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이들이 죽은 후에 어디로 가나?
믿는이들
Hannah , 2009-03-09 , 조회수 (3945) , 추천 (0) , 스크랩 (0)

 

 

믿는이들이 죽은 후에 어디로 가나?

 

 

어떤 성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을 때 하늘에 가지 않는다는 글을 읽을 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할 수가 있다. 즉, 성경에 따르면 믿는이들은 죽을 때 어디로 갑니까? 이것은 진지하고 분별 있는 질문이므로 우리는 계속하여 신성한 영화롭게 됨의 표적을 다루기에 앞서 조금 시간을 들여서 고찰하고자 한다.

믿는이들이 죽은 후에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절은 누가복음 23장 43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 중 한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다. 이 구절은 주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낙원으로 가셨음을 시사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낙원이 음부에 있음을 모른다. 낙원이 음부에 있다는 강한 증거는 누가복음 23장 43절에서 구원받은 강도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과 사도행전 2장 27절 및 31절과의 비교이다. 사도행전에 있는 구절들은 주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음부로 가셨음을 계시한다. 마태복음 12장 40절은 음부가, 주 예수님이 죽으신 후 밤낮 사흘을 계셨던 곳인, 「땅속」임을 시사한다. 음부에 나사로가 있는 곳인 아브라함의 품으로 비유되는 즐거운 부문이 있다(눅 16:23). 이것은 하늘에 있는 낙원이 아니고 음부에 있는 낙원이다.

누가복음 16장은 음부에 믿는이들이 죽을 때 가는 곳인 낙원으로 알려진 즐거운 부문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 장에 따르면 죄 있는 부자가 죽어서 고통받는 곳으로 갔다. 나사로라 이름한 가난한 사람도 죽었는데, 그는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가졌다. 음부의 이 두 영역 사이에는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아무도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갈 수 없다(눅 16:26). 한 부문은 고통받는 부문이고 다른 부문은 위로받는 부문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여전히 이 즐거운 곳에 있음을 믿는다. 신약에 따르면 음부의 즐거운 부문이 낙원이라 불리운다.

고린도 후서 12장 2절부터 4절까지를 사용하여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이끌려갔을 때 낙원으로 이끌려간 것이라고 논쟁한다. 그러나 고린도 후서 12장 2절부터 4절까지는 낙원이 셋째 하늘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인 사실을 입증한다. 3절의 시작에 있는 「그리고」라는 단어는 바울이 2절에서 언급된 셋째 하늘로 이끌려간 것과 3절과 4절에서 언급된 낙원으로 이끌려간 것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것임을 입증한다. (2절과 4절에서 「이끌려 올라간」으로 번역된 흠정역은 당연히 헬라어에 따라 「이끌려간」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바울은 한면으로 땅에서 살고 있었지만 다른 면으로 셋째 하늘과 낙원으로 「이끌려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전우주에 대한 온전한 이상을 받았다. 인류에 관한 한 우주는 세 부문, 곧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부문으로 되어 있다(빌립보서 2장 10절 참조). 바울은 땅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낙원에 있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과 관련하여 우주에 대한 가장 큰 계시를 얻었다.

믿는이들은 죽을 때 더 이상 몸을 갖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벌거벗게」 된다. 인간 존재에게 몸이 없다는 것은 그가 옷을 입지 않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아무도 이렇게 벌거벗은, 비정상적인 상태로는 셋째 하늘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죽어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부활한 몸으로 입혀 주어 정상적인 상태에서 온전한 사람이 될 부활의 때까지 즐거운 곳에서 지켜져야 한다.

어떤 성경 학도들은 음부의 즐거운 곳인 낙원이 그리스도의 승천의 때에 셋째 하늘로 옮겨졌다고 믿는다. 스코필드 주석 성경 원본은 누가복음 16장 23절에 관한 주석에서 낙원이 그리스도의 부활 이전에는 땅 아래 있었지만 그 부활과 승천에 의해 그리고 그 부활 및 승천과 함께 그것이 땅 아래로부터 셋째 하늘로 옮겨졌음을 시사한다. 이 주석은 그리스도의 승천 이전과 이후의 음부에 대해 말한다. 이 주석에 따르면, 『음부는 이전에 각각 구원받은 자들과 멸망하는 자들의 처소들인 두 부분으로 되어 있었다. 전자는 「낙원」과 「아브라함의 품」으로 불리워졌다.』이 주석은 또한 믿는이로서 죽은 사람은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고 믿은 강도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바로 그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주석은 성경에 따르면 거의 정확하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우리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주석은 계속하여, 『낙원에 영향을 주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하고 또 낙원은, 『지금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 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이 주석은 고린도 후서 12장 1절부터 4절까지를 낙원이 음부에서 셋째 하늘로 옮겨진 것으로 추측하는 증거 자료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기는 에베소서 4장 8절부터 10절까지에 의해 시사되는 바에 따라 추정한다.
낙원이 음부로부터 셋째 하늘로 옮겨졌다고 가르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이 잘못된 이해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을 때 음부에 갇혀 있는 구약의 모든 성도들을 이끌어 셋째 하늘로 옮기셨다. 그러므로 스코필드 주석 성경 원본에 있는 이 주석에 따르면 낙원과 구약의 모든 성도들은 음부로부터 셋째 하늘로 옮겨졌다.

그러나 죽은 성도들이 지금 하늘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주님이 부활하신지 오십 일이 지난 오순절날에 베드로는,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라고 말했다(행 2:34). 이것은 심지어 오순절날의 때에도 다윗은 여전히 하늘에 있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것에 관하여 형제회 가운데 있었던 교사인 랑(G. H. Lang)은,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낙원이 땅 아래로부터 셋째 하늘로 옮겨졌다는 것을 『성경은 어디서도 선포하지 않으며』 그러한 관념을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다윗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말하는 구절을 지적한다. 그렇다. 낙원은 음부로부터 셋째 하늘로 옮겨지지 않았다. 낙원은 여전히 믿는이들이 죽을 때 가는 음부에 있는 즐거운 부문, 위로받는 부문이다.
믿는이가 죽을 때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사람이 지금 낙원에 있다는 진리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우리는 믿는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하늘의 맨션에 간다고 말함으로 그들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따르면 믿는이는 죽을 때 위로받는 곳인 낙원으로 간다. 우리는 한면으로 하늘의 맨션의 관념이나 우리가 죽을 때 하늘에 간다는 관념에 동의하지 않으며, 다른 면으로 성경에 따라 낙원에 관한 진리를 제시한다.

오늘날의 교회 생활은 결국 새 예루살렘으로 총결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 생활이 새 예루살렘의 축소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맨션에 가기를 꿈꾸지만, 하나님의 갈망은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 이른바 하늘의 맨션에 가기를 기다리는 대신 오늘날 교회 생활 안에 거하는 축복을 얻는다.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 생활이 최상의 거처요 참된 맨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이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의 축소형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정금길과 진주문과 벽옥의 벽을 얻는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금은 하나님의 본성을 표징하고, 진주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보석(벽옥)은 그 영의 변화시킴을 각각 표징한다.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가 정금길과 진주문과 보석의 벽을 얻음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한다! 오늘날 그러한 거처인 그러한 교회 생활을 누리니 우리가 행복하며 하나님 또한 행복하시다.(요한복음 속편 3권,제4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