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구조를 영( spirit), 혼(soul), 몸(body) 셋으로 이해하는 것과 '영혼'과 '몸' 둘로 이해하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실제 체험상으로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대체적으로 속 생명파 ,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그리고 전세계 신실한 침례교인들은 전자를, 한국의 대부분의 장로교인들은 후자를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로마서 8장 6절을 가지고 두 가지 주장을 검증해 보겠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For the mind of the flesh is death, but the mind of the Spirit is life and peace"(Jay. P. Green, A Literal Translation of the Bible, Hendrickson, p 915).
위 말씀은 생각을 "육신"에 두면 "사망"이고, 생각을 "영"에 두면 "생명..."이라고 말함으로, 육체와 영, 생명과 사망을 결정짓는 권한을 "생각"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1) 만일 2분설 주장처럼 생각이 '영혼'에 속한 것이라면, 장로교인들은 항상 생명과 평안을 누려야 옳습니다. 그러나 실제 체험상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2) 반대로 영, 혼, 몸을 각각으로 보는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이 피곤하니 주일 집회를 빠지고 늦잠을 더 자기로 생각을 굳히고 그렇게 했다면, 몸은 피로가 풀렸겠지만 신실한 신앙인이라면 속은 편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몸은 피곤하지만 더 자고 싶은 육신의 욕구를 거절하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 위해 일어나기로 생각을 굳히고 그렇게 했다면, 깊은 속에 평강과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위 두 가지 사례 중 어느 것이 우리의 체험과 더 일치합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영의 인도에 순종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생각"(혼의 주도적인 부분)을 "영"-사람의 영과 하나된 내주 하시는 성령(고전6:17, 요3:6, 4:24, 롬8:16)-과 "독립"된 것으로 보아야, 위 말씀의 문맥이나 우리의 체험과 일치됩니다. 또 이렇게 이해할 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으라는 주님의 말씀(마16:24)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유의지"를 어떻게 주님의 인도에 굴복시킬지의 문제는 영적 성숙과 직결됩니다. "성화 또는 변화의 과정"은 사람은 허수아비고 하나님만도 아니고, 하나님은 제켜두고 사람만도 아닌, 하나님과 사람의 동역 (행함있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8장 6절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머릿속 지식은 많으나 자신의 존재 자체(기호, 습관, 취향)는 변한 것이 별로 없는 분들은, 자신의 지나간 세월들이 '생각이 육신에 두어진' '사망의 시간'은 아니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