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성부 신론> 비판에 대한 재반박(下)
원세호님
timothy , 2005-08-24 , 조회수 (3191) , 추천 (0) , 스크랩 (0)

 

5.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송전식 신론>비판에 대한 재반박


원세호 님은 역시 이 주제에 대해서도 위트니스 리가 든 <예화> 하나를 놓고 이러니 저러니 말을 하고 있다. 특별한 반박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양 측의 주장을 인용 소개 한 후 간략한 반박을 해 보겠다.


<위트니스 리의 주장: ①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세 인격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우리 속에 전달해 주시는 것임을 보았다. 전기를 예로 들어 삼일성의 경륜을 설명할 수 있다. 전기에는 전원과 전류와 송전이 있다. 이것은 전기의 서로 다른 세 가지 종류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이다. 전원과 전류와 송전은 전기 자체이다. 만일 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전원도 전류도 송전도 존재할 수 없다. 하나의 전기가 서로 다른 세 단계가 있듯이 한 분의 하나님에게 세 인격이 있는 것이다. 한쪽 끝에는 전원, 즉 발전소가 있으며 다른 한쪽 끝에는 우리의 가정으로 들어오는 송전이 있다. 이것은 사물의 세 가지 단계의 예이다.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은 근본이요 아들로서의 하나님은 과정이자 아버지의 표현이요 그 영으로서의 하나님은 사람 안에 들어오는 하나님의 표현이요 그 영으로서의 하나님은 사람 안에 들어오는 하나님의 송전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영이시고 아들 또한 영이시고 그 영은 물론 영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고 그 영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송전이 되어 하나님의 모든 것과 그리스도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을 끊임없이 송전하고 계신다."(7.(하나님의 경륜) p. 22, 2-19)>


<원세호 님의 비판 : 그러나 한 가지로 말해서 전원 (전기를 공급하는 원천), 전류 (전기가 도선을 따라 흐르는 현상), 송전 (전류를 보내는 일)이 아버지, 아들, 그 영의 사역이라 한다면 전원의 전기가 전류의 전기요, 송전의 전기이다. 그렇다면 전원 아버지=전류 아들 = 송전 그 영이 되는 것이다. 이는 어리석은 주장이다.>


** 반박: 위 내용 역시 <하나님의 경륜>이란 책자에서 발췌 비판한 것이다. 책 제목이 말하듯이 이런 내용 전체는 삼위일체를 초대교부들이나 칼빈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맞춰 보고 있다(http://www.geocities.com/diakonia.geo/trinity2.html). 즉 경륜적인 삼위일체의 관점으로 보고 이해해야 할 내용들이다. 원세호 님의 억지처럼 위트니스 리가 본체적인 위격의 혼동을 말하지 않는다. 소위 수박비유와 동일하다. <전원의 전기가 전류의 전기요, 송전의 전기이다.>라는 말은 삼위가 '하나님'(전기)이라는 동일 본성을 가졌다는 말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위 인용문의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고 그 영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송전이 되어...>라는 말은 <아버지가 아들 안에 상호내재 하신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상호내재를 부인하는 원세호 님의 삼위일체관은 삼신론이다. 고후 13:5 내용을 <그리스도만 계시고 아버지, 성령은 우리 안에 안 계신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결정적인 증거이다.


6. 원세호님의 (지방) 교회 <성부, 성자, 성령>관계 비판 재반박


원세호 님의 이 항목에 대한 비판 역시 말꼬리 잡는 식의 연속이다. 학문적인 체계나 예리함이 없다. 혹시 진리 이해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는가 찾아보지만 없다. 다만 자신이 이미 만든 <성부=성자=성령> 공식에 무리하게 끼워 넣으려는 억지뿐이다. 원세호 님은 이토록 도움은 없고 혼잡만 더해주는 글을 계속 쓸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 이 주제 역시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쌍방의 주장을 먼저 인용하고 이어서 원세호 님의 비판을 간략하게 반박하는 형식으로 다루고자 한다.


