면 쉽게 이기고 좋지 않으면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천연적인 좋고 나쁨이 결코 관계가 없음을 어찌 알겠는가? 이러한 것들은 모두 당신과는 관계없는 일에 불과하다. 문제는 오직 그리스도께 있다. 성품이 좋든, 좋지 않든 동일하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승리는 당신의 천연적인 성품과 전혀 관계가 없다. 오직 당신에게 그리스도가 있는가 없는가를 물어야 하는데, 만일 그리스도가 있다면 당신은 능히 이길 수 있다.

이기는 길―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의지함

오늘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사시게 하며 안에서 우리를 대신해 이기시게 할 수 있는가를 보기로 하자. 누가복음 18장과 19장을 보자. 이 두 장의 성경을 연결해 보면 우리는 이기는 길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18장에는 한 부자가 있고, 19장 안에도 한 부자가 있다. 18장 안에도 한 관원이 있으며, 19장 안에도 한 관원이 있다. 18장의 관원은 청년이고, 19장의 관원은 나이 든 사람이다. 18장의 그 부자는 주님을 찾아왔고, 19장의 그 사람은 주님을 보러 왔다. 그들은 주님에 대하여 모두 관심이 있었다.

첫 번째 부자는 주님을 찾아와서 영생을 추구했으며, 구원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는 주님께 말하기를,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 18:18)라고 했다. 영생은 영원한 생명이요, 하나님의 생명이며, 곧 피조되지 않은 생명이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이것을 얻을 수 있는가? 주님은 그에게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20절)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그에게 그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것들을 그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22절)고 하셨다.

오늘 저녁에 돈 있는 사람은 이를 듣고 아마도 불안해할지 모른다.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참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상관하지 않지만 돈을 나눠 주는 것은 참으로 나의 목숨을 요구한다. 문제는 돈이 있는 사람이 마땅히 이렇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청년이 그가 마땅히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기 때문에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거짓 증거하지 말고 …”라고 하신 것이다. 주님은 결코 그로 하여금 이렇게 많은 것을 행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그가 계명을 지킬 수 없음을 보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로 하여금 영생을 얻는 조건이 이렇게 많고 높다는 것을 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얼마나 그것과 거리가 먼지를 보게 하려는 것이었다. 주님의 목적은 그의 약함을 빛 비춤으로 드러내어 그로 하여금 자기가 자신을 구원할 방법이 없음을 보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청년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그가 어려서부터 지켰다고 대답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에게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청년에게 부족한 것은 그의 재산을 나눠 주는 것이었다. 주님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각 사람에게는 모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아마도 당신은 당신이 가장 인내할 수 있고, 겸손하며, 사랑스럽고, 거룩하다고 생각하며 이 모든 것이 어려서부터 있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각 사람의 부족이 다 다르다. 아마도 당신은 강퍅하고, 자기를 자랑하며, 말이 많을지도 모른다. 이 한 가지는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부족하고, 어떤 사람은 저것이 부족하다. 각 사람의 일반적인 체험에 비춰 본다면 각 사람의 모든 실패와 죄들은 모두 서로 다르며, 동시에 각종 죄들을 다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각 사람에게는 모두 한 가지 종류의 죄, 한 가지 종류의 이길 수 없는 죄가 있다. 승패는 이러한 종류의 죄로 시험할 때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부모를 공경하며 거짓 증거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당신은 자신이 많은 죄들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하나 이길 수 있으면,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 조급하지 말라. 모두 이겼는가? 여전히 부족한 한 가지가 있다. 각 사람에게는 모두 그 한 가지가 있으며 이 특별한 죄가 있다. 이 한 가지가 당신의 승패를 단정한다. 승리와 실패는 당신이 이 한 가지의 죄, 즉 일생 동안 당신을 괴롭히는 이 죄를 이길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한두 가지의 죄는 일생 동안 당신을 따르는데, 당신이 어떻게 하든 간에 그것에 부딪힌다. 당신은 아침 저녁으로 그것에 부딪힌다. 그것은 당신과 특별한 친분이 있어 보이며, 당신은 이 죄를 범하는 데 익숙하다.

이 청년에게 있어서 문제는 간음이나 도적질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있다. 이 장의 청년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이것이지만, 우리의 부족함은 아마도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겼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한 가지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이기는 길은 초기에는 단지 자신을 의지하여 많은 죄를 이길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많은 죄들 가운데 여전히 특별한 죄, 이 죄를 이겨야 비로소 이기는 것이며 이것을 이기지 못하면 실패하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오늘 저녁에 만일 당신을 괴롭히며 당신을 따르는 한 가지 죄가 있다는 것을 느껴 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아직 이기지 못한 것이다. 사람이 만일 지금 그를 괴롭히고 있는 한 가지 죄를 보지 못했다면, 이러한 사람은 이기는 생명의 초보를 내딛지 못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기는 것을 생각해 보지도 않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는 모두 일반적이며, 모든 사람은 다 일반적인 죄의 억압을 받는다. 당신이 이김을 추구할 때, 당신은 많은 죄를 해결할 방법이 있음을 보지만 여전히 한 가지 죄는 해결할 방법이 없음을 보게 될 것이다.

