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은 안식일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교회
Hannah , 2009-03-13 , 조회수 (3054) , 추천 (0) , 스크랩 (0)

 

주일은 안식일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Ⅰ. 주일은 안식일이 아님

하나님은 육 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칠 일째 되던 날에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 그리고 거의 이천 오백 년 후에 하나님은 십계명을 반포하셨다(출 20:1-17). 그 중 넷째 계명은 하나님의 일을 기념하는 안식일에 대한 기념이다. 이 기념함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세상을 재창조하실 때 육 일에 걸쳐 재창조하시고 일곱째 되던 날에 안식하셨음을 돌이켜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 칠 일은 본래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날이다. 그러나 이천 오백 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은 사람도 안식하도록 이 제 칠일 안식일을 사람에게 주셨다.

구약의 일들은 장차 좋은 일의 그림자에 불과하다(히 10:1). 구약에서의 다른 많은 예표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안식일을 주심에도 영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제 육 일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칠 일째엔 안식하셨기 때문에, 사람의 피조됨은 먼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먼저 육 일 동안 역사하신 다음 하루의 안식을 취하셨다. 그러나 사람의 시작은 먼저 육 일이 있은 다음 하루를 갖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루가 있은 다음 육일이 있다. 사람은 먼저 안식한 다음 일을 한다. 이것이 복음의 원칙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복음의 예표이다. 구원이 먼저이고 일은 나중이며 생명이 먼저이고 행위는 나중이다 안식이 일보다 먼저요 안식이 행위보다 앞선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우리로 후에 일하도록 먼저 구속의 안식을 예비하셨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안식한 후에 일하는 것임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안식일의 의미는 바로 사람이 일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안식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안식 안에 들어감은 곧 사람이 스스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누가 안식일을 범했다면 그 사람의 죄는 얼마나 크겠는가! 하나님이 당신에게 일하지 말고 다만 안식하라고 하셨는데 만일 당신이 일했다면 당신은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받지 않는 것이다.

안식일을 범한 것은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친 것과 같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서 『반석에 물이 흘러나오도록 분부하라』고 명하셨을 뿐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는 처음에 이미 반석이 깨졌기 때문에 두번째로 다시 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에 다시 할 필요가 없다. 다시 치는 것은 이미 이루어놓은 일을 뒤집어엎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석이 생수를 내도록 다만 분부해야 했다. 그가 두번째로 반석을 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첫번째 하신 일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출 17:1-6, 민 12:7-12).

사람이 볼 때 안식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진리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매우 심각하다. 사람은 하나님의 안식을 누린 다음에야 일을 할 수 있고, 먼저 복음을 영접한 다음에야 행위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의 안식을 얻은 다음에야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다.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정하신 원칙을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안식일의 위치는 매우 높다. 구약에서 안식일에 나무를 한 사람은 온 회중에 의해 진영 밖으로 끌려가 돌로 쳐죽임을 당한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안식일을 범했기 때문이다(민 15:32-36). 사람이 안식하지 앉는다는 것은 그가 스스로 일할 수 있고 행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역사에 만족스러워하신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사람도 하나님의 역사에 만족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안식 안에서 안식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이것은 구약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바이다.

그러나 신약에 이르러서 그 상황은 다르다 주 예수님은 안식일 날에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고(눅 4:16) 가르치셨다(막 1:21). 사도들도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강론하며 말씀을 전했다(행 17:1-3 18:4). 여기서 우리는 안식일에 소극적인 쉼이 있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용도도 있음을 본다. 본래 안식일은 육신이 안식하는 날이었으나 신약에 와서 그것은 영성을 추구하는 날로 변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큰 진보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잘 읽어본다면 성경 안에 하나님의 계시가 진보적인 것임을 볼 수 있다. 앞의 「성경 읽기」에서 우리는 사실 속에 빛이 있기 때문에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실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언급했다. 사실이 새롭게 될 때 새로운 빛을 갖게 된다 안식일도 이러하다. 처음에 성경은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창 2:3)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주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성경은 「칠 일의 첫날」(마 28:7)을 언급했다. 여기서는 일곱째 날이 아니라 칠 일의 첫날에 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말한다. 사복음서는 칠 일의 첫날에 주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사람에게 적어도 다섯 번 나타나셨는데 그것은 모두가 칠 일의 첫 달이었다(요 20:1, 11-18, 마 28:1, 7,눅 24:1, 13-15, 34, 요 20:19. 눅 24:36). 사도행전은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 오순절은 안식일 이튿날(레 23:15-16) 곧 칠 일의 첫날이다 칠 일의 첫날은 곧 주일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제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일로 대치하셨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의를 칠 일의 첫 날로 돌리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안식일이 복음의 예표라고 말했다 복음의 실제가 올 때 그 예표는 지나간다. 제사를 드리는 원칙이 곧 십자가인 것과 같이 안식일의 원칙은 곧 복음이다. 구약에서 제사를 드리는 데 사용되었던 소와 양은 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주 예수를 예표한다. 주 예수님이 오실 때 소와 양이 필요 없게 된다. 만일 오늘날에도 소와 양을 끌고와 제사를 드린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모르는 것이다. 주님이 이미 제물이 되셨는데 어찌 소와 양을 끌고와 제사를 드릴 필요가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복음이 임할 때 사람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안식할 수 있다. 하나님은 아들의 구속을 통해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도든 것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먼저 일하라고 명하지 않고 그 아들의 역사 위에 안식하라고 명하셨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식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은 우리로 하나님 앞에서 안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식 후에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소와 양의 제사가 지나갔듯이 복음의 안식이 믿는이들 위에 임할 때에 안식일은 자연히 지나간 것이다. 오늘날 소와 양의 제사가 없듯이 안식일도 없다 안식일은 구약의 예표로서 신약에 와서 그 예표는 이미 이루어졌다.

