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http://new-jerusalem.org/mean.asp 에서 발췌를 했습니다.
글을 싣도록 허락해 주신 이동근 목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1] 세계 기독교 국가들은 회개하라
회개하라! 성령없이 인간의 이성으로만 행한 결과로 영적무지를 가져와 어둠을 더한 기독교에게 하나님은 마치 포도원을 종에게 맡기고 타국에 가서 소출을 찾는 주인과 같이 이 시대를 향하여 엄중히 그 책임을 묻고 계신다.
1. 기독교는 세상에 어떠한 역할인가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창조해 나가고 계신다. 기독교는 그 중심에 서서 세상을 빛과 소금으로 창조해 나가는 것이며 교회는 하늘로부터 믿음이라는 보배를 부여 받았으므로, 이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새롭게 창조해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즉 신앙은 주의 뜻에 맞추어 믿음으로 그 뜻을 그대로 이루어 드리는 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주 기도문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세상이 설계하고 구도해 놓은 대로 교회가 뒤따라 다니며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설계해서 세상을 이끌어가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주의 종들의 중요한 사역이고 본분인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모순된 체제를 만들어낸 원인은 무엇이었으며, 이러한 형태의 세계 경제 구조를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중세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분배와 나눔의 법칙' '심고 거두는 법칙'을 좀더 잘 가르쳤고, 좋은 세상 구현을 위하여 준비하고 예비한 10처녀중 5처녀가 되었더라면(마25:1-13) 공산주의와 같은 사상이 탄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 국가인 유럽에서 산업 혁명을 통하여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 왔으나 '분배의 법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오히려 빈부의 격차가 심화 되자, 소외 계층으로부터 공산주의 사상이 탄생하게 된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세상이 이 지경까지 되었어도 누구하나 내 탓이라고 하는 종들이 있었던가. 이렇게 기독교가 부패하고 타락하여 교회가 교회로써의 제 구실을 못하게 되자, 세상은 그들 스스로의 자구책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어 오늘에까지 이른 것이다.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목숨을 다해 사명을 완수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세계의 체제와 구조가 아닌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꾸어 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계 정치, 경제, 교육... 사회 전반의 모든 제도와 구조는, 하나님 없이 인간들만의 지혜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대처해 온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보응이다. 다시 말해 그 심판은 영으로는 세기말에 가치관의 혼돈과 혼란을 가져왔고, 육으로는 지진, 홍수, 기상이변, 생태계 파괴 등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인한 재앙을 가져온 것이다.
세상에 기독교가 있는 것은, 교회로부터 감동과 감화를 받아, 생명의 말씀을 확인시켜 빛으로 이끌어내어 복음화를 시키기 위함이며, 복음화는 최소한 성경 말씀을 모형으로, 세상에 삶의 질이나 방법에 있어 아름답게 꾸미고 단장시켜 세상을 지속적으로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방관함으로써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외면하여 왔다.
주께서 원하시는 세상의 구도를 그린다는 것은 인간의 지혜에서 비롯된 수단과 방법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인도에 따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비젼을 토대로 마음에 믿는 믿음과 사랑의 행위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 경제 구조는 사랑은 간데 없고 오직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한 치열한 경제 전쟁으로, 먹고 먹히는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는 짐승의 삶을 살고 있다.
어차피 하나님 없이 세상지혜로 이루어진 것은 이러한 모순된 구조로 만들어 질 수밖에 없다. 세계는 지금 이러한 사회 구조 밑에서 신음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부수적인 문제들 즉, 소외 계층, 도덕, 윤리적 타락으로 발생되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등을 안고 있어 기독교는 이것을 예비하고 막지 못한 것에 대하여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하여 빚을 갚는 최소한의 보상인 것이다.
