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사탄이 있는 곳에서는 불(Fire)임
성령
Hannah , 2009-03-13 , 조회수 (4291) , 추천 (0) , 스크랩 (0)

 

                    
                      생명은 사탄이 있는 곳에서는 불(Fire)임 
 

 

 

생명의 영

이 생명은 물이며 이 생명은 또한 불이다. 그리고 이 생명은 또한 성령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분께서 사람에게 만져질 때 그분은 생명이시다. 요한복음 7장은 생수의 강이 성령이심을 말한다(38-39절). 오순절에 성령께서 부어지셨다. 성경은 성령께서 모든 육체에 ‘부어지신 것’에 대해 말한다(행 2:17). 이것은 성령께서 부어지는 비와 같으심을 가리킨다. 그러나 제자들이 모인 집에서 성령이 부어진 날, 제자들이 본 것은 물이 아니라 불이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3-4절). 이 불은 생수이다.


계시록 4장 5절은 보좌 앞에 일곱 등불이 있고, 일곱 등은 하나님의 일곱 영임을 언급한다. 일곱은 기능이 완전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 아니라 하나임을 알고 있다. 일곱 등불이 보좌에서 나온다. 4장 5절은 일곱 등불이 하나님의 일곱 영임을 분명히 말한다. 불은 영이다. 이 불은 일곱 영이다. 4장과 5장은 모두 이 불이 하나님의 영임을 말한다. 이어서 22장은 다시 보좌와 보좌에서부터 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말한다. 보좌에서 두 강이 나오고 있는가 아니면 오직 하나의 강이 있는가? 성경의 일관된 노선에 의하면 두 개의 강이 아니라 하나의 강만 있어야 한다. 이 강은 때로는 불이며 때로는 물이다. 물과 불은 하나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영이다.


4장과 5장은 보좌 위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과 일곱 눈을 말한다. 일곱 눈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다. 21장과 22장의 시작 부분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이 언급되지만 영은 언급되지 않는다. 영은 어디에 계시는가? 영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강이시다. 그러므로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은 영이다. 영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때 그분은 생명이시다. 하나님은 흘러나오셨다. 그분께서 사람에게 흐르실 때 그분은 영이시다. 그리고 그분께서 사람 안으로 흐르시고 사람에게 영접되며 만져질 때 그분은 생명이시다.



생명은 사탄이 있는 곳에서는 불이며 사탄이 없는 곳에서는 물임

하나님의 영 혹은 하나님의 생명인 이 강이 흘러나올 때, 그것은 때로는 물이며 때로는 불이다. 그것은 어느 때 물이며 어느 때 불인가? 창세기의 처음 두 장에서 사탄이 등장하기 전에 이 강은 물의 강이었다. 그리고 계시록 끝부분인 21장과 22장에서 사탄이 종결된 후, 이 강은 역시 물의 강이다. 그러면 이 흐름은 언제 불이 되는가? 분명한 것은 사탄이 있는 곳마다 이 생명의 흐름은 불이며, 사탄이 없는 곳에서는 이 생명의 흐름이 물이라는 것이다. 사탄이 있는 곳에서 이 생명은 불이며 사탄이 없는 곳에서 이 생명은 물이다.


창세기 3장 이전에 이 흐름은 물이었고, 계시록 21장과 22장에서도 이 흐름은 물이다. 창세기 3장부터 계시록 20장까지 이 흐름은 불인 동시에 물이다. 불은 창세기 3장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계시록 21장 8절 이후에는 더 이상 불을 언급하지 않는데, 이것은 사탄과 사망과 음부가 모두 불 못으로 던져졌기 때문이다.



