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신은, 미국에서 이미 (지방)교회측에 의해 반박되어 거짓된 내용으로 드러난 위트니스 리 관련 비판 자료들을 번역하여 자신의 연구논문인 것처럼 국내 여러 지면에 중복 소개한 정 동섭 교수와 해당 출판사인 하나출판사에게 보낸 (지방)교회측의 반박문입니다. 정 동섭 교수는 동일 내용을 1992년 8-10월호 현대종교에 (지방)교회 특집으로, 1993년 4월 침신대 출판부에 의해 '이단과 정통 무엇이 다른가'로, 1993년 10월 '도서출판 하나'에 의해 '그것이 궁금하다'라는 단행본으로, 그리고 월간 목회와 신학 94년 7-9월호에 명 논문으로 각각 발표한 바 있습니다.
정동섭 교수 글 반박자료(일부요약)
다음 글은 현대종교 홈페이지(http://www.hdjongkyo.co.kr/main.html)료실의 '지방교회 왜 이단이라고 하는가' 라는 글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문 이기도 하다. 원래 현대종교 1992년 10월 호에 소개된 이러한 내용은 미국에서 (지방)교회의 인수증가에 위협을 느낀 한 단체가 거짓되고 왜곡된 내용을 배포한 것을 정동섭 교수가 국내에 번역 표절하여 소개한 것이다. 그는 이 자료를 자기의 논문으로 국내에 소개하는 과정에서 '(지방)교회는 회개의 필요성을 부인한다', '지방교회에 있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는 등의 몇 가지 거짓 사실을 추가했다. (지방)교회는 '하나님과 사람이 혼합해 새로운 본질을 가졌다고 가르친다' '사위일체라는 해괴한 교리를 믿는다'는 등 전적으로 (지방)교회 성도들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터무니없는 거짓말들에 대해 우리는 이미 철저하게 반박했고 그 거짓됨을 폭로시켰다.
즉 1977년 10월부터 미국 남가주 유력 일간지인 'Orange county Register'에 약 6개월간 전면광고를 통해 위 거짓비난의 모든 항목들에 대해 철저하게 반박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자료들을 보관중이며 필요하다면 이 방대한 문서들을 번역 소개할 것이다. 다음 글은 신문광고 이외에 단행본으로도 만들어졌던 별도의 반박자료들 중 한 권(총 210쪽)을 요약한 것이다.
I. 한 도시 한 교회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면 '본질적으로 (in essence)' 다 그 도시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임(고전1:2, 롬1:7).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은 인정하지만(고전12:27), 분열(고전1:10-13, 롬16:17-18)이나 편당적 실행(고전11:17-20)은 성경이 정죄함으로 우리도 찬성하지 않는 것임. 예루살렘이나 로마에서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한 도시에서 많은 유기적인 모임들(harmonious gatherings)을 갖는 것은 인정하나(행2:46-47, 롬16:5, 10-11, 14-15) 다른 이름들을 가짐으로(고전1:2, 10-13) 분열되거나(롬16:17-18) 교파를 이루는 것을 성경이 금하고 있는 것임.
II. 천주교, 개신교에 대한 언급
로마 천주교는 음녀의 어머니, 개신교는 그녀의 딸들이라는 지적은 그들의 비 성경적인 '조직'을 말한 것이지 '소속된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 이것은 1)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계시록 1:20 각주 3, 옥스포드대학 출판사 1945 PP 1331-1332(이사벨=로마 천주교, 사데=개신교)의 관점을 따른 것임 2) 'L.E. Froom,은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 Vol 2 에서 마틴 루터, 요한 웨슬리 존 넬슨 다비, 알포드 외 다수가 '교황을 바벨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음.
유대교는 사단적(계2:9), 천주교는 마귀적(계2:20), 개신교는 그리스도가 밖에 계시다(계3:20)는 지적도 1) '스코필드 주석 성경' 계1-3장의 각주 2) Dr. C.A. Auberlen of Basil의 'The Prophecies of Daniel and the Revelation of St. John', Adolph Saphir 번역 pp 291-293 (바벨론=로마 천주교) 3) Dr. Geoffrey Bromiley의 'The Unity and Disunity of The Church' Grand Rapids Mich: Wm. B. Eerdmans, 1958, p. 29 (중세교회(the medieval church)를 '사단의 회'로 봄)의 관점을 따른 것임.
