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의미
그리스도
Hannah , 2009-03-10 , 조회수 (3955) , 추천 (0) , 스크랩 (0)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의미

 


 요한복음에서 몇 구절들을 읽어 보기로 하자. “너희가 내 이름으로(in my name)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 안에서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지금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요 16:24,26).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의 필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보혈에 의지하여 혹은 주님의 공로에 의지하여 기도한다고 자주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Lord)” 기도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진술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실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자주 그러한 어구를 사용하지만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어느 정도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몇몇 있지만 그에 대한 실제가 없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의 영적인 의미는 매우 깊고 높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가서 진정으로 그것에 관해 배워야 한다.


Ⅰ. 주님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Lord)의 의미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에서 주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적어도 다섯 번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에베소서 5장 20절에서 사도 바울도,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에서 우리는 주님의 이름이 의심할 여지없이 아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장들에서 아버지의 이름 또한 아버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복음에 있는 주님의 이름의 의미를 알기 원한다면 주님이 아들로 오시는 것에 관해 알아야 한다. “아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아들이 아버지의 표현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하나님께는 우주 가운데 한 아들이 있으며 이 아들은 하나님의 표현이다.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에서 주 예수님을 언급할 때마다 강조하는 점도 그분이 주님이라시거나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아들이시라는 것이다. 아들이신 그분은 하나님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하나님의 표현이다. 그러한 이름 안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표현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에 세 가지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이 있음을 보아야 한다. 즉 아버지는 아들 안에 표현되고, 아들은 그 영이 되어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그 결과 그 영은 우리 안에서 어떤 생명을 살아 낸다. 삼일 하나님, 곧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은 이렇게 하여 우리와 더불어 하나가 되신다. 이것이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이 우리에게 밝히는 것이다. 그다음, 즉시 17장에서 주님은 삼일 하나님, 곧 하나님과 아들과 그 영과 우리가 어떻게 완전히 하나 되는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주는 기도를 하셨다.

요한복음에는 세 가지 주된 개념들이 있다. 첫째 개념은 아버지가 아들 안에서 표현되신 것이다. 사람들은 아들 안에서 아버지를 보았고 접촉했다. 요한복음 14장 9절은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한다. 아들이 사람들 가운데 계실 때, 사람들 가운데 계신 분은 바로 아버지이시다. 둘째 개념은 아들이 가셔서 그분의 형체를 바꾸어 그 영이 되셔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개념은 그 영이 그분께 속한 우리 안으로 오시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분이 사실 때 우리도 산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살며 그분으로 인하여 산다.

그러므로 15장에서 우리는 다만 그러한 연합을 본다. 주님은 그분이 참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다음 16장에서 주님은 그 영이 어떻게 그분의 모든 실제를 우리 안으로 계시하시어 우리가 그 실제를 체험할 수 있고 그 실제 안으로 인도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신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이 장들에서 주님은 우리가 땅에서 생활하는 동안 기도해야 하고 또한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상에서 언급한 개념들에 근거하여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주님과 완전히 연합하고 그러한 연합으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나타나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 성경의 석 장이 필요하다. 이 세 장들을 철저히 이해할 때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은 하나님의 표현이고, 이 표현은 그 영이 되었으며, 그 영은 우리 안에 내주하고 있다. 우리가 삼일 하나님과 이러한 완전한 연합을 가질 때 우리의 생활은 그분의 생활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나타나신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 연합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시도록 허락하는 것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주님의 이름으로”를 모든 기도의 맨 끝에 사용해야 하는 하나의 어구나 형식으로 결코 생각지 말라. 때로 기도 끝에 “주님의 이름으로”를 붙이는 것이 필요 없을 때가 있다. “주님의 이름으로”를 붙인다고 해서 반드시 실제가 있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것을 붙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실제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의 문제이다. 진정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주님과 하나이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는 바로 주님의 구하심이다. 그는 그 둘이 하나가 됐을 정도로 주님과 연합되었다.

