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후에는 육신의 정욕이 사라지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기 전에는 육신에 정욕이 있었지만 구원받은 후에 그 정욕이 사라졌다는 관념을 갖고 있다. 이렇게 가르치는 무리는,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 육신 안에 정욕이 있었지만 구원받은 후 정욕이 제거되었다고 말한다. 이 가르침은 구원받으면 육신이 선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가르침과 반대로 갈라디아서 5장 16절이 있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분명히 「너희」라는 말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참된 믿는이들에게도 여전히 육신의 욕심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욕심이 우리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참된 믿는이라 하더라도, 깨어서 원수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대적은 우리의 육신에 더 이상 정욕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 관념은 두렵고도 그릇된 것이다.
오래 전에 중국 북부 지방에 일어났던 사건 하나를 말하겠다. 특이하게 보이는 오순절 운동이 그 지역에 일어나서 중국의 북부 온 지역을 휩쓸었다. 그들은 성령의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 어떤 정욕도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르침을 근거 삼아 남녀가 함께 동거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신령하며 정욕이 없다고 주장했다. 얼마 안가서 많은 음행 사건이 있었고, 그 운동은 거의 해체되었다. 그런 일 때문에 당분간은 복음을 전하기도 어려웠다. 왜냐하면 중국 사람들은 공자의 윤리적인 교훈 때문에 간음이라면 그 어떤 형태도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북부에 있었던 오순절 운동은 기독교에 오점을 남겼다. 우리는 성령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 육신 안에는 정욕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훈을 주의해야 한다.
바울은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말한다(갈 5:17). 이것은 악한법과 선한 법의 전쟁이 아니라 육신과 성령의 전쟁이다. 육신과 성령은 서로 거스른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 안에 행할지라도 육신 안에 여전히 정욕이 있으며, 우리의 육신은 성령의 원수가 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주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6절에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말했다. 육은 육이다. 어떤 것도 육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 결코 당신이 신령하게 된 후 당신의 육이 개선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말라. 이 가르침은 큰 잘못이며 위험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정과 욕심과 함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원문 참조). 우리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로마서 6장 6절과 달리, 갈라디아서 5장 24절은 육신과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구절은 우리가 정과 욕심을 갖고 있는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말한다(원문 참조). 이것은 우리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로마서 8장 13절의 내용과 같다. 우리는 우리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옛 사람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면 자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육신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육신을 계속해서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 단번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매일 계속해서 우리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 25절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로마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