III. 로마서 16장 5절
1. '로마시 안에 여러 개의 교회가 있었다' 는 마틴(정동섭)의 주장은 옳지 않음.
a)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한 것이 아니고, '로마에 있는 모든 자'(롬1:7)에게 편지 했음(고전1:2, 고후1:1, 갈1:2, 살전1:1, 살후1:1). 그리고 그 목적은 성도들을 견고케(established) 하고(롬1:11, 16:25), 서로 받아 하나 안에 있게 하고(롬14:1-10, 15-20, 2페이지 15:1-7), 분열을 책망하기 위함이었음(롬16:17).
b) 또한 마틴(정동섭)이 인용한 A.T. Roberson, '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 Vol. 4, New york: Harper & BrothersPublishers, 1931, p. 426 의 "The Roman Christians had probably several such homes where they would meet."에서 '여러 개의 가정들'을 '여러 개의 교회들' 을 가졌다는 증거로 본 것은 옳지 않음. 오히려,
c) Frederick L. Godet는 그의 로마서 16:3-16에 대한 주석에서 15차례의 'Greet'는 'the whole church'를 위한 것임을 지적함. (F. Godet,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Grand Rapids, Mich.: Zondervan, 1970, pp.488-489)
d) 필립 샤프의 '기독 교회사' 제1 권에서, '크리스챤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예배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는 주장은 로마서 16장이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새로울 것이 없고, 다만 'may... or rather two sections(공동사회의 두 부분을 형성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은 그의 proposals 일 뿐임. 오히려 Edward D. Yeomans이 번역한 그의 'History of the Apostolic Church' (New York: Charles Scribner, 1856, pp. 526-528)에 따르면, 필립 샤프는 로마에 있는 교회는 '장로단의 인도아래 유기적인 구역 모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음. (...Such an arrangement was perfectly consistent with the organic union of these congregations as one whole, under the superintendence of a comman presbetery... p 526)
2. 입장(ground)과 기초(foundation)의 차이점
a) 교회의 기초는 모퉁이 돌이신 주님 자신이나(고전3:11, 마16:16,18), 교회의 터(입장)는 시온임(벧전2:6-7). 신약은 성도들이 분열 없이(롬16:17) 지방입장 위에(롬1:7) 기초이신 그리스도를 가지고 함께 모여야 함을 계시함.
b) WL는 교회가 분열해서는 안된다 는 것이며(고전1:10, 롬16:17), 한 교회가 여러 집회 장소를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함(행2:46).
c) 마태복음 7:24-27절에서 'Rock(반석)'은 주님 자신이 아니고 그분의 말씀임. John. A.Broadus, An America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Matthew, 1886, p. 170.과 G. Campbell Morgan,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New York: 1929, p. 80.를 보시오.
d) 마18장 20절은 교회의 정의가 아님. 마18:15-17에 의하면, '2-3명' 은 '교회의 단위'가 아니고 교회의 한 부분임(a part of the church)을 알 수 있음. 동일한 해석을 (a) 3세기에 Cyprian이 쓴 'The Unity of The Catholic Church'[ De Lapsis and Ecclesiae Catholica Unitate를 Maurice Benenot이 번역) Oxford, The Clarendon Press, 1971, pp . 75-79 와 (b) Archibald Henderson, The Expository Times., vol. 28, no. 3, December 1916, Edinburgh : T.&T. Clark, p. 140을 보시오.
3. 워치만 니의 교회에 대한 입장
Nee의 'What shall This Man Do, Fort Washington Penn: CLC, 1961, pp138-140 (한글제목: 주여 이 사람은)',에서 Nee는 본문에 나타난 '지방입장 진리'의 취지에 있어서 Lee와 전적으로 동일함. 그는 다만 지방주의적인(배타적인)태도를 경계한 것임. 이점은 Lee도 동일함. 교파와 지방 입장에 대한 그의 가르침과 느낌은 Nee의 일생동안 전혀 변함이 없었음. 그 증거로 Nee의 투옥 직전(1950-51) 메세지인 'Further Talks on the Church Life', Los Angeles, Calif.: The Stream Publishers, 1969, pp. 20-22, 133-135(한글제목: 교회의 길)를 보시오.
IV. 권위주의적인 다스림(Authoritarian Rule)
마틴(정동섭)이 인용한 WL 책자내용이 'WL가 교회의 우두머리(Supreme Commander)'라는 그의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음. 왜냐하면,
1. '자신(개성)을 부인하고 조직을 높인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은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 89 PP 1156-57) 해당부분은 '전제물'(창35:7, 14-14, 딤후4:6 바울의 예)에 대한 설명 부분인데 이것을 저자의 의도 및 문맥과 상관없이 엉뚱하게 왜곡 인용한 것임.
