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 양태론 비판에 대한 반박 모음
하나님
민하 , 2008-11-04 , 조회수 (4036) , 추천 (0) , 스크랩 (0)
 


아래 내용은 위트니스 리 책자 <신약의 결론-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한국복음서원 발행) 중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이러한 자료들은 위트니스 리나 (지방)교회측이 양태론을 믿는 것으로 잘못 오해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분명히 세 하나님들이 아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삼일(triune)이시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편, 27p-

▶ 『신약은 우리 하나님이 삼일(triune)이심을 계시한다. 지난 여러 세기동안 삼일성에 관해 세 가지 주요 학설―삼위 양식설, 삼신론, 성경에 따른 순수한 계시―이 등장했다. 삼위양식론은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 모두 영원한 것은 아니고 또 동시에 모두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가르치며, 단지 한 하나님의 세 가지 잠정적 나타남일 뿐이라고 말한다. 삼신론은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을 세 하나님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삼위 양식론과는 전혀 무관해야만 한다. 삼일성에 관한 그러한 극단적인 견해는 이단이다. 마찬가지로 세 하나님이 계시다고 가르치는 것도 역시 큰 이단이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편, 35-36p-

▶ 『삼위 양식론은 하나 안의 셋의 극단적인 면이다. 물론 성경에는 하나 안의 셋에 대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삼위 양식론은 극단에 치우쳐서 성경의 제한을 뛰어 넘고 있으며 셋 안의 하나인 면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무효화하고 있다. 삼위 양식론은 하나의 면에 관한 성경의 한도를 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의 극단위에 있는 이단이다. 삼신론은 반대편의 극단 즉 셋의 극단이다. 삼신론은 셋의 면에 관한 성경의 한도를 넘어서 셋의 면을 강조하고 있으며 하나의 면을 소홀히한다. 또한 그것도 역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분명히 셋이기 때문에 성경적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삼위 양식론처럼 삼신론도 성경의 한도를 뛰어넘어서 하나의 이단이 되었다. 그러므로 삼위 양식론과 삼신론은 둘 다 극단적인 것으로서 이단이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편, 36p-

▶ 『성경은 이 두 극단의 어느 편에도 있지 않다. 성경은 그 중간에 서 있으며 삼일성의 진리에 대한 양면성을 증거하고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성경은 균형잡혀 있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균형의 원칙에 부합되는 성경은 균형잡혀 있으며 그 중간에 있다. 성경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삼일 하나님의 진리에 관하여 우리도 역시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삼위 양식론과 삼신론이라는 이단적인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편, 37p-

▶ 『여러 해에 걸쳐서 나는 삼일 하나님에 관해 많은 메시지들을 전해 왔다. 만일 그 메시지들 안에 있는 어떤 문장들을 그 문맥으로부터 끄집어 낸다면, 내가 삼위 양식론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또 어떤 문장들을 그 문맥으로부터 끄집어 낸다면, 마치 내가 삼신론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물론 나는 삼위양식론도 삼신론도 가르치지 않는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편, 37p-

▶ 『삼위 양식론의 오류는 무엇인가? 삼위 양식론은 아버지와 아들과 영께서 모두 영원하지는 않고 또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오히려 삼위 양식론은 아버지께서 아들의 오심으로 끝났고 아들은 그 영의 오심으로 끝났다고 주장한다. 삼위 양식론자들은 신격 안의 세 분이 연속적인 세 단계 안에서 각기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동시존재와 상호내재를 믿지 않는다. 그들과는 달리 우리는 신격의 셋의 동시존재와 상호내재를 믿는다. 즉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께서 본질적으로 모두 동시에 같은 상태로 존재하심을 믿는다. 그러나 신성한 경륜에 있어서 그 세 분은 연속적인 세 단계 안에서 제각기 역사하시며 존재하신다. 그러나 그분들의 경륜적인 역사와 나타나심에 있어서조차도 여전히 그 셋은 본질에 있어서 동시 존재하며 상호내재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들 안에서 그 영에 의해 택하셨다(엡 1:4, 벧전 1:2下). 아들께서는 우리를 위해 아버지와 함께 그 영으로써 구속을 이루셨다(요 8:29, 히 9:14). 그 영께서는 우리 안에서 아들로서(요 14:26, 고후 3:17) 아버지와 함께(요 15:26) 역사하신다. 그분들의 역사와 나타나심은 경륜적인 것이지만, 그분들의 동시존재와 상호내재는 영원한 것이다. 셋 모두 본질적으로 영원하다. 이사야 9장 6절은 아버지께서 영원하시다고 말하고, 히브리서 1장 12절과 7장 3절은 아들이 영원하다고 말하며, 히브리서 9장 14절은 영원한 성령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그분들의 존재하심과 존재에 있어서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시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편, 38p-