생명의 두 방면―물의 적심과 불의 태움

물은 우리를 적시며 내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생명을 언급하고, 불은 우리 안에서 사탄의 모든 것을 태우고 제거하며 종결시키는 하나님의 생명을 언급한다. 이것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두 방면의 기능이다. 한 면으로 생명수가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와 하나님의 본성과 내용을 우리 안으로 흘려보낸다. 이 생수는 우리를 공급하고 적시며 하나님의 풍성과 내용을 우리 안으로 흘려보낸다. 창세기 2장에서 금과 진주와 보석들은 생명의 흐름의 산출물이다. 물이 흐르는 곳마다 금과 진주와 보석들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의 내용들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내용과 색채와 광채와 모양과 본성이 사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생명수의 흐름을 통해서이다. 이 생명이 우리 안으로 흐를 때, 그것은 우리를 공급하기 위해 하나님의 내용을 우리 안으로 흘려보낸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 더욱 흐르고, 그 흐름이 더욱 강해질수록 더 많은 금과 진주와 보석들이 그곳에 있고, 하나님의 본성과 색채와 광채와 모양이 우리 안에 더욱 증가한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흐름이 우리를 적시고 공급하며 변화시키는 방면이다.


다른 한 면으로 이 생명의 흐름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때 또 다른 기능이 있는데, 바로 불의 기능이다. 그러므로 이 흐름은 또한 불이다. 불의 기능은 무엇인가? 불은 태우고 소멸시키며 종결시킨다. 왜 태울 필요가 있는가? 사탄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람의 타락으로 사탄은 세상과 죄와 육체를 가지고 왔고, 또 사탄에 속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많은 것들을 가져왔다. 그 결과 사람은 순수하지 못하고 복잡하게 되었다. 사람은 사탄과 세상과 죄와 육체로 가득하다. 한 면으로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를 공급하고 우리를 진흙의 사람에서 금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그분의 본성과 외양과 광채와 색채를 우리 안으로 흘려보낸다. 다른 한 면으로 세상과 죄와 육체와 사탄의 모든 것이 우리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생명이 우리 안으로 흐를 때 그것은 우리 안에서 타는 불과 같다.


왜 누가복음 12장은 주님의 불이 우리 안에 붙여질 때, 우리가 우리 친척들과 감정상의 갈등을 겪을 것이라고 말하는가? 이것은 많은 경우 그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 않고, 그들이 죄의 즐거움을 사랑하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의 친척들은 일어나 우리를 반대할 것이고 우리와 분쟁을 일으킬 것이다. 불은 우리 안에 있는 사탄에 속한 세상과 죄와 육체를 태워 없애며, 결국 우리와 친척들 사이에는 의견 차이와 부조화와 불일치가 있게 된다. 친척들은 우리가 그들과 함께 세상을 사랑하거나 죄의 즐거움을 누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한 비처럼 쏟아 부어지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불로 기록했다. 베드로와 열한 사도들이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듣는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아 그들의 죄를 자백했다. 그러므로 성령은 사람의 죄를 태우시기 위해 오신다.



생명수의 강의 적심과 생명의 불의 태움을 체험함

영은 한 분이시고 생명도 하나이다. 그러나 공급하는 데 있어서 생명은 때로는 물과 같고 때로는 불과 같다. 이 생명이 우리를 내적으로 적시고 공급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만지게 하고,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하나님의 것과 같도록 우리를 변화시킨다. 동시에 이 생명은 또한 우리 안에서 불타 우리의 육체와 자아와 부패를 태워 없앤다.


우리의 실제적인 체험에서 많은 경우 우리 안에 있는 이 생명은 갈증을 해소하는 물과 같다. 우리가 목마를 때 그분은 우리를 적시고 계시며, 우리가 약할 때 그분은 우리를 강화하신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사랑과 우리의 선호와 갈망이 하나님의 상태와 부합되도록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다. 그럴 때 우리의 내적 존재는 평안하고 만족을 느끼며 살아 있고 신선하며 밝고 강하며 능력이 있다. 이것은 생명수의 공급의 결과이며 우리의 존재가 물로 충만해진 상태이다.


그러나 때로 불이신 영께서 우리 안에서 타오르시며 우리로 슬픔과 불편함을 느끼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한 면으로 근심하고 자신을 혐오하며, 다른 한 면으로는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절대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20여 년 전 나는 몇 개월 동안 매일 아침 기도하러 언덕에 올랐다. 그 당시 불이 내 안에서 평소와 달리 특별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나는 기도하며 동시에 울고는 했다. 한 면으로 나는 기꺼이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다. 다른 한 면으로 나는 자신이 몹시 부패했고 세상의 모든 좋지 않은 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을 혐오했다. 이것은 내 안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맛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참된 회개와 자백을 했다.