1) <위트니스 리 주장: ① "그 영은 하나님의 인격이요 하나님의 본성이요 하나님의 본질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그 분의 인격을 얻는다. 그 분의 인격은 그 영이다. 그 영은 하나님의 인격이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이시다. 이 영은 또한 하나님의 본성이시고 하나님의 본질이시다. 그것은 그 영이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빛이시다. 빛은 하나님의 표현이고, 하나님을 사랑으로 표현하는데 이 사랑이 바로 그 영이다. 결국 하나님, 사랑, 빛, 그 영,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하나이다. 이런 분이 우리의 놀라우신 하나님이시다."(11(그영). p. 15, 15-22줄)>


<원세호님의 비판: ① '그 영은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본질 ...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국 그 영 곧 성령이 성부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라는 주장일 뿐이다.> <② '하나님은 영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빛이시다. 빛은 하나님의 표현이고 하나님을 사랑으로 표현하는데 이 사랑이 바로 그 영이다. 결국 하나님, 사랑, 빛, 그 영,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하나이다' 라고 주장하는데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이다.>


** 반박: 원세호 님은 지엽적인 어떤 단락을 가져와 말꼬리를 잡는 지금 같은 비판을 언제까지 계속 할 것인가? 위트니스 리는 원세호 님 못지 않게 <삼위의 인격>과 <삼위의 본질(본성)>의 차이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가 쓴 <신약의 결론-하나님> 책자의 목차 배열을 보라. 위 문맥에서 위트니스 리가 쓴 <인격>이란 용어는 돌이나 쇠붙이와 달리 <그냥 살아있는 존재>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쓴 것이다. 원세호 님의 오해처럼 소위 <삼위일체적인 세 인격들>의 의미로 쓴 것이 아니다.


위 내용은 위트니스 리가 쓴 <그 영> 책자 14-15 쪽에 실려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회복역 각주 성경 요일1:5의 각주 3 과 관련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즉 원세호 님이 인용한 대목 바로 그 앞에 본문은 <하나님은 그분의 본성에 있어서 영과 사랑과 빛이시다. 영은 하나님의 인격의 본성을 나타내고,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을 나타내고, 빛은 하나님의 표현의 본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인격, 살아 계신 분이다. 이 인격, 이 살아계신 분에게는 본성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위에서 보듯이 <인격>은 그냥 일반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 라는 의미로 사용된 용어이다. 원세호 님의 오해처럼 소위 <세 인격들>의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다. 이 점은 위 내용에서 <하나님은 인격, 살아 계신 분이다> 라고 함으로 인격을 살아 계신 분의 의미로 사용했음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원세호 님은 이런 평이한 문장조차도 바로 읽을 수 없는 정도의 사람인가? 아니면 어찌하든 비판을 해야 함으로 억지를 부려보는 것인가?


2) <위트니스 리 주장: ② "우리가 실체나 인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말들을 사람의 실체나 인격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이 동일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분리된 세 인격이나 세 하나님이 아니다.... 이름은 그 인격을 지칭하며, 그 인격은 그 이름의 실체이다. 신성한 삼일성의 이름은 그분의 인격과 동등한 신성한 존재의 총체이다. 하나님은 삼일 즉 셋-하나이시다. 신학적인 글에서는 셋과 하나 사이에 전치사 '안에'를 삽입하여 하나 안에 셋이라고 사용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셋-하나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마태복음 28장 19절에 있는 복합적인 이름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세 분으로 구성된다."(10.(삼일 하나님) p. 52, 6-23)>


<원세호 님의 비판: ③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분리된 세 인격이나 세 하나님이 아니다. 한 하나님, 한 실체, 한 인격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이름으로 지칭된다. 그리고 그 분의 인격은 동등한 신성한 존재의 총체 (전반, 온 몸)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실존적 의미에서 성부=성자=성령임을 나타낸다. 그 이유는 존재의 총체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 반박: 역시 똑같은 오해의 반복이다. 즉 원세호 님은 <아버지, 아들, 성령님>은 <분리된 세 인격> 또는 <세 하나님들>은 아니시다 라는 말에 자꾸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왜 그런가? 원세호 님은 삼위 하나님을 <갑, 을, 병> 세 사람처럼 각각 <분리된 인격들>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요14:10-11)이나 초대교회 정통교부들이나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삼위는 <구별>은 되지만(아버지, 아들, 성령), 갑돌이, 갑순이, 홍길동처럼 분리된 세 사람들 같은 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 수도없이 나오는 <여호와께서>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이 <여호와께서>는 삼위 중 어느 인격을 가리키는가? 거의 대부분은 아버지, 아들, 성령을 포함한 유일무이하게 존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을 가리킨다. 또는 삼위 중 어느 특정 인격, 예를 들어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킴이 분명하다해도 그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과 성령을 배제한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http://www.hightruth.or.kr/frame03/con_091.html 도 참고).