1) 교회의 암흑시대
이 천년간 교회는 복음전파라는 미명아래 교세 확장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4세기부터 종교 개혁(1517년)이 일어나기 까지는, 세계를 교권 밑에다 두려는 어리석은 욕망에 사로 잡혀, 성서에서 벗어난 너무 다른 모습의 교회 독재가 이루어 졌다.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어, 현실을 변화 시키며 말씀대로 이루어 지는 창조적인 믿음을 갖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데, 그들은 교권 밑에서 속죄만이 최고의 신앙의 미덕이며 무조건적인 순종만을 강요한 결과,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신앙의 암흑시대가 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종교개혁이후 프로테스탄트도 역시 교세 확장에만 열을 올리며 지금에 와서는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게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으며 성서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의 이방 종교로 변화되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17-20세기 아시아 및 약소 국가들은, 소위 기독교 국가라는 열강들에 의해 각축장으로 변해 버렸고, 대부분 침략과 선교가 같이 병행되는 아이러니칼한 현상이 일어났다.
2) 침략과 선교가 병행된 기독교
영국은 인도에게 어떠한 존재이며, 기독교 국가인 영국은 인도에게 무엇을 어떻게 했던가? 왜 그렇게 하도록 영국의 성직자와 성도들은 방관을 했으며 신앙교육은 무엇을 시켰는가.
영국의 야욕 앞에는 마5:38-45 말씀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말 그대로 인도는 식민 국가였고 착취의 대상이었으며, 교회는 그것을 방관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공범이 되어 식민화의 당위성을 제공했던 것이다.
기독교적인 사랑보다는 힌두교가 먼저 기독교에게 사랑을 베풀었으며(간디의 '무저항주의')기독교 국가인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면서도 복음화는 커녕, 그들은 여전히 힌두교 국가로 남아 있다. 이 시대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의 전환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복음 전도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국가에게 풍성한 물질과 막강한 국력을 주셨다. 그러나 기독교 국가들은 그동안 약소국에게 어떠한 만행을 자행하고 있었는가. 그러한 행동들이 과연 성서적이며 복음의 참 의미가 그렇게 행하라고 했던 것인가.
하나님은 유럽에서 실패를 했기에, 미국만은 진리대로 잘 감당하리라는 기대 속에서 그들에게 많은 복을 주셨으나,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기대를 저 버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실패한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과 똑 같은 전철을 밟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미국이나 유럽을 기독교 국가들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목회자들은 미국의 신앙과 교육을 동경하고 신뢰하며 안타깝게도 그들의 지나온 발자취를 그대로 믿고 따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 하지도 본 받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가르치는 신앙 교육은 성령의 가르침이 아닌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며 율법도 아닌 철학의 한 종류 일뿐 죽은 교리이다.
이러한 기독교에 대해 이 시대에, 하나님은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묻고 계신다. 미국과 서방 기독교 국가에게는 준엄한 심판이 이루어 질 것이며 한 호리라도 갚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2. 성령 없이 교회를 인도했던 목회자들은 회개하라
현대 교회의 특색은 성령 없이도 교회는 잘 운영되어 가고 있고, 그렇게 해도 잘 되리라고 생각하며 행하여 지고 있다. 마치, 양반 사회에서 노리개는 장식용으로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인 것과 같이, 성령은 신앙을 하는데 있어서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장식용 노리개로 전락되었으며, 설교할 때에는 의례적으로 한번씩 넣어 맛을 내는 양념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다.
성령은 신앙을 위한 치장일 뿐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느끼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최고의 진수는 성령과의 교통이다.(고후13:13)
사랑이 완성된 자만이 성령과의 교통이 이루어 지게 되는 것이며, 교통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주의 종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며, 참다운 하나님의 종으로써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교통을 통해서야 만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무엇을 바라시는지 어떻게 행해야 할지, 하나님이 교회에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며, 그때야 비로소 그 뜻대로 응해 드릴 수 있는 것이다.(눅10:22)
그러나 현대 교회는 성령과의 교통없이 사명을 감당해 왔으며, 성령없이 가르치고 양떼들을 인도한 결과, 오늘의 기독교를 만들어 놓은 책임을 스스로 통감해야 한다.
