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십자가의 의미와 기능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그리스도
Hannah , 2009-03-10 , 조회수 (5415) , 추천 (0) , 스크랩 (0)

 

피와 십자가의 의미와 기능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 질문: 피의 의미와 기능 그리고 십자가의 의미와 기능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왜 성경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피를 흘렸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우리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만을 말하고 있는가?



답변: 어떤 사람이, 『죄는 하나님 앞에서 이미 제거되었는데, 왜 나에게는 여전히 죄가 있는가?』라고 물었다고 하자. 우리는 이 질문에 주의해야 하며, 이러한 의문을 해결해야 한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주님께서 피를 흘렸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며 또한 많은 곳에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피의 의미와 기능 그리고 십자가의 의미와 기능은 똑같은가? 서로 바꾸어 놓아도 무방한가? 예를 들어 히브리서 9장 22절의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십자가에 못 박힘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로 바꿀 수 있는가? 로마서 6장 6절의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이라는 말씀을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피를 흘린 것은』으로 바꿀 수 있는가? 만약 피의 의미와 기능 및 십자가의 의미와 기능이 서로 같다면 바꾸어 놓아도 무방하며, 만약 바꿀 수 없다면 반드시 그 말들은 서로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피의 의미와 기능이 무엇인가? 십자가의 의미와 기능은 또한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먼저 피에 대하여 살펴보자. 성경에서는 약 400여 곳에서 피를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은 왜 피를 요구하시는가? 하나님 앞에서 만약 피가 없다면 하나님은 그를 죽이실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레위기 17장 11절을 읽어보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이 구절은 피가 속죄를 위한 것임을 가장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어느 곳에서 속죄하는가? 그 장소는 제단이다. 피의 역사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다. 피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죄가 제거된 것으로 간주케 하는 것이지 우리 안에서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 일서 1장 7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였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질문한다. 그렇다. 그러나 피가 죄를 깨끗케 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의 깨끗케함을 지적하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구절 앞에서는 무어라 말하고 있나? 바로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라고 말하며 계속해서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깨끗케함이 하나님 앞에서의 깨끗케함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피의 기능은 완전히 하나님 앞에서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피를 요구하며 피가 우리를 하나님께 이끈다.

혹 어떤 사람은 『히브리서 9장 14절에서 그분의 피가 사람의 양심을 깨끗케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질문할 것이다.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깨끗케함은 죄의 본성을 깨끗케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깨끗케한다는 것이다. 죄의 본성은 피로 깨끗케 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피가 옛 본성을 깨끗케 한다는 말씀이 한 구절도 없으며 피가 육체를 깨끗케 한다고 말하는 구절이 한 구절도 없다. 피는 단지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죄를 씻는다. 피는 단지 우리의 양심을 깨끗케 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유를 갖게 한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가 있으면 죄는 용서받기 때문에 우리는 평안을 얻게 된다. 우리는 주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고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은 새롭고 산 길아다(히 10:19-20). 피를 하늘까지 가져가는 것이지 십자가를 하늘까지 가져갈 수 없다. 성경은 주 예수가 피를 흘렸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피를 흘리지 않았다. 피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며 우리의 죄를 없애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굳게 잡으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유함이 없는데 그것은 피가 사람 안의 죄를 깨끗케 한다고 생각하며 피의 기능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결코 피의 효능을 체험하지 못할 것이다. 요한 일서 1장 7절에서 말하고 있는 깨끗케 함은 피가 안에 있는 모든 죄를 깨끗케하며 죄의 근원까지 깨끗케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 앞에서의 깨끗케함을 말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피를 요구한다. 오직 주 예수의 피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때를 막론하고 모두 피를 의지하여 자유롭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당신의 죄가 크든 적든, 거칠든 우아하든, 또한 용서받을 수 있든 없든 하나님 앞에서 이 모든 죄는 모두 깨끗케 되었다. 이사야 1장 18절은,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같이 희어질 것이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죄의 자국과 죄의 흔적이 모두 없게 하여 마치 한번도 죄를 범하지 않은 것과 같이 만든다는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상황임을 지적한다. 비록 당신 안에 여전히 좋지 못한 것이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당신을 볼 때에 당신의 죄는 이미 제거되었다.

우리가 민수기 20장 2절부터 9절까지와 21장 4절부터 9절까지 읽어본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매우 좋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민수기 23장 21절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이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죄를 처리하는 데 있어 두 방면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 안에서임을 주의해야 한다. 피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깨끗케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에 불의한 것이 없게 한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칭의가 십자가로 인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칭의는 바로 피로 인한 것이다. 피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게 한다. 이 의미는 무엇인가? 이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 거하기에 합당한 의미이다. 주 예수의 피는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서 하나의 위치를 갖게 하는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한다. 당신은 피를 의지하여 담대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하나님은 피가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계신다!

