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이 죄들을 자백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1)?
구원
timothy , 2005-08-24 , 조회수 (3252) , 추천 (0) , 스크랩 (0)

 

사랑과 함께 공의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속성입니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죄 사함 받고 거듭난 이후 마치 이제는 하나님에게 무한한 사랑과 은혜만 있고 엄격한 공의는 없어진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 재림 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모든 생활과 일들을 엄중하게 심판하실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민20:2, 24, 롬14:1-13, 고후5:10, 고전3:15, 마12:35-36, 전12;14, 눅8:17, 시90:8, 롬2;16).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반드시" 심판을 통과해야 함을 말하는 일부 성경본문들을 간략하게 검토할 것입니다. 이어서 우리가 이러한 엄중한 심판을 대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살펴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런 주제들에 대해 제기되는 의문들과 반론들을 먼저 간략하게 요약하고 성경을 기준으로 판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믿는 이들도 심판 받는다는 말과 관련된 이의제기 또는 오해들


요한 일서 1:9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들을 사하시며(forgive),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cleanse) 하실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아멘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검토하고자 하는 핵심은 '만일 우리가 위 말씀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위 말씀대로라면 거듭난 이후의 죄들을 자백하지 않고 죽거나, 주님의 재림을 맞이한 사람들에게는 '용서함 받지 못하고 깨끗케 되지 못한 그 무엇(불의)이 여전히 남아있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위 말씀을 따라 자백을 실행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모두를 감안한 공정한 해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의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1) 그렇다면 당신들은 우리가 영 단번에 얻은 칭의(롬3:24)의 효능을 부정한다는 것인가? 또는 믿음으로 얻은 칭의가 나중의 행위로 인해 취소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우리의 답변은 '아니요'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세심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 요일1:9에서 자백해야 할 주체인 "우리"는 저자인 사도 요한을 포함한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로마서 3:24의 칭의를 얻었고 죄인에서 의인의 위치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영원히 지옥가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은혜 그리고 우리의 오직 믿음을 통해 받은 견고한 보장입니다(딛3:5, 요10:28-29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본문은 이러한 "칭의를 얻은 믿는 이들"의 거듭 난 이후의 불의와 이에 대한 자백과 용서와 씻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의인된 자가 생활 중에 저지른 불의를 자백하지 않아 용서와 씻음을 받지 않고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와 종교개혁가들의 영 단번에 얻은 '칭의'(롬3:24)는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2) 또 다른 견해는 한 번 의인이 되었으면 심판 자체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받은 후 죄를 짓고 자백하지 않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거듭났으면 천국에는 100퍼센트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큰 상 작은 상을 가리기 위한 심판은 있으되 심판대에서 무슨 벌을 받거나 해를 입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분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의 믿는 이의 징계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로마 천주교의 연옥교리의 연장이라고 반발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이가 죽거나 휴거 되기만 하면 만사가 다 잘되고 즉시로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뒤에서 보겠지만 모든 성도들은 예외 없이 엄중한 심판을 거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는 물론 '상'도 있지만 '심각한 징계'도 있을 것임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균형 잡힌 가르침일 뿐 이단적인 '연옥교리'(the purgatory)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반복하여 강조하건대, 믿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리스도 자신을 우리 안에 씨로 뿌리신 후 우리를 영적 생명이 성숙한 익은 곡식으로 수확하는 것입니다(막4:26-28, 엡4:13-16, 마13:19, 고전3:6, 계14:1, 14-15).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러한 생명의 성숙은 시간을 요구하며 우리가 죽는다고 해서 어렸던 생명이 그 순간에 성숙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생명의 성숙을 위해 굳이 이 땅위에서 좁은 생명 길을 갈 필요가 없이 오히려 빨리 죽어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주님의 방법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 생명의 성숙은 시간을 요구하며 특별히 이 땅을 사는 동안 우리의 자아가 철저하게 부인될 것을 요구합니다(마16:22-24, 갈2:20). 그러므로 이런 길은 찾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마7:13-14).


2. 엄중한 심판을 말하고 있는 성경 말씀들


다음 몇 구절들은 믿는 이들에 대한 심판을 언급하고 있는 말씀들입니다.


1) 롬14:1-13 :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라....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judge)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set a nought). 우리가 다 하나님(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않기를 주의하라."


이러한 심판은 전 천년주의를 기준 한다면 주님재림 직후 천년왕국 전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대 앞에 설 주체는 휴거 된 모든 믿는 이들이며, 심판의 대상은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의 모든 삶과 일들입니다(마 25장). 그러므로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죽으면 곧 바로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위 본문에 따른다면 그 이전에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먼저 서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입으로 일생 동안 한 일을 하나님께 직고해야 합니다. 만일 "시험" 안 본다고 생각해서 평생을 실컷 놀았는데 갑자기 주님의 감독 하에 준비 안 된 시험을 보게된다면 그 당혹감이 어떠하겠습니까? 성경이 "우리가 다 하나님(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했으면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믿는 자에게는 더 이상의 심판은 없다'는 근거 없는 루머에 현혹되어 느슨한 삶을 살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심판은 천년왕국 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천년왕국 이후에 이뤄질 불신자들이 받을 '백보좌의 심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계20:11-15).


2) 고후 5:9-10 :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ement seat of Christ)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위 말씀은 구원받은 후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어떤 지위에 있었던지 간에 예외 없이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어떤 분에게는 상을 받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고전3:8, 14, 9:17, 롬2:29, 고후10:18). 그러나 주님이 이러한 심판대 앞에서 오직 큰 상 작은 상만을 고르시고 벌이나 징계는 안 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것입니다. 위 말씀은 우리가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심판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심판대 앞에서 오직 상 받을 일만 있다면 악을 행한 자에 대한 심판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불의한 인간세계에서도 선을 행하면 상을 주고 악을 행한 자는 징계와 제재를 가하거늘 하물며 전적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이 심판대에서 악행을 간과하고 상만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분의 속성을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3) 고전 3:12-15 :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나고(for the day shall declare it, because it shall be revealed by fire)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함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if any man's work shall be burned, he shall suffer loss : but he himself shall be saved ; yet so as by fire).