Ⅱ. 주일의 근거

구약에서 하나님은 칠 일 중 하루인 일곱째 날을 거룩한 안식일로 택하셨다. 신약에 이를 때 구약의 일곱째 날은 이미 지나갔지만 칠 일 중에서 하루를 택하는 원칙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식일을 주일로 바꿨다는 것이 아니다. 신약에는 다른 날이 있다. 구약 때에 하나님은 한 주 중에서 일곱째 날을 택하셨다. 신약에서 하나님은 한 주의 첫날을 택하셨다. 일곱째 날을 바꾸어 첫날로 부른 것이 아니라 다른 날을 택한 것이다. 이 날은 구약의 안식일과 완전히 다르다.

시편 118편 22절부터 24절은 상당히 중요한 구절들이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여기서 우리는 「건축자의 버린 돌」이라는 한마디를 본다. 돌이 유용한가의 여부는 건축자에게 달렸다. 건축자가 유용하다고 말한 돌은 유용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기이한 일은 「건축자의 버린 돌」을 하나님은 「집 모퉁이의 머릿돌」 곧 기초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중요한 책임을 주님의 어깨에 맡기셨다.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것은 확실히 기이한 일이다. 24절은 더욱 기이한 말씀이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이는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건축자가 돌을 버렸지만 어느 날 하나님은 그 돌을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는 기이한 일을 행하셨다. 그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의 정하신 날이 어느 날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대체 건축자가 버린 돌을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한 날은 언제인가? 그 날은 언제인가? 사도행전 4장 10절-11절 :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피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리라』. 10절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말하고, 17절은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고 말한다. 바꾸어 말해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은 곧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건축자가 그를 버린 때는 곧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이고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신 때는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때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은 곧 주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사람이 버린 것을 하나님이 살아나게 하셨다. 이 살리심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다. 주 예수의 부활하신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날이다. 이 날은 사람이 정한 날이 하니라 여호와의 정하신 날이기 때문에 사람 눈에는 기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은 어떤 날인가? 이는 곧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날과 구약 율법 아래 있는 안식일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될 수 있다. 구약의 안식일은 소극적인 것으로서 무엇은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만일 누가 안식일을 범하면 그 사람은 쳐죽임을 당하게 됨으로 그 형벌은 매우 중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런 냄새가 없다. 하나님은 신약 시대에 다른 날을 택하실 것을 예언하셨다. 하나님은 그 날에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이 정하신 날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주일의 특징은 소극적인 명령이 없고 적극적인 명령만 있는 것이다. 이 날에 대하여 약간의 설명을 하겠다. 하나님은 날을 년 월로 합성시킬 뿐 아니라 매 칠 일을 한 단위로 하되 제 칠 일을 마침으로 하도록 날을 주(週)로 합성시키셨다. 좀 전에 우리는, 안식일은 예표요 옛 창조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새 창조가 시작되었다. 옛 창조의 마침은 칠 일의 일곱째 날이다. 이는 분명히 완전한 한 주(週)를 형성한다. 새 창조의 시작은 칠 일의 첫째 날로서 깨끗한 새 출발이자 확실한 새 출발이다. 전자는 완전히 묵은 것이고 후자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옛 창조와 새 창조는 한 칼로 두 조각 내듯 분명히 구분된다. 한 주(週)의 절반은 묵고 절반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통쾌하게 완전한 옛 창조와 온전한 새 창조이다. 완전한 한 주(週)의 단위가 있을 뿐 부분적인 단위가 없다. 주 예수님은 칠 일의 첫날에 부활하셨으며 한 주 내내 완전한 새 창조이다. 이 땅 위에 교회가 생겼던 오순절 날도 칠 일의 첫날이므로 교회도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만일 주 예수님이 칠 일의 첫날에 부활하지 않고 칠 일의 일곱째 날이나 다른 날에 부활하셨다면 한 주 안에 새 창조도 있고 옛 창조도 있으므로 구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칠 일의 첫날 곧 다른 한 주를 시작하는 날에 부활하셨다. 한 주는 옛 창조이고 한 주는 새 창조인 것이다. 옛 창조의 일은 한 주의 마지막 날―일곱째 날―까지이다. 새 창조는 다른 한 주의 첫날 곧 칠 일의 첫날에 시작된다. 이렇게 하여 새 창조와 옛 창조는 분명히 구분되었다.

한 주에서 하나님은 특별히 하루를 택하셨는데 성경은 그 날에 이름을 붙였다. 이는 곧 계시록 1장 10절에서 말한 「주일」이다. 어떤 사람은「주일」이 성경에서 말한 「주의 날」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원문에서 「주일」과 「주의 날」은 완전히 다르다. 「주일」은 칠 일의 첫날이고 「주의 날」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다(살전5:2, 살후 2:2.벧후 3:10). 양자는 완전히 다르다. 또 한면에서 고대 교부들의 저서들에서 우리는 「주일」이 칠 일의 첫날로서 교회가 모인 날임을 증명하는 많은 자료를 찾아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본래 2, 3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에 모였다가 4세기 때에 바꾸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과 맞지 않다. 고대 교부들의 저서 중에는 요한의 제자로부터 4세기까지의 그리스도인들이 칠 일의 첫날에 모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많은 자료들이 있다(중략).(워치만 니 전집 제3집 제2권, 제1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