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려 오셨다는 의미는?
믿는이들
Hannah , 2009-03-13 , 조회수 (6123) , 추천 (0) , 스크랩 (0)

 

주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려 오셨다는 의미는? 

 

 

 

마태복음 5장 17절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율법을 온전케 한다는 것은 세 가지-그리스도께서 적극적인 면에서 율법을 지키셨고, 소극적인 면에서 십자가의 대속하는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셨으며, 그리스도께서 이 부분에서 계속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신 것처럼(마 5:22, 28, 32, 34, 39, 44) 옛 율법을 새 율법으로 보충하신 것-를 의미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Ⅳ. 왕국 백성들의 율법에 관하여

천국 백성의 율법에 관하여 산 위에서 하신 왕의 말씀의 세 번째 부분인 마태복음 5장 17절부터 48절까지의 말씀에 왔다. 천국의 헌법은 분명히 율법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주 예수님의 때까지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또한 선지자들이 있었다. 예언은 항상 율법을 돕는다. 사람들이 율법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약하게 될 때 율법을 지키도록 그들을 강화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이 올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율법의 성취는 선지자들을 통한 강화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구약에는 율법과 선지자들이 있었다. 이것이 주 예수께서 17절에서 율법과 선지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신 이유이다.

A.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함

마태복음 5장 17절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율법을 온전케 한다는 것은 세 가지-그리스도가 적극적인 면에서 율법을 지키셨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대속하는 죽음을 통해 소극적으로 요구를 이루셨으며, 그리스도가 이 부분에서 계속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신 것처럼(22, 28, 32, 34, 39, 44절)옛 율법을 새 율법으로 보충하는 것-를 의미한다.

율법에 관해서는 두 방면이 있다. 하나는 율법의 계명이고 또 하나는 율법의 원칙이다. 율법의 계명은 주님의 오심으로 이루어졌고 보충되었다. 한편 율법의 원칙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따라 믿음의 원칙으로 대치되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선지자들을 통한 강화와 더불어 율법이 있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천국의 율법이 필요한가? 그 이유는 옛 율법의 요구가 충분히 높지 않기 때문이다. 옛 율법의 요구는 완전하지 않았다. 살인의 예를 들어보자. 옛 율법은 우리에게 살인하지 말라고 명하지만(출 20:13), 화내는 것에 대하여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을 죽였다면 당신은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정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얼마나 화내든지 살인하지 않는 한 모세의 율법으로는 정죄 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옛 율법의 결핍과 불완전함을 본다. 그러나 천국의 율법의 요구는 모세의 율법의 요구보다 훨씬 높다. 천국의 율법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에게 화내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21절과 22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 그러므로 천국의 율법은 옛 경륜의 율법보다 더 높다.

이에 대한 또다른 예는 간음에 대한 율법이다. 옛 율법은 간음을 범하는 것을 금하였지만 새 율법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금하고 있다(27-28절). 따라서 천국의 율법의 기본 원칙은 옛 율법보다 더 높다. 우리는 옛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 높여서 보완한다. 이러한 이유로 주 예수님은 그분이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17절에 있는 「완전케 하다(fulfill)」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여러 해 동안의 연구와 관찰과 체험을 통하여 우리는 이 구절에 있는 「완전케 하다」라는 단어가 세 가지 것들을 의미함을 보게 되었다.

1. 적극적인 면에서 율법을 지킴
첫째로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적극적인 면에서 율법을 지키셨음을 의미한다. 그분이 땅 위에 사셨을 때 그분은 옛 율법의 모든 방면들을 지키셨다. 어떤 사람도 십계명을 지키지 못했지만 주 예수님은 그것들을 완전히 지키셨다. 그분은 매우 적극적인 방법으로 옛 경륜의 율법을 지키셨다.

2. 십자가의 대속하는 죽음을 통하여 소극적인 면에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심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지키셨기 때문에 온전하신 분이 되셨다. 그분의 온전하심은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자격을 갖추게 했다. 이것은 소극적인 면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신 두 번째 방법이다. 우리는 모두 율법을 어기고 범했다. 그러나 우리의 허물은 그리스도의 대속하는 죽음을 통하여 처리되었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은 소극적인 면으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위해 죽으신 우리의 대속물이셨다.

