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의와 하나님의 의의 차이점
하나님
Hannah , 2009-03-10 , 조회수 (4384) , 추천 (0) , 스크랩 (0)

 

우리의 의와 하나님의 의의 차이점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의 생명과 인격과 모든 것으로 우리 안에 분배하시는 하나의 경륜, 영원한 계획을 갖고 계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람은 창조된 후에 타락했다. 타락함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위반했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의에 따라 정죄받았다. 이제 타락한 죄인인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정죄의 문제가 있게 되었다. 모든 죄인들,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의를 어김으로써 정죄 아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정죄를 말소하는 하나님의 칭의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칭의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정죄를 말소할 다른 방법이 없다.

구약 아래서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의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의 의는 하나님의 칭의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롬 9:31, 10:3). 하나님의 칭의는 최고의 표준, 즉 하나님의 의의 표준에 따른 것이다. 바울은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의로 우리에게 주셨다고 명백히 말한다. 고린도 전서 1장 30절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넣으시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되도록 하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대한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의 첫번째 항목은 하나님의 의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를 세울 필요가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그렇게 하기란 불가능하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의를 세울 수 있을지라도, 그 의는 하나님의 의의 표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의는 황토와 같은 반면에, 하나님의 의는 빛나는 금과 같다. 우리 의의 표준은 너무나 낮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의를 하나님께 가져간다면, 그것은 하잘것 없는 것이 된다. 이것이 성경에서 어떤 육체, 즉 어떤 타락한 사람도 율법을 지키는 자신의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이다(롬 3:20). 우리가 무엇을 하든, 율법에 따라 아무리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요구에는 부응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칭의의 표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의만이 그러한 정도에 이를 수 있다.

구약은 우리에게 좋은 예시를 주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는 것으로서, 사람의 의는 하나님의 칭의의 표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우 참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의를 예표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얻을 것이며, 이 아들이 땅 위의 모든 열방에게 축복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 15:3-5, 18:10, 14, 22:18). 그러나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그녀의 하녀 하갈에게서 아들을 낳을 것을 제안하였고, 아브라함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창 16:1-4上, 15절). 그러한 방법으로 아브라함이 낳은 것은 이스마엘이었는데, 그는 하나님께 거절당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셨다(창 21:10-12). 따라서, 아브라함이 산출한 것은 계산되지 못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것만이 계산되었다. 창세기 15장 6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그의 믿음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는 이 두 아이―이스마엘과 이삭―를 비교함으로써 볼 수 있다. 이스마엘은 확실히 하나님의 의에 부합되지 않았다. 오직 이삭만이 하나님의 의에 부합되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의와 동등한 그러한 아들을 얻을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믿음에 의한 것이었다. 사도 바울도 동일한 것을 말했다. 그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롬 10:3, 빌 3:9). 그것은 이스마엘을 산출할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갈망으로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분에게서 무엇인가를 받을 것이며, 그 무엇은 오늘날의 이삭이신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요,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의이며, 이것은 결국 축복이 된다. 오늘날 하나님의 의도는 그리스도 안에 체현된 그분 자신을 만유로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을 먼저 우리의 의로, 그 다음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의 인격으로, 우리의 만유로, 마지막으로 우리의 기업으로 받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신 바 된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하나님의 의로서 그리고 우리의 대치물로서 그리스도는 죽으셔야만 했다.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대신하는 죽음을 죽으실 것을 요구하며, 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셨다. 그분은 죽으시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이 그분을 기념하며 그분을 누리도록 만찬을 세우셨다. 만찬을 세우실 때, 그분은 잔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피를 수반한 하나님의 의의 사상과 연결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이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은 하나님의 칭의와 동등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실 때,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시며,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실 때, 그분은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 주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용서함 또는 이 칭의는 완전히 그리스도의 죽음에 근거한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의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킨다.(출처: 이사야 라이프스타디 메시지 47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