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믿는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
왕국
Hannah , 2009-03-13 , 조회수 (3758) , 추천 (0) , 스크랩 (0)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믿는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

 

 

 

개요

Ⅰ.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함―디모데후서 4:8.

Ⅱ. 그분의 오심을 열렬히 기다림―빌립보서 3:20, 데살로니가전서 1:10.

Ⅲ. 그분의 오심을 갈구함―요한계시록 22:20.

Ⅳ.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을 주의하듯이 신언자의 말을 주의하며, 낡이 밝아 새벽별이 우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기다려야 함―베드로후서 1:19.

Ⅴ.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하는 무화과나무를 주의해야 함―그 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이스라엘 나라 회복) 잎사귀가 자란(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수복 등) 것을 보거든 여름이(이스라엘 나라의 부흥) 가까이 왔음을 알아야 함―마태복음 24:32-33.

Ⅵ. 깨어 있고 예비해야 함―마태복음 24:42-44, 25:13.

Ⅶ. 조심하여 방탕함과 술취함과 현세의 염려로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지는 것을 피해야 하는데, 이는 그 날이 덫과 같이 우리에게 갑자기 임하며, 그날이 온 지구상에 모든 사람에게 임하기 때문임―누가복음 21:34-35.

Ⅷ. 언제나 깨어 있고 항상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승리하고 장차 일어날 이 모든 일들을 능히 피하여 인자 앞에 서게 되어야 하며, 이것은 바로 하늘에 있는 그리스도의 임재 안으로 휴거되는 것임―누가복음 21:36.

Ⅸ.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켜 지키심을 받고,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을 시험할 시련의 때를 면함―요한계시록 3:10.

Ⅹ.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의 혼을 충만케 하고 적셔지게 하여, 이렇게 될 때 우리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혼인 잔치의 문 밖에 있음을 피하게 됨.

?.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 주님의 교회를 관리하고, 때를 따라 믿는 이들에게 양식을 분배하며 또한 받은 은사에 따라 힘을 다해 자신의 기능을 다 발휘하여 상을 잃고 징계 받음을 피함―마태복음 24:45-51, 25:19-30.

?. 사도들이 닦은 터 위에 어떻게 교회를 건축하느냐를 주의하여, 우리의 건축이 불태워지고 불 가운데서 얻은 것같이 스스로 손실당함을 피함―고린도전서 3:10-17.

ⅩⅢ. 깨어서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님을 면함―요한계시록 16:15.

신약의 가르침에 의하면,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은 신약을 기록할 때, 그들이 살아 있을 당시에 주 예수님이 다시 오시리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구약의 신언자들도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했는데, 그들도 그분의 오심을 한 번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그리스도의 오심은 두 번이며, 더욱이 이 두 번의 오심 사이에는 시간상 적어도 이 천년의 간격이 있다. 이것은 마치 두 개의 산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이어진 것으로 보이는 것과 같으며 앞뒤로 모양이 하나로 겹쳐진 것과도 같다. 현재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주의 오심은 먼저와 나중 두 차례임을 알 수 있으며, 더욱이 두 번째 오심은 사도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빠른 것 같지 않다.
일부 사람들은 이천 년이 곧 마감되는데 주님의 재림은 왜 지금까지 실현되지 않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분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 22장 끝에서.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음을 잊지 말라(벧후 3:8). 영원하신 주 하나님께는 시간이 결코 결정요인이 아니다. 그분의 재림의 응답을 실현하기 위하여,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실이다. 지금 내가 여러분 앞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각 방면의 예언으로 보거나 현재의 국제 정세를 비춰 볼 때, 주의 오심은 매우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함
나의 부담은 여기에 있다. 사도들이 신약을 쓸 당시, 그들은 마음속으로 주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신약의 가르침에서 보면, 그들의 생활은 바로 주의 재림을 예비하는 그러한 것이었다. 이것은 오랜 기간 떨어져 있던 부모님이 곧 돌아오기 때문에 온 집안이 영접할 준비를 다 끝낸 것에 비교될 수 있다. 또한 결혼을 앞둔 여인이 결혼 날짜를 정하고서 그날이 오기를 마음을 다해 기다리는 것과도 같다. 바울은 이러한 태도를 가졌으며, 그의 생활은 바로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생활이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를 읽을 때 그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서신은 모두 다섯 장으로, 각 장의 끝은 모두 주의 오심으로 마치고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딤후 4:8). 우리 또한 응당 이와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분의 재림을 열렬히 기다림
우리는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고 그분의 재림을 열렬히 기다린다(빌 3:20, 살전 1:10). 이 때문에, 우리의 장래는 그분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우리의 생활은 우리가 이 땅에서 소망이 없음을 표명하고, 우리의 소망은 장차 오실 주 예수님이시며,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에서,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29-31)고 말하고 있다.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참된 소망이시다.

그분의 오심을 갈구함
우리는 주의 재림에 대한 갈망을 그분께 기도로 나타내며, “주 예수여, 나는 당신이 오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라고 갈구할 수 있다(계 22:20). 우리가 항상 이렇게 그분의 오심을 갈구한다면, 그분은 그분의 재림에 대한 응답을 성취하실 것이다.

