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 측 진리변증- 과연, 주예수님 자신은 우리 안에 안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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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지기 , 2008-09-19 , 조회수 (3025) , 추천 (0) , 스크랩 (0)

 

지방교회 측의 진리 변증-

과연, 주 예수님 자신은 우리 안에 안 계시는가?

-요일3:24 ‘성령으로 말미암아’의 바른해석-

 

 

영배 박사 등 일부 개혁신학자들은 ‘생명이신 아들 하나님’의 사람 안의 직접적인 내주를 부인하고, 주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내주하신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아들 하나님 자신은 사람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논거로 사용한 요한일서 3 24절에 대한 그들의 해석에서 심각한 오류를 드러내고 있고, 그릇된 논거는 정확하지 못한 결론을 추론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이런 주장의 내용들과 그것이 왜 오류가 있는 해석인지를 성경 원문 자체와 저명한 주경 신학자들의 의견을 통해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혁 신학자들의 주장 소개

  

1) 차영배 박사

 차영배 박사는 ‘위트니스 리 삼일론 논박’이라는 소 논문에서 ‘성령의 내주로 충분하고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내주는 필요없다’ 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바로 성육신되신 분이다” 라는 명제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주 예수는 부활하셔서 승천하사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시기 때문이고, 우리 안에 內住하시는 분은 주 예수께서 보내주신 성령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 마음 속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의 내주에 관하여는 사도요한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성령의 내주는 곧 주 예수께서 내주하시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성령의 내주로써 충분하기 때문에 주 예수께서 우리 속에 내주하실 필요가 없다. 그는 재림 때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이 사도 경이다. 따라서 주 예수는 우리 안에서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 으실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차영배, 월간 교회와신앙 2001 10월호, 창간 8주년 기념 삼위일체 특집, 122).

 

2) 변종길 교수

 고신대 신대원 변종길 신약학 교수 역시 성령을 통한 예수님의 우리 안의 내주하심을 요한일서 3 24절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따라서 자신은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자체는 부인하다는 의미인지는 아래 글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어떻게 함께 계시는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통해 함께하신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요일3:24), 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이다. 아니,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함께해 주신다.(변종길, 우리 안에 계신 성령, 생명의 말씀사, 2003, 52)

 

2. 성경 본문을 통한 반박

 

성경본문 문법구조로 볼 때, 아래 요한일서 3 24절 원문은 결코 우리 안에서의 아들 하나님 직접적인 내주를 부정하고 성령을 통한 간접적인 내주만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1) 헬라어 원문

 καὶ τηρῶν τὰς ἐντολὰς αὐτοῦ ἐν αὐτῷ μένει καὶ αὐτὸς ἐν αὐτῷ καὶ ἐν τούτῳ γινώσκομεν ὅτι μένει ἐν ἡμῖν, ἐκ τοῦ πνεύματος οὗ ἡμῖν ἔδωκεν.

 

이 구절의 하반절(밑줄 부분)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다’’와 ‘’우리에게 주신 그 영을 통해’’로 구성되어 있고, 이 두 부분은 구두점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신 그 영을 통해’’는 명백히 앞 부분의 구 전체(γινώσκομεν ὅτι μένει ἐν ἡμῖν)를 수식하는 것이므, 이 구 안의  종속명사절(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 ὅτι μένει ἐν ἡμῖν)이 아닌 주절의 동사(우리가 알다: γινώσκομεν)를 수식함이 분명합니다.

 

 2) 한글 번역본

 개역성경과 달리, 한글 킹제임스역과 회복역 성경은 모두 위 해석원칙에 의거하여 바르게 번역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에게 주신 성령에 의하여 우리는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아느니라.(한글 킹제임스역)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영을 통해 압니다.’’ (회복역)

  

3.  저명한 주경 신학자들의  견해를 통한 반박

 

1) Robertson은 그의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 요일 3:24 부분에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성령에 의해서 이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228).

 

2) Expositors Greek New Testament(vol.5)의 요일 3:24 각주도 (이 같은) 확신은 성령으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언급하므로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영’’이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앎’’을 수식하고 있다고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188).

 

3) WuestWord Studies in the Greek New Testament의 요일 3:24 부분에서 ‘’하나님이 성도들 안에 거한다는 사실의 지식은 성령으로부터 온다’(158). 이 부분의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And in this we know experientially that He is abiding in us, from the Spirit as a source whom He gave to us’’

 

4. 결론

 

차영배 박사 등의 위와 같은 잘못된 가르침은 ‘성령으로 말미암아’(by the Spirit)가 수식하는 대상을 잘못 해석한 데서 그 원인이 있습니다.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by the Spirit)’가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수식한다고 잘못 해석함으로써 ‘아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개념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아들 하나님의 직접적인 내재는 배제시키고 성령을 통한 간접적인 내재라는 사상을 고안해 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과 성령을 구별함에서 지나쳐 분리시켜 생각하는 위 차영배 박사의 주장은 삼신론이라는 의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통 삼위일체론자 중 하나로 평가되는 다메섹의 요한(670-750) '삼위의 상호 공재'(페리코레시스) 개념에 따르면, “성자는 성부와 성령 안에 계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 안에 계시며, 성부는 성자와 성령 안에 계시나 뒤섞임이나 용해와 혼합은 발생하지 않는 분”(유해무, 개혁교의학, 165)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들 하나님의 우리 안에서의 직접적인 내주를 부인하는 위 차영배 박사의 주장은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요일 5: 12),또는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시니”(1:26)와 같은 성경말씀들을 체험하지 못하게 가로 막음으로 성도들이 참된 거듭남을 체험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점은 위와 같은 잘못된 주장이 저명한 신학자의 말이라는 후광을 업고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를 언급하고 있는 성경 본문(3:4, 1:27) 조차도 부정하는 그릇된 표준으로 한국교계 내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