레위기 16장 30절은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나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모든 죄들이 여호와 앞에서 정결케 되는 것이지 우리 안에서 정결케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피는 다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한다. 우리 안에서 피는 다만 우리의 양심을 정결케 하는 데에만 제한됨으로 우리로 하여금 죄(복수의 죄)가 있음을 느끼지 않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거리가 없게 해 준다. 피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범한 한가지 한가지 죄로 인하여 참소받는 것을 느끼지 않게 하나, 죄의 근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주님의 죽으심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한 것이며, 주님의 피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정결케 한다. 피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것이지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의 「세상 죄를 지고 가는」의 죄는 단수의 죄이며, 요한 일서 1장 7절의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의 죄도 단수의 죄로, 모두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죄의 문제」를 제거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29절의 『지고 가는』은 죄의 근원을 지고가는으로 해석할 수 없으며 요한일서 1장 7절의 『깨끗하게』도 죄의 근원을 깨끗하게로 해석할 수 없다. 이 두 곳의 성경 말씀은 주님의 피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였음을 말하고 있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가 제거되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십자가의 의미와 기능은 피의 의미와 기능과 다르다. 피는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는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피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였고, 십자가는 우리 옛사람을 해결하였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주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유를 얻게 하였고, 동시에 또한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타락한 자아를 처리하고 우리의 육체를 처리하도록 하셨다.

육체는 십자가로 처리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피가 깨끗케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아니다. 이 구절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말하고 있다. 깨끗케 하는 것으론 성공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여기 살아있는 어린아이와 하나의 흙 인형이 있는데 둘다 더러워졌다고 하자. 그 아이는 씻자마자 깨끗케 된다. 그러나 그 흙 인형은 어떻게 씻어도 깨끗하게 되지 않는데 그것은 그 인형의 안팎이 모두 흙이기 때문이다. 타락한 육체는 마치 흙인형과 같아서 주님의 피로 씻어도 정결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본성이 매우 나쁘다. 육체를 처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못 박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죄에 대하여는 피를 사용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며, 당신의 육체에 대하여는 십자가를 사용하여 그것을 못 박는 것이다. 당신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죄를 정결케 할 수 없고 또한 피로 말미암아 당신의 육체를 깨끗케 할 수 없다. 로마서 6장 6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서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혔다는 말은 죄의 몸이 멸절당했다는 말이다. 『멸하여』는 원문에서 누가복음 13장 7절의 『버리다』라는 단어와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멸하여』는 결코 죄의 몸을 없애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죄의 몸을 실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멸하여』는 『실직』으로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이 옛사람을 못 박자 마자 죄에 복종하던 육체가 무력하게 되었고,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되어 마치 일자리를 잃게 된 것과 같은 형세에 처하게 되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자신의 생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께 나를 대신하여 성화의 과업을 이루어 줄 것을 요청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이 이미 나를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이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하신 것을 믿는 것이다. 약속은 기도를 사용하여 얻을 수 있고, 사실은 단지 믿기만 하면 된다. 옛사람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이것은 이미 성취된 사실이다. 우리 옛사람은 이미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이 사실은 이미 성취되었으므로 단지 믿기만 하면 된다. 믿기만 하면 어떠한 시험도 우리를 만지지 못한다.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믿음으로 주님 안에 살고, 주님이 성취한 사실 안에 사는 것이다. 만약 이 사실로부터 떨어져 있다면 더이상 전진할 수 없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내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피를 흘렸다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형편없는 내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피가 죄를 처리하며, 십자가가 육체를 처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야야 한다. 피는 우리로 하여금 용서를 얻게 하고 범죄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반면,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해방을 얻게하고, 죄의 능력으로부터 벗어나 죄의 능력 아래 있지 않게 한다. 피는 구원에 관한 문제이며, 십자가는 이기는 것에 관한 문제이다. 피는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죄를 해결하며, 십자가는 당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다. 당신이 피를 믿듯이 또한 그와같이 십자가를 믿어야 한다. 당신이 매일 이와같이 하면 문제가 없다.


로마서 6장 11절은,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13절은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하나는 날마다 11절 말씀에 굳게 서서 자신이 이미 죽었고 죄의 몸은 이미 실직하였다고 믿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충분히 드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실족할 것이며, 하나님이 당신으로 하여금 하라고 한 것을 당신이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넘어질 것이다. 우리는 한방면으로 또다른 한 방면을 순복해야 한다. 이미 성취된 것을 믿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에 순복하면 자연히 승리하게 된다. (워치만 니 전집 제1집 제20권, 질문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