종이 주인의 소리를 못 듣는다면 과연 주인을 제대로 섬길 수 있겠는가. 각자의 직업에 따라 업무가 서로 다르듯 주의 종들의 고유 업무는 '성령충만' '성령의 인도' '성령과의 교통' 인 것이다.
그러나 성령과의 교통이 끊어진 종은,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붙어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주의 종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성령의 인도함이 없는 설교나 가르침은 성경을 더욱 난해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뜻을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마22:29)
그동안 성령없이 인간의 지식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잘못된 길로 양떼를 인도한 종들에게는 그 행위에 따라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니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회개하라! 성령없이 지식만으로 하나님을 증거한 종들에게는 화와 진노가 임하리라.
3. 기독교의 성장 장애 요인인 이단론을 정리하지 않으면 몰락 되고 말 것이다.
기독교는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 없이 성경을 해석한 결과, 이제는 신앙이 다 망가져서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는 이 지경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십자가 군병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새 계명은 다 어디로 가고, 대신 의심과 반목과 질시로 무장되어 있는 것인가? 그들이 입고 있는 군복은 예수님이 지정해주신 십자가 군병들의 옷이 아닌 의심의 옷으로 무장되어 있다.
누가 십자가 군병들이 입고 있던 사랑의 갑옷을 벗기고 의심과 반목, 질시의 옷을 입혀 놓았는가. 이는 기독교를 말살 시키기 위한 철저한 사탄의 마수에 걸려 든 것이다.
성도들은 용서와 화해 보다는 이단 논쟁으로 말미암아 의심 병에 걸려, 도저히 사랑과 믿음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중병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처럼 거리를 방황하며 죽어가고 있다.
기독교는 '같은 형제끼리의 싸움으로 한 사람도 남김 없을 때까지 죽이는 처절한 살육전에 돌입을 했다' 라고 표현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도 시대 때 가말리엘이라는 교법사가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될까 하노라"(행5:34-39)라며 지혜롭게 처리했던 것 같이 '이단 판별'이란 성령의 사역 중 가르치는 사역에 속한 고유권한이며(요14:26) 성령만이 판별할 수 있는 것인데, 인간의 이성의 눈으로는 분별할 수 없는 것을 판단한 결과 오늘의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하는 말씀은 왜 지키지 않는가? 오늘의 기독교는 이단이 많은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이다. 교회는 이단론을 언급하기 보다 먼저 믿음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내가 믿는 하나님, 내가 목숨 바쳐 섬기는 주님, 그분은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누구와 상관하든지, 비록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다 할지라도, 나를 지켜 주시고 인도하시는 분 이라는 것을 믿는 마음만 가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믿음과 사랑은 외면하고 이단론이라는 가족 싸움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 싸움은 사랑의 반대인 의심으로부터 시작하여 원수 맺는 것으로 끝이 나며 이는 도박과 마약 중독과 같이 한번 중독이 되면 끊을 수가 없다.
이제 기독교 안에는 너무 고루하고 편협된 사상이 깊숙이 자리 잡아, 본래의 기독교를 말살시킴으로 몰락되어 가고 있다. 기독교를 이 지경으로 만든 교역자들인 목사, 전도사등, 지도자들은 거기에 따른 준엄하신 심판이 있을 것이며 애통하며 철저한 회개가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 이단 논쟁으로 기독교를 말살시키는 목사들은 회개하라!
통일교, 전도관, 여호와의 증인등 자신을 메시야라고 하는 자, 삼위 일체를 부인하는 자...등 그들은 이단이다. 그러나 그들 이외에 기성 교회에서 이단이라고 낙인 찍힌 교회들은 이방 종교만도 못한 것인가?
그들은 우리와 같이 같은 주를 섬기는 형제이며 자매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며 참아주고 사랑으로 보듬어 안아 주기는커녕 그토록 무지막지하게 매장시켜도 된단 말인가?
성경에 교법사 가말리엘이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면 그냥 두어도 스스로 무너질 것이고, 만약에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 좋은 예로 통일교도 무너졌고 전도관도 망하지 않았는가?