신언자의 말을 주의하고, 날이 밝기까지 기다림
베드로후서 1장 19절은,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에서 신언자의 말은 마치 믿는 이들의 등불 같아서 영에 속한 빛을 전달하고 우리가 흑암 가운데 있을 때 비춤으로 광명한 빛 안으로 들어가도록 우리를 인도하며, 심지어 어두운 밤을 거쳐 주님이 나타나시는 그날, 바로 날이 밝을 때까지 인도한다. 주님의 이러한 해(sun)가 나타나기 이전에 우리에게는 우리의 발걸음을 비출 그분의 말씀의 빛이 필요하다.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하는 무화과나무를 주의해야 함
주님의 재림은 이스라엘 나라와 매우 큰 관계가 있다. 마태복음 24장 32절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저주받은 후, 1948년에 나라를 회복하고 후에 다시 예루살렘을 수복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이 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 것이다. 그러므로 여름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 나라의 부흥은 이미 가까웠다. 우리가 성전 중건 및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볼 때, 이스라엘 나라가 곧 부흥될 것임을 알게 된다(마 24:33).

깨어 있고 예비해야 함
마태복음 24장 42절은,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분이 오실 때, 그분은 도적같이 은밀하게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오셔서 그들을 보배로 여겨 가져가실 것이다(마 24:43). 그러므로 우리는 응당 깨어 있어야 하고(마 25:13), 또한 마땅히 예비해야 한다(마 24:44).

조심하여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지는 것을 피해야 함
누가복음 21장 34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지상의 부(富)를 추구하고 세상의 유행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바로 방탕함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 가운데 빠져 있어서 마치 술에 취해 사는 것 같으며, 마음이 생활의염려로 억압받아 해방될 길이 없다. 우리는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언제나 깨어 있고 항상 기도해야 승리할 수 있음
우리가 장차 발생할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기도해야 한다. 누가복음 21장 36절은,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대환난을 피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은 깨어 있음과 기도로부터 온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매일 아침에 부흥되고 날마다 승리해야 하며, 이것은 우리로 대환난 이전에 휴거되어 하늘에 있는 시온 산에서 구주 앞에 서게 할 것이다(계 12:5-6, 14, 참고).

주의 인내의 말씀을 지켜 지키심을 받고 시련의 때를 면함
우리는 또한 주의 인내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요한계시록 3장 10절에서 주 예수님은,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련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주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인내의 말씀이다. 우리는 그분의 인내의 말씀을 지켜야 하며, 그분이 받으셨던 거절과 핍박을 견디어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반드시 지키심을 받고 장차 온 땅에 임할 대환난을 피할 수 있다.

슬기로운 처녀가 됨
마태복음 25장은 우리에게 슬기로운 처녀가 장차 올 신랑을 어떻게 깨어서 기다렸나를 보여주고 있다(1-10절). 그들은 등과 그릇 안에 기름을 가지고서 신랑을 영접하러 갔다. 그들은 다 예비하고 있다가 신랑이 왔을 때 그분과 함께 혼인잔치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믿는 이들은 정결한 처녀와 같이 흑암의 세대 가운데에서 주님의 간증이 되고,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나와 주님을 영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의 내주하심이 필요할 뿐 아니라 더욱 우리의 혼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되고 적셔지는 것이 필요하며, 이럴 때 우리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혼인 잔치의 문 밖에 버려둠 당함을 면하게 될 것이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됨
우리는 한 면으로 주님의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야 하며, 또 한 면으로는 주님의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야 한다. 처녀는 생명의 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주님과 약혼하여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이며, 종은 우리의 봉사의 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사온 바 되었으며 그분을 섬겨야 한다. 마태복음 24장, 25장은 또한 우리에게 어떻게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는가를 알려주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의 교회를 관리하고 때를 따라 믿는 이들에게 양식을 분배하는 것이며, 혹은 자기가 받은 은사에 따라 힘을 다해 자신의 기능을 다 발휘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상을 잃고 징계받음을 면하게 된다(마 24:45-51, 25:19-30).

사도들이 닦은 터 위에 어떻게 교회를 건축하느냐를 주의함
고린도전서 3장 10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은, 사도들이 닦은 터 위에 어떻게 교회를 건축하느냐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천연적인 사람의 소산인 나무와 풀과 짚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삼일(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미덕과 속성인 금과 은과 보석으로써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터 위에 건축하여, 우리의 건축이 불타 없어지거나 불 가운데로부터 얻은 것같이 스스로 손실당함을 피해야 한다.

깨어서 자기 옷을 지켜야 함
마지막으로, 우리는 깨어서 자신의 옷을 지켜야 한다. 요한계시록 16장 15절에서 주 예수님은,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자신을 신중하게 존중하여야 하며, 육체를 따라 행하지 않고 영우리의 을 좇아 행하면 예비되어 주를 볼 것이다.(일곱 광주리, 제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