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원칙
하나님
Hannah , 2009-03-10 , 조회수 (4225) , 추천 (1) , 스크랩 (0)

 

안식일의 원칙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안식일에 관하여, 특히 일곱 번째 날을 안식일로 지켜야 하는지 여덟 번째 날을 안식일로 지켜야 할지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제칠일 안식교도들은 일곱 번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을 주장한다. 사실상 안식일의 원칙은 지키는 날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안식일의 원칙은 주님과 함께 일하면서 우리가 그분과 함께 안식하는 법을 배우기를 요하는 것이다.


안식일의 의미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의 의미가 단순히 일을 중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일의 참 의미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창세기 2장 2절은,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고 말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께는 안식일이 일곱째 날이지만 사람에게는 그것이 첫째날이다. 엿새 동안 하나님은 하늘들과 땅과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모든 것들이 다 만들어진 후인 여섯째날에 사람이 창조되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손으로부터 나오자마자, 하나님께는 일곱째 날인 그날이 사람의 첫째날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일곱째날은 사람에게는 첫째날이었다. 이 의미는 하나님께 안식일은 일을 마치신 후의 안식이지만 사람에게는 안식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일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엿새 동안 일하셨고 그 다음 일곱째 되는 날에 안식하셨다. 그러나 사람은 첫째날에 안식했고 그 후에 일하기 시작했다.


신성한 원칙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림을 가질 때까지 우리에게 일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신성한 원칙이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누림으로 공급하신다. 그분과 함께 그분의 누림으로 충만한 후에야 우리는 그분과 함께 일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누림을 갖고 하나님 자신을 누리는 법을 모른다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법을 모를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신성한 일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법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문제를 강조했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하나님으로 일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 계시하는 바에 따르면 다만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분의 일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우리는 그분을 누려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누리고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법을 모른다면 우리는 그분과 함께 일하는 법을 알지 못할 것이고 그분의 일 안에서 어떻게 그분과 하나가 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이런 원칙의 매우 좋은 실례가 신약 안에 있다. 사도들의 신약 사역은 그들이 오순절 날에 가졌던 누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제자들은 엿새 동안 일하지 않고 오순절 날에 주님을 누렸다. 실지 상황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으로 입히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성령으로 채워졌을 때 그들이 무엇으로 채워졌겠는가?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은 주님에 대한 누림으로 채워졌다.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들을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그들은 하늘에 속한 술의 누림으로 충만했다. 그들은 이러한 누림으로 충만되고 난 후에야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방법이요 그분과의 하나 안에서 일하는 방법이다. 베드로가 사도들과 함께 서서 복음을 전파함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있을 때 그들은 모두 그분의 일 가운데서 하나님과 하나였다.

오순절날은 그 주의 첫날이었다. 오순절은 칠 주간, 또는 사십 구일의 이튿날인 오십일째를 가리킨다. 우리는 레위기 23장으로부터 오순절이 첫이삭을 드린 후 오십일째의 날임을 알고 있다. 이것은 오순절이 여덟 번째 주의 첫날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있어서 우리는 첫째 날의 원칙을 보게 된다.

안식일은 언제나 사람의 첫째 날이다. 구약에 따르면 안식일은 사람의 첫째 날이었다. 마찬가지로 신약에 따라 여덟 번째 날, 사람의 안식의 날은 또한 첫째 날이었다.

구약의 원칙에 따르면 사람의 안식의 날은 하나님의 일을 완성한 후에 온 날이다. 사람은 자신의 일을 끝마친 후에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완성한 후에 안식하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일하시고 사람은 누린다. 사람은 하나님이 성취하신 일 가운데서 누린다.