기독교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도 결국 이방 종교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어야 마땅한 나라가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이 천년만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나라를 되 찾았으며, 6일 전쟁을 통해 세계를 경악시킨 기적이 있었고 정치, 경제, 과학... 최고의 두뇌들이 나와 세계를 뒤 흔들며 막강한 경제권을 쥐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이 축복을 준 것임을 부인하지 못하며, 이로 인해 그들 나름대로는 선민국가라고 하는 자긍심과 교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독교는 유독 최고라고만 하면서 과연 무엇을 내세울 것이 있는가.
기독교 국가라고 하는 유럽의 국가들을 보자. 독일은 종교 개혁을 일으킨 기독교 국가이면서도 어떻게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나와서 세계를 피로 물들여 놓았는가? 그때 독일의 교회는 무엇을 했으며 성직자는 몇 명이나 히틀러의 미친 짓을 몸으로 막았는가!
또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영웅심에 불타 세계를 정복하려 한 침략자에 불과한데도 그 침략자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영웅으로 떠 받들며 그것이 부끄러운 행위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다. 오히려 프랑스 기독교인들은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도 도둑질 한 것을 오히려 정당화, 합법화하며 그를 영웅시하는 무너진 양심은 무엇이며,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아직도 영웅이라는 칭호를 써주는 기독교는 무엇인가?
나폴레옹이 전쟁을 일으키려 할 때 진리를 아는 성직자라면 당연히 목숨을 걸고 반대하며 막아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건만 도리어 교회는 전쟁의 당위성만 제공해 주었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기독교의 수치스러운 역사적인 사실들을 볼 때 과연 무엇이 이단이며 무엇이 정통이란 말인가?
독일은 종교 개혁을 시도한 나라로써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써' 라고 주장했던 말이 무색하게 되었다. 최고의 교리와 체계 속에서 교육을 시켰다고는 하지만, 시발부터 잘못된 기독교 교육의 부재가 결국 모순된 정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현대 기독교의 모습을 보려면 이스라엘을 보라. 율법 안에서 전 국민이 최면에 걸려 있는 나라. 선민 사상이라는 왕자병에 걸려 마치 지구상의 모든 나라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이방 국가들은 죽여도, 저주를 해도, 빼앗아가도 죄가 되지 않으며,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식의 회개가 전혀 없는 나라.
세계 평화의 분쟁의 소지를 항상 안고 있는 말썽의 나라. 양보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나라. 언젠가는 메시야가 와서 자기들만 구원하리라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비몽사몽간에 정신 못차리고 있는 나라가 유대 이스라엘인 것이다. 언제나 꿈에서 깨어 날는지...
이러한 이스라엘과 현대의 기독교와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제 우물 안 개구리식의 고루한 기독교식 세계관에서 벗어나야 하며, 시야를 넓게 뜨고 이 천년 동안의 잠에서 깨어나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기독교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 기독교 역시 전체 흐름을 볼 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 식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단이라고 낙인 찍힌 교회에 대해서는 아무렇게나 분별해 내고 처리하여도 괜찮고, 어떤 횡포를 저지른다 해도 하나님이 기뻐 하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이단이라면 죽여도, 저주를 해도 되며, 이것이 마치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기는 최고의 신앙인이라고 교육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 도다' 라고 탄식하셨던 것과 같이 왜 양떼들로 하여금 죄를 조장 시켜 눈 먼 목사들의 욕망에 우상의 제물이 되어야 하는가? 이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진정한 사랑인가?
이렇게 양떼들을 잘못 교육 시키고 있는 교역자들은 철저한 회개와 통회가 있어야 하며 다시는 이단론을 조장하여 기독교를 파멸로 몰고 가는 죄악을 자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결국 이단론 때문에 몰락한 것이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어떠한 문제든지 무력과 인본의 방법이 아닌 오직 믿음의 기도와 사랑으로 일관 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자세가 성경적인 자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기독교의 미래는 몰락한 미국과 유럽의 기독교 와 같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목회자들은 눈을 뜨고 깨어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는 각성과 회개가 있어야 할 것이다.
[3] 한국 기독교는 회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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