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와 지질학
믿는이들
Hannah , 2009-03-09 , 조회수 (3261) , 추천 (0) , 스크랩 (0)

 

 

창세기와 지질학

 

 

> 항상 성실한 답변으로 인식을 새롭게 해 주심 감사드리며,
> 부차적인 문제지만, 궁금한 것이 있어 질문 드립니다.
>
> 1. 공룡의 존재
>
> 지질학이나 고고학에서 공룡의 화석들을 보면 보통 수만년 혹은 수억년 전에 존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성경의 아담의 연대기를 고려하면 6천년 정도의 인간역사로 알고 있는데, 그럼 이 공룡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이 여섯째날에 창조한 것이 아닌 것으로서, 그 전에 지구상에 살았던 것으로 창세기 1장 1절의 2절 사이 간격이론의 하나로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 그럼 아담이전에 이 지구상에 살았던 영물들이 공룡들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들은 영과 몸만 있고 혼의 존재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 이들이 멸망할 때 귀신이 되었다는 말인지,
> 아니면 공룡의 존재는 학자들의 주장에 불과한 것인지?
> 간격이론을 반대하는 어느 창조과학회의 주장은
> 지구의 나이가 젊어서, 만년 이내일 것이라고 하는데, 그럼 노아의 방주에 공룡도 있었고 지금도 어느정도 존재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특히 청소년들에게 설명하기가 참 난처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

> 2. 용의 존재
>
> 성경에 보면 사탄을 상징하는 것으로 뱀이나 용이 나옵니다.
> 어떤 상징물도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 상징화 한다고 봅니다.
> 그럼 물질적인 뱀의 존재가 있듯이, 동일한 맥락으로 용의 물질적
> 존재가 있다고 여겨 지는 데, 어떠한지요
> 보통 용을 상상의 동물로 치부하는데, 용도 하나의 영물로서 공룡시대의 한 종류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요,,
>
> 상기 질문이 진리면은 아니지만, 청소년들에게 설명할 때
> 적절함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감사합니다...


> 답변: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내용을 간단히 답변을 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이에 관하여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워치만니전집제1집 3권>에서 발췌하였사오니 답변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1장 창세기와 지질학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여기에 더 이상의 상세한 설명이 없다. 우리는 원시 세계가 일순간에 창조되었는지 혹은 끝없이 긴 시간 동안에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이 수천 년 혹은 수백만 년 걸려 완성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의 형태와 크기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다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얼마나 긴 기간이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는지 알지 못하며 원시 세계가 창조된 후에 이전의 황폐함이 시작되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태초의 완전한 창조와 후에 혼돈하고 공허하게 된 그러한 상태로의 변화 사이에 상당히 긴 기간이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얼마 후에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를 알고 있는데 그것은 이 두 표현 사이에 긴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처음 두 구절 사이의 긴 간격은 온 선사 시대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3절부터 지금까지는 6천 년이 채 되지 못한다. 우리가 성경의 처음 두 구절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으므로 지질학에서 존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기간과 이들 기간과 연관된 지질학적인 기간은 이 기간 사이에 놓을 수 있다. 우리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기 이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으며 땅의 표면과 대기중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성경은 이것에 관하여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은 우리의 지구가 단지 육천 년이 되었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은 다만 인류의 역사가 육천 년이 되었다고 증거할 뿐이다. 만일 성경이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았다면, 과학은 원하는 모든 것을 추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성경이 이미 말한 것에 관해서는 추측할 수 없다. 우리가 성경의 처음 두 구절을 이해한 후에는 성경과 지질학 사이에 어떠한 모순도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지질학자들의 성경에 대한 모든 공격은 허공을 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놀랍게 쓰여졌는가?

