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년 전의 일입니다. 목회 하면서 풀러신학교에서 박사과정을 하던 중 공원에 산책 나갔다가 한 형제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생활을 시작한 L 형제님, 그리고 순복음 쪽 목사로서 활동하다가 교회생활 하시게 된 H 형제님이 L 형제님이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P 목사님을 모시고 오셔서 교제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워낙 P 목사님이 겸손하시고 열려 있으신 분이라 우리는 그날 오후부터 시작해서 저녁은 피자와 음료수로 간단히 때워가며 저녁 늦게까지 장장 8시간을 성경을 펴놓고 질문하고 답변하면서도 화기 애애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P 목사님은 그 때 현직 신학교 교수이셨습니다. 우리는 여러 주제를 다뤘지만 P 목사님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왕국)', '천국', 그리고 '교회'와 그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왕국과 천국 또는 그 둘의 관계는 성경을 좀 아는 분들조차도 혼란스러워 하는 주제입니다.
저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존재하는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라고 정의하고자 합니다(마21:43, 행1:3, 막1:15, 4:26, 눅4:43).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그것의 일부"인 '천국'(The kingdom of heavens)과 '교회'를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부)'요, '교회'도 '하나님의 나라(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는 항상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즉 서울에 사는 것이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대한민국에 사는 것은 곧 서울에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천국과 신약 교회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현재의 천국이지만, 성경은 이러한 현재의 천국 이외에 "마7:21의 조건에 충족된 사람들만 장차 참여할 수 있는 천국 즉 천년왕국"도 말하고 있는 것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내용들을 지지하는 성경근거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 나라와 천국의 관계
마4:17에서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천국'은 곧 하나님 나라이시기도 한 '주님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눅17:21). 천국의 씨이신 예수님은 이 때 사람들 "가까이 오시긴 했지만" 아직 그들 속에 뿌려지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이미 그 이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존재하여 왔습니다. 즉 마21:43은 '이미 있던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 족속으로부터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인 교회로 옮겨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에 근거해서 우리는 천국은 신약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있어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가르침의 핵심내용을 구성합니다(행1:3, 8:12, 14:22, 19:8, 20:25, 28:23, 31).
2.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
요3:5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과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조건이 동일하게 거듭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막4:26은 생명의 씨이신 그리스도가 사람 안에 뿌려져서 자라고 수확되는 면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동일한 것임을 말해 줍니다. 또한 롬14:17은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함으로 우리가 지금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맛보는 이러한 교회생활이 곧 하나님의 왕국 생활임을 역시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교회생활이 곧 하나님 나라의 생활임을 증거하는 근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왕국'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연기되었다)고 가르치는 일부 세대주의 신학 지지자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밝혀주는 결정적인 근거이기도 합니다.
3. 천국과 교회와의 관계
마5:3은 '영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함으로 천국이 현재 성도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것임을 말합니다(마5:10). 사실 교회나 천국의 실제는 모두 우리 안에 천국의 씨로 들어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씨로 자신 안에 들어오신 주님과 연합된 삶을 산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지금" 천국의 실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5-7장이 묘사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천국의 현재성'에 대해서는 장로교 신학자인 이남종이 쓴 '천국의 실제성'(새순출판사, 1987)이란 책자나 회복역(RcV) 마5:3의 각주 4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땅에서 거듭나서 교회의 일원이 된 사람은 100 퍼센트 내세의 천국인 천년왕국에 들어가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과 그분들을 가르치는 목회자 분들은 이에 대해 'YES'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성경은 이에 대해 'NO'라고 말합니다. 즉 마5:20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하고, 마7:21도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하고, 마19:23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장차 올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교회의 일원이 되는 확실한 '거듭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우리의 생활의 의로움'과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삶'을 "절대적인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거듭난 모든 분들이 100 퍼센트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 참되게 거듭난 대부분의 성도들의 생활은 이와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격미달인 이런 분들은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천년왕국'엔 못 들어간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정훈택, 하나님 나라와 교회, 생명의 말씀사, 1993, 41쪽). 이것은 매우 엄중한 문제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미 거듭났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가 이미 얻은 영생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요10:28).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임의로 살지 않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도록 우리 앞에 현재의 천국(교회 생활의 실제) 뿐만 아니라 보상으로서의 장차 올 천국(천년왕국)을 두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게 된다면 그분이 주신 구원(영생)에 대해 기뻐하면서도 장차 올 천국을 위해 임의로 살지 않고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가르침은 너무도 분명하지만 이러한 '천국복음'(마24:14)은 한국교계 내에서 많이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게 했고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일한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솔직히 지금 한국교계 안의 어떤 교파나 기독교 단체가 이런 균형 잡힌 진리 가운데 있는지 살펴 보시기를 원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이런 엄중한 진리가 가려져 있는 것은 '천년왕국'이 이 땅 위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된 교회의 건축을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간 이기는 자들에 대한 '보상'이라는 점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5-27). 이러한 사도 바울의 고백이 이 시간 저의 고백이 되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 모두 아버지의 뜻인 교회를 건축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천년왕국에 들어가도록 이 땅에 있을 때 생명이 성숙하는 길을 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