결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미신적으로 이해하지 말라. 나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예를 사용하여 그것을 설명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즉 당신이 한 부자에게 어떤 것을 요청했는데 그는 그것을 당신에게 주려고 하지 않는다. 후에 당신은 그가 그의 아들을 무척 사랑하는 것을 알고 그에게 가서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같은 것을 요청한다. 그 결과 그 부자는 그의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요청하는 것을 당신에게 준다. 이와 같이 죄인들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와서 어떤 것을 구할 때 그분은 우리에게 그것을 주시지 않을 것이나 우리가 그분의 아들의 이름으로 구할 때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사랑하시므로 우리에게 그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당신이 이렇게 “주님의 이름으로”를 이해하고 설명한다면 당신은 미신적이다. 사실 당신이 자신으로 구할 때 하나님이 당신을 거절하신다면 당신이 그분의 아들의 이름으로 구해도 하나님은 당신을 거절하실 것이다.

사도행전 19장에는 바울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을 미신적으로 모방하려고 했던 어떤 사람들의 사례가 있다. 결국 그 귀신은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고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라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의 몸을 상하게 했다(행 19:15). 이러한 방법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은 다만 미신적이다. 바울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낼 때, 그는 “나는 주 예수님과 하나이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이 “주님의 이름으로”의 의미이자 영적인 실제이다.


Ⅱ.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함

주님의 이름 안에 “있는”의 의미를 이해했으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란 기도하는 당신이 주님과의 연합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당신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주님은 당신과 함께 기도하신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가 기도했을 때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고 말할 수 없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것이 다만 우리의 기도였고 주님은 그렇게 기도하시지 않았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 끝에 우리는 “오 하나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실상 우리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고 주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실제 안에 있기 위해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때 주님도 우리 안에서 기도하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들이 엄청난 기도들임을 볼 수 있다. 주님은 심지어 그분이 하시는 일들을 우리도 할 것이고 우리가 더 큰 일들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또한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시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당신이 문맥을 따라 그 말씀들을 읽어 본다면 이 땅에서 사시던 주님이 이제 당신 안에 사시는 그 영이 되셨고 그분이 당신에게서 자신을 살아 내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생활의 과정에서 당신이 기도해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기도하는 동안 그분은 당신 안에서 기도하시고 당신은 그분 안에서 기도한다. 당신이 그러한 연합 가운데 그분과 함께 기도하고 그분이 당신과 함께 기도하실 때 당신은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체험이 있다고 믿는다. 기도의 초기 체험에 있어서 당신은 여러 가지 것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신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즉시 당신의 기도는 감소되었다. 당신이 진정으로 주님이 당신과 연합되시고 당신과 함께 기도하시도록 허락하기를 배울 때, 당신은 열 항목 중에서 겨우 세 항목만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나머지 일곱 항목들을 기도한다면 주님은 기도하지 않으실 것임을 안다. 당신은 구하겠지만 주님은 구하시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들이 기도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그들도 기도 끝에 “주님의 이름으로”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진정으로 알 때, 전처럼 자유롭게 기도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라고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당신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다만 형식이나 공허한 어구가 아님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반대로 그것은 어떤 사람이 주님 안에 살고 주님과 실제적으로 연합될 때 그의 기도는 주님이 그 사람 안에서 기도하시는 것임을 뜻한다. 그러한 연합 안에서 많은 기도들이 순수하게 된다.


Ⅲ.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의 삶

사실상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은 기도나 생명에 관한 것에 중점이 있지 않고 연합된 삶에 관한 것에 중점이 있다. 여기에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그들이 땅에서 하나의 간증이 되고, 그들과 삼일 하나님이 완전히 연합되었음을 간증할 수 있도록 그들을 분별시켰다. 이것이 그들의 삶이다. 주 예수님이 성경의 그 세 장들에서 되풀이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그러한 연합된 생활이다. 이 생활의 일부가 기도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그 뒷받침과 지탱이 되는 그러한 삶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실지로 그러한 생활의 일부분을 조성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기도의 문제일 뿐 아니라 한층 생활의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주님 안에 살고, 주님으로 인하여 살고, 주님과 연합하여 살고, 주님과 하나 된다면 자연적으로 그 사람 생활의 일부는 기도이다.