사람은 창조되자마자 숨쉴 공기와 마실 물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공기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둘째 날에 이미 광활한 대기권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또한 사람을 위해 물과 음식물을 준비하셨다. 이러므로 일곱째 날은 하나님에게 안식의 날이다. 그분은 사람이 언제라도 누릴 수 있도록 엿새 동안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놓으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손으로부터 나왔을 때 사람의 첫 날은 하나님의 일곱째 날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누림을 갖고 하나님과 함께 살았고 하나님과 함께 행했으며 결국 언제라도 하나님과 함께 일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를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창 2:15). 아마도 아담은 그의 첫날에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린 후 또 다른 엿새 동안 동산을 지키는 일을 했을 것이다. 그 다음 그의 여덟 번째 날에 그는 또 다른 첫 날로 다시 하나님과 함께 안식했다. 이것은 안식하는 것과 일하는 것의 간격을 두고 계속하여 반복되는 하나의 순환이다. 하나님은 일하고 안식하는 것이며, 사람은 안식하고 일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막과 기구에 관하여 계시를 주신 다음 건축자들을 택하셔서 모세에게 그들에 관하여 책임을 맡기신 후 계속하여 안식일을 반복해 말씀하신다. 마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나의 안식일을 잊지 말아라. 너희는 자신의 일에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핑계하지 말라. 너희는 나의 처소를 건축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쉴새없이 날마다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다. 성막을 건축하는 일인 나의 거룩한 일에서 조차도 너희는 너희가 나의 백성이고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를 여전히 지녀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나를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 너희는 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나와 하나 됨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일하는 능력과 수고의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스스로 일한다면 그것은 나를 모독하는 것이 될 것이다. 너희는 나와 함께, 나로 말미암아, 나와의 하나 안에서 나의 거처를 건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 만일 너희가 이처럼 일한다면 나는 매우 기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내 곁을 떠나 너희 스스로 나를 위해 선한 일을 도모한다면 그것은 사탄의 백성임을 표시하는 것이므로 나를 모독하는 것이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 너희는 너희의 누림과 능력과 힘이 되는 나를 필요로 한다는 표시를 지녀야 한다. 너희는 나를 위하여 일할 수 있기 위하여 너희의 모든 것이 되는 내가 필요하다. 너희가 이처럼 일하는 것이 나를 경외하는 것이고 나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가 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시를 지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라는 표시


우리 모두는 안식일에 관하여 기본적인 공과를 배울 필요가 있다. 젊었을 때 나는 다른이들과 여덟 번째 날이나 일곱 번째의 날 중 어느날을 안식일로 지킬 것인가에 관하여 토론했다. 지금 나는 그런 류의 토론이 전적으로 낭비라고 말하곤 한다. 안식일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 전에 하나님을 누리고 그분으로 충만되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누림이 있고 하나님으로 충만되 있다면 우리는 그분을 위해 일할 준비를 갖춘 것이다. 그러한 일은 우리의 힘으로 말미암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을 것이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베드로가 서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는 혼자의 힘으로 전하지 않았다. 그는 그를 충만히 채운 바로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말씀을 전했다. 복음을 전하고 있는 중에 베드로는 공허하지 않았다. 그는 충만된 하나님에 의해, 충만된 성령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가 하나님의 동역자인 표시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복음 전파는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일한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나타내는 표시가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누리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지도 않으며 하나님과 함께 일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표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상황은 전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지닌 표시는 무엇인가? 그 표시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고 하나님을 누리며 먼저 하나님으로 채워지고 난 후에 우리를 채우신 바로 그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으로서 일한다.


나는 말씀을 전하려고 일어설 때마다 나의 유일한 기도는 나의 말함 속에서 주님과 하나 되고자 하는 것임을 간증할 수 있다. 나는 거듭거듭 이렇게 기도한다. 『주여, 나의 말하는 가운데 당신과 한 영 됨을 실행하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말은 당신의 말이 될 것입니다. 주여, 나의 말 속에서 당신이 말씀하셔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나와 하나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공허한 자신 안에서는 결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께 모독과 모욕이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말할 뿐 아니라 당신과 하나 됨으로 인하여 말할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동안 듣는 사람들은 반드시 감명을 받을 것이며 그때에 당신은 나와 하나이십니다. 주여, 나의 말은 내가 당신과 한 영인 내 편에서의 실행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또한 당신이 나와 한 영이신 당신 편에서의 실행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처럼 말한다면 그것은 주님께 존귀와 영광이 될 것이다. 이것이 안식일의 표시이다. 언제나 나는 말할 때 나의 주님이 나의 안식일이신 표시를 지니려고 한다. 그분은 나의 안식이고 나의 회복제이시며 나의 힘과 능력이시며 말씀을 전하기 위한 모든 것이시다.


출애굽기 31장 12절부터 17절까지에서 우리는 성막의 건축자들이 주님과 함께 쉬어 신선케 되기까지는 일을 시작하지 말아야 했음을 본다. 그다음에야 그들은 그분을 위하여 그분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일은 끊임없이 계속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일은 수고하는 엿새와 안식하는 하루의, 간격 있는 일이 되었다. 매 간격에서 시작은 안식의 날이며 그 뒤에 일하는 엿새가 이어진다. 그 다음에는 안식과 함께하는 시작과 일로 계속되는 또 다른 간격이 있게 된다.

우리는 안식일이 하나님께는 일곱째 날이며 사람에게는 첫째 날임을 강조했다. 하나님은 사람의 누림과 안식을 위해 일하셨고,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그분의 역사 가운데 이루어 놓으신 것을 누렸다. 사람은 그의 첫날에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성취해 놓으신 것을 누렸다. 그 후에 사람은 엿새 동안 하나님과 함께 일을 했다. 엿새 동안 일한 후에 사람은 다시 처음 누렸던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누리고 또다시 엿새 동안을 일했다. 이 과정들은 하나의 순환과도 같다. 이 순환은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라는 표시이다.   (출애굽기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