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교회를 구분하는 성경적인 기준-민족이 아닌 지역임
지방교회
timothy , 2005-08-24 , 조회수 (4287) , 추천 (0) , 스크랩 (0)

 

이 글은 박만수 님의 (932번 글)-교회는 사람입니다'!! 라는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박만수 님은 교회와 교회를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 위 글에서 성경적인 사실인 <지역에 따른 구분>을 부인하고, 성경에 반하는 <각 민족에 따른 구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에서 보듯이 민족을 초월한 새사람인 교회의 본질을 심각하게 오해한 비성경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1. (박만수 님) "교회를 시공에 따라 단 복수로 구분하려면, 지리적 행정이 아니라 각 민족, 족속(혹은 부족)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옳다".


--반박: 이런 주장은 새사람인 <교회의 본질>에 정면 배치되는 주장입니다. 교회는 박만수님의 주장처럼 옛사람의 영역에 불과한 각 민족이나 부족여부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골로새서 3:11은 새사람인 교회 안에는 유대인, 이방인, 할례당, 무할례당, 야인, 스구디아인, 종, 자유인이 있을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가 만유이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교회를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주님자신)의 충만'으로 정의한 엡1:23에 의해서도 확증됩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민족이다 까지는 문제가 없으나 이어서 옛사람의 구분에 불과한 민족, 부족, 가족개념을 교회구분에 끌어들인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2. (박만수님) “가령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장소보다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히브리인 혹은 유다인)의 교회를 가리켜 예루살렘 교회라고 한 것입니다”


--반박: 위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8:1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the church which was at Jerusalem)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교회‘라는 본질에 있어서는 전셰계 어느 교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다른 지역의 교회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유일하게 <지역>의 차이일 뿐입니다. 즉 행 8:1의 예루살렘 교회와 행 13:1에 언급된 '안디옥 교회‘와 의 차이는 '예루살렘'이라는 지명과 '안디옥‘이라는 지명의 차이 뿐입니다. <민족>이나 <부족>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본문 전후문맥을 보더라도 그런 주장을 펼 어떤 암시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성경에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만일 박만수 님의 주장대로라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디로 가서 교회를 세우든지 그 교회들은 다 '예루살렘 교회‘라고 명명해야 할 것이나 성경은 이런 가르침을 배척합니다. 이런 민족중심으로 교회를 구분한다는 박만수 님의 주장은 당장 유다인과 헬라인 심지어 흑인이 혼합된 교회인 '안디옥 교회‘(행13:1)에 갈 때 그 헛점이 드러나고 맙니다. 왜냐하면 안디옥 교회는 '흑인, 헬라인, 유다인' 등으로 구성된 일종의 <다민족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안디옥 교회를 박만수 님의 잘못된 주장처럼 민족이나 부족을 따라 지칭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 지역명칭인 안디옥을 따라 ‘안디옥 교회'(the church that was at Antioch)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고 안디옥에 '안디옥 민족'이나 '안디옥 부족'이나 '안디옥 가족'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육신적으로는 같은 민족도, 같은 부족도, 같은 가족도 아닙니다.


그들을 묶는 공통분모는<안디옥이라는 지역>에 머물며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과 다 거듭나서 <새사람의 구성원들>이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전자는 교회와 교회를 구분하는 성경적인 기준이고 후자는 몸인 교회의 본질입니다. 이 둘을 잘 구분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3. (박만수 님) “이방인 교회들의 경우, 역시 이방민족들 중심으로 구분된다고 봅니다. 좀더 세분하면 부족들 중심의 구분이 될 것입니다. 즉 이방인 가족교회가 부족교회로, 부족교회가 민족교회로 발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한국교회, 영국교회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 단위가 복수의 교회구분 기준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취지와 본질은 지리적 행정이 아니고 민족과 부족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반박: ‘가족교회' ‘부족교회‘ '민족교회‘라는 호칭 자체가 비성경적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여기에 무슨 가족교회, 부족교회, 민족교회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박만수 님은 예전에 서울에는 하나의 서울교회가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에 하나뿐인 서울교회가 어떤 근거로 하나란 말입니까? 서울 한 가족 교회?, 서울 한 부족 교회? 서울 한 민족 교회? 서울 한 한국사람교회? 이 어떤 명칭도 어울리지도 않고 성경적이지도 않습니다. 유일하게 <서울이라는 지리적 기준>만이 <서울에는 하나의 서울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바르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한국민족으로 구성된 것이 한국교회라면 외국 노동자들이 거듭난 후 한국에서 교회생활을 한다면, 그들은 <그 각각의 민족들의 교회>인가 아니면 여전히 <한국교회>인지도 헷갈릴 것입니다.


