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라는 의미는?
믿는이들
Hannah , 2009-03-09 , 조회수 (5735) , 추천 (0) , 스크랩 (0)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라는 의미는?

 

 

마태복음 8장 22절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내용은 누가복음 9장 60절에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8장 18절부터 22절까지 문맥을 따라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부친 상을 당한 청년에게 장사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고 즉시 당신을 좇으라 하신 주님의 태도는 너무 냉정한 태도로만 비치게 됩니다. 웟치만 니 전집 제1집 제15권 `마태복음연구 메시지 8장 내용`을 중심으로 이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8절 :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거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때 주님은 항상 떠나셨다. 이것이 주님의 방법이다. 그분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 가까이 오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저편`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님은 사람들을 떠나가게 하는 것을 개의치 않으셨다. 사람들을 주목하고 자신에게로 사람들을 모으며 군중을 얻으려고 주의하는 것은 우리 일의 커다란 문제점이다. `저편으로 건너가사`. 이것이 우리의 일의 가장 좋은 원칙이다. 우리가 일할 때 우리는 사람들을 자신을 위하여 얻고자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일이다. 일단 그 일이 끝나면 우리는 즉시 떠나야 한다. 만일 우리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단지 `다른 불`일 뿐이며 아마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명령보다는 사람의 매력이 더 많을 것이다.

19-20절 :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여기의 서기관은 열심 있는 사람을 나타낸다. 그는 그의 자의에 의해서 왔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조건 없이 주님을 따를 것 같았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그분에게는 새와 여우도 가지고 있는 위안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님께서 누림으로 소유하고 계신 것이 새와 여우가 소유하고 있는 것만도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자 이 서기관은 이 일에 포함된 역경을 알고 나서 물러갔다. 그러므로 대가를 고려해 보지 않았다면 아무도 주님을 따를 수 없다. 참으로 이 서기관은 다만 자신을 세우는 것만을 관심하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이 서기관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지 않았다.

21절 :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제자들`은 이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부친을 장사지내는 것`은 아들의 의무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미 부르심을 받았으면서도 뒤로 물러섰다.

22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첫번째 `죽은 자`는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언급된 죽은 자를 가리킨다. 여기서 주님은 사람의 부친을 장사지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요구가 있다. 그의 부친을 장사지내는 것은 다른 사람이 행할 수 있다. 이것은 주님의 부르심이 다른 어떤 것 보다도 높다는 원칙을 드러낸다. 주님은 그분 자신 이외의 어떤 것도 우리를 통제하거나 우리 위에 요구하기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먼저 내게 허락하옵소서`. 이것이 큰 실수이다. 주님의 부르심은 분명히 모든 것보다 뛰어나야 한다.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한 사람은 대가를 계산하지 않은 반면에 다른 사람은 대가를 지나치게 계산한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문제에 있어서 전혀 대가를 계산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합당치 못한 것이다. 그러나 항상 대가만을 고려해서 앞으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 또한 합당치 못한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실수를 피해야 한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가 나아가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는 대가를 계산하고서 주님께 `나는 원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모든 것을 지나가게 해야 한다. 순종의 길은 그 종말이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취하는 것이다. `나를 따르라`는 말이 `부친을 장사지내는` 문제의 해답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면 비록 그가 뒤로 물러설 생각을 한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여전히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