상해에 많은 죄들을 이긴 한 형제가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드렸으나, 성질은 내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그는 이 죄를 이길 수 없음을 보는 단계까지 이르렀는데, 이 한 가지 죄가 계속하여 그를 저지했다. 그가 이 죄를 이길 수 있으면 곧 이기는 것이요, 이 죄를 이길 수 없으면 곧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기는 문제는 결국 이 한 가지 죄에 집중된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일 자기가 참으로 할 수 있다면 주님이 대신하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마지막 한 가지 죄를 당신 앞에 두시고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보신다. 당신이 십계명을 다 지켰어도, 하나님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이 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이 할 수 없음을 알게 하신다. 우리는 모두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하나님은 방법이 없어서 다만 마지막 한 가지 죄를 남겨 두어,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이 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보게 하신다. 그 청년은 그 말을 듣고, “그것 참 큰일이다.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일 이와 같다면 나는 방법이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근심하며 가 버렸다(23절). 그는 승리할 수 없었다. 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지만 돈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또 한 사람의 부자가 있다. 그는 한 관원이었는데 평범한 관원이 아니라 세리장이었으며 비교적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형제자매들이여, 청년이 돈을 함부로 쓰겠는가 아니면 나이 든 사람이 그렇겠는가? 물론 청년이다. 왜냐하면 청년은 나이 든 사람보다 세상을 그렇게 오래 살지 않았으므로 돈에 대하여 그렇게 큰 인식이 없으며, 그렇게 큰 애착이 없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은 세상을 오래 살았으므로 하루 종일 돈을 가까이하며, 돈의 용도를 더욱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돈의 노예들은 대개 나이 든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삭개오가 아마도 18장에 있는 청년보다 더 돈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삭개오는 주님을 보려고 뽕나무에 올라갔는데, 왜냐하면 사람이 많아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이 그를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하셨다. 그는 내려와서 매우 기쁘게 예수님을 영접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수군거려 말하기를, “주님이 죄 많은 세리장의 집에 들어가시다니!”라고 했다. 그는 일어나서 말하기를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은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8절)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자 그의 재산은 모두 바닥이 나버렸다. 삭개오가 한 것은 그 청년이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청년은 주님이 하라고 하셨지만 그는 할 수 없었고, 삭개오는 주님이 하라고 하지도 않으셨는데 그렇게 했다. 이 두 사람은 똑같이 부자였고 지위도 비슷했으나 청년은 스스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얻지 못하였고, 삭개오는 스스로를 합당치 않다고 여겼으나 결국 얻었다.
사울은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컸지만(삼상 10:23), 삭개오는 실로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가 작았다. 삭개오는 그것을 할 수 없었지만, 그것을 해냈다. 그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고 하셨다.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나온 것이며, 오늘 하나님은 이 집을 대신해 일하셨다. 삭개오는 그가 사랑하던 돈을 꺼낼 수 있었지만, 청년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삭개오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는데, 왜냐하면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믿음을 본으로 삼는 사람은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다(갈 3:7). 청년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주님께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물었으며, 삭개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의 위치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이르러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했다.

두 사람은 원래 조금도 차이가 없는 부자요 관원이었다. 청년은 좋았고 삭개오는 나빴는데, 이 천연적인 성품의 좋고 나쁨은 관계가 없다. 청년은 간음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할 수 없었다. 삭개오는 그렇게 나빴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했다.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만일 반드시 모든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난 후에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청년은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결과적으로 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다. 누가복음 18장 24절에서 주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라고 하셨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 뿐이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주님의 뜻은 그 청년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전혀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그렇다면 누가 능히 구원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모두 다 호주머니에 적어도 돈이 조금씩 있는데, 그렇다면 누가 능히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주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시다. 청년은 자신을 의지하여 할 수 없었고, 삭개오는 주님을 의지하여 했다. 한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었고, 한 사람은 구원이 그의 집에 이르렀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

누가복음 18장은 사람이 할 수 없음을 말하고, 19장은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사람이 자신을 의지해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 안에서 역사하여 그를 구원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낼 수 있다. 온 세상 사람은 모두 돈을 사랑하는데 심지어 어린아이도 돈을 사랑할 줄 안다. 중국 사람이 영어를 배울 때 첫 번째로 배우게 되는 단어가 돈(money)이라는 단어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임종시에도 유서에 돈에 관한 것을 쓴다. 사람은 모두 재물을 사랑한다. 하나님과 재물은 대립된다. 당신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재물을 섬기는 것이다(마 6:24). 재물의 세력은 매우 커서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이다! 주님이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에서 구출하실 수 있다면 우리를 구원하여 모든 죄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청년은 주님의 말을 듣고 근심하며 갔는데,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참으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잘못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즉시 그만두었으며 자신의 약함을 보고는 가 버렸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은 좋지만, 만일 하나님도 하실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큰 잘못이다. 자기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좋지만, 자신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19장에서 사람은 자신을 의지해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신다. 이기는 길은 자기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기실 수 있다. 자신을 보는 것으로는 이길 수 없으며, 자기를 아는 것으로도 실패할 수 있을 뿐 여전히 이길 방법이 없다. 이기는 길은 자기가 할 수 없음을 볼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나에게 주어 나를 대신해 이기게 하시는 것을 보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다.<중략> (워치만 니 전집 2집 23권 제7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