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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칠일 안식일 준수를 주장하는 많은 제칠일 안식교도들이 하나님의 경륜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 사이의 차이를 보게 되기를 원한다. 구약에 따르면,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상징이었다. 엿새 동안 일하신 뒤에 하나님께서는 제칠일에 휴식하셨으며, 이 날이 안식일이 되었다. 그러므로 제칠일은 옛 창조의 증거가 되었다. 그것은 창조가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거한다. 사람은 옛 창조의 일부이기 때문에 제칠일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러나 새 창조는 주일의 첫날, 즉 주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날에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듭난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를 포함한 새 창조가 산출되었다. 그러므로 제칠일이 옛 창조의 상징이듯이, 주일의 첫 날인 제팔일은 새 창조의 시작이다. 이 때문에 신약 성경의 어느 곳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제칠일에 예배하기 위하여 모였다고 말하는 구절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두 구절은 성도들이 주일의 첫 날에 모였음을 나타낸다. 사도행전 20장 7절은, 『그 주(週)의 첫 날에 사도들이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시대에 성도들이 그 주(週)의 첫 날에 주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였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이 날이 하나님의 새 창조의 기념일임을 보여 준다. 우리 믿는이들은 새 창조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제칠일을 지킬 의무가 없다. 그 보다 우리는 주 예수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 주의 첫날에 모인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서 바울은,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라고 말한다. 이 구절 또한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제 칠일 아닌 주일의 첫날에 모였음을 강하게 확증한다. 그들이 그 날에 함께 모였기 때문에, 그 날은 그들이 주님께 바치는 연보를 모을 수 있는 좋은 때였다.
어떤 제칠일 안식교도들은 바울이 안식일날 회당에 들어갔던 것을 지적한다. 바울은 그렇게 행했지만, 그의 목적은 안식일을 지키거나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
신약에서 주일의 첫날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또 다른 구절은 요한계시록 1장 10절이다. 여기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그가 『주(主)의 날에 영 안에』 있었다고 말한다. 주의 날은 주일의 첫날, 즉 주님이 부활하셨던 날이다. 우리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초대 교회는 이날에 모였다. 하나님의 새 창조의 증거인 주(主)의 날에, 요한은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이상을 보기 위하여 영 안에 있었다.
레위기 23장의 예표도 주일의 첫날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수확한 첫 열매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와서 주님 앞에 흔들어야 했다(10절-11절). 우리는 특별히, 『제사장은 안식일 이튿날 그것을 흔들 것이요』라는 말씀을 듣게 된다. 「안식일 이튿날」은 물론 제 팔일, 즉 주일의 첫날이다. 더욱이 레위기 23장 16절은 「일곱째 안식일 다음날」을 언급한다. 이 날 또한 주일의 첫 날인 오순절날이었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제 팔일의 위치를 더욱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제 칠일이 옛 창조의 기념일인 반면에 제 팔일이 새 창조의 기념일임을 보았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옛 창조 안에 있으므로 계속해서 제 칠일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교회인 우리는 옛 창조 아닌 새 창조 안에 있으므로, 더 이상 제 칠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다. 그 대신, 우리는 부활 안에 있는 새로운 시작을 표시하는 주일의 첫 날에 모인다. 그러므로 제칠 안식일 준수를 옹호하는 그리스도 안의 믿는이들에게는 성경에 대한 합당한 지식이 부족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의 믿는이들에게는 더 이상 안식일이 기념일이 아니고, 주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일의 첫 날이 기념일이 되어야 한다. 주님이 주일의 첫 날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듭났다(벧전 1:3).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옛 창조 안에 있지 않고 새 창조 안에 있다.(골로새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