우리는 과학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결코 사람 앞에서 동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의 발명품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 성경의 권위를 포기하지 않는다. 만일 성경과 과학 사이에 어떤 모순이 있다면(그리고 우리는 육체적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분명히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화해시키거나 무마시키려는 의도가 없다. 위의 주장은 어떤 지리학적인 발견 후에 성경을 과학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으로 제안된 것이 아니다. 이것에 관하여 말한 고대 교회의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에 지질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성 어거스틴이라는 사람이 창세기를 해석했을 때 세상은 아직 지질학이란 용어조차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지혜를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 우리는 성경이라는 반석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경에서 기록되었으되(마 4:4, 7, 10)를 갖는 한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변증론이 그들의 근거를 잊어버렸는데 그들은 사람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성경의 말씀을 바꾸어 버렸다. 한 가지 예가 A.W. 핑크에 의해서 주어졌는데 그는 어떤 앗시리아 석판을 번역한 후에 변증론자들이 정열적으로 구약의 역사가 입증되었다고 발표했음을 발견했다. 이것은 물건의 위아래를 바꾸어 놓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입증될 필요가 있는가? 만일 앗시리아 석판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한다면 그것은 다만 앗시리아 석판이 역사적인 오류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줄 따름이다. 만일 그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만 그 석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 줄 따름이다. 세상적인 사람과 공허한 과학자들은 물론 우리의 논리를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다음과 같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낼 뿐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우리는 결코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우리 자신들을 낮추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성경을 바꾸고자 하는 선한 생각과 같다. 그러나 그렇게 행하는 것은 성경의 참다운 본성을 바꾸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은 얼마나 놀라운가? 이 장은 첫 번째 창조를 기술하기 위해 오직 한 구절을 사용한다. 2장은 세상의 혼돈을 설명하기 위해 한 구절만을 사용한다. 이것은 세상의 회복을 기술하는 30여 구절에 비하여 너무도 작은 것이다. 누가 창세기 1장의 기록과 견줄만한 다른 기록을 가져올 수 있는가? 그 주제는 어려운 것이지만 설명은 명확하다. 그 사실을 다루는 것은 오랜 기간이지만 그 묘사는 단순하다. 그것은 과학에 관해 말하지 않지만 과학적으로 정확하다. 하나님 외에 누가 이러한 글을 지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많이 말씀하지 않으신 이유는 그분이 오직 그분과 사람 사이의 관계만을 사람에게 보여 주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J. N. 다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이 계시는 그분이 행하신 모든 것을 말하는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그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과 사람이 말해야 할 진리에 관한 것들이다. 그 목적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모든 것들을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들이다. … 그러나 역사적으로 본다면 그 계시는 부분적인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양심과 영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것만을 전달했다. …그러므로 어떤 천체에 관한 것들도 기록되지 않았다. … 그러므로 또한 이 땅에 관해서 그 창조의 사실 이외에는, 현재의 형태에 관련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성경개관, 1970년 9쪽.

실로 하나님의 계시는 사람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신격과 세상의 죄 많음과 구원의 길과 오는 영광과 심판에 관해서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현재 세상적인 지식은 참으로 위험스럽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은혜를 내리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자신 안에서 자랑하며 그가 얻은 지식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거로 사용할 것이다. 소위 지적인 사람들이 자신을 겸손히 낮추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사람은 그가 원하는 만큼 지식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그분의 계시로 보충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이 때문에 그분은 창세기 1장에서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현재의 필요는 더 많은 과학이 아니라 더 깊은 영적인 교통이다. 이것만이 참다운 열매를 영원 안에서 맺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이 가득하심으로 인하여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재창조하셨고 주 예수 안에서 새 창조가 되게 하셨다. 주 예수여, 이 이름이 얼마나 달콤한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아들을 주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긍휼인가?

제2장 태초의 세상과 그 황폐함의 원인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태초에 하나의 완전한 천지를 창조하셨는가를 이미 보았다. 후에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원시의 아름다운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생기가 조금도 없이 변하게 되었다. 후에 하나님은 다시 일어나서 새롭게 이 세상을 지으셨으며, 육 일 동안에 이 황폐한 세상을 회복하셨다. 이 육 일 동안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메시지에서 말하겠다. 지금 우리가 상고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세상이 황폐하게 변했는가 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그분의 손 안의 역사를 파괴하는 것을 참으셨는가? 왜 이렇게 큰 재해가 당초의 아름다운 대지에 임했는가? 죄 외에는 다른 원인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상고하고자 하는 문제는 성경 안에서 완전하게 표명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우리의 문제들을 비추는 많은 미광(微光)들을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이전의 세상과 그 황폐함의 원인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와 우리의 생각을 인도해 줄 수 있다.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어떤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로 세움을 얻게 한다. 가장 공허한 것은 바로 사람들의 마음의 추측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 삼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창세기 3장을 읽을 때 비록 사탄의 명칭은 보지 못하지만, 그 뱀이 사탄의 그릇이며 사실상 마귀의 화신임을 모두가 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은 『큰 용이 …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말한다. 창세기 1장에는 사탄이 지음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이것이 하나의 문제이다. 또한 우리는 구약에서 많은 악한 영들을 본다. 특별히 복음서에서 우리는 더욱 자주 그것들을 발견한다. 도대체 그것들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또한 창세기 1장에 있는 육 일 동안의 역사 안에서 우리는 천사의 지음받음도 보지 못했다. 도대체 성경 가운데서 자주 말하는 천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의 문제와 관계있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육 일 동안의 모든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천사 및 기타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창조가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것들이 육 일 동안에 창조되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들이 육 일 동안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면 언제 지어졌는가? 유일한 답변은 바로 그것들이 이전 세상─원시의 완전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땅속에서 발굴한 동식물의 화석은 당시 세상에 단지 병(病)과 죽음─죄의 나눌 수 없는 두 가지 동반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잔폭하고 흉악한 일도 있었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이 사실은 이러한 것들이 우리 세상의 것들이 아님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육 일 동안에 만드신 것이 모두 좋았으며 아담이 아직 범죄하기 전에는 그중에 흠이 없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 이러한 화석의 동식물들이 아담 이전의 종류에 속하며 또한 병과 죽음의 분명한 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비추어 볼 때, 그것들은 반드시 다른 세계에 속하고, 거기에는 죄스럽고 더러운 역사가 있었으며, 결국은 그들 자신과 사는 곳을 패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펨버)