이것을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라고 한 고전8:5-6에 적용시켜 보자. 만일 이 말씀을 <우주 안에 한 하나님이 계신데 그 분은 바로 아버지(성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자나 성령은 하나님도 아니다> 라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단일신론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여기서 문맥은 성부 아버지를 가리키지만 그 안에 아들과 성령도 포함된 것으로 이해한다(차영배, 위 책 179쪽. "어거스틴은...고전 8:6을 인용하면서 '한 하나님 곧 아버지라고 한다. 신 6:4을 인용하면서 아들이나 성령이 제외되지 않는 한, 역시 성부가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한다"고 함(Augustinus, De Trinitate, II, 10, 18)).


3) <위트니스 리 주장: ③ "삼일 하나님을 완전히 설명하기에 적합한 사람의 말은 없다. 아버지는 근원을 나타내고 아들은 과정을 나타내고 그 영은 흐름을 나타낸다. 흐름은 과정과 함께 하며 과정은 근원과 함께 한다. 이 셋 즉 근원과 과정과 흐름은 한 실제이다."(6.(그영과 몸) p. 26, 18-20)> <④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로우시므로 거룩과 의는 그 분의 두 가지 신성한 속성들이다. 그 분은 사랑이시며, 빛이시며, 생명이시며, 구속이시며, 구원이시며, 능력이시다. 이 모든 항목들은 신성한 속성들이다."(10.(삼일 하나님) p. 86, 2-6)> <⑤ "하나님은 우리의 오락이시다."(28.(생명의 메시지) p. 40, 하 3)>


<원세호님의 비판과 재반박>


(1) 원세호 님: <④ '근원과 과정과 흐름을 통해 아버지, 아들, 그 영을 나타낸다'고 설명하지만 ...성경에 없는 거짓된 주장일 뿐이다. 성경에 근원과 과정과 흐름이 어디에 있는가?>


** 반박: 이 또한 말꼬리 잡기 식 비판에 불과하다. 이미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 본인이 자신을 '생수의 근원'이라고 소개한 렘 2:13, 그리스도를 '신령한(깨진) 반석'으로 본 고전 10:4, 출 17:6, '흐르는 물'로 묘사된 성령을 가리키는 요 7:38-39를 소개했다. 원세호 님은 자신이 못 들어보았으면 성경에도 없다고 성급하게 말하는 교만을 버리기 바란다. 그리고 이런 글들도 참고하기 바란다(http://www.hightruth.or.kr/frame03/con_065.html).


(2) 원세호 님: <⑤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로우시며 거룩과 의는 속성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구속과 구원이 무슨 속성인가? 구원과 구속은 그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베푸신 은총 용어인 것이지 무슨 하나님의 속성인가?(⑩ p. 86, 2-6)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말하여서 속여도 되는가?>


** 반박: 말꼬리 잡는 일을 그만하기 바란다. 구속과 구원을 ...베푸신 은총이라고 보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런 방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므온은 부모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자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라고 말했다(눅2:25-32). 이사야 12:2도 "주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심이라"고 말한다. 구원은 주님의 은총일 뿐 아니라 주님 자신이시다. 시편 27:1도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라고 한다. 여기서 빛은 속성이고 구원은 은총 만인가? 시편 62:2 도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라고 한다. 이것들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구원이심을 가리킨다. 은총만이 아니다.


(3) 원세호 님: <⑥ "하나님은 우리의 오락이시다" 라고 위트니스 리와 지방파들이 주장한다. 전능하시고 전지 하시며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오락'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오락이 무엇인가? 쉴 시간에 노래, 춤 따위로 기분을 좋게 노는 일 또는 환락이 아닌가? 성경의 하나님이 오락이신가?>


** 반박: 역시 말꼬리 잡기 식 비판이다. 위트니스 리가 밑도 끝도 없이 "하나님은 우리의 오락이시다" 라고 했는가? 그 앞 뒤 문맥은 무엇인가? 본문이 하나님을 여흥을 즐기는 대상이나 환락의 도구로 생각하고 오락이라고 표현했는가? 원세호 님은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문맥을 무시한 채 사람들이 들어서 이상하게 느낄 표현만 따로 떼어내어 최대한 조롱하는 것이 사이비 이단감별사들의 특성임을 앞에서 밝힌 바 있다.


창세기를 보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때는 특별한 별도의 오락이 불필요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 후 성을 쌓아 자기를 보호하고, 수금과 퉁소를 발명해 내고,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어 냈다(창4:17-22). 그러나 우리가 거듭난 이후 주님의 달콤함과 귀함을 체험할 때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오락이 우리에게는 점점 필요 없게 된다. 주님의 임재 자체가 우리의 즐거움이요, 안식이요,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오락이시다'라고 한 것이다.

해당 본문을 좀 넓게 인용해 보겠다.