3. 옛 율법을 새 것으로 완전케 하심
율법을 완전케 하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새 율법으로 옛 율법을 보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로 표현되었다(22, 28, 34, 39, 44절).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심은 그분으로 하여금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율법의 요구를 이루실 자격을 갖게 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대속하는 죽음을 통해 율법의 요구를 이루심으로써 율법을 보충하고 율법을 완전하게 하는 부활의 생명을 가져오셨다. 지킬 것을 요구하고 형벌을 조건으로 하는 옛 율법 곧 낮은 율법은 끝났다. 이제 왕국 백성은 아버지의 자녀들로서 부활의 생명인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으로 새 율법 곧 더 높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부활 생명을 가져왔다. 이 부활 생명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때, 그것은 율법을 완전케 하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은 우리로 더 높은 율법을 이룰 수 있게 한다. 우리 안에 있는 부활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단지 다른 이들을 살인하지 않는 것을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을 미워하거나 그들에게 화를 내지도 않게 된다. 이 부활 생명은 천연적인 생명보다 훨씬 높은데, 이는 그것이 사실상 신성한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이요,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이 가장 높은 생명은 가장 높은 율법의 요구를 이룬다.

신약 안의 마태복음, 즉 왕국의 책에서 먼저 요구들이 나온다. 그리고 생명의 책인 요한복음에서는 이 요구들을 성취하는 생명이 나온다. 우리의 천연적인 생명으로는 마태복음 5장에서 주어진 요구들을 성취할 수 없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우리로 가장 높은 요구에 응하게 하는 가장 높은 생명을 갖는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요한복음을 사랑하지만 마태복음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마태복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여러분들 중 어떤 이들은 마태복음에는 너무 어려운 것들이 많지만 요한복음은 단순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은 하나님이셨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한다(요 1:1, 14). 요한복음에는 요한복음 3장 16절과 같은 황금 구절들이 많이 있다. 이 복음서에는 조건과 요구들은 거의 없고 풍성한 생명 공급이 있다. 그러나 신약에서 요한복음이 아닌 마태복음이 먼저 나온다. 우리는 마태복음을 지나쳐 버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하도록 가르침 받아 왔다. 삼십오 년 전에 나는, 새 신자들은 마태복음을 읽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나 자신도 새 신자들에게 마태복음을 먼저 읽지 않도록 권했다. 나는 그들이 만일 마태복음 1장을 먼저 읽는다면 그들은 성경을 읽는 데 있어서 좌절할 것이며, 성경은 읽기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나는 새 신자들에게 네 번째 책인 요한복음부터 읽기 시작하라고 말했다. 그 다음에 마태복음이 아닌 로마서나 다른 책을 읽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마태복음으로 돌아와야 할 필요가 있다. 마태복음은 요한복음을 필요로 하며, 요한복음은 마태복음을 위하여 있다.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가장 높은 요구, 즉 요한복음에 계시된 신성한 생명에 의해서만 이룰 수 있는 요구들을 준다. 마태복음에 계시된 천국의 요구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발견되는 생명의 공급을 받아야 한다.

새 왕이신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폐하려고 오시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은 옛 율법의 표준을 높이려고 오셨다. 이제 그 요구들은 매우 높여져 더 이상 옛 율법이 아니라 천국의 새 율법이다. 그리스도는 두 방면으로 옛 율법의 표준을 높였으니, 하나는 율법을 보충하심으로써이고, 또하나는 그것을 바꿈으로써이다. 17절부터 30절에서 우리는 옛 율법에 대한 보충을 본다. 율법을 바꾸는 것은 31절부터 시작된다. 이 메시지에서 우리는 옛 율법을 보충하는 것만 다룰 것이다.

18절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한다. 천년 왕국 이후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때(계 21:1, 히 1:11-12, 벧후 3:10-13) 옛 하늘과 옛 땅은 없어진다. 율법에 관계되는 것은 천년 왕국이 끝나기까지 계속되고, 선지자들에 관계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까지 계속된다(사 65:17, 66:22). 그렇기 때문에 17절에서는 율법과 선지자들이 언급되지만 18절에서는 율법만 언급된다. 율법의 성취는 천년 왕국의 끝까지, 즉 하늘과 땅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들에 의하여 다뤄진 것들은 천년 왕국보다 더 멀리, 즉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이를 것이다.

그리스도는 세 방면으로 율법을 이루셨다. 그분 자신이 율법을 지키셨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율법에 대한 허물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분의 대속의 죽음은 우리의 존재 안으로 주입된 부활 생명을 가져왔다. 그분의 부활 생명에 의하여 우리는 새로운 더 높은 율법의 요구를 성취할 수 있다. 이러한 세 단계에 의하여 그리스도는 옛 율법을 넉넉히 이루셨다. 그분은 그것을 지키셨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으며, 그분의 죽음은 새율법의 요구를 이루도록 우리를 강화하기 위해 부활 생명을 우리 안으로 가져왔다. 오늘날 우리는 낮은 율법을 지키려고 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 안에 있는 가장 높은 생명으로 말미암아 높이 올려진 더 높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가장 높은 율법을 지킬 수 있다.(중략)(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