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교회관> 비판에 대한 재반박(中)
원세호님
timothy , 2005-08-24 , 조회수 (3359) , 추천 (0) , 스크랩 (0)
 

 

5. 원세호 님의 <교회 직제론> 비판에 대한 재반박


교회 직제에 대한 (지방)교회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다. 즉 성경대로만 인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빌립보서1:1, 목회서신으로 불리는 디모데 전서 3장에 의하면, 지역교회 안의 직분은 <복수의 장로들(기능을 염두에 두고 감독으로 지칭되기도 함)과 집사들>이 있을 뿐이다. 지역 교회 안의 직분은 오직 이 둘 뿐이다. 일단 부인부터 해 놓고 보는 원세호 님과 달리 저명한 교회역사가인 필립샤프는 '(교회)직분에는 두 종류 즉 장로들 혹은 감독들과 집사들 혹은 돕는 자들이 있었다'고 증거 한다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I. p 491). 위에서 보듯이 원세호님의 교회 직제론 비판은 치우쳤고 객관성을 상실했다.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직분이해 비판을 개괄적으로 반박하면 이렇다.


사도 바울은 지역교회가 세워지는 각 성(city)마다 <복수의 장로들>(elders)를 임명했다(행14:23, 딛1:5). 장로는 <임명>되었다(ordained). 목사도 이러한 장로의 한 종류라는 것이 장로교 교리이다. 또한 집사의 직분(the office of a deacon)도 일정자격이 갖춰진 사람만 사용하도록 했다(딤전3:10). (지방)교회는 이 두 직분이 지역교회 안에 있음을 인정한다. 이 두 직분 외에 <지역교회>에서 다른 직분을 <임명>했다는 성경 기록이 없다. 즉 원세호님이 지적한 <사랑을 베푸는 긍휼직>은 성도들에게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열매요 기능이지, 교회가 특정인에게 임명한 공식직분이 아니다. 이 둘의 차이를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성경에 사도가 있다. 그러나 사역자 유형 중 하나인 <사도>는 특정 지역 교회 장로나 집사들처럼 그 지역교회 범위 안에 제한 받지 않고 지역교회 범위를 넘어 활동함으로 지역교회 내의 직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에베소서 4:11-12에 열거된 내용은 에베소 교회에 그런 직분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 안의 직분을 말한 것이다. 성경엔 <권사직분>이 없다. 권사는 오직 한국교회만 있다. 타국의 장로교단이나 침례교단에 권사직분이 있는가? 없다. 성경에서 <사랑을 베푸는 긍휼직>은 임명직이 아니다. 또한 원세호님 거짓 주장처럼 빌립보 교회 안에 집사가 없지 않았다. 예루살렘 교회 안에 교사나 감독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래에서 다시 보겠지만 원세호님의 교회직분 이해는 이처럼 뒤죽박죽이다. 자신도 미처 정리가 안된 원칙으로 남을 재단하고 정죄하면 하나님의 교회 안에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사명 발휘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원세호 님의 장황한 비판에 대해서는 이렇게 세부적으로 반박하겠다.


먼저 독자들이 직접 (지방)교회측 주장을 들어보도록 원세호 님 변증책자에 인용 소개된 <(지방)교회 직제론 발췌원문>을 아래에 소개하겠다. 그리고 이어서 원세호 님의 터무니없는 왜곡을 핵심만 각 항목별로 간략하게 반박하겠다. 이것이 독자들에게 교회직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과연 무엇인지를 바로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지방)교회측의 교회 직제론 인용 시작)


① "장로들은 또한 교회 안에서 감독을 하는 감독자들이다. 그들은 죄악 되고 우상숭배 적인 것이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본다. 나는 교회 안에 어떤 계급과 지위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40. p. 21, 6-10줄, 위트니스 리)."(40. p. 21, 하 5-8줄, 위트니스 리).


② "마태복음 20장 25절로 28절과 23장 8절로 12절...이 두 부분의 말씀에 근거하여 교회 안에 어떠한 종류의 계급제도나 성직자들에 대한 입지가 없다. 주님은 우리가 모두 형제들이라고 하셨다(23:8).


