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의미는?
믿는이들
Hannah , 2009-03-09 , 조회수 (3143) , 추천 (0) , 스크랩 (0)

 

 

주님이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의미는? 

 

 

1.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성경 : 요한복음 17장 16-19절
주께서,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조금 특별하다. 주님이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읽을 때 이러한 의문을 갖는다. “그러면 그분의 본성은 거룩한 것이 아닌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스스로 거룩하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주님이 어떻게 자신을 거룩게 했는가를 보기로 하자.

우리 주님의 본성은 거룩하고 죄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주님은 스스로 그의 뜻을 따라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은 그의 거룩한 성품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의 능력으로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다. 그에게는 그의 독립적인 능력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고도 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하시지 않았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의 지배를 받았다 심지어 그는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라고 말씀하셨다(요5:19).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주님이 자신의 뜻을 따라 자신의 힘으로 하는 일들이 죄가 된다는 것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자신의 뜻과 힘으로 행하시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그의 제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가 자유스럽게 할 수 있지만 자유롭게 행하지 않고, 힘을 사용할 수 있지만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제자들 앞에 좋은 본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주님처럼 거룩한 사람은 자신의 뜻을 따르고 자신의 힘을 사용하실 수 있다. 그러나 제자들이 자신의 뜻을 따라 자신의 힘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곧 죄이다. 많은 일에서 주님은 자유롭게 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을 위하여 제한받기를 기뻐하셨다. 바꿔 말하자면, 주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자유를 버린 것이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으며 자신의 힘을 사용할 수 없음을 제자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합법적인 권리와 자유를 내려놓으셨다. 주님이 그러하셨는데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는가?

형제 자매여,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의 생활을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의 이 땅에서의 생활은 다 제한받은 생활이었다. 그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어 사람으로서 자라났다. 그는 먹지 않고 마지시 않을 수 있는 분이지만, 그에게는 사람의 배고픔과 목마름이 있었다. 그토록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하나의 ‘질그릇’ 속에 담겨 있었다.

우리 주님을 이 세상에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수고를 하셨다. 한번은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요8:56-57)고 말했다. 여러분은 유대인들이 이 말을 한 뜻을 아는가? 그들은 여기에서 특별히 주님의 나이를 적게 말하려고 한 것이다. 이사야서 52장과 53장에서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말했다. 주님은 이때 삼십 세밖에 안 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고의로 그의 나이를 적게 하려고 오십 세가 가까웠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의 얼굴이 늙어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참으로 모든 어려움을 다 겪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젠가 광야에서 날이 이미 저물었을 때 부녀와 아이들 외에 사천 명이 주 예수를 따랐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막8:2)라고 말씀하셨다. 그 무리들에게는 먹을 것이 없었고 주님에게도 먹을 것이 없었다. 만일 주님이 자신을 위하여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조금 사오라고 말씀하셨더라도 그것은 합법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먹을 것이 없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먹을 것이 없음을 생각한 것이다. 만일 주님이 그때 자신의 먹을 것만 돌보았다면 오순절에 자신을 위하여 몇 푼 남기려는 더 많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왔을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육신에서 받은 제한일 따름이다. 그가 영적인 면에서 받은 제한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

마찬가지로 주 안에서 장성한 형제들은 배운 것이 깊고, 체험이 많고, 양심이 더 민감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더욱 분명함으로 많은 일에서 자유스럽게 행할 수 있다. 그러한 행동은 죄가 아닐 뿐 아니라 절대적으로 합법적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어린 형제들을 위하여 그들은 그렇게 행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당신은 어린 형제와 함께 있을 때 이러한 제한을 받을 필요가 있다. 당신은 몸이 약하기 때문에 더 많은 휴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영향을 주어 게으르지 않게 하기 위해 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밤에 잠을 못 잤으므로 조금 늦게 일어날 수 있지만 약한 형제가 영향을 받아 아침 일찍 일어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 할까 염려하여 아픔을 참고서라도 일찍 일어날 것이다. 당신의 입맛이 좋지 않으므로 음식을 골라서 준비할 수 있지만 어린 형제들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먹는 것에 대해 별로 주의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게 하는 이러한 일들은 매우 긴요한 것이다.

어떤 어머니에게 아들 넷이 있었다. 그 네 아들들은 술마시기를 좋아하여 자주 술에 취했다. 어느 날 그 어머니가 한 전도인에게 그것을 말했다. 전도인은 그 어머니에게 물었다. “당신은 술을 마시지 않습니까?” 그 여인은 대답했다. “저와 저의 남편은 밥을 먹을 때 술을 조금 마십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취하도록 마시지는 않았어요.” 그 전도인은 말했다. “만일 당신이 술을 끊을 수 없다면 당신의 아들이 술 끊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부모의 좋지 않은 습관이 자녀들에게 배(倍)의 나쁜 습관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하여 제한을 받아야 한다.