이처럼 박만수 님의 민족교회 개념은 성경의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오히려 백인들이 흑인들을 몰아내고 백인만의 교회를 고집하는 잘못된 실행을 지지하는 이론적 근거로 악용될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도 비난받는 이런 인종차별적인 실행이 오히려 새사람인 교회 안에서 정당화될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누가 봐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 정도 반박만으로도 눈치 빠르신 독자분들은 누구의 주장이 성경적이고 누가 성경에 없는 말을 하고 있는지 분별하셨을 것입니다.

이제 이하에서 박만수 님의 독특한 주장들 몇 가지에 대해 추가로 반박해 보겠습니다.


(1) 성경에는 (특정) 족속교회, 부족교회, 가족교회 사례가 없습니다. 참고로 성경 몇 군데에서 발견되는 '누구의 집에 있는 교회'라는 말은 언급된 그 사람의 가족 구성원들로 만 교회가 이뤄졌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런 성경에 없는 사실을 확대적용 한 “두세 사람도 교회이고, 단 한 사람도 교회”라는 박만수 님의 주장 역시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두 세 사람도 교회이고, 한 사람도 교회라면" 성경은 왜 수 만 명의 성도와 다수의 예배처(가정집)가 있었던 <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행8:1)를 말하면서 '교회‘를 단수로 표현했단 말입니까? 우리는 사도행전 8:1이 그 당시 '예루살렘지역에 거듭난 모든 사람들을 다 포함한 것'을 '하나의 교회단위'로 지칭하고 있음을 주목하여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마 18:15-17의 경우, 전후문맥 상 예루살렘 교회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거나 그것이 당연히 유다인 교회일 것이라는 박만수님의 주장은 추측과 상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마8:15-17 전후 문맥 어디에도 그 말씀을 예루살렘 교회를 염두에 두고 하셨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습니다. 그 때는 신약교회의 간증이 나타나기 이전입니다. 그러므로 위 본문은 예루살렘 교회 뿐 아니라 앞으로 출현할 모든 지역 교회들 안에서 발생될 일들을 처리하는 일반적인 원칙을 미리 제시한 것입니다. 말은 아가 다르고 어가 다른 것입니다.


(3) '한 두 사람이 교회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과 '그러므로 그들을 각각의 교회라고 지칭할 수 있다'는 박만수 님의 두 주장 사이에는 교묘한 논리의 비약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의 서울교회(또는 영월교회) 내에 박만수님이 예시하신 그런 교회의 기능을 발휘하는 열 사람, 백 사람이 있다면 그런 기능을 발휘하는 사람들 마다 별도의 독립된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그러면 그들 중에 몇 개의 교회가 있단 말입니까? 이런 주장은 특정교회가 하나이기도 하고 여럿이기도 하다는 말이 안 되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혼동이요 혼잡일 것입니다.