③ "주님은 ...성직자-평신도 제도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의 기능을 얼마나 죽이는지를 보여 주셨다. 이 체계는 인간 조직의 계급서열, 지위를 포함한다.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는 신부,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황의 서열이 있다. 개신 교회에는 목사가 있고 국 교회에는 주교와 국교의 수장이 있다. 성경의 계시에 따르면 이 체계는 하나님의 눈에 가증한 것이다. 종파주의는 그 몸을 산산조각 내고 성직자-평신도 제도는 몸의 각 지체의 기능을 죽인다. 이 두 가지로 인해 그리스도의 몸은 무효화된다"(40. p. 5, 하1-8 줄, 위트니스 리).


④ "유일한 인도자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에게는 공식적이며 영구적이며 조직적인 사람의 인도 직분이 없다. ...어떤 종류의 계급도 없으며 세계를 총괄하는 인도자도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도...맹목적으로 따르지도 않는다..."(12. p. 159, 하 5-9줄, 위트니스 리 외).


⑤ "성경 안에 교회를 다스리는 「목사」가 있는가? 교회 전체의 책임을 지고 성도들을 키우며 목양하는 사역자가 있는가? 없다. 성경 안에서...사역자가 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장로들이 한 교회를 감독하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교회 안에는 오늘날의 목사나 변질된 목사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목사가 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몇몇 장로들이 한 교회를 목양하는 책임을 함께 지는 것임을 보았다. ...교회 안에는 교회의 일을 돌보는 장로들이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의 지위는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와 감독자들과 집사들이 곧 교회이다"(8. p. 240, 하 4-16, 워치만 니 주장).


⑥ "한가지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지방교회 안에 사도의 위치가 없고 장로의 위치만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조직 안에는 사도의 위치가 없고 오직 감독과 집사의 위치가 있을 뿐이다"(8. p. 242, 15-21줄, 워치만 니 주장).


⑦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교회 안에 사역자의 위치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형제이다. 교회 안의 집회는 한 사람만이 기도하고 찬송을 선정하고 떡을 떼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제사장이고 사역자는 그들의 제사장이 아니다"(8. p. 255, 14-21줄, 워치만 니 주장). (이상 인용 끝)


이제 원세호 님의 비판을 구체적으로 반박하겠다.


1) <원세호님 주장: '장로는 감독이며 죄악이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보는 자'라는 지방파의 주장은 성경 근거 없는 주장이다... 장로가 죄악이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감시자는 아니다... 성경에 감독제도가 있는 교회로서는 빌립보 지방의 개 교회의 한 예이다(빌1:1, 감독들임).>


반박: 장로들이 교회의 영적 어른으로서 양들을 목양하고 감독한 것은 성경과 교회역사가 증명한다. 여기엔 성도들이 죄에 연루되지 못하도록 감독하는 것이 당연히 포함된다. 즉 장로는 영적 생명이 성숙한 사람을 말하며, 감독은 그러한 장로의 감독하는 기능을 말한다. 마18:15-17, 고전5장 특히 6-8, 11, 행20:17, 28 등의 성경 본문을 잘 읽어보기 바란다. 유일하게 빌립보 교회에만 감독이 있던 것이 아니다. 딤전 3:1-2, 딛1:7, 행20:28 을 보라.


2) <원세호님 주장: ③ 지방파는 '목사 제도는 하나님의 눈에 가증하며 종파주의는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의 기능을 죽이고...라고 주장하는 것은 천주교나 국교는 말할 것 없으며 성직자-평신도 제도가 비성경적인 것은 사실이나, 기독교의 목사제도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상징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의 기능을 죽이고 무효화시킨다는 주장은 거짓이며 비성경적이다. 그 이유는 에베소서 4:11절...>


반박: 원세호님은 자신의 양심가운데 <천주교나 국교는 말할 것 없으며 성직자-평신도 제도가 비성경적인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워치만 니도 다만 그것을 지적한 것뿐이다. 독자들은 원세호 님도 성경의 근본적인 사상은 계급을 주장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다고 말하고 있음을 주목하기 바란다. <현재의 한국교계에서 관찰되는 목사제도>가 비성경적인 소위 <성직자-평신도 제도>(http://www.biblechurch.or.kr/church/proph.htm

)인지 아닌지는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것이다.