역으로 말해서, 당신이 주님으로 인하여 살지 않거나 주님 안에 살지 않는다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이 주님과 떨어져 살면서 그분께 구할 것이 있을 때, 당신의 이름이 그분 앞에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틀린 관념이다. 이것은 미신적인 생각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주님과의 연합 가운데 있는 생활을 요구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반드시 주님과의 연합 가운데 있는 생활의 일부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기도의 요구는 아주 높다. 그것은 어떤 기사(記事) 끝에 그것이 끝났음을 보이기 위해 어떤 이름을 기재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당신의 모든 일상적이고 실질적인 생활이 주님과의 연합 안에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배워야 한다. 당신은 그분의 영에 따라 행하고 그분의 영이 당신 안에서 사시도록 허락한다. 그러한 생활이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의 기초요 뒷받침이다. 그뿐 아니라 그러한 기도는 실지로 그러한 생활의 한 부분을 조성한다.

Ⅳ.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의 관계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에서 주 예수님은 주님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기도들임을 분명히 지적하신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것이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공과를 배울 때 우리는 기도하기 원하는 열 가지 사항 중에서 오직 두 가지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을 발견한다. 나머지 여덟 가지는 주님의 뜻이 아니므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기도할 수 없음을 우리는 깨닫는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참된 기도들은 확실히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거의 같은 것임을 볼 수 있다. 당신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동일하다. 당신이 주님 안에 살고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의 생활은 주님의 생활이다. 그러한 사람이 여전히 주님 밖에 있는 목표들이나 의향들을 가질 수 있겠는가? 물론 그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언급하거니와 기도에 관계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한 성경의 모든 구절들 중에서 이곳 요한복음에 있는 말씀보다 더 방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여기에서 주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루리라”고 말씀하신다(요 15:7). 어느 의미에서 이 약속은 실로 방대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기도는 또한 매우 좁은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에 언급된 기도는 주님 안에 있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한 면으로 당신이 무엇을 원하든지 당신에게 주어지리라고 말씀하지만, 다른 한 면으로 그러한 기도는 주님의 이름 안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 자신 안에 있을 때 당신에게 여러 가지 갈망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당신이 돌이켜서 주님의 이름 안으로 들어간다면 당신은 당신의 갈망들이 저지되고 간단히 구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수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남경(南京)에 갔을 때 어떤 형제가 나를 식사에 초대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아주 기뻐했고 식사 시간 동안 내내 계속 혼자서 말을 했다. 그는, “이 형제님, 이제 우리는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나는 이것에 관해 어떠한 느낌이 있고 저것에 관해 어떠한 느낌이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하고 싶고 또한 저것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계속 말했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수많은 것들을 말했고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을 위한 것들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내게는 그 형제가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다는 아주 깊은 느낌이 있었다. 그가 원했던 것을 주님은 원하시지 않았다. 그것들은 주님과 동떨어진 “그의” 원함들이었다. 어느 날 그가 주님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주님 밖에 있는 그의 모든 갈망들을 떠나야 함을 곧 깨달을 것이다. 그 사람 자신은 주님 안으로 들어올 수 있지만 그의 갈망들은 주님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여러분은 모두 내가 의미하는 바를 알 것이다. 당신이 주님 밖에서 살고 있을 때 여러 가지 갈망들을 가질 수 있다. 당신은 “나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것을 하시기를 원하고 나도 그분의 능력으로 그분을 위해 저것을 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당신이 주님 안에 살기를 배울 때 그 모든 갈망들은 주님 밖에 있으며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그러한 갈망들을 성취하실 길이 없다. 그때, 오직 그러한 때, 당신은 당신의 갈망이 하나님의 갈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요약해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만 하나의 진술이나 형식이 아니라 영적인 실제이며 주님과의 연합 가운데 있는 생활이다. 우리가 실제적으로 주님 안에 살고 주님과의 연합 가운데 있는 그러한 삶을 가질 때 자연스럽게 기도할 것이며 우리의 기도들은 확실히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것이다. 우리가 그분 안에 살고 그분이 우리 안에 사시도록 허락할 때, 그분은 우리를 통해 표현되실 것이다. 그 때 우리에게서 나오는 기도들은 하나님의 갈망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제한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가진다면, 우리 안에 있는 순수해진 갈망이 주님과 우리와의 연합과 우리와 주님과의 연합에서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의연하게 성취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의 기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들이다. (출처: 기도, 제2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