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란?
새예루살렘
Hannah , 2009-03-10 , 조회수 (6092) , 추천 (0) , 스크랩 (0)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란?

 

 

성경에서 가장 비밀스럽고도 당혹케 하는 항목인 새 예루살렘은 계시록 21장에서 먼저 언급되지 않고 갈라디아서 4장에서 먼저 언급된다. 갈라디아서 4장 26절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땅에 속한 예루살렘과 대조되는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을 말한다.

A. 새 언약을 대표함
갈라디아서 4장 22절부터 26절까지의 바울의 말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새 언약을 대표한다. 이 구절들에서 땅에 속한 예루살렘과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에 해당되는 두 여인은 두 언약을 상징한다. 바울은,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말한다. 24절에 언급된 두 언약 가운데 하나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언약으로 신약, 곧 은혜의 언약과 관계되고, 다른 하나는 모세와 관련된 율법의 언약으로 신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되는 자유하는 여자 사라는 약속의 언약을 대표하며,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되는 종인 하갈은 율법의 언약을 대표한다.

25절에서 바울은, 「지금 있는 예루살렘」을 말한다. 하나님이 택하신 곳인 예루살렘은(왕상 14:21, 시 48:2, 8) 사라로 대표되는 약속의 언약에 속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율법의 속박 아래로 가져오기 때문에 그것은 하갈로 대표되는 율법의 언약에 속하는 시내 산에 해당된다. 그 반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약속의 언약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문맥에 따르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새 언약을 대표한다.
B. 은혜로 말미암아 신약의 믿는이들의 어머니로 그들을 낳음
갈라디아서 4장 26절에서 바울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유대교도들의 어머니는 땅에 속한 예루살렘이지만, 믿는이들의 어머니는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으로 결국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계 21:1-2). 그녀는 율법 아래 있는 종들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는 아들들인 신약의 믿는이들의 어머니이다. 신약의 믿는이들인 우리는 모두 위로부터 그녀에게서 태어났다.