3) <원세호님 주장: ④ ...기독교의 목사 사명직 모범은 성경 근거에 의한 것이며 주님의 몸된 교회의 위임된 사명직이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지방파들은 주님이 세우신 제도를 부인하므로...하나님의 섭리적 교회를 파괴하려는 것으로 사료되니... ⑤ 성경에는 목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장로들이 한 교회를 감독하여 다스리는 것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참으로 거짓말이다.>


반박: 엡 4:11에서 목사로 번역된 '포이맨'(4166)은 '양치는 사람'을 뜻한다. 마9:36, 25:32, 26:31, 막6:34, 14:27, 눅2:8, 15, 18, 20, 요10:2, 11-12, 14, 16, 히13:20, 벧전2:25에서는 이 단어가 <목자>로 번역되었다. 엡4:11만 유일하게 <목사>로 번역되었다. 누가 <목자>의 존재와 기능을 부정할 수 있는가? 없다. 그러나 만일 이것을 <기독교의 목사 사명직>이라고 하면서 <(1) 필히 신학교와 신대원을 졸업해야 하고, (2) 목사고시를 반드시 합격해야 하며, (3) 목사 안수 받은 자만>으로 좁게 정의한다면, 이것은 위 성경 본문이 의미하는 <목자> 개념을 벗어난 것이라는 말이다. 성경에서 이런 목사의 예를 찾을 수 없다. 목자에 대한 자격은 딤전 3장이 제시하고 있으며, 누가 참 목자인지 삯군 목자인지는 하나님의 양들이 분별한다. 거듭나고 영적 생명이 성숙해야 양들을 잘 목양 할 수 있다. 그래야 딤전 3장의 <감독의 자격>도 갖출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적 교회를 파괴하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또한 목사도 장로의 한 유형이라는 것이 장로교 헌법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장로가 교회를 감독하며 다스린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4) <원세호님 주장: 에베소 교회에는...성도와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전도사, 목사, 교사들로 구성되었으며 빌립보 교회는 집사직제가 없다. 고린도 교회도...사도, 선지자, 교사, 봉사직, 다스리는 직(목사? 장로?)이 있었으며 감독직, 장로직이 없었다... 로마 교회에는 예언자인 선지자직, 섬기는 자들인 봉사직, 가르치는 교사직, 권위자인 권사직, 구제담당 구제직 다스리는 장로직, 사랑을 베푸는 긍휼직 등이 있었으며... 예루살렘 교회는 교사직이나 목사직, 권사직, 감독직도 없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방파는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반박: 위와 같이 원세호님이 교회직분을 이해함에 있어서 혼돈의 극치를 보이는 것은 각 서신서 수신인 범위를 그 지역교회만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이다. 고린도 전후서는 고린도 교회만이 수신인이 아니다. 고전1:2를 잘 읽어 보라. 에베소서는 에베소 교회만이 수신인이 아니다. 엡1:1을 주의 깊게 읽어보기 바란다. 위 수신인에는 '각처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신실한 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서신서 내용을 그 지역교회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참고로, 교회직분을 언급함에 있어서 에베소서는 교회에게 주신 은사 있는 <사람>을 강조했고(엡4:11), 고린도 전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얻은 <은사의 기능>을 강조했다(고전12 :8-10, 12:28). 또한 로마서는 은혜와 믿음으로 얻은 <생명에 속한 은사>를 강조점으로 하여 쓰여졌다. 원세호 님은 이런 차이를 염두에 두고 성경을 좀더 자세히 읽었어야 했다.


5) <원세호님 주장: ⑦ ...(지역)교회 안에 사역자가 없고 모두 형제이며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라는...주장은 거짓이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형제라고 했다. 그리고... 성도들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제사장의 신분인 것이나 로마서 15:16에는 일군인 복음의 제사장 직무자가 있었음 같이 목사나 선지자나 사도나 장로나 집사 등이 성도인 제사장 중에 직분자가 임직된 것이다.>


반박: 원세호님은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형제이며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제사장임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롬15:럼 <복음의 제사장 직무>만은 <임명>받아야 할 수 있다는 주장인가? 임명 안 받으면 복음도 전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복음의 제사장>, <선지자 직분>, <사도직분>으로 <임명받아> 활동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그들을 누가 임명했는가? 또한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가? 원세호님의 이런 주장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더 이상 사도가 없다는 것이 장로교단의 교리이다.