(4) "영월 교회가 성장하여 큰 무리를 이루었다면, 영월에 있는 큰 교회를 기준으로 하여(지리적 구분이 아닌 부족 개념임을 잊지 마시길) 두세 사람은 교회의 일부로 인식될 것입니다"라는 박만수 님의 주장은 사실 왜곡의 극치입니다. 단도적입적으로 박만수 님에게 질문드립니다. 교회구분을 부족개념으로 나눈다면, 위 소위 영월교회는 '어떤부족'의 교회입니까? <영월부족>입니까? 그렇다면 그런 부족이 실제로 있기나 하는지요? 이러한 부족개념의 교회 주장은 비 현실적이고 시대 착오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성경의 근거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5) “워치만 니와 지방교회가 마 18:15-17을 숫자로 계산하여 범죄한 형제 한 명 더하기 권면하는 자 한 명 더하기 두세 증인 하면... 식으로 숫자에 연연하여 교회의 정체성을 정의한다면, 그러한 식의 해석은...인본주의적 해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박만수 님의 비판은 전형적인 독단과 지나친 비판 사례입니다.


성경 위 본문은 범죄한 형제를 다루기 위해 간 두 세 명의 교회 지체들(증인들)에게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게 말하라>고 적고 있습니다. 추구하는 성도들은 만일 두 세 명도 교회라면, 위 본문에서 찾아간 두 세명도 교회로서 간 것일텐데 왜 성경은 그들에게 그들의 말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다 말하라고 했는지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두 세명>과 그들이 가서 말해야 하는 <교회>는 <각기 다른 범위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도 교회이고, 두 세 사람도 교회라는 불릴 수 있다는 박만수 님의 주장은 성경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자신의 임의 주장을 토대로 다른 성도들을 '숫자놀음을 한다'느니, '인본주의 해석'이라느니 하며 지나치게 매도하는 것은 참된 성경신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박만수 님은 이런 반복되는 지나친 단정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6) “(박만수 님)가령, 영월에 천명의 기독교인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새롭게 시작된 두세 사람을 참 성경신자로 인정하신다면, 그들이 참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가족으로 발전하고 부족이나 족속으로 발전한다면, 인식 기준이 바뀔 뿐입니다. ... 워치만 니는 여기서 너무 나아간 것이었습니다. 추00님과 지방교회분들이 색안경을 벗고서... 사람 중심으로 교회관을 새롭게 발견하고 정립함으로써, 비로소 지방교회의 한계와 모든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될지... ”


위 박 만수님의 글에서 사용된 ‘참 성경신자'라는 말이 ‘참되게 거듭난 자'라는 말과 동의어라면 위 가정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영월에 천 명의 그리스도인”이 참된 거듭남이 없는 사람들이란 말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사람중심이라는 말은 옛사람이 아닌 새사람 중심이어야 함에도 여기에서 빗나가 임의로 특정가족, 특정부족, 특정민족 개념을 도입한 것은 비성경적인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자신의 그릇된 주장을 토대로 누가 너무 나아갔느니, 색안경을 썼느니, 한계와 문제가 있느니 하는 것은 자신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한 단정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옛사람을 중심으로 한 박만수님의 교회관으로 새롭게 정립할 이유도 없고 도리어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서 빗나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서두에서 지적했듯이 박만수님의 교회구분 기준은 '옛사람'에 기초한 매우 잘못된 구분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 짓는 것을 폐하시고 이 둘로 한 새사람으로 지으셨습니다(엡2:15). 이 새 사람 안에는 유다인 이방인 구분이 없습니다. 심지어 육적으로 이방인일지라도 그가 참되게 거듭났다면 (이면적) 유다인이라고 성경은 선포합니다(롬2:29). 그러므로 영월부족, 서울부족 이런 것이 있는지 몰라도 그들도 참되게 거듭났으면 아브라함의 자손(갈3:28-29)이요 참된 '하나님의 이스라엘'(갈6:16)입니다. 민족을 따지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민족 하나면 족합니다. 그외의 것은 다 옛 사람의 천연적인 생각에 불과할 뿐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후기: 독자분들은 위에서 지적했던 요점들과 박만수 님의 주장들을 비교 검토하여 성경이 지지하는 교회와 교회의 구분만을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출처: http://www.antioch.co.kr/Antioch/Qna01/View.aspx?QnaID=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