1. 아들들로 구성됨
계시록 21장에 따르면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아내요(2, 9-10절), 또한 하나님의 장막, 그분의 처소(3절)가 될 것이다. 계시록 21장 7절은, 그리스도의 아내가 아들들로 구성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아내인 새 예루살렘의 구성 요소들이다. 우리가 새 예루살렘의 구성 요소들이며 또 위에 있는 예루살렘인 새 예루살렘이 우리의 어머니이므로 아들들인 우리는 어머니의 구성 요소들이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아내요, 우리의 어머니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며 다른 한편으로 이 어머니는 아들들인 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2. 아브라함이 바라보던 성
믿는이들의 어머니는 아브라함이 바라보았던 성이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 11:10). 이 성은 히브리서 12장 22절과도 일치되는데 이는 우리가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 곧 그리스도의 아내요 그녀에게서 난 하나님의 아들들로 구성된 신약의 믿는이들의 어머니에게 이르렀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아내는 아브라함이 기다렸고 우리가 이른 성이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유형의 물질적인 성을 기다리지 않았다. 물질적인 성은 그리스도의 아내나 믿는이들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 더욱이 물질적인 성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모든 구원받은 자들로 구성될 수 없다. 새 예루살렘, 곧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물질적인 실체라면 어떻게 이 성이 그녀의 자녀들인 우리를 낳을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를 낳은 어머니가 실질적인 금, 진주들 및 보석들로 건축된 물질적인 성이 될 수 있는가? 그것들은 유기적이지 않으며 아무 것도 산출할 수 없다. 우리는 유형의 물질적인 의미로 새 예루살렘을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영적인 실체이기 때문이다. 천연적이고 무지한 생각, 곧 충분한 성경 지식이 결여된 생각만이 새 예루살렘을 이렇게 이해한다. 우리 생각이 빛비춤받고 새로와졌다면, 또 우리가 영적으로 충분히 교육을 받았다면, 우리는 새 예루살렘이 물질적인 실체라는 그릇된 이해를 갖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의 아내요, 신약의 믿는이들의 어머니인 새 예루살렘이 영적인 실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영원 과거에 하나님은 그분의 선한 기쁘심을 따라 계획을 가지셨다. 신약에서 이 계획은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불리운다. 그분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은 하늘들과 땅, 그리고 무수한 항목들을 창조하셨다. 그런 다음 그분은 그분의 창조의 중심인 사람을 창조하셨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이 그분의 표현이 되고 그분의 대표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그 다음 사람은 모든 피조물들, 특히 땅에 있는 것들을 다스릴 통치권을 받았다.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사람은 원수에게 속아 그의 상태가 소망이 없게 될 때까지 거듭거듭 타락했다. 어떤 의미에서 바벨 이후 하나님은 사람을 버리셨지만 그분이 이렇게 하신 것은 전혀 아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여 새로운 족속의 머리, 아버지가 되게 하셨다. 성경에서 이 새로운 족속은 선택된 족속으로 간주된다. 아담은 하나님이 버리신 피조된 족속의 머리였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의해 택함받은 새로운 족속의 머리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새로운 족속의 아버지가 되도록 택하신 것은 새 예루살렘과 관계되며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관련된다. 아브라함을 택하실 때 하나님의 의도는 단지 타락한 사람을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상태대로 회복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브라함을 택하시는 데 있어서의 하나님의 의도는 그분의 경륜을 수행하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경륜은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는 것이요,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택하시는 데 있어서의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을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그 원래의 상태대로 회복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아들들을 낳으시려는 것이었다. 첫단계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모든 것은 이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3.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문제
많은 아들들을 낳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목표는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취된다.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의 관념과는 달리 하나님의 은혜는 분에 넘치는 호의만이 아니다. 신약의 신성한 계시에 따르면, 은혜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의 누림을 위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 자신으로서, 이 누림은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들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요한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우리는 바로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었으며(1, 14절) 그 은혜는 그분과 함께 왔다(17절)는 것을 본다. 이것은 그분이 은혜로 오셨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1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분이 택하신 사람들에게 영접되기 위하여 은혜로 오셨다. 12절과 13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말한다. 그분을 믿고 영접한 자마다 그분에게로 나 그분의 자녀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택하신 백성들에게 은혜로 주심으로써 많은 아들들을 낳으신다.
은혜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또 다른 구절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과 고린도 전서 15장 10절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바울은,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한다. 고린도 전서 15장 10절에서 그는,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들을 함께 둘 때, 은혜는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 자신임을 가리킨다. 따라서 은혜는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기 위하여 그분의 택한 백성들에게 주어진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분은 많은 아들들을 산출할 의도로 그를 부르셨다. 이 아들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분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것을 믿는 데 있어서 그분께 동의해 주기만을 바라셨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었으며 그의 믿음은 하나님께 의로 여겨졌다.『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여기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가르침에 대한 근거를 갖는다. 바울은 신약에서 이러한 기본적인 가르침을 설명했다(롬 3:21-31, 갈 3:6-9). 하나님의 의도는 그분이 택한 백성들 안으로 자신을 은혜로 분배함으로써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시려는 것이었다. 적어도 어느 정도로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알려졌으며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믿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 여겨졌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후사를 갖게 될 것임을 약속하셨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에서 아브라함은 사라로 말미암아 아이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사라의 여종 하갈로 말미암아 아이를 갖자는 사라의 제안을 따랐다. 하갈은 아들을 낳았으며 그는 이스마엘이라 불리웠다. 아브라함이 하갈로 말미암아 자녀를 갖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으므로 그분은 십 삼 년 동안이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 주님이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분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창 17:1-2). 주님은 그분의 은혜로 아브라함이 아들을 산출할 것임을 그에게 가리키셨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스스로 행했던 것은 육신에 속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것은 하나님에 의해 정죄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했다(18절). 그럴 때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19절).
창세기 18장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서,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10上). 이것은 이삭을 낳는 것이 주님의 오심이 될 것임을 가리킨다. 이것은 마리아가 삼일 하나님의 오심인 예수를 낳은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결국 사라는 이삭을 낳았다(창 21:1-3).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고 하시면서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셨다(창 21:12).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결코 아브라함의 후사로 인정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삭을 유일한 아들로 여기셨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유일한 아들인 이삭은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천연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태어났다. 이삭의 산출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문제, 즉 그분의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시기 위해서 그분이 택하신 백성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주시는 문제였다. 그 반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천연적인 능력과 힘에 의해 산출되었다.
이제 창세기에 있는 아브라함의 체험의 빛 안에서 갈라디아서 4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장에서 바울은, 하갈이 땅에 속한 예루살렘으로 상징된 율법을 의미하며 사라는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으로 상징된 은혜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갈과 사라는 두 언약-율법의 언약과 은혜의 언약-을 대표한다. 율법은 무엇인가를 산출하기 위한 사람의 능력과 사람의 노력에 속한 문제인 반면, 은혜는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기 위하여 그분의 택한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 자신이시다.