2. '교회 일에 바빠서 가정을 위한 시간이 없다.'는 비판(WL, Young People's Training, #4 p51)은 1976년 특별한 환경 가운데 헌신된 '청년 훈련생들'에게 주어진 멧시지를 엉뚱하게 일반 교회 성도들에게 적용시킨 억지 비판임. 이 내용은, 일 주일 중 낮 시간은 공부, 직장 생활, 가정생활 등에 할애하고 3일 밤은 교회예배에, 3일 밤은 복음전도에, 1일 밤은 개인 일에 할애할 수 있다는 WL의 제안임. 청년들에게 복음전파를 격려하는 이러한 내용들은 헌신된 청년들에 대한 '네비게이토' 나 C.C.C 등의 선교단체의 가르침(권면)과 전혀 다를 것이 없음.
3. '실수를 보았을 때... 이를 거론... 낭비할 시간 없다.'( WL 창세기 LS #88 1144-45)는 비판은 남의 실수를 거론하지 말고 그의 좋은 점만 취하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성경적인 권면(마18:21-22, 엡4:29-32, 골3:12-14)임에도 왜곡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함.
4. 'Lee는 그의 가르침이... 추종되길 기대한다.'(WL, The Vision of The Church p10)는 비판에 대해: Lee는 본문에서의 자신의 가르침이 1) 하나님의 갈망인 교회 2) 교회의 실지성 3) 지방성4) 지방입장의 단위에 대한 '실행과 체험'에 따른 것이지 '단순한 교리적인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임에도 저자의 의도를 엉뚱하게 왜곡시킴.
5. '나의 가르침이 아니다. 주님의 계시이다.'(Christ versus Religion p13) : 이것은 마9:14-15, 눅5:33-35에 대한 설명임. 이것은 저자의 의도를 무시한 채 왜곡 비판한 것처럼 'LC의 전체 개념이나 지휘 체계에 대한 것'이 결코 아니다. 본문은 '신랑이신 주님 자신을 기도 안에서 체험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성경해석을 말하고 있음.
V. 지방교회 구성원들(Local Church Members)
1. Fuller 신학 대학의 Dr. Maloney 의 '지방교회 구성원들에 대한 연구'를 참고(God-Men 재판 시 증언집 pp13-16, 29-33, LC안에 'unhealthy'한 상태 없음을 증언하고 있음).
2. 'LC 떠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벌주실 것이다.(소위 Divine Threat)'라고 위협한다는 거짓비난에 대해 : Dr. H. Newton Maloney의 연구 조사 후 증언한, 법정 증언집 PP 61-67('There was none'-그런 사례가 전혀 없다)을 참고.
3. '회복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은 사단의 도구라고 가르침 받는다.'는 거짓비난에 대해 : Dr. J. Gordon Melton의 'An Open Letter Concerning the Local Church, Witness Lee and The God-Men Controversy' 미국 종교문제 연구소, 1985, pp. 11-13 '교파 구조와 연합하지는 않으나 거듭난 그들을 형제 자매로 인정하고 개인적인 교통을 막는 어떤 장애도 없다'는 증언을 참고.
4. '멋 모르고 빠져 들어간...' 등의 거짓 비난에 대해 : 전적으로 거짓된 비판임을 폭로시킨 위 멜튼 박사의 증언 pp50-51를 참고.
5. 진 포드의 간증 중 '그리스도'에 대한 것은 없고 '교회'만 말한다 는 거짓 비난에 대해 : 그가 'WL & LC' 라는 책에 대한 반박문의 서문만을 참고한 결과이며, 오히려 뒷부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풍성한 누림에 대한 간증으로 충만하여 오히려 비판과 정반대임.
VI. 지방교회와 마음(The Local Church and The Mind)
1.성경을 대할 때 '마음을 닫으라'고한다. 성경을 소홀히 한다. 는 등의 거짓비난에 대해 :
a) 'The Beliefs and Practices of the LC' P 8 에 의하면, WL는 오히려 성경 읽기를 권면하며 심지어 1년에 성경을 1독할 것을 제안하고 있음.
b) '생명의 체험' p 170(영어판) 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넓어지기 위하여 '우주(Universe)'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권면함.
c) We need to study the Bible (생명의 체험 p 174)
d) 같은 책 250쪽에서는, '하나님은 지혜로운 분이시므로, 그분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혜와 지능이 요구된다.'고 했음.
e) Life Message #43에서는 '우리는 이해함으로 뿐 아니라 기도함으로 읽어야 한다.'(p 375) # 48에서는 '읽기 위해 눈을 사용하고 이해하기 위해 생각을 사용해야 한다.(p413)고 가르침.
f)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85 4페이지에서, 젊은 학생들은 배우는 것을 중단하지 말라. 공부해야 한다. 대학은 물론 박사학위를 받도록 권면 하고 있음(P 1103-05) 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 # 22, PP 277-280, #24 p 298, #63 P 740 도 같은 내용임.
g) '이 사역 안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은 철저하고 주의 깊게 고려된 것들이다... Nee 형제님의 인도 아래 성경뿐만 아니라 교회역사, 전기문, 유명한 기독교 교사의 저서들을 연구 조사했다'(WL, 'What a Heresy' p 31).