우리가 예레미야 4장23절부터 26절까지를 읽을 때, 거기에서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게 된 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을 본다. 26절은 그것이 바로 「그(여호와) 맹렬한 진노」라고 말한다. 주님은 왜 진노하셨는가? 아마 당시 그 피조물들의 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사야 24장 1절은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라고 말한다. 주님은 왜 그분이 태초에 창조하신 땅을 훼멸하려 하셨는가? 우리 세상의 역사를 볼 때, 우리는 아마도 땅에 살던 종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부득이하게 그들을 심판하게 되셨을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중략)

우리는 이미 사탄의 근원을 보았다. 우리는 이제 사탄의 수하에 있는 사자들과 악한 귀신들을 볼 것이다. 동시에 그것들이 어떻게 타락했으며 어떻게 땅에 영향을 미쳐서 공허하고 혼돈하게 했는지를 보겠다.

신약에서 우리는 사탄의 수하에 두 가지─(1) 사자 (2) 악한 귀신─가 존재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은 『마귀와 그 사자들』이라고 기록한다. 요한계시록 12장 4절은 용의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고 기록하는데, 별은 사자를 가리킨다(계 1:20). 또 12장 9절은 『큰 용이 …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고 말한다. 이 사자들은 아마 최초에 하나님께서 사탄이 세상을 관리하는 것을 돕도록 세운 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바로 시편 82편 1절의 「권력 있는 자」와 「신들」이다(요 10:35와 비교). (역자 주 : 우리말 성경에는 「하나님의 회」와 「재판장」들이라고 번역되어 있고, 중국어 성경에는 「권력 있는 자」와 「신들」이라고 번역되어 있음). 사탄이 넘어질 때, 그들이 그와 함께 모의하지 않았다하더라도 최소한 동정은 표시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함께 타락하고 범죄하여 지금의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되었다(엡6:12,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복수이다). 이러한 사자들은 결코 몸을 벗은 귀신이 아니며, 그들에게는 영의 형체가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약속은 부활의 자녀들이 하늘의 사자들과 같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탄의 또 한 종류의 추종자들은 바로 악한 영들이다. 이 악한 귀신들은 악한 영 혹은 더러운 영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가 중국 표준어 성경의 번역을 보면 알 수 있다. 마태복음 8장 16절에서 본래 처음의 「귀신」은 「귀(鬼)」자이고, 두 번째 「귀신」은 「영(靈)」자이다. 성경을 번역한 사람이 성령이 귀신과 영이라는 글자를 통용하는 것을 보고 「귀신」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원문에서 누가복음 10장 17절의 「귀신」이라는 글자는 「귀신」이지만 20절의 「귀신」은 「영(靈)」이다. 우리는, 이 두 구절의 성경에서 주 예수님이 「귀신」과 「영」이 상통되는 것임을 인정하셨으므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 또한 그것들을 귀신이라고 번역했음을 본다. 마태복음 17장 18절은 주님이 귀신을 쫓은 일을 말한다. 그러나 마가복음 9장 25절은 (원문에 따르면) 이 귀신을 더러운 영, 귀머거리의 영이라 칭한다. 악한 귀신과 악한 영은 상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귀신들(혹은 영)은 아마도 이전 세상에서 살았던 종류일 것이다. 그들은 사탄이 범죄하는 데 동조했거나 혹은 사탄이 범죄한 후 그를 거절하지 않고 따르며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몸이 벗겨지도록 진멸되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몸을 벗은 영이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비록 성경의 증명은 없지만, 성경 안에서 얼마의 단서들은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마태복음 12장에서 악한 귀신이 사람의 몸을 떠나는 광경을 본다. 더러운 귀신은 의지할 것 없이 표류하게 되어 사람의 몸을 제외하고는 「쉴만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맨 마지막에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그가 원래 있던 곳―사람의 몸―으로 다시 돌아왔다. 만약 그것들이 몸을 벗은 영이 아니라면 왜 꼭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우리는 누가복음 8장을 읽을 때 그 「군대 귀신들」이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본다. 방법이 없게 되자 곧 돼지의 몸 안으로라도 들어가게 해 달라고 했다. 그것들은 지금 세상에서도 여전히 사람의 몸에 붙어 의지한다. 믿는 이들일지라도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귀신 들린 사람이 있다. 그것들은 사탄과 그의 사자들과는 다르다. 사탄과 그의 사자들에게는 결코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기호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영의 형체를 가지고 있지만 악한 영은 그렇지 않다. 그것들의 이러한 성질과 기호는 마치 그것들이 몸을 벗은 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만약 그것들이 몸을 벗은 영이라면, 그것들은 몸을 벗을 때에 어느 곳에 있었는가? 우리는 금세에 죽은 모든 사람들의 영이 음부에 있음을 안다. 그런데 이러한 영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분명 이전 세상으로부터 온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생존했을 때 그것들의 사는 곳은 아마도 이전 세상 곧 사탄이 전에 권세를 잡았던 곳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