(지방) 교회는 지역교회 안에 장로들(감독들)과 집사직분이 있음을 이미 앞에서 분명히 밝혔다. 그러므로 원세호 님은 마치 (지방)교회는 교회직분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으로 왜곡시키지 말기 바란다. 끝으로, 워치만 니가 그의 저술 '사역의 재고'에서 <사역자>라고 할 때 그것은 특정 지역교회에 묶이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 전체인 우주교회를 섬기는 사도직 등을 지칭한 것이다. <(지역)교회 안에 사역자가 없고...>라는 표현은 바로 그런 의미임으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6. 원세호님의 <교회 위치와 단위> 비판에 대한 재반박


우리가 알 듯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엡1:23). 그리스도가 한 분임으로 당연히 그분의 몸도 하나 뿐이다(엡4:4).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유일하게 단수의 교회이다(마16:18). 이것을 우리는 우주교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들>이라는 복수형태의 교회를 말하기도 한다. 계시록 1:4에 있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원세호 님도 복수형태의 교회들을 말하는 몇 군데의 성경 사례들을 잘 소개해 주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신부', '한 새 사람', '하나님의 집' 등으로 정의되기도 하는 <단수의 교회>가 <복수의 교회들>이 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침례, 장로, 순복음> 등의 특정진리인가(침례교회, 장로교회, 순복음 교회)? 그러나 성경에 침례나 장로직분 혹은 복음은 있으되 침례교회나 장로교회 또는 순복음 교회는 없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 <루터> 등의 특정 사람인가(루터교)? 그러나 성경엔 특정인의 이름을 딴 교회도 발견할 수 없다. 성경이 보여주는 유일한 구분은 <성도들이 사는 지리적인 경계>로 교회와 다른 교회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서신서 초두에 기록된 수신인 교회의 범위와 사도행전 8:1, 13:1, 계1:11 등에서 이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복수의 지역교회들은 마18:15-17의 '범죄한 형제처리' 사례와 같은 실제적인 교회생활의 실행과 행정을 위한 시간의 한계 안에서의 일시적인 구분이다. 성경의 끝 부분인 요한 계시록 후반부에는 이런 지역교회들은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어, 영원 안에서는 지역이니 지방이니 하는 교회구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계21:2, 9-10, 22:17). 그러나 아직은 이런 구분이 필요하다).


현재 원세호 님과 (지방)교회측 간의 이 주제에 대한 이견의 핵심을 정리하면 이렇다.


즉 (지방)교회 측이 <한 도시(one city')안에 하나의 교회(one church)>만 있다고 이해하는 것에 대해, 원세호 님이 <한 도(one province) 안에 여러 개의 교회들(churches)> 이 있다는 성경 근거를 가지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지방)교회측은 다시 <한 도는 경기도, 제주도..처럼 여러 개의 도시들을 포함하는 도시보다 넓은 개념임으로 한 도 안에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한 도시 안에 하나의 교회를 부정할만한 성경 근거는 아니다> 라고 반박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안양시>는 하나의 시이다. 그러므로 안양시 안에 사는 모든 거듭난 성도들을 포함한 <하나의 안양시 교회만>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경기도> 안에는 안양시 외에도 수원시, 용인시, 성남시, 군포시 등등 여러 개의 시가 있다. 그러므로 경기도 안에 <여러 개의 지역교회들>이 있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이 <한 도시, 한 교회> 원칙을 깨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원세호 님은 <한 도시 안에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는 성경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과 비판은 별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쌍방의 주장을 직접 인용 소개하고, 성경본문 분석을 통해 결론을 내리기로 하겠다.


1) 먼저 <도 단위 안에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었다>는 취지의 원세호 님 주장이다.


<원세호 님 주장: ① 지방파는 '신약으로부터 한 도시에 오직 한 교회만 있음을...주장했다. 위 주장은...잘못되었다. 이유는...도시나 지방에는 교회(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세워졌다. 그 근거 성경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교회(복수)(행18:22), 아시아 지방 복수의 교회들(고전16:19). 갈라디아 지방 복수의 교회(고전16:1; 갈1:2) 마게도냐 지방 복수의 교회(고후8:1) 유대지방 교회들(갈1:22; 살전2:14)...이러한 사실은 지방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방에 거주하며 거듭난 성도들의 모임이 개 교회적임을 나타낸다. 지방파가 자신들만 인정하고 다른 기독교를 부인하려고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 성경에 한 지방에 복수로 많은 교회가 있었는데 왜 한 교회여야 한다는 것인가? 이것은 거짓 말하다 탄로 난 거짓말이다.>


2) 이제 <한 도시(city) 안에 한 교회 뿐> 이라는 (지방)교회측 주장이다.