어떤 분은 위 '그 날'을 그리스도인들의 이 땅에서 사는 날들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체 문맥을 볼 때 '그 날'은 우리의 모든 지상에서의 삶을 결산하는 시점 즉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것에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로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딤후4:8, 고전1:8, 살후1:10, 딤후1:12). 한편 위 말씀은 우리의 '공력'(work)이 불타면 '해'를 받는다고 말하고 '불 가운데서 구원받는다'고 말함으로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는 상과 칭찬만 있고 벌은 없을 것이라는 일부의 무책임한 거짓말을 일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날에 우리의 생활과 일의 열매가 불태워짐으로 '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매일의 삶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심판대 앞에 설 날을 예비해야 할 것입니다(빌2:12, 고전9:27).


참고로 KJV은 '해를 받는다'는 말의 원어인 '제미오오'(2210)를 'suffer loss'(손실의 고통)로 번역했고 개역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는 이 단어가 '잃다' '빼앗기다' '해를 받다' '잃어버리다'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잃거나 해를 받는다는 말일까요? 그것은 마25:21, 23에 의하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함'을 잃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태복음 25장 후반부의 비유가 종으로서의 믿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전제가 맞다면(마25:14), 이런 부류의 믿는 이들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상'의 상실에 더하여 일정기간 무익한 종으로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기게 될 것입니다'(마25:30). 물론 이것은 구원이 취소되고 지옥 가거나 이단적인 가르침인 연옥에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고전3:15 말씀처럼 '불을 통과하는 구원의 과정'에 해당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말씀에 비춰본다면 거듭난 후의 생활과 봉사가 부실했던 분들도 죽기만 하면 즉시 천국에 들어가 아무런 고난 없이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많은 분들의 착각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4) 마12:36-37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만일 무슨 무익한 말(every idle word)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해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For by thy words thou shalt be justified, and by thy words shalt be condemned)


위 말씀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는 칭찬과 상뿐 아니라 특히 우리의 했던 말들에 근거하여 '정죄'도 있을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바울은 '말의 실수', '더러운 말', '누추한 말'(filthiness)과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jesting)이 마땅치 않으니 돌이키라'고 권면 합니다(약3:2, 엡4:29, 5:4).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무익한 말들로 자신과 다른 이들을 더럽히고 손상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전적으로 의로우며 장차 상만 받고 곧 바로 천국으로 직행하여 주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착각한다면 이 어떠한 비극입니까?! 그러나 만일 우리가 무익한 말들을 할 때마다 자백함으로 용서와 씻음을 받지 않는다면 그 날에 위 말씀에 근거하여 반드시 엄중한 정죄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이외에도 자백하지 않은 죄들을 가진 불의한 믿는 이들이 장차 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말하는 성경구절들은 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도 믿는 이는 누구도 예외 없이 휴거 이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는 점, 이러한 심판은 상뿐 아니라 벌과 손실과 정죄도 있을 것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심판을 인식하고 예비하는 분과 그저 느슨하게 살다가 심판대 앞에 서는 분의 차이는 생각보다 심각할 것입니다.


3. 어떻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날을 예비할 것인가?


1) 그리스도를 살아냄


사도 바울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었으며 그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믿음(the faith of the Son of God)으로 사는 것 즉 그리스도 자신이 자기 안에서 사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갈2:20, 빌1:21). 이러한 삶의 노정을 신실하게 달렸던 바울은 인생의 말년에 자신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된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를 얻고 또 그리스도를 살아낸 결과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 수 있는 한 길을 성경이 제시하고 있어서 소개 드리자면, 그것은 곧 '그분 자신을 먹는 것' 입니다(so he that eateth me, even he shall live by me, 요6:57). 이 말은 어감은 이상할지 모르나 참입니다.


2) 영적 생명의 성숙을 추구함


에베소서 5:25-27은 과거에 교회 즉 우리들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드리셨고 장차 영광스런 신부인 교회의 신랑이 되실 주 예수님이 현재는 살아있는 말씀으로서 우리의 티나 주름잡힌 것들을 씻어내시고 그분의 생명과 거룩한 성품을 더하사 거룩케 하시는 일을 하고 계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주관적인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고집 피우며 저항하지 않고 믿음으로 반응함으로 생명의 성숙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엡4:22-24, 딤전1:4, 히4:2). 사실은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삶의 핵심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철저하게 자백하고 즉시 사화함


성경은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할 것을 권면 합니다(요일1:7).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예수의 피를 힘입은 우리의 철저한 자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는 적극적으로 생명 되신 그리스도를 살되, 약함으로 인하여 죄를 범했다면 즉시 돌이켜 철저히 자백함으로 주님의 용서함과 씻음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신령한 분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잘못된 죄들을 시인하고 자백하는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들의 자백의 과정에서 수치와 손해와 손실이 있을지라도 그 날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당할 수치와 손실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많은 때 사탄은 우리의 자존심을 세우고 죄를 은폐하고 변명하게 할 뿐 이러한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게 속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자백을 통한 죄들의 용서와 씻음의 기회가 항상 열려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있을 때 그리고 "송사 하는 자가 함께 길에 있을 때" 우리의 죄들을 철저히 자백하고 급히 사화해야 합니다(마5: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