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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신진대사적으로 바뀌는 것이고, 성숙되는 것은 우리를 바꾸는 신성한 생명으로 충만되는 것이다(히 6:1)
변화의 마지막 단계는 성숙이다. 성숙은 생명이 충만한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성숙할 때 그는 생명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 생명을 더 많이 소유할수록 우리는 더 많이 성숙한다. 어린아이는 분명 성숙하지 않지만 어른은 성숙하다. 사람이 성숙되는 것은 그의 생명이 충만함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의롭게 되고 우리의 죄들을 용서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거듭났다. 거듭날 때 새로운 생명, 신성한 생명이 우리의 영 안에 넣어졌다. 우리가 거듭난 이후부터 이 생명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변화시키고 있다. 신성한 생명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바꾸면서 신성한 생명을 더욱더 많이 우리 자신 안으로 분배한다. 그러므로 변화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완전히 다 이루어질 때 성숙의 때가 온다. … 성숙은 우리 자신이 바뀌는 문제가 아니다. 성숙은 우리가 생명으로 충만될 때까지 신성한 생명이 거듭해서 우리 안으로 분배되는 문제이다.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93, 1258, 1259쪽)
생명의 충만은 축복이다. 왜냐하면 축복은 생명의 넘쳐흐름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명으로 넘쳐흐를 때 이 생명은 다른 사람들 안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이 넘쳐흐름이 축복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27장에서 우리는 탈취자를 보고, 37장에서 변화된 사람을 보며, 47장에서 성숙된 사람을 본다. 야곱의 변화는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를 손대실 때 시작되었으며(32:25), 그 변화의 과정은 비교적 완성된 때인 37장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37장에서 야곱은 아직 생명의 충만함인 성숙에 이르지 않았다. 성숙에 이르기 위해 그는 헤브론에서 마지막 단계의 다루심을 체험해야 했다.
야곱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였다. 헤브론에서 야곱은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았다. 야곱은 요셉을 잃은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열린 그릇이 되었다. 요셉이 야곱과 함께 있던 것이 야곱이 하나님을 향해 열리는 것을 방해해 왔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요셉을 잃어버린 후에 야곱은 아무런 장애물 없이 주님을 향하여 온전히 열려 있게 되었다. … 이 모든 세월 동안 야곱은 하늘을 향해 열린 그릇이었으며 하늘의 비가 계속해서 그 안으로 내리고 있었다. 이 기간에 야곱은 매일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으면서 신성한 생명으로 충만되고 있었다.
야곱의 체험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발생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숙시키기 위해 주권적으로 안배하시는 것임을 본다. 어떤 것도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오직 우리가 변화되고 성숙되어야만 성취될 수 있다.
젊은 시절의 야곱은 항상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신뢰하였다. 그러나 이 마지막 단계의 다루심 후에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했다. 야곱은 하나님의 긍휼을 알게 되었다. 야곱은 전 생애에 걸친 그의 체험을 통해 마침내 그의 상황에서 중요한 것이 그의 재능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임을 인식하였다. 그리고 그는 또한 이 긍휼이 넘치시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상황에서 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분이심을 알았다. 그러므로 야곱은 아들들에게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라고 말했다(창 43:14, 원문 참조). 이제 그의 신뢰와 안식은 전적으로 그를 충족시키는 하나님의 긍휼에 있고 더 이상 자기 자신과 자기의 재능에 있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완전히 변화되어 성숙된 한 사람을 본다.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93, 1260, 1262, 12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