<(지방)교회측 주장: ① "그(워치만 니)는 신약으로부터 한 도시에 오직 한 교회만 있음을 발견했다. 한 지방의 교회는 한 도시에 하나이다. 지방교회의 입장은 합일의 입장으로서 지방입장이라 불리기도 한다"(40. p. 59, 1-6줄, 위트니스 리 주장). ② "교회의 최대 한도가 지방이고 최소 단위도 지방이다. 지방보다 적은 것은 교회가 아니고 지방보다 큰 것도 교회가 아니다"(36. p. 112, 12-13줄, 워치만 니 주장). ③ "교회가 지방보다 커서도 안 된다. 성경을 읽어보면 갈라디아 교회들과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과 유대의 교회들이 있다. 유대 땅에 있는 교회가 많았기 때문에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라고 말했다... 갈라디아에는 여러 교회가 있기 때문에 교회라는 단어가 단수 아닌 복수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방보다 커서는 안 된다"(36. p. 113, 2-10줄, 워치만 니 주장).>


3) 이제 성경 본문을 통해 위 두 주장들을 직접 검증해 보자.


성경 용례를 보면 일관되게 <도, province> 안에는 여러 교회들이 있었으나 <도시, city 안에는 하나의 교회만>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소 아시아>도 안에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피아, 라오디게아 일곱 개의 시와 일곱 개의 교회들이 있는 것이다(계1:11,... seven churches which are in Asia; unto Ephesus...). 그러나 하나의 시였던 예루살렘은 그 당시 수 만 명의 성도들이 있었으나 단수의 교회였다(the church which was at Jerusalem)(행8:1). (이것을 예루살렘 시 전체에 <예배당>이 하나만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모임 장소는 많이 있었다).


이제 원세호 님의 주장 근거 구절들을 하나씩 검토해 보자. 먼저 유의할 것은 원세호 님이 인용한 <아시아>, <마케도니아>, <갈라디아>, <유대> 등은 모두 오늘날 경기도, 충청 남도, 경상 북도와 같은 도(province)의 범위였고, 그 도 안에는 여러 개의 도시들이 있었다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점이다(성경지명 사전 참조, http://kcm.co.kr/ency/place ).


-행18:22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원문은 the church로 단수임)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원세호님이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복수의 교회들이 있는 증거로 제시한 성경 본문이다. 직접 관계도 없는 엉터리 성경 근거를 제시했다.


-고전16:19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 앞에서 지적했듯이 그 당시 <소 아시아>는 에베소, 밀레토 등 여러 개의 도시들을 보유한 도 단위의 행정구역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한 도시에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었다는 증거가 못된다.


-고전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 <갈라디아>도 역시 루스드라, 더베 등 여러 개의 도시들을 포함하는 도 단위 행정범위이다. 이것 또한 한 도시에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었다는 증거가 못된다.


-갈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 위와 같다.


-고후8: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케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 <마케도냐> 역시 도 단위의 행정 구역이다. 행16:12은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고 말한다. 첫 성이란 말은 마케도냐 안에 빌립보 같은 성(도시)이 여럿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마케도냐 도(province) 안에는 '데살로니카, 베뢰아, 네오폴리스 같은 여러 도시들이 있었다. 물론 그 당시 데살로니카에도 지역 교회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한 도시에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었다는 증거가 못된다.


-갈1:22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 원세호 님이 소개한 것처럼 이런 표현은 살전2:14에도 나온다. 그러나 <유대(Judea)>역시 그 당시 도 단위 행정구역이었음으로 많은 도시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것 또한 한 도시에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니다. 이처럼 원세호님의 비판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그러나 반대로, 성경에서 단수의 교회로 표시된 도시(city) 단위의 예루살렘(행8:1), 안디옥(행13:1), 고린도(고전1:2), 에베소(엡1:1), 빌립보(빌1:1), 골로새(골1:2), 데살로니카(살전1:1), 아시아의 일곱 도시(계1:4, 11)에 있는 <단수의 교회>들이 있었다. 이 각각의 도시들 안에 <복수의 교회들>이었다는 성경 증거는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성경 용례와 증거들을 볼 때, <한 도시 안에 하나의 교회만 있었다>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정당하다. 또한 매우 성경적이다. 그러나 <한 도시 안에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었다>는 원세호 님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성경 인용도 합당치 않았다. 그러므로 원세호 님이 지금처럼 엉뚱한 성경 인용을 한 후 (지방)교회의 교회구분 기준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것을 근거로 함부로 이단 삼단 정죄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일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회개해야 한다(출20:16, 마5:22-24, 요일3:15). 원세호 님은 거짓 증거와 선량한 성도들을 애매히 정죄함으로 하나님 앞과 참된 성도들 앞에 자신이 득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7. 원세호 님의 <교회 이름 제정> 비판에 대한 재반박