▶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음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구별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분리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분리시킬 수 없고, 그 영에게서 아들을 분리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셋 모두 동시존재하며 상호내재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서 아들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분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그분 안에 있다고 하셨다(10:38, 14:10-11).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는데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 또 주 예수님은 그분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씀하셨다(요 10:30).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비록 구분이 되긴 해도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더 전진된 증거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구분이 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셋이면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편 39-40p-

▶ 『우리가 아버지, 아들, 영이 영원하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어떤 소문들과 비난들이 있다. 나는 그런 비평가들과 비난자들이 어디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성경에 따라 아버지가 영원하시고, 아들이 영원하시며, 영이 영원하심을 믿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이것을 믿으며 선포한다.

아버지가 영원하심

이사야 9장 6절에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용어가 있다. 이 히브리어 표현의 문자적인 번역은 「영원의 아버지(Father of eternity)」혹은 「영원한 아버지(eternal Father)」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영원하시다.

아들이 영원하심

아들도 영원하시다. 히브리서 1장 12절은 아들에 관하여,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7장 3절은, 「그분은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분이 영원하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한」이란 시작이나 끝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직선보다는 원이 영원한 하나님의 상징인 이유이다. 그분은 시작이나 끝이 없으시다.

영이 영원하심

영도 영원하시다. 히브리서 9장 14절은 「영원한 영」에 대하여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에 따라 우리는 셋―아버지, 아들, 영―모두가 영원하시다고 선포한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편 303p-

▶ 셋 모두가 동시에 존재하시며 양식(modes)으로 있는 것이 아님

『아버지, 아들, 영은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요한복음 14장 16절부터 17절까지를 보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우리는 이 두 구절에서 아버지께 그 영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시는 아들을 갖는다. 그러므로 아버지, 아들, 그 영은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에베소서 3장 14절부터 17절까지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속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시도록 그분의 영으로 우리 속 사람을 강건케 해 주시기를 기도하겠다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아버지, 영, 아들 그리스도를 갖는다. 모두는 동시에 존재한다.

성경은, 아버지가 한동안 존재했으며 그 다음 아들이 왔으며 그 다음 얼마 후 아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그 영으로 대체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구절은 하나도 없다. 성경의 이 구절은 아버지가 그 기도를 들으며, 그 영은 성도들을 강화시키며, 아들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마음 속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셋 모두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 여기에서 다시 분명해진다.

고린도 후서 13장 13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아들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혹은 교제가 언급된다. 셋 모두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고린도 전서 12장 4절부터 6절까지는 은사(gifts)의 영, 행정(administrations)의 주, 역사(operations)의 하나님에 대하여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영, 주님, 하나님을 본다. 다시 한 번 그 영, 아들, 아버지가 동시에 존재하며 역사하신다는 것을 본다. 그 영은 은사들을 주시며, 주님은 행정하시며, 아버지 하나님은 역사(운행)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가 일찍이 존재하심을 그치고 아들이 그분을 대체하려고 오셨으며, 그 후 그 영이 아들을 대체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아버지, 아들, 영 셋 모두가 영원하며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어떤 비평가들은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는 아버지요 그 영이라고 가르칠 때, 그는 신격의 세 위격의 상호내재와 동시존재를 부인하고 삼위 양식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러한 비난을 부인한다. 비평가들이 나에게, 아들이 서 있고, 그 영이 내려오며,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곳인 마태복음 3장 16절과 17절을 믿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적어도 그들이 믿는 것만큼은 믿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버지, 아들, 영 셋 모두가 동시에 존재했다. 나는 신격의 셋의 상호내재와 동시존재를 완전히 믿는다. 나는 마태복음 3장 16절과 17절을 믿을 뿐 아니라 이 주제에 관계된 모든 구절들도 믿는다. 예를 들면 계시록 1장 4절과 5절은, 영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고 말한다.

이 구절들에서 아버지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시며, 그 영은 「일곱 영」이며, 아들은 「충성된 증인으로 많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여기에서 아버지, 영, 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 존재하실 뿐 아니라 그분의 승천 후, 오순절 후에도 존재하신다. 여러 개의 다른 구절들도 같은 것을 계시한다. 고린도 후서 13장 13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그 영의 교통하심을 본다. 더욱이 에베소서 3장 14절부터 17절까지는, 「내가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비노라... 너희를... 그분의 영으로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 가운데 거처를 정하게 하옵시고」라고 말한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아버지, 그 영, 그리스도는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내가 삼위 양식론자라는 비난은 거짓된 것이며, 나는 절대적으로 그것을 부인하다. 삼위 양식설은 하나님이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며, 아들의 계시는 승천과 함께 끝났다고 가르친다. 아버지, 아들, 영의 영원성은 삼위 양식설에 의해 부인되었다. 삼위 양식설은 이단이며 우리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편, 305-306p-