2. 본문에서 왜곡하기 위해 '떼어낸 인용'과 '잘못된 적용'에 대해 :
'예수께서 함께 계시는 한, 규율이나 교리나 형식이 필요 없습니다.' : 이것은 '그리스도냐 종교냐' pp14-15 에서 '신랑'이신 주님과 함께 누리는 잔치로서의 집회를 설명한 것임(마22:1-10, 25:1-13, 계19:9). 그러나 이러한 본문을 엉뚱하게도 '생각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글로 왜곡시킴.
3. 본문을 왜곡하여 한 면만을 제시함에 대해 :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는) '말씀을 읽고 깨닫고 연구하고 배우는 것에 대해서 잊어버리십시오.'(A Time with the Lord PP 10-11, Pray Reading the Word pp7-9)- 이것은 기도를 '작문'하거나 억지로 '창조'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한 말임. Lee는 다른 책에서 생각을 사용하고 연구할 필요를 충분히 말했으며, 이 부분은 기도로 말씀 읽기에 대한 설명일 뿐임. '말씀으로 기도하는 실행'에 대해서는 달라스 신학교 창설자인 그리피스 토마스도 'Life Abiding and Abounding' p 15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기도의 연료(the fuel)이다...' 라고 역설한 바 있음. 여기서 Lee의 '... 잊어버리라.'는 표현은 말씀 안으로 몰두하도록 '과장법'(hyperbole)을 구사한 것임. WL가 말씀을 연구하는 것을 부인한다는 비판은 21년 동안 신구약 성경 전권을 연구한 것만 보아도 명백한 거짓임이 드러남.
4. 성경에 대한 W. L의 참된 의도를 왜곡한 것에 대해 :
a) 마6:7 '중언 부언 하지 말라' : 이 말은 헛된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것이지, 성경 말씀을 반복하여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아님(마태복음 회복 역 6:7 주석, 마26:44 (주님), 고후12:8 (바울), 계 19:1-6을 참고).
b) 딤후 2:15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 '선명한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조각'인 말씀의 합당한 한 이해 안에 들어가는 것이 필요함.
c) 행 17:11' 베뢰아 사람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 하니라.' : 베뢰아 사람은 'nobel mind'(Vine의 사전)와 '편견이 없는 사람들'(F.F. Bruce)이었다 - 성경 읽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한 무지로 인한 비판임.
5. 이성과 경험과의 관계에 대해 :
'지성은 혼적인 활동이므로 영적인 지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가르친다'는 비판에 대해 :'하나님의 경륜, pp 81-82,' 에서 '생각으로 이해함의 필요성' 을 강조함('생명의 체험' pp 83-184 에서도 동일한 가르침), 'The Parts of Man' pp17-18 에서는 '생각이 새로와짐으로 변화 받음을 가르침(하나님의 경륜 pp83-84 도 동일), 생명의 인식 p167, 생명의 체험 pp143-144 는 변화된 생각(혼)의 영적인 문제를 이해함을 가르침.
VII. 교리(Doctrine)
1. 삼위일체(The Trinity)
역사적으로 마틴이 말한 독재론적 양식론(monarchianistic modalism)이라는 이단은 없었음. 역사적으로 알려진 이단은 양식론적인 독재론(modalistic monarchianism)이임. 벌콥의 기독교리 역사 p 78 (1975)를 참고.
1) 삼위 일체에 대한 정통 신앙의 주요 영역
a) 하나님은 유일한 한 분이심.(신6:4, 사44:6, 요17:3, 딤전1:17, 2:5)
** 세가지 이단 : (a) 삼신론 (분리된 세 하나님) (b) 아리우스주의 (예수는 아버지보다 열등하다) (c) Macedonianism (성령은 하나님의 본체 아니다)**
b) 구별되는 '셋'(창1:1, 1:26, 사6:8, 마28:19, 고후13:13; 요17:5-6,24-25(아버지) 요5:25-27(아들) 요16:7, 13-15(성령) - not 'seperately' but 'distinctly')
c) 셋 모두 영원히 하나님이심(벧전1:2상, 히1:8, 행5:3-4, 사9:6, 요17:5, 히9:14) : 3세기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은 '셋의 영원한 동시 존재'를 믿지 않음.