주님은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자신을 거룩게 하셨다. 주님이 우리에게 본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주님에게는 제한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제한을 받으셨다. 그는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거룩게 하셨다. 당신은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거하실 때 얼마나 많은 고통과 제한을 받으셨는지 아는가? 수고로 말하자면 주님은 제자들보다 더 굶주리셨다. 휴식을 말하자면 그는 제자들보다 더 많은 휴식이 필요했지만 홀로 산에서 기도하는 시간 외에는 전혀 제자들을 떠나시지 않았다. 그는 제자들을 위하여 제한을 받으셨다. 결국 제자들은 그에게서 틀린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제자들은 모두 그의 무죄함을 간증했다. 베드로는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라고 말했다(벧전 2:22). 베드로는 항상 주님과 함께 지낸 사람이요, 그의 뜻을 가장 잘 안 사람이다. “그는 흠도 티도 없으신 분이다.”―이것이 주님과 항상 함께 지낸 사람의 간증이다.

주님은 본래 거룩하신 분이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게 하셔야 했다. 우리도 형제 자매 가운데서 이렇게 행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빛이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반드시 제한받기를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이 거룩해지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게 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보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워치만니 전집 1집 17권, 제20장)

2. 권위를 대표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를 거룩히 분별해야 함

요한복음 17장 19절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우리는 영적인 권위가 영적인 면에서 그 사람이 받은 온전케 함에 달려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권위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며 심지어 하나님의 세우심에만 근거한 것도 아니다. 한 면에서 당신의 권위가 영적인 면에서 당신이 받은 온전케 함에 달려 있지만, 또 한 면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순종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오늘 우리는 좀더 나아가서 권위가 되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분별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겠다. 주님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하나님과 절대적인 교통을 가진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 17장에서 “저희(제자들)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라고 하셨다. 대표 권위가 되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히 분별해야 한다.

주께서 그분 자신을 거룩하게 하심

주께서 그분 자신을 분별하신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이것은 주 예수님께 합법적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제자들을 위해 하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그분이 하실 수 있는 많은 일들과 할 수 있는 많은 말과 취할 수 있는 많은 태도와 입을 수 있는 많은 의복과 먹을 수 있는 많은 음식들을 그분의 제자들을 위해 취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를 알지도 못하셨고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은 우리보다 얼마나 많이 자유로울 수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들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들이 많고 우리가 더러운 자들임으로 할 수 없는 말이 많다. 그러나 주님은 거룩하셨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이러한 어려움들이 없었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교만하기 때문에 겸손할 필요가 있지만 주님은 교만이 없었기 때문에 겸손할 필요가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질이 급하기 때문에 인내할 필요가 있었지만 주님은 성질이 급하지 않으므로 인내할 필요가 없었다. 주님은 죄가 조금도 없으셨기 때문에 많은 속박을 받을 필요도 없으셨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이 사람으로 계실 때, 만약 더러운 사람들인 우리가 없었다면 그분의 자유는 몇 배나 더 많았을 것이다. 그분이 노를 발하는 것조차도 죄가 없고 거룩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그분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기꺼이 많은 제한을 받겠다고 하셨다.

주님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셨을 뿐 아니라 그분 자신이 거룩하셨다. 주님 자신의 성격에 관한 한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지만 그분이 제자들 가운데서 움직이실 때는 자신을 거룩히 분별함이 필요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해서는 안 될 많은 일들이 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성품은 거룩하기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을 선하다고 하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선한 분이라고 하는 것은 옳다. 그분은 많은 말을 하실 수 있지만 우리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은 안에서부터 밖에까지 조금도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보다 자유가 많다. 그러나 주님은 기꺼이 제한을 받으셨다. 주님 자신은 거룩하시지만, 그분은 사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셨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려면 사람들과 분별이 있어야 하고 많은 일들을 행할 수 없다.

주님은 그분 자신이 거룩하시다는 것 외에 또다시 우리에게 거룩함을 더하셔야 했기 때문에 그분 자신을 거룩하게 분별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제한을 받으셨다. 사람은 자기의 죄에 근거하여 말하고 판단하지만 주님은 그분의 거룩함에 의해 일하시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자기의 죄스러운 사상으로 주님을 판단했기 때문에 그분은 스스로 제한받기를 원하셨다.

우리는 죄 때문에 어떤 것을 할 수 없었지만 그분은 거룩 때문에 그분 자신을 제한하시면서 어떤 일을 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할 수 없기 때문에 하지 않았지만 그분은 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하지 않았지만 그분은 하셔도 상관없었으나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하나님의 권위를 위해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을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그분 자신을 세상과 분별하기 원하셨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자기를 거룩케 하셨다는 의미이다. (워치만니 전집 3집 제1권, 권위와 순복 제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