▶ 아버지, 아들, 영의 상호내재와 동시존재

『어떤 비판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마태복음 3장 16절부터 17절을 볼 때, 거기에 아들이 있었고, 아버지는 하늘로부터 말씀하셨으며, 그 영은 아들위에 임했다. 셋이 모두 동시에 행동했다. 분명히 이러한데, 당신은 이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의 대답은, 우리가 우리를 비판하는 자들보다 더 많이 믿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을 순수한 말씀에 따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한 모든 것을 믿는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편, 307p-

▶ 『신격의 셋은 다만 동시에 존재할 뿐 아니라 또한 서로 안에 거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영 가운데에는 동시에 존재함과 상호내재함이 모두 있다. 하나님은 삼일, 즉 셋-하나이시다. 동시에 존재함은 같은 시간에 함께 존재함을 의미한다. 서로 안에 거함은 정의하거나 이해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이 용어가 삼일 하나님에게 적용될 때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서로 안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성경은 아들이 왔을 때 아버지가 그와 함께 왔음을 분명하게 계시한다. 이와같이 그 영이 왔을 때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왔다. 더욱이 아들이 왔을 때 아버지는 외적인 방법으로 아들과 함께 온 것이 아니라 내적이고 주관적으로 아들 안에 왔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 사이에 관계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특별한 헬라어 전치사, 즉 「-부터 함께(from with)」로 번역될 수 있는 전치사를 사용한다(6:46, 16:27). 아들은 단지 아버지로부터 왔을 분 아니라 심지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로부터 왔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왔으며 또한 아버지와 함께 왔다. 이것은 아들이 왔을 때 또한 아버지가 왔음을 가리킨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오셨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14:9)고 말씀하실 수 있었으며, 또한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느니라」(요 14:10)고 증거하실 수 있었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편, 310p-

▶ 1.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그의 책 「그리스도의 영」25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 예수께서 그 영의 생명 안으로 높여지셨을 때 그분은 주 그 영이 되셨다. 제자들은 주 영이신 그분을 모르는 채 오랫동안 예수를 알았었다. 주 영이신 그분에 대해서 전파하지 않고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인 주 예수에 대한 매우 열렬한 복음전파가 사역 안에 있을 수 있다. 믿는이들 가운데서의 사역이 행함과 그 영의 안에서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주 그 영으로 알며 인식함으로써,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믿는이들을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심으로 교회 안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데 있다.」

2. 헨리 알포드(신약 헬라어의 의미에 대한 권위자)는 「영어 독자들을 위한 신약」제2권 265페이지에서, 「여기에서 그리스도가 그 영이라고 말해진 것처럼(고후 3:17), 주님은 성령과 동일하다. 여기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영이다.」고 말한다.

3. 빈센트(Marvin R. Vincent)는 그의 「신약의 말씀 연구」제 3 권 308페이지에서, 「16절의 주 그리스도는 새 언약을 보급시키고 활력화시키는 그 영이다.」라고 말한다.

4. 제이 오스왈드 샌더스(J. Oswald Sanders)는 그의 「영적인 성숙」에서 이렇게 말한다.(무디출판사, 144p). 「윌리암 바클레이의 주석 :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과 성령을 동일시한 것 같다. 우리는 바울이 신학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체험을 기술했다. 성령의 역사와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가 하나라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체험이다. 우리가 받는 능력과 빛과 인도는 성령과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과 동일하다. 우리가 그것을 체험하는 한, 그에 대해 얼마나 강조하든 문제가 안된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편, 332p-

▶ 『신격 안에서 아버지는 근원이시고 아들은 그분의 표현이시다. 아버지의 표현으로서 아들은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아버지는 창시자, 기원자, 계획하신 분, 고안자이시며, 아들은 아버지께서 창시하시고, 기원하시고, 계획하시며, 고안하셨던 것을 성취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표현이신 아들은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편, 29p-

▶ 『신약은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 함께하신다고 말할 뿐 아니라 아들과 아버지가 상호 내재하심을 계시한다. 아들이 아버지와 상호 내재한다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시며 아버지가 아들 안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7장 21절은 이런 상호 내재를 계시하는 또 다른 구절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아들과 아버지는 상호 내재의 방식으로 동시 존재하신다. 이것은 그분들이 동시 존재하실 때 아버지는 아들 안에 존재하시며 아들은 아버지 안에 존재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편, 33p-

▶ 『삼일 하나님은 영원 과거에 그분의 신성한 계획 가운데서 신성한 삼일성의 두 번째 위격이 성육신되시고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영원한 구속을 이루기 위해(엡 1:7-9)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함을 결정하셨다. 그러므로 신성한 삼일성의 두 번째 위격은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 되도록 창세 전에, 즉 영원 과거(벧전 1:19-20)에 정해지셨다.』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편, 192p-