d) 삼위일체 안에서의 관계 : 상호 침투 혹은 상호내주(a mutual interpenetration or indwelling). 요14:7-11, 사9:6, 고후3:17 Jamieson, Fausset, and Brown's commentary(요14:10) Augustine 의 On the Trinity 6.10.12.을 참고.
e) 그분의 경륜안에서의 삼위일체(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과정을 거친 것을 말함.) : 사람의 창조(창1:26-27), 성육신과 구속 요1:1-2,14, 7:37-39, 14-17장, 19;30, 20;22), 침례(마28:19), 내주하심(롬8:9-11, 갈4:6), 교통과 누림(고후13:13), 성화(벧전1:2), 새 예루살렘(계21:22-23, 22:1-5) - 삼위의 동시존재를 인정함으로 양태론(삼위양식론)과 다름.
f) 사람의 체험 안에서의 삼위일체 (세 위격이 하나로서 역사하심) : 요14:17-18 (그 영=그리스도), 마10:20, 막13:11, 눅21:15(아버지, 성령, 그리스도), 고후 3:17-18(그 영=주님), 갈4:6(세 위격)
2) 누가 비논리적 삼위양식론자인가? : 역사적으로든 논리적으로든, 아버지 아들 성령의 동시존재를 믿는 사람을 논리(또는 비논리)적 삼위 양식론자라고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함. 역사적으로 양태론자의 범주는 성부고난설(Praxeas)부터 사벨리우스까지 다양했으나, 세 위격의 동시존재를 가르치는 형태는 없었음.
3) 삼위일체의 두면 - 본질적, 경륜적인 면 : 마틴이 Lee의 책을 인용한 내용은 모두 '경륜적 삼위일체' 에 해당하는 부분임. 역사적으로 본질적 삼위일체 면을 견지하면서 경륜적인 삼위일체를 말한 것은 정통이요 성경적임. 삼위일체의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쓴 사람들은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면'이 성경의 주요한 강조점 임을 지적하고 있음. E.A. Litton 'Introdoction to Dogmatic Theology' pp 91-92, Franz Delitzsch, Old Testament History of Redemption, p 178, Dr. H. Martensen, Christian Domatics, 106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tian Church, vol.3, pp.680-681를 참고.
4) WL는 다음의 글에서 자신을 '양태론자' 라고 비난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반박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음 : 삼신론과 양태론은 두 극단의 이단이며, 우리는 그 어느 쪽 극단도 아닌 가운데 즉 '순수한 성경적 계시' 위에 서 있다( WL, Young People's Training, #6, pp. 73-76).
5) '마틴이 WL를 비난키 위해 잘못 인용한 내용들에 대한 반박 :
a) '삼중성... 삼중위격'(삼일하나님에 관하여, 11쪽) : 삼중위격(Threefold Person)은 '삼일 하나님'과 동의어임. 마 28:19에서 세 위격을 구별하여 말하나 단수의 '이름'을 말함. Lee의 본문은 결코 양태론적인 방법으로 말하고 있지 않음.(10-11쪽을 함께 참조)
b) '...아들은 아버지시며 아들은 또한 성령이시다.'(위 같은 책) : 위 책의 앞 뒤 문맥을 함께 놓고 볼 때(pp25-29), Lee는 '신격'의 행동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원칙을 말한 것이지 아들이 '본질적'으로 아버지라는 뜻이 아님. 역사적으로 이러한 이론은 'the doctrine of appropriations'이라고 불리었으며 '상호내재 교리'와 함께 신격 안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용어임. 이것은 물론 분명한 성경적 기초를 가지고 있음(요10:30, 38, 14:9-11, 17:21, 23, 고전12:4-6) 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 translated and edited by william Handriksen, Grand Rapids, Mich.: Baker House, 1977, P317과 William G.T. Shedd, Dogmatic Theology, vol.1, Classic Reprint Edition, Minneapolis, Minn. : Klock & Klock Christian Publishers, 1979 pp 304-305를 참조.
요14:7-11, 고후3:17, 사9:6를 다룬 '삼일하나님에 관하여' (17-23 pp)를 옳게 이해하기 위하여 신격 안에 존재하는 상호관계에 관해 다음과 같은 추가 설명이 필요함. 세가지 형태로 '하나'를 설명하되 그것이 셋간의 구별을 무효화하는 것은 아님. 또한 여기서 구별(distinction)이란, 하나 안에서(within), 하나에 속한(of) 구별이지 하나를 파괴하는 그것이 아님.( R.C. Moberly Atonement and Personality, p.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