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과 징계의 문제
왕국
Hannah , 2009-03-10 , 조회수 (4252) , 추천 (0) , 스크랩 (0)
 

 

상과 징계의 문제

 


> 두 주요 교리의 학파

이 점에서 우리는 두 주요 교리의 학파-칼빈주의 학파와 알미니안 학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칼빈주의 학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과 예정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 학파에 따르면 일단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시고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더 이상 문제가 없으며, 일단 우리가 구원받았으면 우리의 구원은 영원토록 안전하다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우리가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요한복음 10장 28절부터 29절에 있는 주님의 말씀의 강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구절들에 따르면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멸망할 수 없다. 의심할 바 없이 칼빈주의는 일단 우리가 구원받으면 우리가 영원토록 구원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성경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이 우리가 영원히 구원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들이 없을 것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너무 지나쳐 나간 것이다. 우리가 구속받고 거듭났다는 것을 아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우리는 구속받고 거듭났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어떤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아이는 가장 어리석은 아이다. 그렇다. 우리는 거듭났지만 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사람이 다시 멸망할 수 있다고 믿는다. 히브리서 6장과 같은 말씀을 사용하여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하늘에 속한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된 사람들이 떨어질 수 있으며, 회개할 기회가 없을 것이며, 그들이 멸망하는 것을 의미하는 불살라진 땅과 같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히브리서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 경고들을 포함하고 있다.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나 벌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형벌, 즉 다시 멸망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오용하고 있다. 그들은 이 말씀들을 구원받은 사람이 다시 멸망할 수 있다는 그들의 가르침을 지지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
칼빈주의자들은 이 부분의 말씀을 그들의 가르침과 조화시킬 수 없으므로 여기에 언급된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된 사람이 거짓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엉뚱한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그들이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들이나 또는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징계에 관한 성경 말씀을 조화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왕국 안에서의 상과 징계의 문제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왕국 안에서의 상과 징계에 대한 이 문제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사이의 다리이다.

상과 징계의 문제

이제 성경적인 관점으로 이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가 영원히 선택되고, 일단 구원받고, 거듭나고, 영원한 생명을 받은 한 우리는 결코 멸망할 수 없다. 영원한 생명이 우리를 지킬 것이다. 두 전능한 손, 곧 주님의 손과 아버지의 손이 우리를 잡아주실 것이므로 우리는 결코 멸망당할 수 없다(요 10:28-29).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죄를 범해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하여는 오늘날 혹은 오는 시대에 벌을 받거나 징계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만일 그분의 자녀들이 죄를 범하거나 그분의 뜻을 관심하지 않으면 그들은 벌과 징계를 받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 시대에서 그분의 뜻을 관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오는 왕국시대에서 상인 왕권을 놓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오는 왕국 안에 있게 될 누림은 어떠한 것인지! 추수의 안식! 그것은 현재의 자라는 안식보다 더 나은 것이다. 오늘날 교회 생활의 자라는 안식은 우리를 오는 왕국 안에 있는 추수의 안식 안으로 인도하는 수단이다. 만일 우리가 교회 생활 안에 있는 오늘의 안식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오는 왕국 안에 있는 다음 안식을 놓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부주의하고 죄를 범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다시 멸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서 6장은 이것을 입증한다. 7절과 8절은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고 말한다. 땅은 채소나 또는 가시를 산출할 것이다. 가시는 불사르게 되지만 땅은 여전히 남아있어 해를 당할 것이다. 이와 같이 믿는이들은 결코 멸망할 수 없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맺지 아니한 모든 것들은 불사름이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행한 것은 무엇이든 불살라질 것이지만 이것이 우리가 멸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고린도전서 3장 12절부터 14절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라』. 믿는이들은 하나님의 농장이다(고전 3:9). 우리가 기른 것이 나무나 풀이나 짚이라면 그러한 것들은 불사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사역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라면 우리는 보상으로 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의 공력이 타버린다면 그는 해를 받을 것이나 이것은 그가 그의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나 자신은 구원을 얻되 불을 통과하여 얻은 것 같으리라』. 이 구절은 매우 분명하다. 구원받은 사람이 해를 받을 수는 있으나 그의 구원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불을 통과하여 구원을 얻은 것』 같을 것이다. 당신은 『불을 통과하여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만일 당신이 나에게 여기에 있는 불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나는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35 년 전에 어떤 나이든 그리스도인 친구가 나에게 따지며 말했다. 『어떻게 구원받은 사람이 여전히 불을 통과하여 구원된단 말입니까?』 『나는 모르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여기에서는 분명히 불에 의해서가 아니라 「불에 의한 것같이」 또는 「불을 통과한 것같이」라고 말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에 또 다른 나이든 형제가 말하기를, 『그것이 「불에 의한 것같이」로 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당신으로 하여금 해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 불이 어떤 불이든지 간에 내가 아는 것은 그것이 좋지 않다는 것이며, 나는 그것을 체험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3장의 이 말씀을 갖고 있는 한 우리는 구원받은 이상 모든 것이 괜찮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괜찮지 않을 수가 있다. 우리의 공력은 타버릴 수 있으며 우리는 『불을 통과한 것같이』 구원받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이러한 방법으로 전파하는 것을 듣고서 내가 천주교의 연옥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말하며 나를 정죄했다. 고린도전서 3장을 그 근거로 사용한 천주교의 연옥에 대한 가르침은 순수한 말씀과는 매우 다르다. 천주교의 연옥에 대한 관념에 따르면 만일 당신이 죄를 짓고 죽으면 어떤 친척이 천주 교회에 얼마의 돈을 지불함으로 당신이 연옥에서 보내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가르침은 마귀적인 것이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순수한 말씀으로부터 나온 순수한 진리이다.

고린도전서 3장은 우리가 합당하게-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인 금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인 은으로, 성령의 역사인 보석으로-건축해야 함을 말한다. 우리는 아버지의 본성과 아들의 구속과 성령의 변화의 역사를 따라 건축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육과 자아와 세상적인 방법을 따라 건축한다면 그것은 나무와 풀과 짚이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금과 은과 보석으로 건축한다면 당신은 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건축한다면 당신은 해를 입게 될 것이지만 구원은 받을 것이다. 이것은 칼빈주의도 알미니안주의도 아닌 성경의 순수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구원에 대하여 상을 얻거나 또는 해를 받는 문제가 있다. 오직 상을 받는 사람들만이 오는 안식인 추수의 안식에 참여할 수 있다. 상을 얻는 사람들은 천년 왕국에서 더 나은 안식을 누릴 것이며, 해를 받고 불을 통과한 것같이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 안식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위한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며 적극적으로 전진해야함이 얼마나 필요한지! 구원에 더하여 높은 부르심의 상이 있으며, 이것은 오는 왕국 안에 있는 추수의 안식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푯대요 목표이다. 만일 우리가 이 목표에 달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교회 생활을 통과해야 한다. 교회 생활은 우리가 이 목표에 달할 수 있는 길이다. (히브리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