▶ 『때가 찼을 때 삼일 하나님은 신성한 삼일성의 두 번째 위격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몸을 취한(히 10:5) 성육신으로 보내셨다.』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편, 193p-

▶ 『특별히 베드로 전서 2장 24절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말한다. 나무 곧 십자가 위의 우리의 대속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셨을 뿐 아니라 또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셨다.』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편, 200p-

▶ 『구약에는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시고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가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있다. 시편 2편 7절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사무엘 하 7장 14절은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라고 예언한다. 히브리서 1장 5절은 이 구절들을 모두 인용한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편, 210p-

▶ 『시편 22편 22절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이름을 선포하실 뿐 아니라 회중에서 아버지를 찬송하실 것임을 예언한다.』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편, 222p-

▶ 『그분은 아들이실지라도 여전히 아버지를 표현했다.』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편, 530p-

▶ 『그분의 인간 생활에서 주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들을 관심하셨다. 누가복음 2장 41절부터 51절까지는 열 두 살 때에 그분이 하나님의 유익을 관심하셨다는 것을 계시한다.』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편, 531p-

▶ 『요한복음 6장 38절에서 주 예수님은, 그분이 자신의 뜻을 행치 않고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5장 30절에서 그분은 자신의 뜻을 구하지 않고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다고 말한다. 이러한 구절들은 주 예수님이 그분의 땅에서의 사역에서 그분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셨음을 분명히 가리킨다.』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편, 594p-

▶ 『이 구절에 있는 엘로힘이라는 히브리어는 삼중수이다. 만일 당신이 뉴베리 성경에 있는 표시를 참고한다면 여기의 「하나님」이 삼중수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신약의 결론, 성령편, 26p-

▶ 『이사야 6장 8절을 읽어보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한면으로는 나라고 말씀하시고 다른 한면으로는 우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나」가 「우리」이고 「우리」가 「나」라는 것을 가리킨다. 나와 우리는 동일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단수인가? 복수인가? 만일 당신이 복수라고 한다면 그분은 「나」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이 단수라고 말한다면 그분은 「우리」라고 말씀하신다.』 -신약의 결론, 성령편, 27p-

▶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형식화된 사도신경은 사벨리우스로 대표되는 삼위 양식론과 아리우스로 대표되는 삼신론에 대한 반발이었다. 사벨리우스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단지 상황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한 분 하나님의 나타남일 뿐이라는 것이다... 삼위 양식론에는 성경적인 어떤 근거가 있으나, 이단적인 극단으로까지 너무 멀리 나아갔다. 삼위 양식론자들은 하나의 면을 보았으나, 셋의 면에는 실수를 범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계시가 끝난 뒤에는 오직 성령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신격의 셋 가운데 있는 동존재와 상호 내재의 영원성을 부인한다. 그들은 이것을 부인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신약의 결론, 성령편, 29-30p-

▶ 『그러나 우리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또한 마태복음 3장 16-17절과 고린도 후서 13장 13절과 계시록 1장 4-5절과 에베소서 3장 14-17절과 같은 구절들도 믿는다.』 -신약의 결론, 성령편 31p-

▶ 『성령은 존재성이 영원하실 뿐 아니라 거룩한 삼일성의 다른 두 위격과 동시에 존재하신다. 요한복음 14장 16절 17절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이 두 구절에 구하는 아들과 보내시는 아버지와 오시는 성령이 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베소서 3장 14절부터 17절에서 바울은 아버지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옵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도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본다. 셋 모두는 동시에 존재하신다. 성경은 아버지가 계시다가 아들이 오시고 얼마 후에 아들은 더 이상 계시지 않고 성령으로 대치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 한 구절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고린도 후서 13장 13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아들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있다. 동시에 셋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위 양식론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아버지가 아들로 대치되었고 아들이 성령으로 대치되었다고 하는 이론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셋-아버지, 아들, 성령-이 모두 영원하며,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이상과 같은 말씀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성령이 단지 어떤 능력이나 도구만이 아닌, 경륜적으로는 거룩한 삼일성 안에 있는 세 번째 위격으로,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이시며, 시간적으로는 다른 두 위격과 같이 영원하시며 동시에 존재하는 분이심을 볼 수 있다.』 -신약의 결론, 성령편, 71p-

▶ 『계시록 1장 4절과 5절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아버지와 성령과 아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뿐 아니라 심지어 그분이 승천하신 후에도, 오순절 후에도 함께 계신다. 다른 많은 구절들이 같은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령은 영원토록,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동시에 존재하신다.』 -신약의 결론, 성령편, 7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