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의미는?
성령
Hannah , 2009-03-10 , 조회수 (10084) , 추천 (0) , 스크랩 (0)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의미는? 
 

 

요한복음 3장 5절에 주예수님은 님고데모에게,"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영 대신 그들의 정신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그들은 이 구절을 여러 가지로 다르게 해석해 왔다. 오십 년 전에 나는 이 구절에 있는 물은 말씀을 의미하고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배웠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과 야고보서 1장 18절을 참조한 것이다. 성경의 이 구절을 가장 형편없이 설명하는 또 다른 해석은 여기의 물이 모태 속의 물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두 번 태어난다는 것은 첫 번째로 모태에 있는 물로 태어나고, 두 번째로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전혀 불합리한 것이므로 잊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이 구절을 대할 때 논리적이고도 견실한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니고데모와 주 예수님이 분명한 말로 이야기하고 있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만일 주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분명하지 않은 말로 이야기하고 있었다면 그에게 어느 정도 설명을 하셨을 것이다. 아마 니고데모는 주님께 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질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설명하시지 않았고, 니고데모 역시 그것들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 말씀이 양자에게 모두 분명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물과 영으로」란 말씀은 어떤 설명 없이도 니고데모에게 분명했던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들에게 똑같은 말을 했기 때문에 그 말은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완전히 이해되었을 것이다. 요한은 그들에게, 그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요한의 이 말을 듣고 그 당시에는 그것이 새로운 말이었기 때문에 아마 바리새인들은 그들 가운데서 그에 대해 논의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아주 신중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의 그런 말을 듣고 그들은 그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음에 틀림없다. 니고데모도 바리새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용어에 익숙해있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 중 한 사람인 니고데모가 주님과 말하고있을 때, 주님은 그가 잘 알고 있는 이 단어들을 사용하여 거듭남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임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물은 옛 창조에 속한 사람들을 장사지내고 끝내는 세례 요한의 사역에서 중심이 되는 표적이다. 그의 사역 안에서 세례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기 위해 왔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타락되었으며, 장사지내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한의 가르침을 듣고 회개했던 사람들은 물로 침례를 받았다. 이것은 그들이 옛 창조에 속한 타락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요한의 사역이다. 더욱이 요한은 사람들에게 그의 사역은 주 예수의 사역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이 세례 요한의 사역에서 중심 되는 표적인 것처럼, 영은 사람들을 새 창조 안으로 태어나게 하는(germinate) 예수의 사역의 중심 되는 것이다. 이들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인 물과 성령이 합해질 때 거듭남의 전체적인 개념이 된다. 새로 태어나는 것인 거듭남은 그들의 모든 행위와 함께 옛 창조에 속한 사람들을 끝내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새 창조 안에서 발아되는 것(germination)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요한의 사역인 물로써 끝나고 예수의 사역인 그 영으로써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세례 요한의 사역을 가질 수 있는가? 회개함으로써이다. 어떤 사람이 그가 아무런 쓸모없는 타락된 사람임을 고백하면서 회개하는 것은 요한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요한이 실지로 지금 있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의 사역이 이미 신약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먼저 요한의 사역을 전한다. 우리가 죄와 회개에 대해 많이 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는 오늘날의 세례 요한이다. 나는 사십여 년 전에 세례 요한과 같은 사역자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사역의 결과로 회개했다. 그것은 내 사역이 아니라 요한의 사역이었다. 이 사역을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든지 한면으로는 끝나고 다른 의미에서 물로 태어난다. 회개에 이어 모든 사람들은 주 예수를 믿어야만 하고 태어나기 위해 주님의 생명의 사역을 받아들여야 한다.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는 회개와 믿음이 둘 다 필요하다. 회개하는 것은 요한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믿는 것은 주 예수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우리는 모두 이 거듭남의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물과 그 영으로 거듭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주님은 니고데모의 상황을 분명히 해 주셨다. 모든 사람은 그가 선하든 악하든 물로 끝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어나야 한다. 이것은 모태로부터의 출생이 아닌 물과 성령으로 말미암은 거듭남이다.(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