원세호님은 이 주제에 대해서는 특별히 비판할 말을 잊은 듯 하다. <성도들이 살고 있는 거주 지역을 기준으로 교회 이름을 지칭했다는 (지방) 교회 주장> 이외에 다른 사례를 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래에서 보듯이 그가 억지비판을 위해 궁색하게 한 말은 오히려 자신 스스로 (지방)교회측의 관점이 성경적임을 확증해 주었을 뿐이다.

 

이번에는 교회이름 제정에 대한 (지방)교회측 입장을 먼저 인용하고, 원세호 님의 비판의견을 그 뒤에 인용 소개해 보겠다.


<(지방)교회측 주장: ① "교회는 오직 그 지방 이름으로 명명해야함...교회는 사람의 이름이나 교리의 이름이나 제도의 이름뿐 아니라 기원한 지방 이름으로 명명하는 것은 없다. 발원한 그 지방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지방 이름으로 명명해야 한다...모든 교회는 지방적이고 지방과 관계되며 나라와 관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위 중화 기독교회는 성경에 전혀 없는 것이다"(36. p. 114, 1-16; 워치만 니 주장). ② "건물은 00교회의 집회 장소일 뿐 00교회가 아니다. 우리의 집회 장소에는 주소가 있지만 우리 교회 주소가 없다"( 8. p. 259, 12-1 4줄, 워치만 니 주장).>


<원세호 님 주장: ① '교회의 이름은 나라와 관계되지 않았으며 사람 이름과, 교리의 이름이나 제도의 이름으로 명명해서는 안 된다. 모든 교회는 지방적이고 지방과 관계되었다' 라고 지방파는 주장한다...성경에 예루살렘은 지방의 이름이며 성도의 모임인 교회를 다른 지방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와 구별하는데 지방 이름이 이용된 것이지...>.


소위 (지방)교회는 <지방교단>이 아니다. 또한 원세호 님이 경멸적인 의미로 부르는 <지방파>도 아니다. 다만 교회와 교회를 구별하는 기준에 대해 성경원칙을 따를 뿐이다. 즉 원세호 님도 잘 설명한 것처럼 <...성경에 예루살렘은 지방의 이름이며 성도의 모임인 교회를 다른 지방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와 구별하는데 지방 이름이 이용되어야 한다>는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예루살렘(에 있는)교회'('The church...at Jerusalem)'(행8:1), 안디옥(에 있는)교회(The church...at Antioch)(행13:1)라고 함으로 교회명칭을 장소에 따라 부르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원세호 님도 우리와 동일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렇다면 본인도 지방파인가? 그리고 이런 호칭이 듣기에 유쾌한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이런 호칭사용을 자제하여 주기 바란다. 그리고 누구에게든 성경적인 것은 성경적이다 라고 하고, 틀린 것만 틀렸다고 하라(빌1:7). 지금처럼 꼬투리를 잡는 식의 억지 비판은 이제 그만두기 바란다. 대신에 원세호 님은 이제부터라도 교회 명칭 제정 원칙에 대해 우리에게 말한 것처럼, <성경에 예루살렘은 지방의 이름이며 성도의 모임인 교회를 다른 지방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와 구별하는데 지방 이름이 이용된 사례>가 있으니 여러분들도 성경을 따라 그렇게 실행하라고 다른 이들에게도 권면해 주기 바란다.


8. 원세호님의 <교회의 하나됨과 합일 사상> 비판에 대한 재반박


이 주제에 대해서는 원세호 님의 책자에 인용된 (지방) 교회측의 입장을 먼저 소개하고, 그 뒤에 원세호 님의 비판내용을 내용별로 묶어서 반박하겠다.


1) 먼저 원세호 님의 책자에 인용된 <교회에 관한 (지방)교회측 관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단 내용의 유사성을 따라 하나로 묶는 과정에서 글의 순서가 일부 바뀌었고, 중복된 내용은 편의상 일부를 삭제함).