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멸망인가? 상과 벌인가?
왕국
Hannah , 2009-03-10 , 조회수 (3645) , 추천 (0) , 스크랩 (0)

 

 

구원과 멸망인가? 상과 벌인가?

 

 

 

요 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히 10: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영원한 형벌이 아닌 경륜적인 징계


『영원한 형벌이 아닌 경륜적인 징계』에 대한 이 메시지는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중요한 기초이다. 경륜적인 징계라는 용어를 다른 기독교 서적이나 메시지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경륜적인 징계와 영원한 형벌에 대한 문제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 용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신약에 따르면 이 두 가지는 전혀 서로 관계가 없는 분명히 다른 두 가지 일이다. 영원한 형벌이 믿지 않는 이들에 관련된 것인 반면 경륜적인 징계는 믿는이들에 관련된 것이다. 이 두 가지 일들을 혼동함으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이 발생해 왔다.

오늘날의 기독교에는 구원에 대해 중요한 두 학파가 있다. 한 학파에서는 구원이 영원한 것이라고 말한다(요 10:28-29). 이 학파에 따르면 일단 우리가 구원받았으면 우리는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며, 구원받은 후 우리가 행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구원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학파는 만일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주의하지 않으면 구원을 다시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학파에 속한 대부분의 소위 성결한 교회들은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더라도 거듭거듭 잃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의 구원은 엘리베이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구원에 대한 관념을 「엘리베이터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언뜻 보기에는 「엘리베이터 구원」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도 어떤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마치 시력이 약한 사람들이 「C」자를 「G」자로 잘못 보는 것과 같다. 그들은 성경에 있는 그러한 구절들을 해석하는 데 커다란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이 다시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그들의 신앙을 지지하기 위해 경륜적인 징계에 대해 말하는 모든 구절들을 사용한다. 이러한 학파를 따르는 사람들은 결코 어떠한 확신도 갖지 못한다. 구원에 관한 한 그들이 죽을 때 올라가 있다면 영원히 구원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려가 있다면 그들은 영원히 잃게 될 것이다. 도대체 이것은 어떤 종류의 복음인가! 그런 것은 끔찍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구원받은 후에 어떤 일을 하든지 아무런 문제없이 계속 구원받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 또한 틀린 것이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영원한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는 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학파들의 모든 가르침을 제쳐놓고, 또한 떨쳐버리고서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를 보아야 한다(히브리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45).

왕국 보상과 혼을 얻음

히브리서10장 19절부터 39절 까지에 있는 네 번째 경고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것들-중한 형벌 (29절)과 큰 상(35절)-이 언급된다. 이 두 구절은 중요하며 의미가 깊다. 이 두 구절이 네 번째 경고의 열쇠이다. 이 서신의 기자는 우리의 구원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기록한 바에 의하면 우리의 구원은 영원히 안전하다.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죄를 없이하려고 영단번에 자신을 드렸으며 (7:27, 9 26, 28), 또한 그가 우리를 위해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음을 아주 분명히 했다(5:9). 영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그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구속을 성취하셨다(9:12). 기자는 우리의 구원이 온전하며 완벽하고 완전히 안전하다는 것과 우리가 받은 구원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이 큰 상을 받을 것인지 형벌의 "고통"(경륜적인 징계)을 받을 것인지에 관해서는 매우 염려하고 있었다.

지난 수 세기에 걸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형벌을 상급과 같이 보지 못했다. 많은 책들이 상급의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가 만일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며 그분의 뜻을 행한다면 우리는 상으로 면류관을 받게 되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방면-형벌-에 대한 측면을 말한 책은 발견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 저자들은 이것이 그들을 곤란케 할 것이기 때문에 이 주제를 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10장 29절에는 「중한 형벌」이 언급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우리는 중한 형벌로 고통 당하든지 큰 상을 받게 되든지 할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공정하며 의로우며 지혜로우시다. 그는 모든 것을 어떻게 손대야 할지를 아시며 그의 자녀들을 어떻게 다루실 줄을 아신다. 우리의 지혜로우신 아버지이신 그분은 자녀인 우리를 대하시는 공평한 방법을 갖고 계신다. 그는 신실하며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며 신실치 않고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벌을 주실 것이다. 대부분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나님은 신실한 자들에게 오로지 상만을 주시며 신실치 못한 자라도 처벌하지 않으실 것처럼 말한다. 이것은 비논리적이다. 우리의 아버지는 아주 지혜로우시다. 그분은 신실한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며 신실치 못한 자들은 징치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논리적이며 목적있는 분이시며 결코 의미없이 어떤 것을 하시지 않는다. 그분의 성언(聖言)에서 분명한 말씀으로 우리가 만일 신실하다면 그는 우리에게 상주실 것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를 벌하실 것이라고 명백히 말하고 있다.

우리의 구원에 관하여는 우리가 염려할 필요없다. 그분의 거룩한 말씀에 따르면 그것은 영원히 안전하므로 우리가 안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후 어떻게 주님을 따를 것인가 하는 것은 의문이다. 생명의 법에 따라 우리는 자신을 통제할 것인가? 지성소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성소나 심지어 바깥 마당으로 물러설 것인가? 이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만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뒤로 물러선다면 하나님의 행정을 깨뜨리고 그의 뜻에 불순종한 연고로 우리는 형벌의 고통을 받게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두 번째 언약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우리의 죄들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새 언약의 경륜 안으로 뛰어들어야 하며, 우리가 그분의 재생산이 되도록 우리의 모든 관심을 생명의 법에 집중시켜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것에 주의한다면 그는 반드시 우리에게 상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것에 주의하지 않고 대신 물러선다면 그분은 그의 경고에 따라 우리를 벌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행정을 깨뜨리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하여 생명의 법을 어긴다면 의문의 법을 어긴 자들보다도 더 중한 형벌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중한 형벌」과 「큰 상」의 문제에 관해 깊은 인상을 받을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중요성을 기억할 수 있도록 성경에 있는 그 말씀에 심지어 밑줄까지 그을 필요가 있다. 이 말씀들은 우리의 장래 운명을 제시하고 있다. 중한 형벌이나 큰 상 중에 어떤 것을 받게 될 것인가?

사도 바울은 그의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 그가 상을 받을 것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가 고린도전서를 쓸 때에 그는 하늘의 경주장에서 그가 버린 바 될까 매우 염려했다(9:24-27). 심지어 빌립보서를 쓸 때에도 그는 상급을 위해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여전히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었다(빌 3:14). 오직 그의 순교 직전에 쓴 디모데후서 4장 7절과 8절에서만 그는 자기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확신했다. 당신은 이미 상급을 얻었다고 확신하지 말라. 아직은 당신의 경주가 끝나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구원과 멸망, 상과 벌의 네 단어에 대해서 분명해야 한다. 상은 구원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에 더해지는 무엇이다. 구원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받는다. 상은 우리가 구원받은 후의 생활과 공력에 따라서 받는다. 상급이 구원과 다르듯이 형벌도 멸망과 다르다. 우리가 지적한 멸망(위의 "영원한 형벌")은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한 것인 반면에 처벌(형벌, 곧 경륜적인 징계)은 믿는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형벌은 멸망과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구원받았으며 멸망치 않는다. 믿지 않는 이들은 두 가지 선택-구원이나 멸망-에 직면한다. 구원받은 우리 또한 두 가지 가능성-상을 받거나 어떤 형벌의 고통을 받음-을 고려해야 한다. 모든 성도들은 이에 대해 분명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의 문제이며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다루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