우리가 자백하는 것이 다만 자백에 대한 교리를 들었기 때문이라면, 우리의 자백은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고 설득의 결과로 생긴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타오른 결과가 아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타오르실 때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말해 줄 필요가 없다. 대신 우리는 자신이 죄를 범했으며 더럽고 악하며, 우리의 죄가 다른 사람들의 죄를 훨씬 능가한다는 것을 자백할 것이다. 이런 겸손한 자백은 오직 영 안에서만 실재가 된다. 이뿐 아니라 이 불은 또한 우리의 육체와 기질을 태워 없앤다.


사탄이 사람 안에 오기 전에 이 생명은 단지 물이 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 당시 사람은 변질되지 않았고 속에 악한 성분도 없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말한다. ‘질그릇’은 진흙으로 만든 그릇을 말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진흙으로 만들어졌음을 가리킨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는 진흙으로 만든 그릇, 즉 질그릇 그대로였다. 그러나 사탄이 아담 안으로 들어간 이후 이 진흙 그릇은 부패한 그릇이 되었다.


창세기 4장에서 우리는 아벨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사탄에 속한 무언가가 들어왔음을 보여 준다(8절). 창세기 3장에서 계시록 20장까지 사탄은 사람과 동행하며 사람을 뒤쫓고 있다. 사람과 사탄은 함께 결부되어 있다.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 안으로 들어올 때, 이 생명은 하나님께는 물이며 사탄에게는 불이다. 물은 하나님의 생명 공급을 가져오지만 불은 사탄에 속한 모든 것을 태워 없앤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에서 사탄이 사람 안으로 들어온 후 불의 흐름이 들어왔다. 그리고 계시록 20장에서 사탄이 사람에게서 쫓겨날 때 불의 흐름이 사라진다. 그 대신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온다. 흘러나오는 것은 영이며 우리 안으로 흐르는 것은 생명이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생명은 때로는 물과 같고 때로는 불과 같다. 우리의 내적 존재가 순수하고 악을 거절하며 육체를 생각하지 않을 때, 물은 우리를 통해 흘러나와 신선하고 밝고 강하며 평안하고 만족하도록 우리를 적시고 공급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에 속한 것들, 즉 세상과 죄와 육체에 붙잡혀 있다면 우리 안의 생명은 우리 속에서 타오르는 불과 같다. 이것이 우리의 체험이다.


오늘날 우리는 계시록 21장에 도달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아직 20장에도 도달하지 않았다. 우리 속에는 여전히 죄와 육체와 세상과 사탄에 속한 많은 것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은 우리 안에서 항상 불로 태우고 있다. 불태움 이후에 물이 온다. 우리의 체험은 항상 이와 같다. 더 많은 태움이 있을수록 우리의 내적 존재는 더 살아 있고 신선하며, 밝음과 더 많은 평강과 만족과 안식이 있다.


그러므로 불태움 이후에 물이 온다. 물과 불은 두 가지 강이 아니라 하나의 강이다. 어느 날 더 이상 불이 없을 것이다. 사탄에 속한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종결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것이며, 그때 우리는 우리의 육체와 옛 창조에서 구출될 것이다. 사탄에 속한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제거될 때 더 이상 불이 없을 것이다. 그 대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나오는 물이 있을 것이다. 이 물이 흘러나올 때 그것은 영이며 그것이 우리 안으로 흐를 때 생명이다.


오늘날은 영원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능력을 미리 맛볼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주셔서 우리가 아직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영적인 실재와 영적인 상태 안에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어린양을 통과하는 물과 불 가운데 한 가지를 볼 수 있기 바란다. 하나님과 어린양에게서 나오는 것은 영이며, 영은 생명, 즉 하나님의 생명으로서 우리 안에 들어온다. 이 생명은 때로는 우리를 태우는 불같고 때로는 우리를 적시는 물과 같다. 우리가 내적으로 순수하다면 그분은 공급하는 물이시지만, 우리 안에 혼합된 것이 있다면 그분은 태우는 불이시다. 우리 모두가 생명의 이 두 방면, 즉 물의 적심과 불의 태움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영적실재, 메시지 1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