<가인이 하나님의 임재에서 쫓겨나 하나님을 잃었을 때, 그와 그 자손들은 물건들을 고안하기 시작했다(창4:20-22). 예를 들어,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 음악의 고안은 춤과 노래와 운동경기와 같이 오락에 속한다. 왜 사람들이 나이트 클럽과 콘서트 같은 그런 것들에 이끌리는가? 그것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오락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기쁨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누림이시다. 주님은 우리의 노래이시다. 모세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이시며...>(출15:2)라고 말했다.(위트니스 리, 생명메시지 3권, 한국복음서원, 1999. 4. 8. 44쪽)>


위 위트니스 리의 원래의 본문 문맥과 원세호 님이 비판을 위해 떼어낸 단 한 줄(하나님은 우리의 오락이시다)이 주는 인상은 매우 다르다. 독자들은 원세호 님의 이런 과장과 왜곡 내용을 믿지 말기 바란다. 참으로 관심이 있으면 직접 해당 책자들<생명세시지(1-4권)>을 몇 페이지라도 읽어보기 바란다(참고로 LSM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모든 책자 내용 전체를 인터넷에서 무료로 볼 수 있도록 계획하고 현재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이미 위트니스 리의 구약 라이프 스타디나 워치만 니의 <영에 속한 사람들> 등의 전체 영문 내용이 http://www.ministrybooks.org/index.html 에 올려져 있다).


(4) 원세호님: <이상과 같이 지방파의 성부 신론은 분명하게 성부는 성자이고 성령이라고 한다. 분석적인 연구결과 이러한 주장이 성경을 부인하여 거짓 주장하므로 진리에서 떠난 것을 확인하였다>.


** 반박: 위트니스 리는 본체론적으로 <성부는 성자이고 성령>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원세호 님의 소위 연구 결과는 자신이 사전에 만들어 놓은 <아버지=아들=성령> 공식을 억지로 뒤 짚어 씌운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그의 1) 삼위의 상호내재에 대한 오류 2) 경륜적인 삼위일체 방면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억지 주장일 뿐이다. 원세호 님은 자신의 삼신론 이단 잣대로 성경적이고 균형 있는 삼위일체를 틀렸다고 하고 있다. 독자들은 더 이상 이런 원세호 님의 거짓 주장에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이어서 원세호 님이 그의 비판 책자에서 이란 제목아래 다룬 1) 삼위의 실존 증거 2) 한 분 하나님 3) 하나님의 내주와 관련해서 덧붙인 비 성경적이고 이단적인 주장들을 간략하게 재 반박하겠다.


1) 성부, 성자, 성령님의 실존적 증거


<원세호 님 주장: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실존체이시며 삼일 일 수가 없다...삼일성이란 말은 성경에도 없으며 삼일성을 이용하여 성경을 부인치 않도록 해야 한다. 아버지는 결코 아들이 아니시다...②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과 다른 실존체이시며 실존이시다..③ 성부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과 다른 실존이며 실존체이시다....등 성령님은 성부가 아니며 성자도 아닌 독립된 실존임을 증거 한다. 비뚤어진 그 영 사상을 버려야 하고 바로 믿어야 한다.>


** 반박: 원세호 님이 아버지, 아들, 성령님의 영원한 구별성을 강조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 위트니스 리도 이 점을 믿고 인정한다. 그러나 원세호 님은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시다> <다른 실존체이다> <독립된 실존체이다>를 외치다가 이것을 <아버지 안에는 아들은 안 계신다>는 변질된 의미로 주장하니까 문제가 된다. 즉 원세호 님은 <삼위가 각기 다른 실존체>라는 의미를 사실상 <각각 분리된 세 하나님들이 계신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원세호 님은 고후 13:5에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을 <그리스도만 계시고, 아버지 성령은 우리 안에 안 계신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과 다르다. 즉 원세호 님은 '남편과 아내가 관계 속에서 하나인 것처럼 삼위의 상호내재도 그런 식의 하나'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상으로는 고전 15:45의 '생명주는 영'도 삼위 두 인격은 배제된 한 인격의 하나님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온전한 삼위 하나님 전체를 생명으로 영접치 못하고 두 인격은 제외된 1/3 인격만 영접하는 것이 된다.