아브라함에게 율법의 언약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었다. 율법의 언약은 더해진 어떤 것이다. 그것은 원래의 언약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신 원래의 언약은 은혜의 언약이었다. 이 언약 안에는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기 위하여 사람의 능력이나 수고가 필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이 언약은 신약과 같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이 사실상 신약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신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의 연속이다. 이삭, 야곱, 모세, 다윗과 같은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들 모두는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이 언약 아래 있었다. 그들은 율법의 언약 아래 있지 않았다. 비록 율법의 언약이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졌다 할지라도 그 자신은 그 언약 아래 있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세는 은혜의 언약 아래 있었다. 율법의 언약은 하나님을 위하여 아무것도 산출할 수 없다. 이 언약은 「이스마엘들」을 낳을 수 있을 뿐이다.
신약은 아들들을 산출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은혜의 언약의 완전한 연속이다. 이 언약으로 말미암아 산출된 아들들 중 첫번째가 아브라함 자신이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사람들의 조상이다(롬 4:11). 그러나 이 조상은 은혜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산출된 첫번째 아들이었다. 구약의 다른 아들들은 야곱, 다윗, 예레미야를 포함하지만 에서는 포함하지 않는다.

계시록 12장 1절에는 우주적인 빛나는 여자, 곧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쓴』 여자에 대한 이상이 있다. 이 여자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의 총체이다. 창세기 37장 9절에서 요셉은 꿈 속에서 해와 달과 열 하나의 별들을 보았는데 그것들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열 한 명의 형제들을 의미한다. 거기서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에 더해진 요셉 자신은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전체적인 구성을 의미한다. 그 꿈의 원칙에 근거하여 계시록 12장 1절에 있는 해와 달과 열 두 별들은 여기서 여자로 상징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총체를 의미한다. 이 여자는 세 시대-별들인 열조들의 시대와, 달인 율법의 시대와, 해인 은혜의 시대-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총체는 먼저 별들인 열조들과, 다음에는 달인 참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해인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계시록 12장에 따르면 우주적인 여자는 또한 한 아들, 곧 사내아이를 산출할 것이다(5절).
하갈이나 사라는 모두 한 아이를 낳았다. 옛 언약, 곧 율법의 언약을 의미하는 하갈은 부당한 아이-이스마엘-를 낳았고, 새 언약, 곧 은혜의 언약을 의미하는 사라는 합당한 아이-이삭-를 낳았다.

우리는 사라가 위에 있는 예루살렘과 새 언약, 곧 신약을 의미함을 보았다. 이것은 새 예루살렘이 새 언약임을 가리킨다. 새 예루살렘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새 언약이다. 한편으로 새 예루살렘은 새 언약이며, 다른 한편으로 새 언약은 새 예루살렘을 산출한다. 이것이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이며, 아브라함이 바라보고 기다렸던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22절부터 24절까지는,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4장에 있는 우리 어머니인 여자는 새 언약이다. 우리는 새 언약 아래서 태어났으며, 위로부터 내려온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이다. 이 여자는 새 언약이며 우리의 어머니이고, 우리 어머니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히브리서 12장에서 우리는 믿는이들인 우리로 구성된 교회에 이른다. 따라서 교회에 이름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게 이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회이고 교회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교회는 하나이다. 갈라디아서 4장의 우리 어머니인 새 예루살렘에 있어서도 원칙은 동일하다. 그 여자는 아들들이고 아들들은 어머니이다. 더 나아가서 어머니는 은혜이고 은혜는 어머니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은혜에게서 은혜로 말미암아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 어머니는 또한 새 언약이며 새 언약은 어머니이다. 결국 새 언약은 거룩한 성, 곧 위로부터 내려오는 예루살렘이기도 하다.

결국 어머니, 곧 위로부터 내려오는 예루살렘은 아버지와 하나이다. 아버지는 은혜를 주는 분이고 은혜는 언약이며, 언약은 성, 곧 우리 어머니인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다. 어머니에 의해 산출된 아들들은 어머니의 구성 성분들이며, 어머니는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와 하나가 된다. 즉, 아버지로부터 나와 그 목적지인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출처: 신약의 결론-새 예루살렘 제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