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바깥 어두움으로 쫓겨난다?
왕국
Hannah , 2009-03-10 , 조회수 (5316) , 추천 (0) , 스크랩 (0)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바깥 어두움으로 쫓겨난다?


1.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바깥 어두움으로 쫓겨남
마태복음 22장 9절부터 13절은 이렇게 말한다.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에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3절에 언급된 사환들은 천사들임에 틀림없다(마 13:41, 49).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던져져 쫓겨나는 것은 멸망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천년 왕국 동안에 왕국의 누림에 참여하는 자격을 부여하는 이기는 생활을 그리스도에 의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동안 다루심을 받는 것이다. 그 때에 이기는 믿는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국의 빛나는 영광 안에 있게 될 것이다(골 3:4). 반면에 패배한 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서 징계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그를 거짓 믿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 거짓 믿는이가 공중에 있는 그리스도의 혼인 잔치에 들어올 수 있는가? 많은 그리스도인 교사들이 이 사람을 믿지 않는 자라고 말하는 이유는 구원받은 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처벌을 받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의하면 믿는이들도 얼마동안 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이 복음서에서 이 주제는 수차 다루어졌다.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구원받은 자들도 이 같은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십여 년 이상 우리가 이기는 자들이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왔다. 이기는 자들이 아닌 사람들은 천년왕국 동안 왕국의 누림에서 제외되고, 아마도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던져지는 것을 알았다. 주 예수께서 단지 어두움이 아닌 바깥 어두움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목하라. 성경은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영광 안에서 오시리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 그러므로 영광의 분위기와 영역이 있게 될 것이며, 모든 믿는이들은 그분의 영광 안에서 그분께로 휴거될 것이다. 공중에서 주님은 심판대를 설치하실 것이다. 믿는이들이 심판받은 후 패배한 자들은 바깥 어두움으로 던져질 것이다. 이는 주님의 영광의 영역 밖의 어두움을 가리킨다. 주님이 그 어두움을 묘사하기 위해 「바깥」이라는 말을 사용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져지는 것은 영원한 멸망의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다. 신약은 일단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으면 그는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며 결코 멸망치 않는다는 것을 계시한다. 그러나 소위 알미니안(Arminian) 신학은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가 다시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잃어버린 바 되지는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동안 다루실 수 있다. 과거에 몇몇 사람들은 이에 대해 나와 논쟁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피로 씻음 받고 구속받은 사람을 하나님이 여전히 처벌하실 수 있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주님의 피로 씻음 받고 구속받은 후에 당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처벌하지 않으셨는가?』 구원받은 후에 죄를 지은 자들을 하나님이 징계하신다는 것을 아는 그들은 할 말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육신 안에 있을 동안 단지 이 시대에서만 징계하신다고 주장한다. 주님이 다시 오신 후 우리가 휴거 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관념을 제발 붙잡지 마십시오. 부활하고 휴거된 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죄인들은 죽고 부활한 후에 흰 보좌 안으로 끌려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합니다. 죽음과 부활이 미래에 당신을 자동적으로 문제들로부터 구출해 주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이 부활한 후에도 당신을 다루실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믿는이들의 시대적인 징계에 관한 가르침을 거절한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느슨하고 부주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경륜적인 징계를 두려워하는 대신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구원받고 그 피로 정결케 함을 받았다. 만일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다면 주님은 약간 나를 교정하실 것이다. 그러나 장래 내게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그처럼 반대되는 관념을 붙잡다니 얼마나 잘못 인도되었는가! 우리가 순수한 말씀으로 되돌아 올 때 예복을 입지 않고 결혼 잔치에 오는 것이 엄중한 문제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냉정한 생각으로 마태복음을 읽고 그 가르침을 엄중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수세기 동안 묻혀 있었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그 책을 열어 주셨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합당하게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아주 엄격하고 잔인한 분으로 제시한다고 논쟁한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그들의 관념에 따라 사랑하셨다면 어찌하여 그분은 군대를 보내어 예루살렘 도시를 파괴시키셨는가?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은 인자하시지만 또한 엄격하시므로 우리는 그분을 엄숙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자애로우실 때 그분은 실로 자애로우시다. 그분은 또한 엄격하실 때에는 매우 엄격하시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엄격하셨을 뿐아니라 우리에게도 역시 엄격하실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사탕발림을 한 가르침이 많이 있다. 몇몇 전파자들은 그들이 성경에서 본 것을 담대히 가르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청중을 잃어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걸림이 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많은 가르침에 사탕을 바른다. 그러나 우리는 사탕 발림을 벗겨 버리고 순수한 말씀으로 돌아와서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가를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마태복음에서 볼 수 있는 냉정한 말씀이 필요하다. 당신은 어느 날 결혼 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당신에게 주는 두번째 옷이 당신에게 있는지 없는지를 검사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두번째 옷, 횐 세마포, 뛰어난 의를 갖추어 이에 대비하라. 이에 대해 주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원한다!

이 메시지에서 나의 부담은 당신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말씀을 열어 사탕발림을 하지 않은 건강한 약 한 첩을 주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주님의 말씀을 읽고 그것을 온전히 상고할 책임이 있다. 22장 1절부터 14절에 있는 주님의 비유는 매우 의미 깊다. 비유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중요하다. 만일 그 비유가 전달해 주고자 하는 바가 별 의미 없는 것이라면 주님은 이 비유를 우리에게 제시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2.  청함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 받은 사람은 적음
14절에서 주님은 결론을 내리신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청함을 받았다는 것은 구원을 받은 것인 반면(롬 1:7, 고전 1:2, 엡 4 1), 택함을 받았다는 것은 보상을 받는 것이다. 모든 믿는이들이 청함을 받았다. 그러나 소수만이 이기는 자들로 택함 받을 것이다. 이기는 자들, 즉 택함 받은 자들은 보상을 받고 자격을 갖추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