2) 하나님이 '하나' '유일' '오직 하나'이신 성경 증거


<원세호 님 주장: ③ 고린도 전서 8:6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여기에 사용된 하나는 '헤이스'로서 '오직 다른 하나'인 것이다.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고 성령도 아니시다. ② 요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는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이 하나 되심은 관계의 하나이며 실존체 안의 하나가 아니다...3) 성령 하나님이 '하나' 이신 성경 증거...위와 같은 성경 증거에 의하여 성령님은 성자가 아니고 성부가 아니신 하나이신 분이시다....창2:14, 이는 곧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함은 관계의 단일이다. 남자 안에 여자가 들어간 상태가 아니다. ① 마 19:4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할 때 부부의 관계를 한 몸이라 했으나 개체는 각각 하나씩인 둘인 것이다.>


** 반박: <아버지, 아들, 성령>은 <한 분 하나님>(one God)이시다. 성경이 이것을 증거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조가 이것을 증거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분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해하기 쉽게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단순화해서 생각해 보자.


(1) <작은 세 개의 밀가루 반죽들>이 뭉쳐져서 <하나의 큰 밀가루 반죽>이 되는 식의 하나가 아니다. 여기엔 <셋의 구별성>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원세호 님은 (지방)교회측이 이런 식의 하나를 말한다고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2) 남편과 아내와 자녀인데 한 가족이라는 관계에 있어서 하나라는 관념은 하나님에게 적용될 수 없다. 각 인격들의 독립과 구별은 뚜렸하지만 <서로 안에 거하는 상호내재>가 불가능하고 사실상 개개의 인격들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원세호식 에하드 개념'이다. 즉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관계 속에서 한 몸을 이룬다는 말이다. 언뜻보면 그럴듯한데 크게 잘못된 사상이다.

사람간의 관계를 삼위 하나님에게 적용시키는 자체가 잘못되었다

(http://www.hightruth.or.kr/frame03/con_091.html). 이런 이론으로는 아버지 안에 아들과 성령이 상호내재 하시는 <사실>이 왜곡된다(요14:11).


(3) 삼위가 <구별은 되나> 서로 안에 거하심으로 <분리될 수 없는 상태>가 성경적인 한 분 하나님의 상태이다.


3) 하나님이 '하나 안에' 있다는 성경 증거


<원세호 님 주장: ① 요한복음 17:11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하옵소서"는 땅에 계신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하나'인 것이다. ② 요한복음 17:22 "우리가 하나된 것 같이 하나가 되려..."는 관계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성부는 서로 같은 장소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요10:30). 성경의 증거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안에서라는 표현은 실제로 땅에 있는 아들 성령님과 아버지는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관계의 하나'인 것이다...인하여 아버지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으라고 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 안에 성부 영이 있는 것을 증거하지 않는다...>


** 반박: 위 글에서 원세호 님은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장소 안에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예수의 신성의 무소 부재하신 속성을 부인한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을 특정 장소에 의해 그 존재와 속성이 분리되시기도 한다는 이단사상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예수의 인성>이야 죄만 없으시지 우리와 같으니까 시공의 제한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들 하나님의 신성>은 그렇지 않다. 그분이 이 땅위에 계실 때 그는 여전히 하늘 아버지 품속에 계신다고 했다(요1:18). 또한 요3:13 영어 성경 원문은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가 여전히 그 순간에도 하늘에 계신다(the Son of man which is in heaven)고 말씀하신다. 여기서도 <각각 떨어진 상태로 독립된 세 하나님>들을 주장하는 원세호 님의 삼신론 이단 사상이 폭로된다. 그의 주장 속에 성경적이고 정통개념인 <서로 안에 거함> 개념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이처럼 셋의 독립과 분리를 그토록 강조하면서 상호내재 개념을 부정하면 어떻게 말을 둘러대고 변명해도 삼신론 이단사상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변명을 위해 무슨 말을 할수록 더 자신이 삼신론자임을 또렷하게 알려줄 뿐이다.


소위 한국 교계를 위하여 이단을 감별한다는 사람들이 이처럼 삼신론 사상에 깊이 젖어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이들은 남을 판단만 해왔다. 감히 누가 이들의 신학사상을 검증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원세호님은 충분한 준비도 없이 성급하고 무리하게 성경적인 (지방)교회 삼위일체론을 비판했다. 그 와중에 스스로의 삼신론 이단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다시 반복하지만, <삼위의 상호내재 개념>에 오류, 사 9:6, 고후 3:17 등의 <경륜적 삼위일체론 관점>에 대한 무지가 원세호 님을 포함한 삼신론 성향의 이단감별사들의 치명적인 오류이다. 이들은 요14:11과 관련하여 예수님까지 양태론 이단자로 만들고 있다. 자기 분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상에서 삼위일체관련 여러 이견과 중점들을 다뤄보았습니다. 다소 난해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이러한 신론에 대한 변증 글들은 추구하는 분들에게 자료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 교계 내에서 바른 삼위일체관이 정립되는데 다소 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소 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반박은 다른 항목들에 대해서도 계속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