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06-20 , 조회수
(1422) , 추천
(0) , 스크랩
(0)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지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아이 성 마저 점령하자,
이 일을 듣고 여러 민족들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려 모였습니다(수9장)
그 때 그 땅에 사는 기브온 거민들이 한 꾀를 내게 되는데,
그들은 다 해어진 옷과 신을 신고
곰팡이 난 떡과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여호수아에게로 달려가
"우리는 원방 심히 먼 곳에서
당신들을 만나기 위해서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해어진 옷과 신, 곰팡이 난 떡과 포도주를 준비한 것은
멀리서 왔다는 것을 가장하기 위해 그렇게 계략을 꾸민 것입니다.
그들이 쓴 계략은 첫째로 멀리서 왔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가까이 있지만 멀리서 왔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낡고 곰팡이 난 떡과 포도주를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특별히 기브온 거민이라 하고 있습니다.
거민이라는 말은 그 땅에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그 땅에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멀리 있다고 속이려 했습니다.
많은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대적의 위치를 모르고 멀리 있다 생각하고
결국 당하고 나서 내 자신 안에 있는 어떠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어려움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었습니다.
대적이 우리를 속이는 방법 중의 하나가
이러 이러한 죄는, 저러 저러한 허물은
너에게서 멀리 있다 걱정하지 말아라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삼 일만에 이러한 대적의 간계를 보았습니다.
삼일은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 안에서만이 우리는 대적의 간교함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대적은 곰팡이 난 떡과 낡은 포도주를 준비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떡과 포도주는 신선한 것입니다.
결코 낡아지고 곰팡이 슨 오래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신선하고 새로운 떡과 잔을 우리에게 공급하기 위하여
예비하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의 초기에는 모든 것이 신선하고 새롭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자신 안에서 낡아지고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오기 시작합니다.
한 가지 실패에 또 한 가지 실패가 중복되고 반복되어
그것이 쌓여가기 시작하면
아, 하나님마저도 나의 이것만은 치유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결국 그런 이기지 못함이 우리를 낡아지고 곰팡이 나게 합니다.
그리고 낡아짐은 기묘하게도 항상 종교를 데리고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한 날을 예비하셨고,
새로운 한 주를 예비하셨으며, 한 달, 한 해를 예비하셨습니다.
어제의 낡아짐이 결코 오늘까지 이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떡과 포도주를 항상 예비하셔서 우리를 공급하시는 것입니다.
결코 하갈이 어깨에 그 자식과 같이 짊어지고 간
한 가죽부대의 떡과 포도주에 그칠 수 없는 것입니다.
매주 만찬집회에 우리는 떡과 잔을 대하지만,
마음에서는 대적이 갖다준
곰팡이 난 떡과 찢어지고 해어져서 기운 포도주처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 새롭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새롭다는 것은 어제가 오늘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제의 실패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우리에게는 우리가 새로움 가운데 설 수 있는 근거인
새 포도주와 우리의 새로움을 위한 양식인 떡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낡아짐 가운데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통쾌함이 없다는 이야기이며,
하나님의 면전에 선지가 오래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참다운 새로움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늘 다시 새로움이십니다.
오직 그분을 접촉하고 그분으로 인할 때만이
우리는 참다운 새로움을 맛보기 원합니다.
언제든지,
낡아졌다고 느껴질 때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다시 돌아설 수 있기 원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